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키잡
“크아아아악!!!”
던전 안에는 다크 엘프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인간의 피와는 확연히 다른 검고 진한 녀석의 몸을 타고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미친 놈이네, 저거.’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다크 엘프를 바라봤다.
아니, 그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공격을 성공시킨 알렌도 마찬가지였다.
목과 성기.
두 군데를 동시에 노리고 들어온 절묘한 공격에 대한 다크 엘프의 반응은 상식 밖이었다.
다크 엘프는 검으로 내 마법을 쳐 내는 것과 동시에 비어 있는 손으로 알렌의 검을 붙잡으려 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목숨을 버리고 자지를 살리겠다는 태도.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어쩐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머리로는 검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 또한 같은 상황에서는 소중한 분신부터 지킬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이 개 같은 인간종들이!!!”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진 다크 엘프는 나와 알렌을 노려보며 그렇게 고함을 질렀다.
아쉽게도 알렌의 검은 다크 엘프의 목을 쳐내지 못했다.
빈 손이었지만, 다크 엘프의 손이 검로를 막아 섰고 알렌의 검은 녀석의 손가락 몇 개를 날리는 것과 동시에 놈의 귀를 반쯤 잘라내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바닥에 놈의 잘린 손가락들이 소시지마냥 굴러 다니고 있었지만, 녀석은 오히려 흥분한 듯 알렌을 향해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크윽!”
지금껏 알렌이 유지하던 공세가, 녀석에게로 넘어간 것이었다.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알렌이 놈의 공격을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다크 엘프가 침착하게 공격을 했더라면 알렌의 실력으로는 막는 것에 금방 한계를 느꼈을 지 몰랐다.
하지만 잔뜩 흥분한 녀석은 마구잡이의 단순한 공격을 해오기 시작했고, 알렌은 그 공격을 어떻게든 틀어막고 있었다.
“홀드.”
나는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는 다크 엘프를 보며 조심스럽게 주문을 외웠다.
눈 앞에 카우보이나 쓸 법한 유백색의 올가미가 나타났고, 그 올가미는 조용히 다크 엘프의 등 뒤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상점에서 무려 2000G나 주고 산 경직 마법.
토마스에게 써 본 결과, 그 효과가 1초도 되지 않는 듯 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라면 그 1초가 엄청난 변수를 만들지도 몰랐다.
“개 같은, 어디서 잔 재주를!”
하지만 이번에는 다크 엘프도 얌전히 내 마법을 맞아 주지 않았다.
놈이 내가 쏘아 보낸 올가미를 시미터로 잘라버린 것이다.
‘아니, 씨발. 마법을 검으로 자르는 게 말이 돼?’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알렌은 아니었다.
놈의 신경이 마법에 팔려 있는 사이, 재빨리 다시 공격을 취한 것이다.
알렌의 검이 다크 엘프의 손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깜짝 놀란 다크 엘프가 알렌의 검을 쳐내려 했지만, 작정하고 한 공격과 다급히 휘두른 검격이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
깡-.
다크 엘프의 검이 알렌의 검에 부딪쳐 허공을 날고 있었다.
“….이겼다.”
나는 주먹을 꽉 쥐며, 그렇게 소리쳤다.
알렌이 검을 꼬나 쥐고 놈을 노려보는 것과 달리, 다크 엘프의 얼굴에는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알렌은 곧장 놈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달려 들었다.
“다크 스피어!”
순간, 다크 엘프가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놈의 앞에 나타난 검은 색 창이 알렌을 향해 쏘아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랬다.
녀석은 엘프 답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마검사가 드물긴, 씨발.’
나는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끼며 알렌을 바라봤다.
알렌이 당하면 그 다음 차례는 내가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크윽!”
알렌은 다급히 검을 휘둘러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법 창을 튕겨냈다.
다행히 마법 창에 직격을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껏 승기를 잡은 알렌의 움직임이 멈춘 것이었다.
“…..개 같은 인간종들. 오늘 일은 잊지 않겠다.”
다크 엘프는 어째서인지 나를 노려보며 그렇게 말했다.
손가락을 자른 것도, 그리고 귀를 잘라낸 것도 알렌이었지만 놈의 검은 눈동자는 정확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왜 나한테 그래…?’
미친 놈에게 원한을 사는 것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나는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는 다크 엘프를 보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보스 룸을 공략하셨습니다.]
