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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화 〉나무박이 (36/158)



〈 36화 〉나무박이

“이게…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로잘린은 나무에 뚫린 구멍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니스로 향하던 그녀가 갑자기 나무 구멍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마법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마나를 억지로 흔들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었고, 그런 이유로 마법을 사용한 곳에는 자연스럽게 흔적이 남기 마련이었다.
로잘린은 그 거대한 나무 주위의 마나들이 잔잔한 파동을 그리는 것을 느꼈고, 그건 누군가 마법으로 나무에 구멍을 뚫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연히 마법사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마법흔이 나타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마법의 효과가 마탑의 기대주인 로잘린조차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매직 에로우라고 하기엔 절단면이 너무 깔끔한데?”

로잘린은 나무 구멍에 손가락을 살짝 넣어보며 그렇게 말했다.
손가락 세 개 정도가 들어가는 구멍.
직경으로 따지자면 매직 스피어보다는 매직 에로우를 사용했다고 추론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그녀가 아는 매직 에로우는 절대로 나무에 이렇게 깔끔한 구멍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창과 화살.
둘 중 어느 쪽이 관통력이 높은가를 생각하면, 당연히 창 쪽이었다.
아마 로잘린 정도면, 매직 스피어로 나무에 구멍을 뚫는 것은 가능할지 몰랐다.
하지만 매직 에로우로는 마탑의 늙은이들이 나서도 이런 깔끔한 구멍을 뚫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로잘린의 결론이었다.
애초에 매직 에로우는 상대의 몸에 박혀 얼마간 움직임을 더디게 만드는 효과를 노린 마법이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앞의 흔적은 뭔가를 뚫어냈다기 보다는 그대로 삭제시켜 버렸다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뭐야? 드래곤이라도 나타났나?”


 생각없이 내 뱉은 말이었지만, 로잘린은 그 말에 꽤나 많은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그만큼 눈앞에 펼쳐진 마법은 그녀의 상식을 뒤흔드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짓 없는 드래곤이 겨우 1서클 마법으로 나무에 구멍만 뚫고 사라지겠냐는 아주 상식적인 생각이 그녀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나섰다.


“….드래곤이 아니면, 현자라도 나타난 걸지도.”


현자.
인간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다고 알려진 8서클에 오른 이에 대한 칭호.
무구한 대륙의 역사에서도 현자가 나타난 것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현자가 나타날 때마다 세상에는 커다란 환란이 닥쳤다.
마탑의 늙은이들은 그를 빌미로 자신들이 8서클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이 평안하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현자는 사람이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것이 늙은이들의 변.
로잘린은 그것이 상당히 편의주의적인 사고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8서클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노라 결심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의  앞의 있는 마법의 흔적은 그 미지의 영역에 누군가 먼저 도달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응? 저기 뭔가 있는 거 같은데?”


로잘린은 그 순간,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표정으로 나무에 뚫린 구멍을 살폈다.
마법사로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불가해한 상황에 대한 탐구욕이 빛을 발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탐구욕은 드디어 어떤 단서를 잡아내기에 이르렀다.
나무에 뚫린 구멍 안을 유심히 들여다 보자 뭔가가 남아 있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로잘린은  무언가를 꺼내기 위해 손가락을 다시 쑤셔 넣었다.
하지만 그 흔적은 손가락이 닿을 듯 말듯한 위치에 있었다.
가장 간편한 방법이야 나무의 앞 부분을 파서  단서를 꺼내는 것이겠지만, 단서를 얻기 위해 이 기적 같은 현장을 헤치는 것 자체가 주객이 전도된 행위였다.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보존해야 해.’

마탑의 늙은이들이라면 이 기적을 보고 뭔가를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로잘린이 생각한 드래곤이나 현자 보다는, 새로운 어떤 마법의 흔적을 발견할지도 몰랐다.
물론 새로운 마법의 등장이 현자의 등장보다 못한 것은 아니었다.
마법이 발달하다 못해 정체되어 완전한 체계를 이루게  지금 새로운 마법의 등장은 현자 따위 보다 훨씬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다, 닿았다!”

한참이나 나무 구멍을 쑤셔댄 로잘린은 드디어 손 끝에 뭔가가 닿는 것을 느꼈다.
손가락이 거친 나무 구멍에 쓸려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기적의 단서를 잡았다는 기쁨은 그녀에게 그런 사소한 통증 따위는 느껴지지 않게 만들었다.

‘액체?’

로잘린은 손 끝에 그 뭔가를 묻혀 구멍 밖으로 손을 빼냈다.
로잘린의 눈을 가늘게 뜨고는 손 끝에 묻은 액체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건…?”


