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0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40/158)



〈 40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공주의 질문에, 기사들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내가 허튼 짓을 할 것 같으면 언제라도 달려들  같은 기색이 기사들의 얼굴에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 그건 비단 기사들뿐만이 아니라, 마차를 호위하던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런 기사들과 병사들의 반응에 그녀가 얼마나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위치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있었다.


‘…..습격하러 왔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는 고개를 숙이고는 몰래 혀로 입술을 적셨다.
성녀가 옆에 있는 이상, 무슨  일이야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중요하다는 것은 바보라도 알 수 있었다.


“대답하기 곤란하신 가요?”


공주는 나에게 다시  번 대답을 요구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공주를 바라봤다.
이미 입에 침을 발라둔 상황.
남은 것은 그럴듯한 거짓말로 이 위기를 넘기는  뿐이었다.

“…..신탁을 받았습니다.”
“엑?”


내 거짓말에 그런 얼빠진 반응을  것은 공주가 아니었다.
공주는 그저 내 말에 조금 아쉬운 표정으로 살짝 입을 벌렸을 뿐이었다.
기껏 잘 풀린 상황을 꼬아버리는 소리를 낸 것은 내 옆에서 조마조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성녀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성녀님?”

공주의 얼굴이 의아한 기색으로 물들었다.
 또한 인상을 구기며 성녀를 바라보긴 마찬가지였다.
순간, 눈알을 데굴 굴린 성녀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공주에게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녀가 다급히 진화에 나섰지만,  번 불 붙은 의혹의 불길이 그렇게 쉽게 사그라들 리 없었다.
공주의 날카로운 시선이 다시 나에게로 향했다.


“성녀님은 모르는 신탁이라도 받으셨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나는 뻔뻔한 표정으로 공주를 보며 그렇게 답했다.
성녀도 모르는 신탁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 같았지만 일단  상황에서는 우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군요.”


공주는 거기에 대해  추궁하지 않았다.
그저 설핏 드러났던 아쉬움이 더욱 진해진 느낌만 있을 뿐이었다.


'아쉬워한다고? 왜?'


나는 공주의 그런 반응이 의아했지만, 일단은 상황을 넘긴 것에 만족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신탁을 받았다고 끝까지 우기는 이상에야 추궁한다고 답이 나올 문제는 아니었다.
어쨌거나 성녀는 지금 내 편이었으니까.

“공주님!!”


다시 한 번 기사가 놀란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이번엔 그도 그럴 것이, 공주가 나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왔기 때문이었다.
 세계에 표류중인 것이 고작 한 달을 넘겼을 뿐이지만, 나는  빌어먹을 세계가 얼마나 신분제에 길들여진 사회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공주가 나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이곳의 상식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니스를 구해주셔서. 그리고 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주는 기사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한 채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런 공주의 모습에 성녀 조차도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대화가 통할  같은 여자를 보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먹는다! 먹어! 저건 꼭 먹는다!’


….물론, 누구에게도 말 못할 생각이었다.

**

나는 공주의 허락을 받아 그녀의 무리에 합류했다.
공주는 기사들에게 나에게 말을 내주라 명했지만, 승마 따위를 배워 본 적 없는 나는 공주의 호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순간, 기본적인 소양도 갖추지 못한 놈을 바라보는 듯한 기사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이쪽에서나 저쪽에서나,  있는 놈들이 승마를 배우는구나 싶었지만, 나는 하고픈 말들을  참았다.
어차피 기사들과 신경전을 벌여봐야 손해가 되는 것은 내쪽이었으니까.

“그럼, 같이 마차에 타실래요?”


공주는 날 향해 그렇게 물었고, 그 말에 기사들은 그야말로 지랄 발광하듯 난리를 쳤다.
그런 기사들의 모습에  공주조차 한 걸음 물러설 정도.
나는 결국 병사들과 함께 걷겠다고 말했고, 공주 또한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차로 다시 올랐다.
나와 공주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성녀까지 마차에 오르자, 공주 일행은 다시 니스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미안하게 됐구만.’

