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난전
미친 소가 절벽을 타고 올랐다.
물론 소가 아무리 미쳤더라도 절벽을 타고 오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불가능을 두 눈으로 목도하고 있었다.
미노타우르스는 자신의 도끼를 입에 물고 두 손으로 바위 산을 붙잡으며 성큼 성큼 나를 향해 다가서는 중이었다.
미친 엘프는 그런 미노타우르스의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치사하게…”
다크 엘프는 굳이 자신의 손을 쓸 것도 없다는 듯, 자신이 부리는 미노타우르스를 나에게 보냈다.
무슨 이유로 미노타우르스 씩이나 되는 마수가 엘프의 명령을 듣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딴 사소한 일에 집착하기에는 당장 내 목숨이 위험했다.
슬쩍 기사들에게 도움을 바라는 눈빛을 보내 봤지만, 기사들은 이쪽을 도와줄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미노타우르스 한 마리가 빠진 덕분에 숨통이 트였다고는 하나, 아직 전황은 공주의 호위 기사들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기사들 입장에서는 나 또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것은 마찬가지.
기사들의 입장에서야, 정체도 모르는 나를 도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애초에 기사들 눈이 옹이구멍이 아닌 이상, 내가 마차를 향해 마법을 날렸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하아, 씨발. 진짜!”
내가 기껏 마력을 강화해 놓고 날 향해 다가서는 미노타우르스를 바라만 보는 이유는 별 게 없었다.
마력친화지체를 통해 서클을 얻었다고 하지만, 내 마력 수치는 고작 35.
마력이 무한한 것이 아닌 이상, 마법을 쓸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매직 에로우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대충 10발?
그 정도를 쓰면 마력이 다 닳을 것이었고, 거기에 제운종까지 사용한다면 그 10번도 채 채우지 못할지도 몰랐다.
“매직 에로우”
하지만, 소 새끼가 바위 절벽을 거의 다 기어올라온 것을 본 나는 결국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엘프 놈을 신경 쓰느라 소새끼에게 죽는 것은 그야말로 언어도단!
눈 앞에 익숙한 하얀 화살이 나타났고, 나는 그 화살 너머로 보이는 소 대가리를 노려봤다.
다른 몬스터도 아니고 미노타우르스에게 매직 에로우 따위가 먹힐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뭐라도 해 보는 것이 나았다.
나는 미노타우르스의 미간을 향해 화살을 쏘아 보냈다.
“음머.”
미노타우르스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보며 정체성이 가득 담긴 울음 소리를 내며 웃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까짓 하급 마법으로 자신의 몸에 생채기라도 낼 수 있겠냐는 웃음.
나는 동물도 웃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으며, 빠르게 자리를 벗어날 준비를 했다.
“……….”
하지만, 미노타우르스의 미간에 닿은 마법 화살은 그대로 녀석의 머리를 뚫고 날아가 버렸다.
나를 비웃는 표정 그대로, 놈의 몸이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대로 바위 산에서 떨어진 놈의 몸은 애꿎은 오크 몇 마리를 짜부라뜨리며 그대로 늘어져 버렸다.
나 또한 그 상황을 예상치 못했지만,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미노타우르스를 보낸 엘프도, 그리고 다른 미노타우르스와 싸우던 기사들도 넋을 잃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순간 찾아온 정적.
그 정적을 깬 것은 나를 멍청히 바라보다 미노타우르스의 도끼에 맞은 기사의 비명 소리였다.
“크아아악!”
‘아이고.’
나는 어깨에 간신히 붙어 있는 팔을 붙잡고 뒤로 물러서는 기사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전투 도중에 한눈을 팔다니, 당나라 군대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아니, 그것보다 혹시 나, 엄청 강한 건가?’
부상을 입고 뒤로 물러서는 기사의 모습을 보던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고작 2서클 마법사가 되었을 뿐이었지만, 사실은 내가 엄청 강한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미노타우르스가 생각보다 약할 가능성도 있겠지만, 한 마리당 기사 둘을 상대하는 것을 보면 내가 강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았다.
나는 순간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얼 빠진 표정의 엘프를 향해 소리쳤다.
“하하하핫! 이 변태 새끼야, 넌 이제 죽었다!”
고난의 시간은 끝.
드디어 이세계물의 백미인 이고깽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나는 고등학생이 아니지만.