놈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눈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메시지를 보며 입을 벌렸다.
“…..선조냐?”
나는 간접적으로나마 임진왜란 당시의 왜군 장수들의 심경을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내 상식에서는 던전 보스가 보스 룸을 두고 도망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으니까.
거기다 두고 보자는 놈치고 무서운 놈은 없는 법이었지만, 나는 다크 엘프가 무서웠다.
지금도 알렌이 아니었다면 1초도 못 버티고 끔살 당했을 것이 뻔했으니까.
“크윽…”
“괜찮아?”
나는 다급히 알렌에게 달려가 그렇게 물었다.
당장, 몸에 큰 상처는 없어 보였지만, 알렌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언제 다시 다크 엘프 놈이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는 상황.
나는 초조한 표정으로 알렌을 바라봤다.
“….괘, 괜찮습니다.”
알렌은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지만, 그의 상태가 좋지 못한 것은 굳이 의사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인벤토리 창을 열어 약초 하나를 꺼냈다.
뼈가 부러져도 금방 붙었던 기적의 약초이자, 내가 토마스에게서 빼돌린 하야스 풀이었다.
“씹어.”
나는 알렌의 입에 풀뿌리를 쳐 넣고는 그렇게 말했다.
알렌은 내 말에 천천히 턱 관절을 움직여 약초를 씹기 시작했다.
순간, 알렌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이제 진짜 괜찮은 거 같습니다.”
알렌은 못 먹을 것을 먹은 것 같은 표정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내게 그렇게 말했다.
던전 보스가 도망친 초유의 사태였지만, 어쨌거나 위기는 넘긴 셈이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던전의 보상을 얻는 것이었다.
“…..일단 여자들부터 풀어주죠.”
“…아, 그래야지.”
알렌이 어째서인지 나를 쓰레기를 보는 것처럼 바라봤지만, 나는 그냥 내 착각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
“미친 엘프놈이 노망이 났나? 도대체 이게 몇 명이야?”
나는 다크 엘프가 숨어 있던 던전의 내부를 살피고는 기함을 토했다.
놈의 침실이라던 보스 룸 뒤로, 여자들이 갇혀 있는 감옥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갇혀 있던 여자만 족히 서른 명.
그나마 그건 생존자의 숫자였다.
놈이 삼십년 간이나 이 지역에서 활동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껏 생긴 피해자의 수는 가뿐히 세 자릿수를 넘길지도 몰랐다.
“괜찮으세요?”
“….아아….아악!”
거기다 문제는 갇혀 있는 여자들 상태가 하나 같이 멀쩡하지 못했다.
감옥에서 꺼내주려 다가선 알렌을 보면서도 비명을 질러대기 일쑤였고, 어떤 여자는 아예 겁을 먹은 표정으로 소변을 지리기도 했다.
하지만 알렌은 차분히 그녀들을 진정시켰다.
얼굴을 할퀴려 들고, 발길질을 하는 여자들도 있었지만, 알렌은 차분히 그녀들에게 구하러 왔다는 말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저것도 제 정신은 아니야.’
나는 그런 알렌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에야 완벽히 판타지 소설 속의 주인공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아까 전 다크 엘프에게 눈이 돌아 덤비는 모습은 그야말로 미친 놈 그 자체였으니까.
그 갭이 너무 커서, 순간 내가 뭘 착각했나 싶을 정도.
하지만 그 싸움을 지켜보지 않은 여자들은 조금씩 알렌에 대해 경계를 풀기 시작했다.
알렌은 그들과 같은 인간이었고, 또 꽤나 잘생긴 축에 들었으니까.
“지, 진짜, 구하러 왔다고요? 그 악마는?”
“….죄송합니다. 죽였어야 했는데, 놓쳤습니다.”
알렌은 어금니를 꾹 씹으며, 여자에게 그렇게 답했다.
순간 알렌의 몸에서 살기가 터져 나왔지만, 다크 엘프가 없다는 말에 감옥 안 여자들의 반응이 180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진정해, 집에 갈 수 있어.”
“울지 마. 이제 다 끝났어.”
여자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그렇게 한 편의 신파극을 찍고 있었다.
그렇게 알렌이 여자들을 진정시키며 한쪽에 모으는 사이, 나는 던전 내부를 돌아보고 있었다.