나는 공주 일행을 따르며, 병사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찾아  손님에 기사들은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고,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 그런 기사들의 짜증이 병사들에게 쏟아지고 있는 중이었다.

“걷지 마라! 뛰어!   하찮은 체력 때문에 공주님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 셈이냐!”

기사들은 애꿎은 병사들을 계속해서 독촉했다.
병사들 사이에서 걷고 있는 나까지 뛰게 만들려는 속셈이 빤히 보였지만, 나는 군 말없이 병사들과 함께 달렸다.
어차피 제운종이 있는 이상, 달리는 것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으니까.
결국 기사들의 독촉에 먼저 나가 떨어진 것은 병사들이었고, 기사들은 또 그렇게 지친 병사들을 갈궈대는 악순환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씨발. 누구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이야?”
“하아. 진짜 성자는 맞대? 생긴 게 딱 사기꾼인데?”

당연히 나 때문에 뜻하지 않은 갈굼을 당하는 병사들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그야말로 기사와 병사들 모두가 나를 적대시 하는 상황.
니스를 구한 영웅인데, 대접이 이 따위 밖에 안되나 싶었지만, 그 의문에 답은 어떤 병사가 대신 해줬다.

“아니, 니스고 나발이고, 나랑은 상관 없잖아.”


그랬다.
병사들이나 기사들 모두 니스가 아니라 왕궁이 있는 수도에서 사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내가 니스를 구했건 말건, 크게 상관도 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하아. 정 없네. 진짜.’

나는 그런 병사들의 반응에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

“오늘은 여기서 묵는다.”

기사들 중 가장 꼬장꼬장한 인상의 사내가 병사들을 향해 그렇게 소리쳤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가 공주를 호위하는 기사단의 단장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까 전 나를 대신  마법을 막았던 여기사는 놀랍게도 부단장의 지위에 있었다.
말이 부단장이지, 그렇게 부하들에게 인정을 받지는 못하는 모양.
나는 한쪽 바닥에 주저 앉아 은근히 자신의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여기사를 보며 혀를 쯧쯧 거렸다.


“뭘 그리 유심히 봐요?”


나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성녀가 허리를 숙이고 서서는 제 머리카락을 배배 꼬고 있었다.

‘뭐야? 무섭게?’

대략적인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기함을 할 장면.


“뭡니까?”

나는 성녀를 보며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병사들의 태도를 이해는 하고 있었지만, 기분이 나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게 굳이 성녀의 탓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기분이 나쁜 사람에게 말을 건 것이 죄라면 죄였다.


“….아니, 그 잠깐 시간  있어요?”

내 퉁명스러운 대답에 당황한 성녀는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나는 그런 성녀를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은 열심히 야영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굳이 그들을 도와줄 이유 같은 것은 찾지 못했다.


“다행이다. 잠깐 이리  와 봐요.”


성녀는 그렇게 말하며,  팔을 잡아 끌었다.
순간 몇몇 기사들이 나와 성녀를 흘끗 거리는 것이 보였지만, 누구도 성녀를 저지하지는 못했다.
성녀가 그렇게 나를 끌고  곳은 야영지에서 조금 떨어진 숲 속.
성녀는 고개를 바삐 움직여 주위의 사람이 있는지를 살피고는 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신탁이라니,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신탁이 신탁이지. 뭐 다른 뜻이 있습니까?”

나는 성녀의 말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렇게 답했다.
사실, 완전히 거짓말도 아닌 것이 내가 마차를 습격한 것도, 그리고 공주 일행을 구하게 된 것도 모두 시스템이 시켜서 한 일이었다.
거기다 그 시스템은 지구에서 멀쩡히 잘 살던 나를 이세계에 끌어들인 장본인이었다.
그야말로 인간을 초월한 존재였으니, 딱히 신이라고 부르지 못할 것도 없었고, 그런 시스템이 내린 미션 또한 신탁이 아닐 이유 따위는 없었다.

“정말 여신님이 신탁을 내렸다고요? 당신에게?”