유백색의 끈적한 액체는 자연스럽게 로잘린이 그런 추론을 하게 만들었다.
순간, 얼마 전 던전에서 경험했던 끔찍한 일이 그녀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거지 같은 기억을 떠올릴 순간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그 남자랑, 이 기적을 연관될 리가 없잖아?’


로잘린은 얼굴을 붉히며, 머릿속에 떠오른 불쾌한 생각을 그렇게 배제시켜 버렸다.
그렇게 그녀가 떠올린 가장 합리적인 추론은 나무 진액이었다.


“…그런가? 나무가 진액을 흘린 것인가?”


나무에 상처가 나면 진액이 흘러나오는 것은 상식이었다.
로잘린은  정체 불명의 액체를 진액이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손에 묻은 액체에 코를 가져다 댔다.


“읍!”

순간, 비릿한 향이 그녀의 콧 속을 강타했다.
던전에서 겪었던 그 역겨운 기억이 다시금 생생하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자신을 놀리듯 바라보던 용병들의 비웃음, 그리고 손바닥에 달라붙었던 그 남자의 흔적의 감촉까지.

“개새끼. 만나면 죽일거야!”

로잘린은 자신이 불가해한 기적을 목도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는, 자신이 던전에 끌어들였던 남자를 저주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아랫도리가 간질거리는 느낌이었지만, 로잘린은 생전 처음 겪어본 분노에 사람이 정도 이상으로 화가 나면 아랫배 부근이 간질거리는 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뺨이 살짝 붉어져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녀가 스스로의 얼굴을 확인할 거울 따위는 근처에 존재하지 않았다.

**

“….으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오바였지.”

나는 산길을 어기적 거리는 걸음으로 걸으며 중얼거렸다.
아까 전, 제운종을 사용해 공주를 습격하러 가던 나는 다시금 마법을 사용했던 현장으로 돌아갔었다.
그건 어떤 호기심이 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마법으로 나무에 뚫어 놓은 구멍을 보며, 예전에 즐겨보던 만화에서 나무에 자위를 하는 주인공을 보며 낄낄거렸던 기억이 떠올렸다.
마침 매직 에로우로 뚫은 구멍의 크기가, 딱 내 사이즈랑 비슷해 보였던 것이다.


‘….그냥 한 번 넣어만 보는 거야.’

그건 일종의 본능 같은 거였다.
왜, 휴지심을 보고 내 것이 들어갈 지, 들어가지 않을  궁금해 하는 것처럼.
당연히  건 휴지심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의 비슷한 도전 욕구를 느끼고 있었다.
탁탁탁-.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내 물건을 쥐고 흔들었다.


‘아흐으응…나, 딱히 돈만 밝히는  아냐. 사실은 네 자지를 더 밝히는 거라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런 대사를 치는 여급의 얼굴을 떠올렸다.
가장 기억이 생생한 것은 하얀이었지만, 어쨌거나 이런 데 하얀이를 떠올리는 것은 미묘한 죄책감이 느껴졌으니까.

“됐다.”


적당히 물건이 부푼 것을 확인한 나는 구멍에 물건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건 확실히 미친 짓이었다.
구멍은 아주 맞춤일 정도로 발기한 내 물건의 사이즈에  맞았다.
사람은 너무 사이즈가 딱 맞는 물건을 보면 본능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왜, 서랍에 빈 페트병을 모아 놨는데, 빈틈 하나 없이 딱 들어 맞으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던가?
그 때, 내 기분이 그랬다.


“오오!”


나는 나무에 자지를 박아 넣고는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아니, 그런  쾌감 말고, 순전히 내 물건에  들어 맞는 구멍을 찾은…이렇게 설명해도 이상하긴 하다.
아무튼 그렇게 물건을 밀어 넣고 호기심을 해결한 나는 다시 물건을 빼려 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나무에 욕정을 풀 생각은 없었으니까.
굳이 여관에 나를 기다리는 구멍이 두 개나 있는데, 나무에  이유가 없었다.


“뭐, 뭐야, 씨발.”

하지만 들어갈 때는  마음대로여도 나올 때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자지가 나무에 끼어 잘 빠지지 않는 것에 당황했다.
그리고 사람은 당황하면, 아주 당연한 것도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법이다.
가만히 그대로 기다렸다면 자연스럽게 발기가 풀려 자지를 뺄 수 있었을 것이었다.
물론 발기가 풀리기까지 엄청난 자괴감이 들겠지만, 거기다 박아대는 것보다는 그 자괴감을 마주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은 선택지를 떠올리지 못했다.