솔직히 이런 개고생을 했는데, 보상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던전 내부는 진짜 깨끗 그 자체였다.
그 흔해빠진 보물 상자 하나도 없는 상태에 내가 좌절을 하고 있던 그 순간.
“본 씨. 잠시 와보셔야겠습니다.”
나는 알렌의 부름에 다크 엘프의 침실과 연결된 감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감옥의 끝.
알렌이 무언가를 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알렌이 보고 있는 것(?)으로 향했다.
대충 만들어진 감옥 안.
다른 여자들과는 체구부터 구분되는 아이가 온 몸을 쭈그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뭐야?”
“…그, 물어봤는데 놈의 딸 같습니다.”
나는 알렌의 말에 뜨악한 표정으로 몸을 움크리고 있는 여자애를 바라봤다.
이제 겨우 10살 정도 되어 보일 정도의 체구.
하지만 인간과는 달리 삐죽한 귀가, 그 아이가 평범한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엄마는?”
“….여기 있는 여자들 중에는 없는 모양입니다.”
알렌은 난감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가만히 감옥 안에 있는 여자애를 바라봤다.
귀를 제외하고는 인간과 그렇게 다를 것이 없는 여자아이였지만, 나도 알렌도 그 꼬맹이가 다크 엘프의 자식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 새끼, 새끼 낳는 게 목적이라며? 그런데 쟤는 왜 가둬둔 걸까?”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으로 알렌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알렌 또한 그 답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
그 질문에 해답을 준 것은 그곳에 갇혀 있던 여자들 중 한 명이었다.
“딸은…맞을 거에요. 그 악마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겠지만.”
답을 알려 준 여자는, 그 감옥에 가장 오랜 기간 갇혀있던 여자 중 하나였다.
그녀는 그 악마, 그러니까 다크 엘프가 소녀를 볼 때마다 혀를 차며 했던 말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제대로 내 피를 이어받지도 못한 반푼이.
다크 엘프가 소녀를 표현하는 것은 대부분 그런 표현이었다고 했다.
엘프 족에게도 남아 선호 사상 같은 것이 있나 했지만, 아마도 그것보다는 소녀의 피부가 다크 엘프와는 달리 하얀 것이 문제였지 싶었다.
‘그냥 겉으로 봐서는 다크 엘프가 아니라, 엘프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생각할 정도니까.’
어쨌거나 소녀는 엘프의 피를 이어받은 몸.
제대로 씻지도 못한 모습이었지만 그런 걸로는 그 예쁜 외모를 감출 수 없었다.
아직 어린 아이이긴 했지만, 누가 봐도 크면 말도 안되게 예뻐질 것이라는 예상이 가는 외모.
‘아…그래서?’
나는 소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지금의 상황이 단번에 다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왜 실력도 안 되는 나에게 시스템이 갑자기 이런 던전을 추천했는지.
그리고 왜 던전에 보상 따위는 없고 피해자만 한 가득 인지.
“…키잡 하라는 거잖아, 지금?”
“네?”
알렌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었지만, 나는 그 말에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 문제의 모든 근원은 얼마 전 쿠폰을 쏴준 독자였던 것이다.
키잡 물을 선호하는 독자가 붙은 것 때문에, 시스템이 나에게 키잡 물이 가능한 상황을 만들어 준 것.
뭐, 대충 상황이 이해가 되긴 했지만, 그걸 납득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였다.
“….씨발, 이게 되겠냐고?”
아무리 예쁘다고는 하지만 이제 막 10살 정도 되는 꼬맹이였다.
그런 꼬맹이를 보고 음탕한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막돼먹은 인간이 아니었다.
거기다 그런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소녀가 성인이 되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세상에 10년이나 버팅기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현실에서는 말도 못 걸어볼 여자들과 뒹굴 수 있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이곳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아, 그리고 제가 여기 올 때부터 쟤는 저런 모습이었어요.”
“그게 무슨…”
“그러니까, 5년 전과 비교해 하나도 자라지 않았다고요.”
여자가 5년이나 이 지옥 같은 곳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문제는 소녀라고 생각했던 다크 엘프의 딸의 나이가 내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생긴 건 꼬맹이 같아도, 나이는 성인일 수도 있다는 소리.
뭔가 상당히 누군가의 의도가 짙게 베어 있는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문제 하나는 해결된 셈이었다.
“아니, 해결 안됐다고!”
나는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