내 말에 성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나는 그런 성녀를 보며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성녀는 꽤나 특이한 여자였다.
스스로 거짓 신탁을 늘어 놓을 정도로 믿음이 없으면서도, 그녀는 끊임없이 여신의 존재를 확인하길 원했다.


“….뭐, 믿든  믿든 상관 없습니다.”


나는 성녀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내가 말한 신탁이 그녀가 팔아먹는 데메테르 여신의 신탁은 아니겠지만, 굳이  사실을 알려 줄 필요는 없었으니까.
어쨌거나 시스템이라는 것은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고, 내가 아무리 생각이 없는 놈이더라도 그걸 남에게 떠벌릴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뇨. 믿어요.”


성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양 손으로 내 팔목을 붙잡고선 그렇게 말했다.
예상치도 못한 성녀의 반응에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내 입장에서 봤을 때, 그녀는 여신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한 순간 자신이 떨어질 지옥 불이 얼마나 뜨거울 지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를 보는 성녀의 얼굴에는 그런 걱정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여신님이 아니라면, 어떻게 당신이  그 상황에 나타났겠어요? 공주님을 습격하려는 것도 아니었을 테고!”

나는 성녀의 말에 심장이 뜨끔해 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성녀는  반응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호들갑을 떨기 바빴다.

“확실히 여신님은 제가 걱정됐던 거에요. 당신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진짜로 그 흉악한 엘프에게 당했을지도 모르니까. 아아, 그간 제가 너무 여신님께 무례했어요. 이렇게 절 생각해주시는 줄 알았다면 기도라도 자주 올리는 건데.”

나는 혼자서 김칫국을 드럼통으로 쳐 먹는 성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야, 왜 그녀가 지옥불 온도를 걱정하지 않았는지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성녀는 일종의 그거(?)였다.
사람들이 여신의 사랑을 받았느니, 데메테르 교의 축복이네 떠들어 대니 진짜로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착각하는 것이었다.

“그거야, 편한 대로 생각하시고…”
“네?”
“언제까지 내 손은 잡고 있을 겁니까?”


나는 성녀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잔뜩 흥분해 있던 성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팔목을 향했다.
그리고, 자신이 두 손으로 내 팔을 붙잡고 있음을 확인한 성녀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휙 돌려 버렸다.
마치, 부끄러운 것처럼.

‘아니, 이제 와서…뭘?’

나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성녀를 바라봤다.
이미 자지까지 빨아 놓고 손을 잡은 걸로 얼굴을 붉히다니.
확실히 눈 앞에 있는 성녀는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훌쩍 벗어나 있었다.

“….그, 저기.”


몸 전체를 나에게 돌리고  있던 성녀가 나를 흘끔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어째서인지, 그녀는 자신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조물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빨개진 성녀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반응을 본 성녀가 더욱 움츠려 드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성녀는 무언가를 결심한 것처럼 결연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저, 약은 더 안 먹어도 되나요?”
“약?”

나는 성녀의 말에 멍청한 표정으로 그렇게 되물었다.


“그, 전에 말한  증상이 조금 더 심해진 거 같아서….”

성녀가 얼굴을 붉히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그제야 일련의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모두 내가 내 뱉은 거짓말들 때문이었지만, 그게 성녀에게 이런 반응까지 끌어내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었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성녀를 바라봤다.

“그래서, 증상이 어떻게 심해졌는데요?”

내 말에 성녀의 얼굴이 더욱 빨개지는 것이 보였다.
본능적인 수치심.
아마도 성녀의 얼굴이 붉어진 것은 그 때문인 듯 보였다.

“그게…자꾸, 전에 만지셨던 그 부분이 간지럽다고 할까? 아니, 정확히는 간지러운 거랑 조금 다른 데…그, 이상한 체액도 자꾸 나오고요.”
“설마 스스로 만지신 겁니까?”
“…..그, 그게….네.”

나는 팔자에도 없는 의사 코스프레를 하며, 성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자지는 조금씩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