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거짓 신탁
‘모르겠다, 포기!’
나는 결국 마력과 서클의 상관관계를 알아내는 것을 포기했다.
A, B, 45, 70 순의 수열이라는 것까지는 생각했지만, 그 A와 B를 도저히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할 걸.”
나는 한숨을 쉬며, 그렇게 짧은 자기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어쨌거나 이제 4서클에 오른 이상 새로운 마법을 구매해야 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다시금 지름신이 강림한 나는 상점창을 열어 마법 리스트를 살피기 시작했다.
서클이 올라가면서, 마법의 가격도 비싸졌기에 아무거나 구매할 수도 없는 노릇.
나는 고심 끝에 3서클 마법과 4서클 마법 하나를 골라 담았다.
[파이어 볼 3000G]
[라이트닝 체인 5000G]
그렇게 고른 것이 바로 파이어 볼과 라이트닝 체인.
전자는 마법사라면 기본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대표적인 마법이었고, 라이트닝 체인은 다수의 적을 상대로 어마어마한 성능을 보이는 전격 마법이었다.
‘물론, 게임에서는 보통 그런 이미지라는 소리지만.’
실제로 마법을 사용해 보기 전에는 그 이미지가 그대로 적용될 지는 알 수 없었다.
너무 공격 마법 위주로 살핀 것이 아닌가 싶지만, 엘프 놈에게 당할 뻔 했던 것을 생각하면 일단은 내 몸을 지킬 생각부터 해두는 것이 나았다.
‘구경은 공짜니까 조금 더 살펴 볼까?’
나는 공격 마법 외에 유용한 마법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상점 창의 마법 리스트를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투시 3500G]
[투명화 3500G]
‘음. 투시 마법과 투명화라니.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군.’
가장 먼저 내 눈에 띈 것은 3서클 마법인 투시와 투명화.
남자로서 투시라는 능력에 눈이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사실 그렇게 필요는 없을 듯 했다.
[슬립 4000G]
슬립 마법 또한 내 눈을 사로잡기는 마찬가지.
안 좋은 방향으로 쓸 방법이 무궁무진한 마법이었지만, 취향이 아님으로 구매는 보류하기로 했다.
[거미줄 소환 2500G]
‘스파이더 맨인가!’
뭔가 상당히 끌리는 마법이기는 했다.
여급에게 거미줄을 쏘아내는 장면을 상상하자 제대로 지름신이 찾아왔지만, 나는 억지로 그 신을 문전박대 해 버렸다.
‘아냐. 아껴야 잘산다!’
그렇게 가지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고 있던 나는 드디어 현재 가장 필요한 마법을 찾을 수 있었다.
“이건, 무조건 사야 해!”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눈에 띈 그 마법을 구매했다.
**
[통신 마법을 배웠습니다.]
[사용자의 마력 서클이 단전에 존재함을 확인했습니다.]
[‘통신’ 마법이 ‘전음’으로 변경 됩니다.]
나는 눈 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통신 마법이 전음으로 변경될 것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적어도 마법 감지에는 걸릴 확률이 낮을 테니까.’
뜻밖의 이득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곧바로 [전음] 스킬을 사용했다.
대상은 당연히 성녀!
내가 굳이 수 많은 보조 마법들을 포기하고 통신 마법을 배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실비아라는 폭탄을 막아야만 했고, 그 폭탄을 막기 위해서는 성녀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성녀는 기사들이 호위하는 마차 안에 있었고, 그런 탓에 실비아보다 성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전음만 있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 이 말이지!’
나는 전음 스킬을 사용하며 성녀에게 말을 걸려고 했다.
“아니지, 아니야! 이걸 그냥 이렇게 쓸 수는 없지.”
하지만 모처럼 전음이라는 스킬을 얻은 나는 장난끼가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통신] 마법 정도라면 성녀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겠지만, [전음]의 경우에는 모를 가능성이 높았다.
병사들과 친해지면서 알게 된 것 하나는 제운종을 사용할 때의 내 움직임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마법사가 어떻게 그런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인지, 기사들이 호기심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음도 성녀가 모르는 능력일 확률이 높다는 거지.’
나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마차를 바라봤다.