**
“매직 에로우!”
나는 빛나는 화살 한 발을 만들어 날렸다.
노리는 곳은 정확히 엘프 놈의 급소.
나는 놈에게 첫 만남의 강렬했던 인상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해 줄 참이었다.
“크악! 이 미친 인간종이!”
미친 엘프가 다급히 시미터를 휘둘러 내 마법을 쳐내는 것이 보였다.
미노타우르스의 두꺼운 두개골도 뚫어버렸지만, 엘프 놈은 용케도 내 마법을 쳐냈다.
놈의 시미터에 얻어 맞은 마법이 다른 곳으로 튕겨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굴절된 마법이 근처의 오크 한 마리를 그대로 뚫어 버리고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호기롭게 날린 마법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매직 에로우.”
어차피 마법이야 얼마든 날릴 수 있었으니까.
‘어쩌면, 나 마법사가 천직이 아닐까?’
잔뜩 열이 받은 표정으로 다시 내 마법을 쳐 내는 엘프를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전투에서 사거리가 길다는 것은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싸울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런 의미에서 마법사는 근접 거리만 내주지 않으면 어떤 위험도 겪지 않고 상대를 이길 수 있는 직업이었다.
‘생각해보니까, 마법사에다가 경신법 조합 사기잖아?!’
나는 자연스럽게 독자 중 한 명이 나의 스킬 트리를 비웃던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도망치면서 마법을 난사할 수 있는 이 조합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아니, 너무나도 좋았다.
그야말로 리치가 말도 못하게 긴 아웃복서 스타일의 전투.
뭐라도 한 대 맞았다가는 그대로 죽을 수도 있는 세상에서, 나에게 이보다 적합한 전투 스타일은 존재하지 않을 듯 했다.
“하하핫!!! 엘프 놈, 뒤져라. 매직 에로우!”
나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마법을 영창했다.
다시금 하얀 화살이 놈을 향해 날아갔지만, 이번엔 놈의 근처까지 가지도 못했다.
놈 또한 다크 스피어라는 창으로 마법을 쏘아댔기 때문이었다.
‘아….나만 사거리가 긴 게 아니구나.’
나는 낭패한 얼굴로 놈을 바라봤다.
놈이 이를 갈며, 다시금 손을 움직여 검은 창을 만들어 내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흥! 마법에 자신이 있나? 얼마든지 상대해 주지.”
엘프는 그렇게 이죽거리며, 자신이 만든 검은 창을 나에게 쏘아 보냈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창을 보며, 나는 다급히 화살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놈의 공격이 더 빨랐고, 마력으로 이루어진 창과 화살은 내 바로 앞에서 부딪치며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그 폭발의 여파를 확인한 나는 등줄기가 서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죽는다, 이거 한 방이라도 맞으면, 진짜 죽어.’
머리카락이 날릴 정도의 풍압.
공중에서 상쇄된 것 만으로도 이 정도의 풍압을 만들어 낼 정도라면, 그 마법에 직격당하면 어떤 꼴이 될지는 굳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제운종.”
나는 내 남은 하나 남은 패를 까며, 몸을 움직였다.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움직임.
내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본 엘프가 눈썹을 치켜 뜨며 소리를 질렀다.
“잔재주!”
엘프는 검은 창을 만들어, 나를 향해 날려 보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창이 방향을 틀어 나를 노리고 따라 붙는 것이 보였다.
“빌어먹을!”
나는 빠르게 바닥에 몸을 굴리며, 다시금 화살 한 발을 만들어 날렸다.
공중에서 다시 한 번 두 마법이 충돌해 상쇄되는 것이 보였다.
“다크 스피어!”
겨우 한 발을 처리해 내자, 엘프 놈이 다시 마법을 영창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엘프를 바라봤다.
아니, 그건 짜증이 아니라 두려움과 억울함이 뒤섞인 표정에 가까웠다.
‘병신 같이, 들떠서는…’
나는 기고만장했던 내 자신을 저주했다.
원래 계획대로 그냥 마법 한 방 갈기고 도망쳤다면 이런 꼴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엘프 놈은 이쪽의 사정을 봐 줄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는 것처럼, 다시금 마법을 날려 왔다.
