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0화 〉굴러온 돌과 박힌 돌 (50/158)



〈 50화 〉굴러온 돌과 박힌 돌

“방이요?”

여급은 성녀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네. 당분간 이 니스에 머물러야 하는데 방이 필요해서요.”


성녀는 여급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성녀나 듣는 여급이나, 그게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녀씩이나 되는 인물이 굳이 싸구려 여관에 묵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니스에도 데메테르교의 신전이 있었고, 꼭 신전이 아니더라도 성녀 정도 되면 최고급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을 테니까.

“….있기는 한데. 왜?”

여급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성녀를 향해 그렇게 물었다.

“아아. 그냥, 이 여관이 마음에 들어서요.”


성녀는 여급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찌푸려진 얼굴은, 말과는 달리 그녀가 이 낡은 여관을 얼마나 싫어하고 있는지를 나타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쯤 되면 여급도 성녀의 행동이 상당히 수상쩍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여급은 감히 성녀에게 뭐라고 말을  수 없었다.


‘거절해! 거절!’


성녀가 들어오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복잡해 질 것이라고 판단한 나는 몰래 여급을 응원했지만, 사실 여급이 성녀를 거절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여급과 성녀의 신분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났으니까.
아니, 공식적으로는 성녀라는 신분이 귀족처럼 어느 위치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여급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상대일 수밖에 없었다.


“그, 그게…”


여급은 곤란한 표정으로 성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파악한  싶었지만, 감히 성녀를 거절할 배짱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여급이 아니라 그 어떤 누구라도 데메테르 교의 성녀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안 받아! 나가!”

아니, 있었다.
성녀건 나발이건 상관 안하고 들이 받을 수 있는 존재가.
성녀는 한쪽 눈썹을 치켜 뜨고는 자신에게 반말을 찍찍 내뱉는 상대를 노려봤다.
그리고 그 상대가 10살 정도의 어린 소녀임을 확인하고는 억지로 자신의 화를 누르는 중이었다.

“꼬마야. 어른들 말씀하시잖니? 버릇 없게 끼어들면 혼난다!”


애한테 하는 말치고는 다분히 협박조의 말이었지만, 그 성녀의 성격을 감안했을 때는 상당히 자신을 억누른 말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못했다.
상대는  미친 엘프의 딸이자, 인간 세상에서는 나이가 깡패라는 진리를 깨달은 하프 엘프였다.

“하? 꼬마? 너 몇 살인데?”
“……뭐라는 거야? 엄마면, 애 교육 좀 제대로 시켜야 하지 않겠…?”

성녀는 여급을 향해 그렇게 말하다, 입을  닫았다.
졸지에 딸이 생긴 여급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지만, 그것보다는  말을 꺼낸 성녀의 표정이 더욱 가관이었다.

“….혹시 이 애,  사람 딸입니까?”
“그 사람이라니요?”


겨우 애가 생긴 충격에서 벗어난 여급이 성녀의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성녀는 그런 여급을 보며 자신의 입술을 침으로 적셨다.

“그…왜 있잖아요. 전에 신전에 같이 찾아온  남자.”
“….아!”

그제야 성녀가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여급이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하얀이 선정이 딸…아니, 그 남자 딸이에요.”


‘뭔 미친 소리야!’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나는 경악을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여급은 성녀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성녀는 입을 쩍 벌리고는 그런 여급을 보고 있었다.
아마도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면, 그 음료수가 다시 컵으로 다 떨어졌을 것만 같은 표정.


“그럴리가…딸이 있을 거라고는…아니, 애초에 그런 건 묻지도 않았지만….”

성녀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의심이 아니라 이제는 확신으로 거듭난 표정.
한 편의 아침드라마가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진지하게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아침 드라마는 아직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뭔 소리야? 우리 아빠를 여급 네가….읍!”

