〈 26화 〉보스룸
‘아니, 내가 그렇게 못 물어 볼 걸 물은 것도 아니잖아?’
나는 알렌을 보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고로 남자가 모르는 여자에 대해 묻는 첫 번째 질문이 예쁘냐인 것은 국룰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알렌은 마치 상종 못할 쓰레기를 보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내가 알렌이 그 주인 아가씨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의심하던 그 순간.
“….객관적으로는 예쁜 편입니다.”
한참이나 고민을 하던 알렌은 나에게 그렇게 답했다.
“객관적으로는 뭐야?”
“….그 외모만 봤을 때는 흠 잡을 곳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알렌은 억지로 말을 하는 것처럼 이를 꽉 물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 모습은 마치 조선의 애국투사가 일본 놈 앞에서 억지로 조국을 부정하는 것처럼 일견 비장해 보일 정도였다.
순간, 알렌의 표정이 예전 내 얼마 없는 친구의 표정과 겹쳐 보였다.
그 때도 나는 국룰에 따라 친구에게 여동생이 예쁘냐고 물어 봤었다.
물론 그 친구는 지랄 발광을 하며, 자신의 하나뿐인 여동생이 화장 지우면 마귀니, 사람들이 속고 있는 거니 열변을 토했지만, 어쨌거나 그 여동생은 예쁜 걸로 꽤나 유명했다.
‘남매 포지션, 뭐 그런 건가?’
하긴, 아주 어릴 때부터 상단에서 함께 자랐다면 상대를 이성으로 느낄 틈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거기다 주인집 딸내미라는 포지션은 신분의 벽 같은 것이 가로막은 상대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하지만 내 그럴싸한 추리에, 알렌은 학을 떼며 그렇게 부정했다.
아니, 근처에 물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귀를 씻어버리고 싶은 표정.
“아니, 예쁘다며? 여자가 예쁘면 됐지, 뭐가 문제야?”
“….본 씨가 우리 아가씨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얼굴은 그럭저럭 괜찮지만, 성격은 그야말로 개차반입니다.”
“개차반?”
“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상대의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욕심은 많아서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여자입니다. 거기다 욕심은 많고, 허영 덩어리에, 멍청하고, 폭급 한데다, 지랄 맞고, 또…”
“그만!”
가만히 놔두었다가는 밤을 새서라도 자신의 아가씨의 단점을 씹어댈 분위기.
내가 억지로 말리자, 알렌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그런 알렌의 얼굴은 일견 후련해 보이면서도, 아직 한참은 부족하다는 듯한 느낌이 뒤섞인 느낌이었다.
‘아니….뭐, 얼마나 원한이 쌓였길래?’
나는 한숨을 푹 쉬며 알렌을 바라봤다.
뭐, 병에 걸린 사람을 상단의 거래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가둬두는 양반을 아버지로 두었으니, 그 성격이 정상인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면 이상할 일이었다.
“그, 아카데미에 이번에 입학하신다고 했지요?”
“그래. 그랬지.”
알렌은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보다 그렇게 다시 말을 꺼냈다.
“저희 아가씨와는 절대로 엮이지 않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알렌은 나를 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엮이지 말라고는 했지만, 그게 내 마음대로 될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몰랐으면 모르되, 성격 나쁜 부잣집 아가씨라니.
당장 알렌과 그 아가씨라는 여자를 주제로 이렇게 떠들어 댄 이상, 독자들이 나에게 기대할 건 뻔했다.
‘따 먹으라고 하겠지.’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알렌을 바라봤다.
“알렌. 넌 아직 어려서 모르는구나.”
나는 알렌을 향해 그렇게 운을 땠다.
다소 뜬금없는 소리에 알렌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것이 보였다.
“장미는 가시가 있기에 아름다운 법이야. 여자도 성깔이 좀 있어야, 맛이 있는 법이지.”
내 말에, 알렌의 표정이 못 들을 것을 들은 것처럼 일그러졌다.
“아니, 그 가시라고 하기엔, 조금…다시 생각해보시는 것이…”
알렌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든 내 생각을 돌려보고자 하는 필사적인 의지가 보였지만, 나는 거기에 넘어가지 않았다.
아쉽게도 이쪽은 목숨이 걸린 일이었으니까.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쓸 거 없어. 뭐, 아직 얼굴 한 번 안 본 사이에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말이야.”
내가 알렌을 향해 거의 김칫국 드링킹이나 다름 없는 말을 내뱉는 이유는 간단했다.
눈 앞에서 오크를 거의 학살하다시피 한 알렌을 적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으니까.
‘생각해보면, 그 자식도 그렇게 제 여동생 욕하다가 막상 내가 만나니까 지랄 발광을 했었지.’
