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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화 〉목격자를 찾습니다 (42/158)



〈 42화 〉목격자를 찾습니다

성녀를 마차에 들여 보낸 이후로도 나의 범인 찾기는 계속되었다.
문제는 제 1 용의자들인 기사들이 나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눈을 부릅뜨고 기사 하나를 노려보자, 당장 기사의 불만 어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뭘 보나? 시비를 거는 건가?”
“…..”


나는 인상을 구기는 기사를 내버려두고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흥. 어디서  좋게 인정받은 촌뜨기가.”

등 뒤로 기사의 비웃음 소리가 들렸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상대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당장 내 쪽은 목숨이 달려있었고, 그 목숨 줄을 쥐고 있는 상대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사소한 비웃음 따위는 얼마든 참아줄 수 있었다.


‘개새끼. 나중에 두고 보자. 얼굴 똑똑히 기억해 놨어.’


물론, 지금 참아 줄 뿐이지 원한을 잊을 생각은 없었다.


“꺼져라.”
“니스를 구한 것은 고맙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대할 생각은 없다.”


대충 내가 만난 기사들의 반응은 이와 같았다.
성녀와 내가 한 일들을 실제로 봤다면, 아주 약간의 당황스러움이라도 읽혀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기사들 중에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는 없었다.
마치 짜기라도  것처럼 날 향해 인상을 구기는 기사들의 일관된 반응은, 오히려 그들이 목격자가 아니라는 것을 나에게 확신시켜주고 있었다.

‘뭐지? 진짜 병사들 중 하나인가?’


결국 대부분의 기사들을 다 살펴 봤지만, 나는 범인을 찾지 못했다.

“잠시, 대화를  했으면 하는데.”

내가 범인을 병사들에게서 찾으려던 그 순간.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 오는 것이 보였다.
상대는 기사들 중에서도 가장 꼬장꼬장한 기사단장 영감이었다.


“무슨…일이십니까?”

나는 긴장된 표정으로 기사단장을 바라봤다.
생각해보면, 그가 목격자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진짜로 기사단장이 그 일의 목격자라면, 재판을 받느니 지금 당장 목을 매달고 죽는 것이 가장 최선일지도 몰랐다.
내가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을 바라보자, 기사단장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을 꺼냈다.

“자네가, 내 부하 기사들에게 시비를 걸고 다닌다고 보고가 올라와서 말이야.”

꼬장꼬장한 기사단장 영감은 내가 자신을 보고 긴장한 것이 흡족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나야 그냥 보기만 했을 뿐이고, 시비를  것은 오히려 기사들 쪽이었지만 기사 단장이라는 영감은 그 진실에 조금의 관심도 없는 표정이었다.

‘이 영감은 아니네.’

나는 그의 말에, 기사 단장 또한 용의선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상대는 어쨌거나 공주를 호위하는 기사단의 단장.
최악의 사태는 면했지만, 어쨌거나 나에게 경고를 하러 온 입장이었다.
나로서는 부담이   밖에 없는 상대였고, 나는 억울함을 억누르며 저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저는 그 시비를 건 것이 아니라…”
“아아. 일단  말부터 듣게.”


내가 어떻게든 오해를 풀려고 말을 꺼냈지만, 기사단장은 내 말을 싹뚝 끊어버렸다.

“자네가 니스를 구한 것은 상당히 대단한 일이지. 변변찮은 신분에 그런 큰 일을 해 내다니, 나도 대단하게 생각하네.”

기사단장은 꼰대 그 자체였다.
내 이야기는 들어 볼 생각조차 없는 태도.
기사단장은 나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계속 자신의 말만을 떠들었다.

“알아. 대단한 일을 했으니, 어깨에 힘도 좀 들어가고 스스로 뭐라도 된 것 같겠지. 하지만 대단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대단해 지는 건 아닐세. 인생 경험이 짧아서 아직 납득이 잘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세상이라는 곳이네.”

나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기사단장을 바라봤다.
공주와 만난 이후로  스스로 니스를 구한 영웅이라 칭한 적도 없었고, 그를 알아달라는 말  따위 더더욱 한 적도 없었다.
물론 나를 홀대하는 기사들이나 병사들의 태도에 화가 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건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낄  있는 감정에 지나지 않았다.