-성녀, 세라여. 내 목소리가 들리는 가.
나는 입술을 살짝 움직여, 마차 안의 성녀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당장 성녀가 놀란 표정으로 마차에서 나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정신을 집중해 전음을 보냈다.
-성녀여.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인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잠시 후 마차가 멈추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아랫배에서 올라오는 짜릿한 희열을 느끼며 마차를 바라봤다.
이내, 내 예상대로 놀란 표정의 성녀가 마차 밖으로 뛰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성녀는 허둥지둥 주위를 살피고는 곧장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기도를 올렸다.
나는 혼자 배꼽을 잡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성녀여! 내 그대의 믿음을 의심치 않는다.
나는 성녀를 향해 다시금 전음을 보냈다.
성녀의 가느다란 어깨가 자신이 마주한 기적에 놀라 바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여신님. 여신님의 충실한 종복이 여기 있나이다!”
성녀가 하늘을 올려다 보며, 그렇게 소리쳤다.
그녀의 두 눈에서 환희에 가득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랬다.
믿음은 부족하지만, 늘 여신이 존재한다는 기적을 목격하길 원했던 성녀는 내 전음 한 방에 그 기적이 자신에게 찾아왔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무엇이든 말씀하시옵소서! 제 목숨이라도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성녀는 무릎을 꿇은 채로 하늘을 향해 그렇게 외쳤다.
그저 질 나쁜 장난에 속아 넘어간 것뿐이지만, 그것이 장난임을 꿈에도 모르고 있는 성녀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경건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였다.
심지어는 그녀를 좋게 보지 않던 기사들과 병사들까지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일 정도.
거기에 데메테르 교에 믿음을 가진 몇 몇 병사들은 성호를 그으며 자리에 주저 앉아 여신에게 기도를 올릴 정도였다.
‘…..이거, 좆 됐네.’
간혹 진실을 모르는 게 약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지금 내 상황이 그랬다.
성녀를 오열하게 만든 주범인 나는, 뜻하지 않게 커져버린 상황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와서 장난이었다는 말 따위를 했다가는 배에 칼이 꼽혀도 할 말이 없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씨발….캐릭터 좀 지키라고!’
나는 애꿎은 성녀를 원망해 봤지만, 부질없는 원망일 뿐이었다.
지금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했고,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거 그냥 마음 편하게 여신을 이용하기로 했다.
-성녀여! 그대의 곁에 있는 그 약초꾼은 나의 사람이다. 내 너를 위한 안배를 해 두었으니, 그의 말을 잘 따르도록 하여라. 그리고 오늘 밤 그와 함께 숲으로 가라. 내 무엇을 해야 할지는 그에게 일러 두었노라.
나는 성녀를 향해 그렇게 전음을 보냈다.
여신이 한 말이라고 생각 하기엔 상당히 격이 떨어지는 내용이었지만, 다급히 떠올린 말치고 그 정도면 꽤나 선방을 한 것이라 생각했다.
‘나야말로 지옥 불 온도를 걱정해야 할 팔자군.’
제대로 여신을 팔아먹은 내가 그렇게 생각을 하는 사이, 성녀가 희열이 가득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아아아아….”
성녀는 차오르는 감동을 억누르지 못한 채, 나를 향해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나는 갑자기 날 향해 다가오는 성녀를 보며, 자연스럽게 몸을 움찔거렸다.
지은 죄가 있으니, 그녀와 마주하는 것이 조금 찔렸기 때문이었다.
“그랬군요. 역시나 당신은 여신님이 제게 보내준 사람. 여신님으로부터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성녀는 한 점 의심도 없는 표정으로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신탁이라는 말에 기사들과 병사들이 깜짝 놀라는 것이 보였다.
몇 백년 만에 나타나는 신탁.
몇몇 기사들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성녀를 살피는 것이 보였지만, 그녀의 진실한 얼굴을 보고는 이내 입술을 깨물었다.
“….네. 나중에 따로 이야기 하시지요.”
나는 성녀의 귀에 그렇게 속삭이듯 말했다.
더 이상 병사들과 기사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으니까.
당장 내 목표물인 실비아 조차도 놀란 표정으로 성녀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네. 그러지요.”