“빠, 빨리 한 발 빼고, 튀자.”

나는 그런 생각으로 허리를 흔들었다.
내가 뚫어 놓은 구멍은 다행히 매끄러웠지만, 나무의 표면까지 매끄러운 것은 아니었다.
한번씩 박아 넣을 때마다 쓰라린 통증이 밀려왔지만,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아니던가!


‘원효대사 해골물이닷!’


나는 그저 털이 조금 거친 여인을 만난 것이라 생각하며 계속 허리를 흔들었다.
밋밋한 쾌감과 엄청난 통증이 뒤섞인 상황.
하지만 나는 상상력의 힘을 믿었고, 결국 여급에 이어 봉인해 둔 하얀이까지 떠올린 나는 어떻게든 물건을 빼   있었다.
….그러니까, 사정을 했다는 소리다.

“하아…자괴감 맥스쳤네.”


그것이 지금 내가 기껏  주고 산 제운종을 내버려두고 산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이유였다.
솔직히 한 걸음  걸음 내디딜 때마다 하반신이 쓰라렸다.


“아니지, 조회수도  올랐을 텐데, 힐링 마법 하나 살까?”

그렇게 걷던 나는 결국 다시 현질을 떠올렸다.
사실 인벤토리에 있는 그 더럽게 쓴 약초를 처먹으면 어떻게든 될  같았지만, 사람이 돈이 있으면 입에 쓰고 힘든 것은 기피하기 마련 아니던가.
나는 자연스럽게 약초를 외면하고는 연재창을 열었다.

‘오옷!! 역시 죽으란 법은 없구만.’


누적 조회수가 2만 5천을 돌파한 상황.
나는 다시금 쌓여 있는 조회수를 보며 환희에 가득  미소를 지었다.
조회수가 부족해 다 벗긴 성녀를 그냥 놔주었던 그 날의 서러움이 씻은 듯이 가시는 기분이었다.
나는 산 길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연재창을 제대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듯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댓글 창이었다.

-진짜 하려고? 놀람.
-저런 스킬 구성으로 간다고? 2초 컷이군. 그간 즐거웠고 다음생에 보자구.


그리고  시선을  가장  번째 댓글은 그거였다.
내가 멀쩡히 잘 오고 있는 공주를 습격하게 만든 원흉.
그러니까, 쿠폰을 던져준 독자는 아무 생각도 없이 나에게 공주를 습격하라고 시킨 거였다.
그리고 그 쿠폰을 받아 먹고, 이벤트를 발생시킨 시스템도 생각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일 듯싶었다.
거기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심정으로  이벤트를 구매한 나 또한 아무 생각은 없었다.

‘…..제정신이냐고, 이거.’


누군가는 뭔가 생각이 있겠지 싶었지만, 실상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일이 벌어진 상황이라는 소리.
나는 이 기가 막힌 상황에 허탈함을 느끼며, 멍청한 표정으로 댓글들을 보고 있었다.

-데에엥. 와타시 군대가는데쓰. 후원한 걸로 인공이 강화시켜주길 바라는 데스. 군바.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 댓글에서 멈춰 섰다.
군대.
대한민국 남자라면 모두가, 아니 대부분이 가야 하는  곳.
육군 병장 만기 전역을 한 나로서는 그 댓글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잘 다녀와요. 몸 조심하고.’


나는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그렇게 속으로나마 독자를 응원했다.
군대까지 가는 마당에 전혀 상관도 없는 날 강화시켜달라고 후원을 해준 마음 씀씀이가 기꺼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군대에 가는 것 보다는 공주를 습격해야 하는 내 상황이 조금  낫다는 위안이 되기도 했으니까.


![신규 이벤트 입하]


내가 그렇게 어떻게든 정신 줄을 잡으려는 그 순간에도 시스템은 또 아무 생각 없이 이벤트를 남발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미 약을 빨다 못해 사발로 들이킨 것 같은 전개.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특별 상점을 열었다.
그리고  이벤트를 확인한 나는 손바닥을 뒤집듯 태도를 바꿨다.

‘군대 가서  만들어! 운동하라고 운동! 남자가 삼대 500은 쳐야지! 근육 키워! 전역하고 나서도 떡타지를  셈이야? 사회 나가면 운동하고 싶어도 운동 할 시간 없다고! 울끈이 불끈이가 되면 인생 역전이야. 여자들이 너만 보면 환장할 정도로 몸을 키우라고!  들어, 군대는 엿 같은 게 아니라, 기회다! 남이 억지로 굴려줄 때 굴러! 구르라고!’

나는 그야말로 광분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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