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트리샤
“교장실에 다녀왔다고? 신입생이 왜?”
마치 불이 붙은 것 같은 강렬한 빨간 머리의 여자가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그렇게 말했다.
덕분에 더욱 가까이서 여자와 얼굴을 마주한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대답했다.
“아, 이런 저런 문제가 있어서요.”
“….이런 저런 문제? 지금 나하고 말장난을 하자는 건가?”
여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상황으로 봐서, 여자가 이 반을 맡은 교사라는 것은 당연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교장 조차도 이제는 내 말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나는 눈 앞의 교사가 성질을 부린대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수 밖에.
물론, 수업에 늦은 것이 내 잘못이긴 했다.
이런 내 태도를 보고 독자들이 인성 질이니 혐성이니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뻔뻔한 표정으로 눈 앞의 여자를 바라봤다.
‘이제 고작 20대 중반은 됐을까?’
교사라는 여자의 외모가 나보다 한참은 어려 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이가 어리다고 배울 것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한민국의 건실한 꼰대인 나는 나보다 어린 여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아. 이봐. 너. D반 주제에 무슨 깡으로 나한테 개기는 거지?”
눈 앞의 여자가 내 멱살을 잡으며 그렇게 말했다.
얼굴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상처가 그 외모를 깎아먹기는 해도, 눈 앞의 여자 또한 상당한 미인이었다.
하지만 그녀 또한 사람을 배경으로 판단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여자는 내 예상을 가볍게 뒤집으며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교관은 그런 깡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자고로 좆 달린 사내 새끼라면, 그 정도 배포는 있어야지.”
여자의 입에서 질펀한 농담이 튀어나왔다.
‘이게 교단에 선 인간이 할 말인가?’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여자를 보는 순간, 그녀는 내 멱살을 붙잡은 손을 풀기 시작했다.
“물론, 그 깡에 걸 맞는 실력을 갖춰야겠지만 말이지.”
여자의 그 말에, 반의 아이들이 몸을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원래부터 남의 집에서 눈치 밥을 먹고 자란 애들이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었으나 그래도 정도가 조금 과한 것 같았다.
내가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
빨간 머리의 여자가 호탕한 목소리로 교실 안의 애들을 보며 소리쳤다.
“전부 운동장으로 집합! 시간은 3분 준다.”
여자의 말과 동시에, 의자에 앉아 있던 애들이 다급히 운동장으로 뛰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창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 나가는 애들도 있을 정도.
나는 애들의 그런 반응을 보며,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생기 발랄하던 애들이, 한 순간에 정예병으로 거듭난 느낌이었다.
“오호? 여유를 부린다고? 좋지.”
빨간 머리 여자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그렇게 말했다.
여자는 나를 지나쳐 운동장으로 향했고, 나는 천천히 걸어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어떤 불길한 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뭐랄까, 부대의 말년 병장이 신분을 속이고 자대배치를 받은 신병을 연기하며 나에게 접근했을 때의 그런 찝찝함?
‘제운종!’
나는 빠르게 제운종을 운용해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자존심이 조금 상하기는 했어도, 일단 찝찝한 일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내 철칙이었다.
**
“누구야? 아까 그 여자?”
운동장으로 나간 나는 먼저 나와 있는 알렌을 보고 그렇게 물었다.
뒤늦게 출발하긴 했지만, 제운종의 도움으로 남들보다 여유가 조금 있었기 때문이었다.
“용병여제 모르세요? 아, 참 산에만 계셨다고 했죠?”
“용병여제?”
“저희 반을 맡은 그 여자가 바로 용병여제, 트리샤라고요.”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알렌을 바라봤다.
알렌은 트리샤의 팬클럽 회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아니, 그 표정을 봐서는 회원 정도가 아니라 회장쯤 될 듯 보였다.
‘아니, 씨발. 뭔 용병 여제가 이런데 튀어나와?’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멀리서 어기적 거리며 걸어오는 여자를 바라봤다.
아무리 많이 쳐줘봐야 스물 여섯을 넘기지 못할 것 같은 외모.
그런 주제에 용병여제라는 호칭을 얻다니, 뭔가 상당히 배알이 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좋아. 제군들은 교관의 말만 들으면, 그 빌어먹을 A반 새끼들도 때려 잡을 수 있다.”
정확히 3분 안에 운동장에 모인 D반 애들을 보며, 용병 여제 트리샤는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는 D반 애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만은 못했다.
D반 대부분이 누군가의 시중을 들기 위해 입학을 한 처지였다.
거기다 그 주인이라는 것들도 A반은 커녕 B반도 제대로 못 들어간 경우가 허다했다.
당연히 A반을 때려잡는다는 트리샤의 말은 D반의 의욕을 고취시키기는커녕, 하고자 하는 의욕을 뚝뚝 깎아먹는 소리였을 뿐이다.
“뭐지? 분위기가 왜 이 따위야?”