성녀는 꽤나 고분고분한 태도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장난을 치다가 얻어 걸린 결과였지만, 효과는 생각보다 뛰어났다.
‘이거 어쩌면, 데메테르 교단 사람들한테는 쥐약일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내가 새롭게 얻은 [전음]이라는 능력의 놀라운 가능성을 발견하고는 얼떨떨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
“신탁이라니, 진짜야?”
다시 숲에 어둠이 찾아왔다.
야영 준비를 하던 병사 하나가 나를 향해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병사는 조금씩 무뎌지던 믿음이 다시금 타오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글쎄요. 성녀님이 하신 말씀이니까, 진짜이지 않을까요?”
“아니, 이 사람아! 자네는 니스의 성자지 않은가! 그리고 그 성녀님이 신탁이 일어난 직후 자네와 대화를 나누었으니, 뭔가 알 거 아냐!”
“하하. 뭐 여신님의 뜻을 저 같이 미천한 이가 어찌 알겠습니까?”
나는 병사를 향해 그렇게 대답했다.
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아니 장난 하나가 공주를 호위하는 일행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고 있었다.
기사들은 아직도 성녀를 경계했지만, 그들 또한 종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병사들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
정치적인 이유로 교단과는 적대적인 관계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여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병사들이 욕을 하는 것은 욕심 많은 교황이었지, 데메테르 여신이 아니었으니까.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일어난 기적은 성녀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물론, 그 기적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것은 성녀 혼자 만이었지만, 모두가 그녀의 표정과 반응, 그리고 요동치는 감정들을 두 눈으로 확인한 상태였다.
‘그걸 연기라고 의심할 미친놈은 없지.’
그만큼 성녀의 반응은 신실했고, 경건하게 보였다.
덕분에 니스의 성자라는 호칭을 얻은 나에 대한 대접도 조금은 달라졌다.
함께 술잔을 나누던 병사들은 나에게 말 실수를 한 것이 있으면 용서해달라고 했고, 기사들 또한 나를 적대하던 반응이 확연히 줄어들고 있었다.
물론, 성녀와 내 관계를 목격한 실비아는 더욱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아니, 그렇게 티나게 감시할거면서, 왜 눈은 돌리냐고!’
나는 멀찍이서 나를 관찰하다,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실비아를 보며 그렇게 속으로만 외쳤다.
신탁의 기적이 있고 난 뒤, 실비아는 하루 종일 나만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그녀의 시선에 피부가 따가워질 지경.
그러면서도 내가 자신을 보면,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것이 사람을 아주 갑갑하게 만들고 있었다.
‘애초에, 저런 실력으로 기사가 될 수 있는 게 말이 돼?’
실비아의 전투 능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그 엘프의 마법을 방패로 막아낸 것을 보면 겁쟁이는 아닐 테지만, 기사가 싸움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처럼 누군가의 호위를 맡는 일이 많을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의심스러운 인물을 관찰하거나 감시하는 일도 해야 할 터.
하지만 실비아의 감시, 관찰 쪽의 재능은 한 없이 0에 가까웠다.
“….성녀님이시다.”
순간, 옆에 있던 병사 하나가 마차에서 내리는 성녀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몇몇 병사들은 성녀의 등장에 알 수 없는 성호를 긋기도 하는 상황.
나는 완전히 달라진 병사들의 반응에 한숨을 내쉬며 성녀를 바라봤다.
성녀는 흘끗 나를 바라보고는 병사들과 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성자님과 함께 숲으로 가라는 신탁이 있었습니다. 어떤 누구도 숲 근처에 접근하는 것을 불허합니다. 이것은 데메테르 교의 성녀로서 말하는 것이며, 이 말을 어길 시에는 여신님과 교단을 적대하겠다는 뜻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성녀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나는 성녀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실비아를 흘끗 바라봤다.
‘아니, 왜 오버하냐고! 그럼 쟤도 못 따라 오잖아!’
나는 내 계획을 망가트린 성녀의 말에 기분이 몹시 좋지 못했다.
거기다 나와 눈이 마주친 실비아는 다시금 티를 팍팍 내며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진짜 뭐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