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1화 〉진화 (31/158)



〈 31화 〉진화

“꺄악!”


갑작스러운 하얀이의 난입에 여급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마치 부끄러운 일을 하다 들킨 것처럼 이불을 끌어다 뒤집어 썼다.
어쩌면 나는 그 동안 여급을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녀가 아무리 발랑 까지다 못해 되바라진 여자라도, 나름의 수치심은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나름 정상적인 여급의 반응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여급이 혼자 살겠다고 꿩처럼 이불을 뒤집어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급의 그런 행동으로 하얀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하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나만 빼고 둘이 뭐 하는 거야?”

하얀이는 심술이 난 표정으로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하얀이의 눈은 내 물건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무리 나라도 멘붕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없는 일.

“아아…그냥, 아저씨랑 언니, 아니 하얀이 동생이랑 놀고 있었어.”

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하얀이를 향해 그렇게 변명을 늘어 놓았다.
일단 여급을 하얀이의 동생이라고 말한 것부터가 문제가 있는 표현이었지만, 하얀이를 이해시키려면 그렇게 말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문제는 내 말에 하얀이가 전혀 납득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하얀이는 찹쌀떡처럼 부드러운 볼을 잔뜩 부풀리며 나를 노려 보았다.

“치사해! 나만 빼고 둘이 놀다니! 나도 같이 놀아!”

‘가, 같이? 쓰리섬?’


이 무슨 머리에 히토미  상황인가 싶었지만, 하얀이는 아직 애니까 그럴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는 애는 아니지만, 상식이 초등학생 수준인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하얀이는 아저씨가 나중에 따로 놀아줄…아니, 아니다.”

나는 그렇게 하얀이를 타이르려다 다급히 말을 바꿨다.
순간 귀에 철컹 철컹하는 쇳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왜! 왜! 하얀이도 놀고 싶어!”


내가 말을 얼버무리자, 하얀이가 떼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하얀이를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부부 사이의 은밀한 행위를 아이에게 걸렸을 때의 심경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


“나중에, 하얀이도 아저씨랑 놀 정도로 크면 같이 놀자.”

나는 하얀이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스물  살의 나이에 고작 열살 내외의 외모라면, 단순 계산해도 하얀이가 성인의 외모를 갖출 때 까지는 족히 20년은 걸린 것이었다.
하지만 하얀이는 눈알을 데굴 굴리고는 뭔가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지? 나도 쟤만큼 커지면, 나랑도 놀아줄 거지?”


나는 하얀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진짜 부녀 사이도 아니고, 하얀이가 여급만큼 커지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
아니, 양심이라거나 그런 게 조금 따갑기는 했지만 일단은 애를 달래는 것이 중요했다.


“응. 약속. 그러니까, 하얀이는 이제 자야지? 그래야 빨리 커서 아저씨랑 놀지.”

내 말에 하얀이의 시선이 다시금 내 하물을 향하는 것이 보였다.
또 뭔가를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인 하얀이가 이내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변태새끼.”

하얀이가 나가는 소리를 들은 여급이 고개를 빼꼼 내밀며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솔직히 조금 억울하긴 했지만 그런 소리를 들어도 싼 상황.
나는 민망한 표정으로 여급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안 할거야?”
“…..아니. 나 변태 좋아해.”

여급은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내 자지를 손으로 문질렀다.
여급의 아찔한 손길을 느껴졌다.
하얀이의 마지막 그 눈빛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이내 게걸스레 자지를 빨아대는 여급의 모습에 그 찜찜함은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일을 그대로 넘긴 것을 얼마 지나지도 않아 후회하게 되었다.

**


여급과 관계를 마치고 숙면을 취한 다음 날.
나는 일어나자 마자 니스에 있는 아카데미로 향했다.
토마스를 통해, 아카데미에서 입학 원서를 받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


누군지도 모르는 남작의 추천장을 들고 아카데미를 찾은 나는, 사람들의 반응이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저 사람, 그 사람이지? 역병 치료한 사람.”
“근데 약초꾼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 사람이 아카데미에 왜?”
“약초꾼이면 어때? 어쨌거나 니스를 구한 영웅인데다, 그 성녀님의 인정까지 받은 사람이잖아.”