“저…저는 애초에 그럴 생각이..”
“하. 이렇게 말귀가 어두워서야 원. 아무튼 그리 알라는 뜻이네. 나도 그렇지만 기사들도 자네를 그리 좋게 보지는 않으니까 말일세.”

나는 어금니를  깨물고 기사단장을 노려봤다.
아무리 내가 불리한 위치에 있다고는 해도, 이건 정도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리고 고작 그 엘프 새끼한테 탈탈 털리던 기사단 따위 솔직히 그리 두렵지도 않았다.
하지만 늙은 생강이 맵다던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기색이 변한 것을 느낀 기사단장이 슬쩍 발을 빼듯 말했다.


“뭐, 나름 마법에 조예가 있는 듯 보이나 너무 자신의 힘만을 믿고 설치지 말게.  손으로 열손을 감당할 수 없는 법이고, 결국 우리 기사들과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왕국과 척을 지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으니까.”

기사단장은 왕국까지 끌어들여 나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당장 공주에게 이 사실을 따질까 싶었지만, 그러기엔 그녀가 어떤 성격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공주님에게 무례를 범하지 말고. 내 다른 것은 자네가  일을 생각해 어느 정도 편의를 봐주겠지만, 공주님 관련된 일은 그럴  없다는 것을 명심하게.”


나는 짐짓 엄한 표정으로 나에게 엄포를 놓는 기사단장을 바라보며, 그가 진짜로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그 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배알이 꼴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직 누군지도 모를 목격자가 남아 있는 상황.
지금 문제를 더 복잡하게 꼬아 버리는 것은 내 스스로 화형 대에 올라가 불을 붙이는 것이나 다름 없는 짓이었다.

“….저, 단장님?”
“아? 실비아 부단장 무슨 일인가?”

그 순간, 누군가 나를 구원해 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미 나를 한 번 살려준 여자였다.
기사단 내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던 그 여자 기사였던 것이다.

‘이름이 실비아였나?’

나는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든 그녀를 바라봤다.
어쨌거나 기사단 중 처음으로 내 편을 들어준 여자였고,  눈앞의 꼰대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준 여자였다.
거기다 그 공주의 외모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녀 또한 보기 드문 미인인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나로서는 호감을 품을 수 밖에 없는 상대였다.

“그, 공주님께서 찾으십니다.”
“그래? 공주님이?”

나는 단장과 대화를 나누는 여기사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응? 뭔가...좀 이상한데?’

그리고 나는 오래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서 수상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아니, 솔직히 그걸  찾으면 병신이란 소리가 튀어나올 만큼 눈 앞의 여기사의 행동은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근데, 자네 아까부터  그러나?”
“예, 옛?! 뭐, 뭐가 말입니꽈?!”
“아니, 자네 아까부터 계속 목을 이상한 각도로 돌리고 있지 않나? 혹시 아까 전투 중에 다친 게야?”

기사 단장은 퍽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여기사를 향해 물었다.

“아, 아닙니다. 다치기는요. 그나마 다친 부분도 성녀 님이  고쳐주셨습니다.”


여기사는 기사단장의 말에 황급히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이상한 각도로 꺾여있던 그녀의 팔이 멀쩡하게 돌아와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성녀가 저 나름대로는 일을 하고 다닌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하며 여기사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자지를 빨러 오기 전에 어쨌거나 전투에서 다친 사람들의 치료를 하고 왔다는 것이었다.
아주 약간, 그러니까 개미 눈꼽 만큼 성녀가 다시 보이기는 했지만,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성녀가 아닌 눈앞의  기사였다.

‘찾았네, 목격자.’