가만히 여급과 성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하얀이가 끼어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급이 다급히 하얀이의 입을 막는 것이 보였지만, 이미 뱉은 말까지 주워담을 수는 없는 상황.
아니, 그것보다는 하얀이의 뾰족한 귀를 발견한 성녀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성녀가 급속도로 생기를 찾으며, 다시금 하얀이를 빤히 보는 것이 보였다.

“이런, 이거 제가 큰 오해를 할 뻔 했군요. 이 꼬맹이, 완벽한 인간이 아니네요.”


성녀는 하얀이를 향해 그렇게 인종 차별, 아니 종족 차별성이 다분한 말을 지껄였다.
나는 하얀이가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닐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전혀 반대였다.

“흥! 인간 종아, 그걸 이제 알아 보았냐?”


하얀이는 자신이 자신이 엘프의 피를 받았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듯, 양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는 턱을 한껏 치켜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자긍심 있는 아이로 컸구나!’

하얀이의 모습이 나름 기쁘게 다가왔지만, 문제는 성녀의 추리 놀음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쪽을 여급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엄마는 아닌 듯 하고. 다시 생각해보니 그 사람 딸이라기엔 애가 조금 큰 것 같군요.”
“….증거 있어?”

정곡을 찔린 여급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성녀에게 그렇게 최후의 발악을 했다.


“증거, 증거야  앞의 꼬맹이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죠. 누구와는 다르게, 이 꼬맹이는 적어도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어 보이니까.”
“하얀이는 꼬맹이 아니다!”

하얀이는 자신을 자꾸 꼬맹이라 하는 성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그렇게 소리쳤다.

“그래, 알았어. 그래서 하얀이 아빠는 누구야?”


성녀의 말에 하얀이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어쨌거나 던전에서 방치되다시피 자란 하얀이에게 그건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일  분명했다.


“….너한테 알려줄 의무는 없다.”


하얀이는 입술을 꾹 깨물며 성녀에게 그렇게 말했다.
성녀는 그런 하얀이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보였지만, 더 이상 하얀이를 추궁하지는 않았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얘 아빠가 누군지 중요하지는 않잖아요? 방이 있냐고 물은 것 뿐인데.”


성녀가 여급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여급은 그런 성녀를 노려보다 다급히 하얀이를 자신의 옆으로 끌고 왔다.

“우리 애가 싫다잖아요!”
“그쪽 애도 아니잖아!”
“어쨌든 방 없어요. 아니, 당신한테는 못 줘.”
“…..나 성녀인 거 잊었어요? 진짜 종교 재판 한 번 열어줘?”


나는 막장으로 치닫는 여급과 성녀의 말싸움을 바라보다 천천히 2층으로 올라섰다.
군자는 위험을 가까이 하지 않는 법.
나는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막장 드라마를  이상 보지 않기로 결정했다.

**


“그래서, 앞으로 저도 여기서 묵기로 했어요.”


그날 저녁.
성녀는 내 방에 찾아와 방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1층에서 본 하얀이와 여급의 표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합의가 이루어진 모양.
결국, 돈과 권력 앞에서는 여급도 버틸 재간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후. 그러던지요.”


나는 일방적으로 나의 스위트 홈을 침략한 성녀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딱히 그녀를 내쫓을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아직 제대로 맛을 보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그리 나쁜 조건만은 아니었으니까.

‘그래, 조만간 얘도 먹어야지. 언제까지 끌 생각이냐?’


성녀를 못 따먹은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야쓰에 목마른 독자들에게는 전부 비겁한 변명일 뿐이었다.
차일 피일 미루기만 하다가는 독자들이 떠날 수도 있는 일.
나는 차라리 성녀를 곁에 두고, 빠른 시일 내에 그녀의 정조대를 벗기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혹시 두 분이 같은 방을 쓰시는 건가요?”

하지만, 성녀는 그리 만만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그녀가 말하는 두 분이라는 것은 당연히 나와 여급을 지칭했다.
나도 하얀이를 데리고  이후로는 숙박비를 꼬박꼬박 내고 있으니, 손님의 입장이었지만 여급은 자신의 방이 아닌 내 방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그런데요?”
“애도 있는 데, 교육에 좋지 않을 거 같아서요.”