나는 그 나마 몇 명 없던 친구 하나를 잃었던 기억을 회상하며 쓴 웃음을 머금었다.
**
“…괜찮으십니까?”
“어, 이 정도야 뭐….”
솔직히 괜찮지 않았다.
알렌과 던전을 탐험한 지 꼬박 반 나절.
나는 알렌이 토벌해 놓은 오크들 시체 사이에 주저 앉아 숨을 몰아 쉬는 중이었다.
‘미친 거 아냐? 이런 걸 추천이라고 팔아?’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내가 시스템이라 부르는 것에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만약 토마스의 말을 듣지 않고 나 혼자서만 던전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눈 앞이 깜깜해질 지경이었다.
‘이 새끼, 날 죽이려고 함정 판 거 아냐? 조회수 안 나온다고?’
홧김에 떠올린 생각이지만, 가능성이 영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연재된 횟수는 25화.
하지만 내 이야기는 히트작들의 25화까지의 지표를 생각하면, 형편 없는 선작수와 조회수를 보이고 있었다.
‘거기다 투베도 나가리됐으니…’
가장 큰 이유는 20화를 기점으로 이러나는 투베 등반이 실패로 돌아간 것.
그러니까 내 이야기는 흔히 말하는 망작까지는 아니어도, 성공작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닙니다. 작가님. 오해입니다.]
상당히 늦은 시스템의 반응을 보며, 내 의심은 거의 확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뭘 어쩔 수도 없는 상황.
지금 내가 믿을 거라고는 눈 앞의 알렌 뿐이었다.
지금 상황은 그야말로 알렌 기사가 버스를 태워주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물론, 버스를 탄다고 능력치나 레벨이 오르는 것도 아닌 나로서는 진짜로 쓸 데 없는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만 생길 뿐이었다.
“그나저나, 너 되게 잘 싸우네.”
“…아닙니다. 그냥 보통이죠.”
알렌은 내 말에 민망한 표정으로 그렇게 답했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이세계에 대해 무지하다고 해도, 알렌이 보통을 넘어선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오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학살하는 알렌을 보며, 나는 그가 사실은 이세계의 주인공 같은 존재가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으니까.
“네가 보통이라고?”
“…..네.”
“…..그럼 나는 쓰레기냐?”
“….본 씨야, 다른 훌륭한 부분이 많으시니까요.”
알렌은 내 시선을 슬쩍 피하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저 착한 알렌조차 농담으로라도 내 실력이 괜찮다고는 말해주기 어렵다는 것.
개 잡캐를 목표로 선작을 잔뜩 갈아 넣어 능력치를 균등하게 올리고, 온갖 싸구려 스킬을 구매한 나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쓰레기는 모아봐야 쓰레기라는 것.
“저는 마법은 잘 모르지만, 본씨의 마법은 적중률이 높지 않습니까? 듣기로는 마법사들이란 의외로 예민해서 마법 중간에 캔슬이 되는 경우도 많고, 기껏 쏜 마법도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다던데요.”
잔뜩 기가 죽은 나를 보며, 알렌은 그렇게 위로했다.
사실 마법사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로잘린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떠올린 나는 알렌의 말이 그냥 형식적인 위로라고밖에 느끼지 못했다.
“거, 거기다, 마법도 사용하시면서 검도 쓰시다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아무리 스무 살짜리 성녀와, 상단 하인인 소드 마스터-실제가 아니라, 내가 보기엔 그랬다-가 있는 세상이라고 해도 마검사라는 존재는 귀한 모양.
나는 그 말에 아주 작은 희망을 품고 알렌을 향해 물었다.
“마검사가 없어?”
“…드물죠. 어느 한 쪽에 집중해도 대성을 이루기 어려우니까요.”
알렌은 그 착해 빠진 얼굴로 눈알을 데굴 굴리며 그렇게 답했다.
나를 위로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거짓말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이 세계에서도 개잡캐는 아무도 안 키운다는 소리.
하긴, 게임도 아니고 진짜 인생이 달렸는데 개잡캐를 키우는 것은 나 같은 미친놈 밖에는 없을 것이었다.
‘병신 같이, 그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좋은 생각이라고 믿다니.’
나는 즉흥적으로 스킬들을 구매한 내 행동을 뒤늦게 후회해 보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가자. 빨리 던전 탐험 끝내고 집에 가서 쉬는 게 낫지.”
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알렌은 자연스럽게 내 앞을 앞장서기 시작했다.
어떤 위협이 닥쳐와도 나 하나는 지켜줄 것 같은 알렌의 등판이 꽤나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등짝, 등짝을……..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순간, 여성 독자를 끌어와 볼까 하는 불온한 상상을 하긴 했지만, 나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알렌의 얼굴이 반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생각할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
던전의 구조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직선으로 끝없이 이어진 방 들을 계속해서 돌파해야 하는 구조.