아카데미가 원서를 받는 것이 평년보다 훨씬 늦은 상태였다.
그 이유는 당연히 니스에 돌았던 역병.
그 역병을 물리친 나는 여러 이유로 사람들의 시선을 이끌  밖에 없었다.
물론 아카데미의 입학 기준이 귀족의 자제이거나  추천서를 받은 사람으로 한정된 만큼, 나를 향해 수근거리는 사람들 대부분은 학생이라기 보다는  집안의 시종 같은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은 더욱 나를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는 중이었다.

“저, 기억하세요? 저희 아들이 전에 역병에 걸렸을 때 포션을 나눠 주셨는데…”

심지어는 고맙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
아마도 대단하신 귀족 자제분들이 줄을 섰다면 이 자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신기함과 고마움이 아니라 시기와 질투였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본 씨!”


사람들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줄을 서고 있는 사이, 멀리서 누군가  이름을 부르며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내 이름을 부르며 나타난 것은 알렌이었다.
알렌은 마치 강아지처럼 순진한 얼굴을 하고는 나를 향해 반갑다고 꼬리를 칠 기세로 접근했다.


“….어, 알렌. 몸은 좀 괜찮아?”
“네. 덕분에요.”

알렌은 상쾌한 목소리로 내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일말의 악의 조차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호의가 옅보였지만, 나는 알렌을 편하게 대할 수 없었다.

‘그 때,  모습은 미친놈 그 자체였지.’

자신보다 배는 강한 다크 엘프를 상대로 죽으라는 말만 반복하며 달려들던 알렌의 모습이 내 뇌리에 깊게 남아 있었기 때문.
지금이야 나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지만, 언제 그 이빨을 나에게 들이밀지 모를 일이었다.
물론, 그럴 일이 없게 조심을 하면 된다지마는 미친놈이 화를 내는 포인트를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참, 그 이야기 들으셨어요?”
“무슨 이야기?”


나는 주변을 흘긋거리며 나에게 귓속말을 하는 알렌을 향해 덩달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를 경계하는 것은 경계하는 것이고, 뭔가 대단한 비밀 이야기라도 할 것처럼 주변을 살피는 알렌의 모습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니스의 아카데미에 공주님이 입학 한다고 하던데요?”

공주?
나는 알렌의 말에 실감이 나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히 니스는 왕국에 포함되어 있는 영토이니, 왕도 있을 것이고 그에게 딸이 있다면 공주도 존재할 것이었다.

“….에이, 헛소문이겠지.”


하지만 나는 알렌의 말을 단숨에 부정해 버렸다.
니스가 꽤 대도시 축에 든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수도에도 아카데미가 있는 이상 공주가 수도 아카데미가 아닌 니스에 입학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에요. 저희 아가씨가 그것 때문에 얼마나 호들갑…아니, 들  있는데요.”

나는 알렌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냥 떠도는 소리가 아니라 니스에서 가장 큰 상단주의 딸이 하는 말이었다면 그 신빙성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상단이야 말로 가장 정보에 민감한 단체였으니까.

“도대체 공주가 왜?”
“….그거야, 저도 모르죠.”


알렌은 크게 관심은 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알렌의 말에 뭔가 상황이 묘하게 꼬이는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공주의 출연이라니.
분명 독자들이 공주를 따먹으라고 성화를 부릴 것이 분명했지만, 한 나라의 공주를 건드리는 건 그리 현명한 일은 아니었다.


‘하아. 얌전히 수도에나 박혀 있지, 왜 이런 곳까지 기어나와서는…’

나는 애꿎은 공주를 원망하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물론 남자로서 공주라는 여자의 외모에 대해 호기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일단 귀찮은 일들은 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본 씨랑 같은 반에 배정되면 좋을 텐데.”

갑자기 화제를 변경한 알렌이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알렌을 향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반이 있어?”
“네. 아카데미의  학년 정원은 대략 60명 정도에요. 15명이 한 반으로 A반부터 D반까지 존재하죠. 물론,  반을 나누는 기준을 생각하면 본씨와 저는 다른 반일 확률이 높겠지만요.”


