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지름신 강림
‘벽력탄하고, 아, 그 마법도 살래. 그리고 가벼운 로브 같은 것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넵! 고객님. 바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때 아닌 호황에 도트 모양의 npc는 평소보다 더 공손한 어조로 나를 맞이했다.
나는 npc가 추천한 로브의 디자인을 보며 나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호, 디자인이 꽤나 깔쌈 하잖아?’
서코에 나간다면, 당장 시선을 집중시킬 만큼 높은 퀄리티.
제대로 뽐뿌가 온 나는 장바구니에 이것 저것을 막 주워담는 중이었다.
“흐흐흐. 어차피 조회수야 이제 막 벌리니까.”
물론 그렇다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현질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첫 거래 기념으로 받은 50% 쿠폰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왕 쿠폰을 사용할 거라면, 한번에 많이 사는 것이 이득.
-….고객님, 죄송하지만 쿠폰은 물품 하나에만 적용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계산을 하려던 순간, NPC는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자세히 보시면 써 있습니다.
다시 쿠폰을 살펴보니, NPC의 말대로 물품 하나에만 적용이 가능하다는 안내 문구가 보였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들을 바라봤다.
가진 돈의 2배를 딱 맞춰 샀기에, 쿠폰 적용이 되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나 다름 없는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무엇 하나를 빼자니, 다 필요할 것 같은 상황.
‘아냐. 일단 다 빼고, 다시 담는다.’
나는 담긴 물건들을 다 삭제하고 다시 쇼핑을 시작했다.
여유가 적어진 만큼 조금 더 신중해진 상황.
그런 내 눈에 묘한 스킬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력친화지체 10000G]
스킬 하나에 내가 가진 돈 전부를 털어야 하는 상황.
하지만 마법사의 길을 걷기로 한 나로서는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이름이었다.
-사용자의 마나 친화력을 올립니다.
스킬 하단에 상당히 간략한 설명이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이름만 봐도 패시브 계열인 것을 알 수 있는 상황.
당장, 공주를 습격해야 하는 나로서는 그다지 효율이 좋지 못할 것 같은 설명이었다.
하지만 어떤 감이, 나로 하여금 그 스킬을 사야 한다고 속삭이는 중이었다.
내가 고심하는 표정으로 [마력친화지체]를 바라보자, NPC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것이 보였다.
‘좋아! 결정했어. 느낌대로 간다!’
나는 망설일 것 없이 [마력친화지체]를 구입했다.
-…..쿠폰 받았습니다. 50% 할인 적용되어 5000G 입니다.
NPC는 손해가 막심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순간, 기묘한 감각이 느껴지며, 몸이 조금 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상태창을 살펴봤지만, 수치 자체가 변하지는 않은 상황.
사기를 당한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그닥 표정이 좋지 않은 NPC를 보니 그런 것은 아닌 듯 보였다.
‘뭐, 나중에 알게 되겠지.’
![사용자의 신체가 변화합니다.]
![마력친화지체의 영향으로 사용자의 몸에 서클을 구성합니다.]
![사용자의 마력 수치에 따라 서클의 개수가 조정됩니다.]
![사용의 편의를 위해 심장이 아닌 단전에 서클을 구성합니다.]
….
“……..”
나는 눈 앞에 연달아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막연히 언젠가는 효과를 볼 거라고 기대했지만, 아이템을 구매하자 마자 그 효과가 나타날 줄은 몰랐던 탓이다.
거기다 서클이라니.
이세계에 갑자기 떨어진 이후로 그나마 정상적인 판타지 느낌의 설정이 이제서야 튀어나온 셈이었다.
‘그랬던가, 서클이 구성되지 않아서 마법의 위력이 그 따위였던 것인가!’
나는 마치 깨달음을 얻은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사실은 대충 서클의 개념만 알지, 그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 지 따위는 정확히 알 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서클이라는 것이 생성된 이상, 내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을 거라는 것뿐이었다.
‘그래. 이만큼 굴렀으면, 이제 팔자가 좀 필 때도 됐지. 요즘 고구마 잘 안 먹히잖아?’
나는 그렇게 납득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신경을 집중하자 배꼽 아래에 이질적인 기운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움직임을 일정한 방향을 가지며 회전하고 있었고, 그 움직임의 고리가 흔히 말하는 서클이 아닌가 싶었다.
지금 내 몸에 나타난 고리는 두개.