성녀가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일단 하얀이는 애가 아닌데다, 그런 교육을 하기엔 무척이나 늦어버린 상황이었지만 나는 성녀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조만간 성녀를 따먹을 계획을 세우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여급과 같은 방을 쓰는 것이 꽤나 방해가 됐기 때문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앞으로는 따로 방을 쓰도록 하지요.”

나는 성녀를 향해 그렇게 대답했다.
어차피 여급을 끝까지 안고 갈 생각도 없었고, 독자들도 언제 버리냐고 댓글을 달고 있는 상황.
슬슬 여급과 거리를 두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같다는 판단이  것이었다.
성녀는 만족한 얼굴로 내 방을 빠져 나갔고, 나는 1층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여급을 방으로 불러들였다.

“왜?”

방에 들어온 여급은 다짜고짜 날 향해 그렇게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싸가지라고는 찾아볼  없는 말투.
하지만 그 말을 내뱉는 여급의 표정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성녀님도 들어오고, 보기에도 안 좋은 것 같으니, 앞으로 내 방에서 묵는 것은 안되겠다.”


나는 여급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버림받기를 두려워하는 강아지처럼 잔뜩 기가 죽은 그녀의 표정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나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어차피 그녀 또한 예전 성녀와 내가 내기를 할 당시 나를 손절 하려고 했던 전력이 있었으니까.

“…..그럼, 이제 나는 너한테 뭔데?”
“….뭐긴? 여관 주인이랑 손님 관계지.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내 말에 여급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이 보였다.
아주 조금 양심이 따끔거렸기에, 나는 일부러 여급을 보지 않았다.
그냥 밖으로 나가라는 듯 허공에 손을 휘적거리고는 읽지도 않는 책을 바라볼 뿐이었다.
스륵- 스륵-.
이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천 자락이 서로 스치며 나는 야릇한 소리.
나는  소리에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여급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곳에는 여급이 아무렇지 않게 옷을 벗고 있는 중이었다.
낡기는 했지만, 깨끗하게 관리 된 여급의 복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여급은 속옷과 다리를 감싼 스타킹, 그리고 가터벨트만을 몸에 두른 채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중이었다.
기본적으로 좋은 몸매를 지닌 여급이었기에, 하반신이 자연스럽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니…씨발. 피곤하다며? 왜 또 서는 건데?’

여급의 스페셜 서비스를 받은 게 고작 반나절 전이었지만, 내 하물은 또 다시 그녀의 몸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내 신체 변화를 굳이 여급에게 알릴 필요는 없는 노릇.
나는 여급을 보며, 싸늘한 표정을 유지한 채 물었다.

“지금 뭐하는 거지?”


여급은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속옷과 스타킹, 가터벨트만을 걸친 모습으로 여급이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을 뿐이었다.

‘뭐지?’


나는 예상치도 못한 여급의 행동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가 나를 통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자 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여급, 아니 정확히는 여관의 주인이었지만 그녀의 신분은 바닥이었고, 나는 그녀에게 신분 상승을 이뤄 줄 동아줄 같은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여급이 이렇게 무릎을 꿇으며 저 자세를 취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치 못했다.
그녀의 욕심을 가볍게 여긴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싸가지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네가 무슨 수를 써서 성녀님을 꼬셨는지는 모르겠어.”

무릎을 꿇은 여급은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행동을 종잡을 수 없던 나로서는  말을 그냥 듣고만 있는 것이 최선이었다.

“네 앞날을 생각하면, 나 같은 년 따위는 성녀님과는 감히 비교도 되지 않겠지. 아니, 굳이 앞 날이 아니라 외모나 다른 것들을 생각해도 마찬가지일 거야.”


여급은 꽤나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나를 향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우습게도 나는 그런 여급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못 비장해 보이기까지 한 여급의 말에 설명  수 없는 어떤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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