나는 상황 좋게 설명을 늘어 놓는 알렌을 보며,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부탁했다.
아카데미는 총 4년 과정.
알렌의 설명대로 4개의 반으로 나눠지며, 그 기준은 학생의 실력이 아닌  뒷배의 파워에 좌지우지 되는 모양이었다.
중앙 정계의 귀족들이나 왕가와 연결되어 있는 이들이 보통 A반에 속했고, 지역의 토착귀족들은 B반에 속했으며, 상인 같은 유지들이나, 귀족들과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없는 이들이 C반.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떨거지들이 모이는 것이 D반인 모양이었다.
결국 알렌이 모시는 아가씨 조차 원칙상으로는 C반에 속해야 했다.
하지만 하나뿐인 딸을 끔찍이도 아끼는 샤일록은 엄청난 돈을 써 그녀를 B반에 밀어 넣은 모양.
결국 한 지역을 대표하는 상인 조차, 자신의 자녀를 A반에 넣을 수는 없다는 소리였다.

“저야, 당연히 D반이겠지만…본 씨는 다를 테니까요.”
“응? 나도 그저 남작 나부랭이 추천서를 받았을 뿐인데?”


나는 알렌의 말에 그렇게 대답했다.
상점에서 구매한 추천장을   귀족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라도, 그래봐야 남작 나부랭이었다.
공후백남자.
즉 귀족으로서는 천장보다는 바닥에 가까운 계급이었다.
거기다  귀족의 혈연 관계도 아닌 것으로 봐서는  쳐줘야 C반, 내지는 D반에 속할 확률이 가장 높았다.


“아니, 그래도  씨는 니스를 구한 영웅이니까요.”


알렌은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 내가 역병을 퇴치한 공로를 인정 받아 상위 반에 배치 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
하지만 나는 알렌과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오히려 역병을 퇴치한 사람이기에, 귀족들은 어떻게든 나를 하위 반으로 보내려 할 것이라는  내 생각이었다.

‘원래 가진 자들은 이상할 정도로 자신이 모르는 이들을 경계하니까.’

귀족제가 뿌리 깊게 유지된 사회.
나는 그 성녀조차 어쩌지 못한 역병을 치료했고, 그 덕에 니스의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자였지만, 그렇기에 귀족들에게는 그리 달갑지 못한 존재였을 것이 뻔했다.

“다음.”

알렌과 그렇게 잡담을 주고 받는 사이, 원서를 접수 받는 병사가 날 향해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나는 병사에게 다가가, 내가 구매한 추천장을 내밀었다.
추천장에 적힌 귀족의 이름을 살펴 본 병사는 내 얼굴을 흘끗 바라봤다.
순간, 사무적인 병사의 눈에 이채가 감도는 것이 보였다.

“흐음. 접수는 잘 되었습니다.”

병사는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지만, 억지로 참는 듯한 느낌.
나는 그런 병사의 반응에 찜찜함을 느끼면서도  이유를 물어 보지는 못했다.


‘뭐, 이 사람도 나한테 약 받아 먹었나 보지.’

나는 대충 상황을 그렇게 넘기며, 알렌을 기다렸다.
원서 접수를 마치고 온 알렌과 나는 잠시 동안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아카데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알렌이 이런 저런 사소한 것들을 이야기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알렌의 친절한 설명을 다 듣고 난 뒤, 나는 알렌과 헤어져 여관으로 돌아왔다.
아카데미 입학까지는 이제 일주일이 채 남지 않은 상황.
그저 특수 상점에 추천장이 있기에 구매했을 뿐이었지만,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된다고 생각하니까 괜스레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서방. 지금  상황 나만 이상해?”
“어? 어어? 아닌 것 같은데?”

물론 여관문을 열고 들어가, 하얀이를 마주하기 전까지 말이다.

“아저씨, 이제 나랑도 놀아!”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하얀이를 바라봤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색의 머리카락을 뚫고 엘프 특유의 뾰족한 귀가 튀어나와 있었다.
오밀조밀 귀엽던 얼굴에는 그저 아름답다는  밖에 나오지 않을 이목구비가 자리했다.
 그대로 조각상을 깎아 놓은 듯한 흠 잡을  없는 얼굴.
무엇보다 겨우 내 허리깨나 오던 하얀이의 키가, 내 키를 위협할 정도로 훌쩍 자라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랬다.
하얀이는 고작 하루 만에 완벽한 성인 여성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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