판타지 식으로 말하자면 2서클 마법사인 셈이었다.
-구매를 마치시겠습니까?
내가 배꼽 아래 단전에 생긴 신기한 기운에 넋이 나가 있자, NPC는 날 향해 그렇게 물었다.
원래대로라면 [마력친화지체]를 사는 것으로 잔고가 다 털렸을 상황.
하지만 쿠폰은 아주 유용했고, 나는 아직 꽤나 많은 여윳돈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아직 안 끝났어.”
나는 눈을 반짝이며, 상점창에 나타난 목록들을 훑었다.
이미 보물을 하나 주워 본 이상, 다른 보물이 숨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으니까.
‘일단 그럼 2서클 내의 마법들하고, 그리고 또….’
나는 아이템 위주가 아닌, 스킬 위주로 쇼핑을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사용하면 망가져 버리는 아이템 보다야, 스킬 쪽이 훨씬 가성비가 좋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상점창을 바라보던 나는 또 예상치도 못한 뭔가를 찾아내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
“그럼 다녀 올게.”
나는 여관 앞에 모인 여급과 하얀이, 그리고 토마스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이번에도 알렌과 동행할까 싶었지만, 내가 하려는 일은 공주를 습격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런 짓을 하는데 알렌을 끌어들이는 것은 조금 양심에 찔릴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여급과 토마스에게도 공주를 습격하러 가는 거라는 걸 말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둘에게 원래 살던 곳에서 뭔가를 가져 올 계획이라고 대충 둘러댄 상황이었다.
‘아니…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그냥 무시할까?’
[수락한 이상 취소는 불가합니다.]
하지만 살짝 망설이는 것만으로도 시스템은 곧 바로 경고를 날려왔다.
“언제 와? 하얀이랑 언제 또 놀아 줄 거야?”
하얀이는 내 다리에 매달려서는 그렇게 칭얼거렸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어린 아이가 제 아빠, 아니 삼촌의 다리에 매달려 때를 쓰는 것 같은 장면이었겠지만, 당하는 내 입장에서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하얀이의 작은 손이 은근히 내 허벅지를 쓰다듬듯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하. 하얀이 아저씨랑 말 잘 듣기로 약속했지? 하얀이가 말 잘 듣고 있으면 아저씨가 금방 와서 놀아줄게.”
나는 억지로 하얀이를 떼 놓으며 그렇게 말했다.
하얀이는 잠시 볼을 부풀리고는 불만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이내 납득한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해, 약속.”
하얀이가 자신의 새끼 손가락을 내밀며 나에게 말했다.
어디서 또 보고 배운 모양.
나는 하얀이와 손가락을 걸어 약속을 하고는 여급을 바라봤다.
“….그, 애 잘 보고.”
뭔가 상당히 와이프에게나 할 법한 대사이긴 했지만, 그 말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돌아오긴 하는 거지?”
여급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내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가는 골칫거리 하나 만을 떠안게 되는 상황이니, 여급의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도 이해못할 것은 아니었다.
“자, 그 사이 필요한 거 있으면 쓰고.”
나는 미리 준비한 돈 주머니를 여급에게 내밀며, 그렇게 말했다.
순간, 여급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이 보였다.
“누굴 돈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예상치도 못한 여급의 말에 내가 당황한 사이, 여급은 내가 내민 돈 주머니를 낚아채며 툴툴거렸다.
“오래 기다리게 하지마. 그리고 몸 조심하고.”
“아, 어. 뭐 원래 살던 곳 잠깐 들리는 건데, 뭐.”
나는 여급의 서운한 표정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렇게 답했다.
여급과도 인사를 마친 나는 자연스럽게 토마스를 바라봤다.
“그럼, 제가 없는 사이 잘 부탁 드립니다.”
“네. 아무 일도 없도록 신경 쓰겠습니다.”
내 말에 토마스는 빙긋 웃으며 그렇게 답했다.
이세계에 온 지 고작 한 달을 조금 지난 상황.
그럼에도 나는 여관 앞에서 나를 배웅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보며, 꽤 많은 관계를 맺었구나 싶었다.
‘지구에서는 몇 십년을 살아도 사람 하나 얻기 힘들더니.’
솔직히 나 하나 배웅하겠다고 모인 하얀이와 토마스, 그리고 여급을 보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니, 그건 그냥 고마운 정도가 아니라 내가 꼭 지구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들 정도의 감정이었다.