그 흔한 갈림길 하나 없는데다 함정 또한 없는 곳이었지만, 대신 던전은 끊임없는 오크 물량전으로 승부를 보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 알렌은 그 쏟아지는 물량을 실시간으로 녹여가며 던전을 돌파하는 중이었다.
내가 던전의 끝이 있기는 한 건가 의문을 품던 그 순간.
![보스 룸 알의 침실에 입장합니다.]
알렌의 등을 따라 걷던 나는 눈 앞에 그런 메시지가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슬쩍 알렌의 눈치를 살폈지만, 알렌에게는 따로 그런 경고가 나타나지 않는 모양.
“긴장해. 분위기가 좀 다르니까.”
나는 알렌을 향해 그렇게 말하며, 전방을 주시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미형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였다.
순간, 알렌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흘끔거리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마도 내가 자신도 알아채지 못한 존재를 먼저 눈치 챈 것이 놀라웠던 모양.
아무리 착해 빠진 놈이라고 해도, 지금껏 내 실력을 보고는 대충 나라는 인간의 수준을 파악한 듯싶었다.
“…….인간?”
알렌의 반응에 마음의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내 눈은 어둠을 뚫고 나온 존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알렌 또한 정신을 차리고 상대를 향해 검을 세우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던전의 보스, 알이라는 존재는 그런 나와 알렌이 조금의 위협도 되지 않는 다는 것처럼 태연한 모습을 보이는 중이었다.
“….다크 엘프?”
알렌이 보스 룸의 주인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랬다.
어둠을 뚫고 나타난 존재는 온 몸이 검게 물든 엘프였다.
그러니까 지금껏 오크만 잔뜩 출몰하던 던전의 주인이 다크 엘프라는 생뚱 맞은 결말이 펼쳐진 것이었다.
“…..음.”
거기다 왜인지는 몰라도, 놈의 하반신을 두르고 있는 천이 텐트를 치며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는 중이었다.
하필이면 처음 만난 엘프가 잔뜩 발기한 남자라니.
엘프에 대한 내 이미지가 깨지고 있었다.
하지만 놈 또한 나와 알렌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인 모양.
“…여길 어떻게 들어왔지? 아니, 그것보다…하필이면 수컷인가?”
자지를 빨딱 세운 다크 엘프는 나와 알렌이 수컷, 아니 남자라는 것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길 수 있겠냐?”
나는 알렌을 보며 그렇게 물었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던 긴장한 표정으로 알렌은 다크 엘프를 노려보고 있었다.
“….해 봐야죠.”
다크 엘프는 자신을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 알렌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하니 인간 따위가 자신에게 덤벼들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표정.
그건 마치 고양이가 자신을 향해 이빨을 들이미는 쥐를 바라보는 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반응이었다.
“….뭐, 어차피 여기 들어온 이상 살려 보낼 수는 없겠지. 수컷이면 쓸모도 없을 테고.”
다크 엘프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허리춤에 찬 곡도를 뽑아 들었다.
흔히 시미터라 부르는 검이었다.
알렌은 양 손으로 자신의 검병을 꼬나쥐며, 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제가 신호하면, 라이팅 마법 부탁 드립니다.”
나는 알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알렌이 다크 엘프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던전 보스 룸은 집중하면 상대의 표정을 살필 정도는 되었지만, 절대 밝다고는 하지 못할 정도였다.
깡-.
칼과 칼이 부딪쳐 만드는 불꽃이 던전 내부를 밝혔다.
몇 번이나 불꽃이 튀고 있었지만, 상황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인간종 치고는 제법이구나.”
다크 엘프는 여유롭게 알렌의 검을 받아내며, 그렇게 말했다.
아직까지 알렌의 공격을 받아내기만 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여유가 흘러 넘쳤다.
반면, 알렌은 그다지 여유가 없어 보였다.
아마 혼자였다면 몸을 빼 달아나는 것이 가능할지 몰라도, 나라는 짐까지 딸려 있는 것이 심히 부담이 되는 모양.
“본씨!”
순간, 다크 엘프와 검을 맞대고 힘을 겨루던 알렌이 내 이름을 외쳤다.
나는 알렌의 말에 라이팅 마법을 시전했다.
내 손에서 뻗어나간 동그란 빛의 구슬이 보스 룸 안을 밝혔다.
“쳇, 잔재주를.”
다크 엘프가 갑자기 밝아진 상황에 눈살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승기를 잡을 기회였지만, 알렌은 공격을 이어가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사고가 끊어진 것처럼 아무것도 하질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
‘이게 뭐야, 씨발?’
전구를 켠 것처럼 환해진 던전 내부의 풍경이 너무나도 뜻밖이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