나는 여기사가 나와 성녀의 일을 훔쳐봤던 인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니, 이 정도로 티를 내서야 알아채 주지 않는 것이 실례일지도 몰랐다.
범인, 아니 목격자의 정체를 알아  것까지는 좋았지만, 상황까지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성녀를 범한 일을 왕국의 기사에게 걸린 상황이었다.
비록 그 기사가 동료들에게 따돌림이나 당하는 처지라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그녀의 직급은 부단장이었다.
그런 그녀의 증언이라면, 나 같은 놈 하나 불태우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었다.
차라리 그녀가 아닌 병사 중에 목격자가 있었다면 상황이 훨씬 좋았을지도 몰랐다.
돈으로 구슬리는 방법도 있고, 성녀와 작당하여 상대를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일 수도 있었다.
그마저도 정 안되면 살인멸구…까지는 할 생각은 없었지만, 아무튼 여기사가 목격자라는 것은 나에게 최악의 상황이나 다름 없었다.


“하아…성녀 님, 성녀 님. 참, 속도 좋구만. 자네는.”

꼰대 같은 기사단장은 여기사를 향해 그렇게  소리를 하며, 공주의 마차로 향했다.
단장의 말에 여기사는 고개를 푹 숙였다.

‘뭐야?  상황?’

나는 기사단장의 태도에서 그가 나뿐만이 아니라 성녀에게도 적대감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있었다.
나로서는 기사단장의 태도가 당연히 의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 성격이 어떻든 간에 세라는 성녀였고, 그녀의 기도하는 모습을 멀리서라도 구경하기 위해 니스의 수많은 시민들이 나올 만큼 명망이 높은 인사였다.
아무리 기사단장의 지위가 높다고는 하지만 성녀를 대놓고 적대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그럼…”

기사 단장이 마차로 향하자, 여기사, 아니 실비아는 나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리려 했다.
나는 재빨리 손을 뻗어 그녀의 팔목을 붙잡았다.


“잠깐만요, 부단장님.”
“히익!!!”

고작 손목을 잡은 것에 대한 반응 치고는 폭발적인 반응.
실비아는 기겁을 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고는 그대로  몸을 밀쳤다.
아무리 내가 근력을 올린 법사라지만, 기사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실비아에게 떠밀린 나는 그대로 땅바닥에 곤두박질을 치고는 그 상태로 몇 바퀴를 더 굴러야만 했다.


“괘, 괜찮으세요?”

내가 나가떨어진 것을 본 실비아는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달려와 그렇게 물었다.


‘전혀 괜찮지 않아.’


온 몸이 부서질  같은 통증이 느껴졌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는 듯 했다.
더군다나 눈 앞의 상대는 내 목줄을 쥐고 있는 상황.
나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실비아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저랑 잠시 이야기를…”
“이, 이야기요?”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친 실비아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마치   것이라도  곳처럼 아주 대 놓고 내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네. 혹시 아까 전에 숲에…”
“히이이이익!!!”


실비아는 내가 숲이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기겁을 하며, 괴성을 질러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이쪽으로 집중될 정도.


“…..나중에 말씀을 나누도록 하지요.”


나는 그런 병사들의 시선을 느끼며, 실비아에게 그렇게 말했다.
상황이 급하기는 했지만, 나는 그녀를 그냥 놔줬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스스로 자폭 폭탄을 터트리는 것이나 다름 없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아. 네. 나중에…”


실비아는 그렇게 내 말을 한 번 반복하고는 도망치듯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몇몇 병사들이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 보였지만, 원래도 실비아는 좀 이상한 여자였던지 병사들은 이내 관심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멀어지는 실비아의 등을 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하필이면 목격자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모르는 폭탄 같은 인물.

“적을 알면 적어도 지지는 않겠지.”

나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을 떠올리며, 실비아라는 여기사에 대해 알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시스템.’

그리고 그녀에 대해 알아볼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떠올랐다.
시스템 창이 열렸고, 나는 자연스럽게 잡화점을 열었다.
익숙한 도트 모양의 NPC가 나타났고, 나는 그에게 내가 필요한 물품을 말했다.


‘한 병에 1G라고? 생각보다 합리적인데?’


나는 물품의 가격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주된 목적은 여기사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일이었지만, 그 외에 별도로 나도 꽤나 고팠던 것이었으니까.
10개 정도 물품을 구매하자, 곧장 인벤토리에 물건이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야영 준비를 마친 병사들에게 다가섰다.

“괜찮으시면, 저랑  한잔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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