‘후우. 부모님만 아니었으면, 여기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겠네.’
나는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나는 효자라고는 할 수 없었다.
평소에 부모님과 연락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니었고, 어쩌다 연락이 오더라도 대충 귀찮은 말투로 통화를 마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불효자라도 자신이 정한 기준은 있는 법이다.
하루 아침에 사라진 자식을 걱정하고 있을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구로 돌아가야만 했다.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눈 앞의 일부터 처리하자고.’
나는 맵에 반짝이는 빨간 점을 보며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
“이제야 제대로 좀 사용해 보겠네.”
니스는 꽤나 큰 도시였고, 나는 그 니스를 빠져 나오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을 소모했다.
내가 이세계에 와서 관계를 맺은 것은 여급과 토마스, 하얀이 뿐만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나는 니스를 구한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은 상태였고, 길을 지나며 마주친 사람들 대부분이 날 향해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왔다.
그야말로 천생 아싸가 갑자기 핵인싸가 되어 버린 상황.
그 상황이 즐겁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처럼 어떤 목적이 있거나 바쁠 때는 조금 귀찮은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 마법 위력부터 확인해 볼까?’
성을 빠져나와 인적 없는 곳을 찾은 나는 일단 내 능력부터 시험해 보기로 했다.
원래대로였다면 나무에 상처를 주기는커녕, 부딪치자 마자 깨어지듯 사라지던 마법.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매직 에로우!”
내가 그렇게 시동어를 말하자, 눈 앞의 선명한 하얀 빛깔의 화살이 나타났다.
근처에 적당한 나무를 향해 화살을 날리자, 화살은 빠른 속도로 날아가며 나무에 박혔다.
아니, 박혔다고 생각한 순간, 그대로 나무를 뚫고 사라져 버렸다.
‘미친….이거 대박이네.’
두꺼운 나무 하나를 그냥 관통한 화살이었다.
아마 사람의 신체쯤은 우습게 뚫고 나갈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매직 에로우에 한해서는 그 로잘린이 사용하던 마법과 겨룬다고 하더라도 그리 밀릴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해볼만해.’
그렇게 판단한 나는 천천히 상점에서 구매한 다른 스킬을 살피기 시작했다.
도대체 판타지 세계에 왜 있는지 모를 스킬.
하지만 본의 아니게 공주 습격 전을 펼쳐야 하는 나로서는 그 무엇보다도 활용성이 높은 스킬이었다.
[제운종]
경신법. 빠른 이동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근접 전에서도 좋은 효용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랬다.
내가 상점에서 남은 돈을 통해 구매한 스킬은 무당파의 제운종.
구름을 밟고 오른다는 뜻의 경신법으로 장거리를 이동할 때다, 빠르게 도망을 쳐야 할 때 이보다 좋은 스킬은 없을 듯싶었다.
‘물론, 무당파 도사들이 이 소리를 들으면 나를 죽이려 들겠지만.’
드높은 무당의 무공을 고작 도망치는 것에 유용하다고 생각한 것은 실례일지 몰라도, 내가 돈 주고 구매한 물건을 내 마음대로 쓴다는 데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운종.”
내가 가볍게 스킬의 이름을 부르자, 배꼽 아래가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
나는 가볍게 발바닥을 땅에 굴렀고, 그와 동시에 그 반동으로 쭈욱- 앞으로 밀려 나갔다.
“어얶! 씨발!!”
하지만, 그 거리가 내 예상을 훌쩍 뛰어 넘은 상황.
나는 실시간으로 가까워지는 나무를 보며 자연스럽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하지만, 상점에서 무려 3000G나 주고 산 스킬은 싸구려가 아니었다.
순간,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어떤 식으로 다리를 움직여야 나무를 피할 수 있을 지가 떠올랐다.
아니, 생각을 하기 전에 내 신체가 먼저 반응하는 느낌.
나는 빠르게 보법을 밟아 방향을 전환하며, 다시 앞을 향해 튀어나갔다.
나무에 부딪칠 법한 아슬아슬한 장면이 몇 번이나 연출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장면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제운종이라는 경신법에 적응한 나는 왜 사람들이 스피드에 미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얏호! 오빠 달려!”
나는 그렇게 혼자 미친 소리를 지르며 산길을 내달렸다.
시야 한쪽에 띄워 둔 지도 위. 공주를 나타내는 빨간 점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