나는 다급히 마법을 영창하려고 했지만, 이대로 계속 상황을 끌어봐야 점점 불리해 지는 것은 내 쪽일 뿐이었다.
‘크윽. 진작 마력이라도 올려둘 것을…’
“위험해욧!”
그 순간, 누군가 엘프가 날린 검은 창에 몸을 날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건 그 때까지 상황을 조심스럽게 살피고만 있던 기사 들 중 하나였다.
다른 기사들에 비해 체구가 작은 기사 하나가, 제 몸만한 방패를 들고 마법에 몸통 박치기를 시전 했다.
미쳐 다른 기사들이 말릴 틈도 없는 상황.
엘프가 만들어낸 검은 창이 갑자기 날아든 기사의 방패를 때렸다.
허공에서 마법을 그대로 얻어 맞은 작은 체구의 기사는 그대로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 탓에 기사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헬멧이 벗겨졌다.
‘여자?!’
나는 자연스럽게 바닥을 구르는 기사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기사가 여자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크윽!!”
바닥을 짚고 일어난 기사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해 보였다.
방패는 이미 잔뜩 찌그러져 있었고, 그 방패를 든 팔이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가 있었다.
“일단, 이 분을 돕습니다!”
여기사의 말에, 다른 기사 몇 명이 내 앞을 감싸듯 나서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여기사의 지위가 다른 기사들보다 높았던 모양.
“하하. 어차피 이 자리에서 죽을 것들끼리 돕다니, 감동적인 장면이구나!”
엘프 놈은 다시금 검은 화살을 만들어 내며, 그렇게 소리쳤다.
기사들 덕분에 한숨을 돌린 나는 빠르게 몸을 추슬렀다.
여기사의 명령 때문에, 나를 보호하는 형국을 취하고는 있었지만 아직 완전한 한 편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상황.
‘어쩌지?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기사들이 엘프 놈을 막아서는 상황이라면, 혼자 도망치는 것 정도는 가능할 듯싶었다.
기껏 나를 도와준 여기사를 배신하는 일이나 다름 없었지만, 나는 목숨이 걸린 일에 의리를 지킬 만큼 좋은 인간은 되지 못했다.
‘음….’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여기사를 향했다.
웨이브 진 갈색 머리카락에, 기사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아리따운 얼굴이 보였다.
팔이 부러진 상황에서도 그녀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쁘군.’
여기사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도망치는 선택지를 버렸다.
그건, 그녀가 예뻐서만은 아니었다.
‘여기서 여기사를 버리고 튀는 전개를 독자들이 납득할 리 없어.’
내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모두 독자님들 때문이었다.
일단 위기 상황에서 혼자 살겠다는 주인공이 매력 없다는 차치하고라도, 예쁘다고 언급된 여캐를 버리는 선택은 당장 선삭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생각해. 봉영기, 어떻게든 이 위기를 넘기고 저 여자를 먹는다!’
나는 여기사를 흘끔거리며, 그렇게 내 자신을 채찍질 했다.
미친 엘프 놈은 마치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악당처럼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쪽의 반응을 기다려 주고 있는 상황.
“….매직 에로우.”
나는 다시금 하얀 빛의 화살을 만들어냈다.
다른 마법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위기의 순간 가장 믿음직스러운 것은 손에 익은 것들인 법이니까.
“…하, 네 놈은 학습 능력이 없나? 쓸데 없는 짓거리를….”
내가 마법을 영창하는 것을 본 엘프가 손짓으로 검은 창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엘프의 말에, 기사들 또한 굳은 얼굴로 방패와 무기를 고쳐 잡는 것이 보였다.
나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듯한 분위기.
하지만 그 기사들이라고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크 무리는 아직도 병사들과 힘겨루기를 하는 중이었으며, 남아 있는 미노타우르스는 엘프의 명령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언제든 전투에 뛰어들 수 있게 대기중이었으니까.
“글쎄?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지!”
나는 엘프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순간, 엘프의 미간이 가볍게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끝까지 허세는…..”
먼저 움직인 것은 엘프.
놈은 자신이 만들어낸 검은 창을 날 향해 날렸다.
나는 놈이 마법을 쏘아낸 그 상황에 목청을 가다듬고 소리쳤다.
“지금이야! 알렌!!”
내 시선은 정확히 엘프의 뒤쪽 수풀 더미을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