트리샤는 그런 애들의 반응에 눈썹을 치켜 뜨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A반을 때려잡는 다는 소리에 바짝 얼어붙은 애들은 트리샤의 짜증 어린 목소리에도 우물쭈물 거릴 뿐이었다.
‘미친. 그러게 왜 혼자 급 발진이야?’
나는 트리샤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열혈 교사 컨셉인가 싶었지만, 용병 여제씩이나 되는 인물이 굳이 D반을 맡은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살피고 있던 그 순간, 트리샤의 눈깔이 나를 향하는 것이 보였다.
“오옷! 그래, 깡다구, 네가 있었지?”
트리샤는 마침 딱 좋은 시범 케이스를 잡은 조교처럼 나를 불러냈다.
몇몇 아이들이 말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표정으로 몸을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 대단한 니스의 성자라는 타이틀도, 용병 여제 앞에서는 별 볼일이 없었던 모양.
나는 가만히 침묵하고 있는 학우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교장을 만났다? 그딴 대가리 터진 변명을 지껄인 것은 감당할 자신도 있어서겠지?”
“아니…변명이 아니라, 진짜인데요.”
“좋아. 좋다구. 하지만 힘 없는 진실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그러니, 네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도록.”
“….교장 선생님 불러올까요?”
“아니, 남에게 의지하면 안되지. 스스로의 힘으로 증명해라.”
나는 억지를 쓰는 트리샤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아까부터 느끼고 있던 것이긴 하지만, 눈 앞의 이 여자는 말이 통하는 타입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기는 뭘 쓰나? 검? 창?”
트리샤는 운동장 한 쪽에 있는 연습용 장비들을 바라보며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일단은 마법…사 이지 싶은데요?”
“마법?”
“네. 마법.”
“…..마버어어어어업?”
트리샤는 내 말에 마치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했다.
“하, 계집년도 아니고, 좆 달린 사내 새끼가 할 짓이 없어서 마법? 마법사라는 것들은 안전한 곳에 숨어 주문이나 외우는 쥐새끼들이지. 내 반에 쥐새끼가 있다는 것이 심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나는 멍한 표정으로 트리샤를 바라봤다.
꼬집을 곳이 너무 많아 무엇부터 꼬집어야 할 지 분간이 되지 않는 상황.
‘너도 계집이잖아. 그리고 안전한 곳에 숨어서 싸우는 게, 뭐? 오히려 목숨 내놓고 달려드는 전사 새끼들이 무식한 거야!’
나는 목구멍 끝까지 나온 말을 꿀꺽 삼키며 트리샤를 바라봤다.
어쨌거나 첫날부터 용병여제에게 찍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트리샤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검으로 바닥에 둥근 원을 그렸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원이 그녀의 검에 의해 바닥에 그어졌다.
트리샤는 그 원 안으로 들어서며, 나를 향해 말했다.
“네가 마법을 날려서 나를 원 밖으로 몰아낸다면, 너의 승리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넌 앞으로 내 말에 절대복종을 해야 한다. 일단 그 마법부터 때려치우게 만들겠지만.”
트리샤의 말에 D반 아이들이 웅성이는 것이 보였다.
한 쪽은 용병 여제였고, 한 쪽은 D 반이라고는 하나 그 니스를 구한 영웅이었다.
둘의 대결은 반 아이들 입장에서는 꽤나 흥미진진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제가 이기면요?”
평소 같았다면, 나는 어떻게든 그 대결을 피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성녀와의 내기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굴러 들어온 떡을 그냥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상대가 아무리 용병 여왕이라고는 하나, 나 또한 4서클에 오른 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지, 이런 건 확실한 게 좋으니까.’
“나에게 이길 생각을 하다니, 좋은 투쟁심이다. 좋다. 네가 이긴다면, 나는 검을 놓겠다.”
용병여제의 말에 아이들이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다름 아닌 그 용병여제가 자신의 검을 걸고 한 약속이었다.
뭐 정작 나는 그 용병여제라는 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감이 오지 않고 있었지만.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나는 용병여제 트리샤에게 그렇게 말하고 시간을 끌었다.
트리샤야 내가 도전을 할 지 말지를 고민한다고 생각할 터였지만, 사실 나는 그 사이 열심히 쇼핑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왕이면 확실한 게 좋겠지?’
나는 빠르게 연재창을 열었다.
봉영기 [32세/작가] (+40)
[근력]10 [민첩]10 [체력]10 [마력]70 [행운]12
그 동안 또 선작이 늘어난 상태.
나는 예전 독자가 달아주었던 코멘트를 떠올려, 마력에 30의 수치를 투자했다.
![마력 수치가 일정치를 초과했습니다.]
![새로운 서클을 해방합니다.]
나는 눈 앞에 메시지가 떠오르는 것을 보며 웃었다.
독자의 예상대로 마력이 딱 100을 찍자 5서클의 길이 열린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상대는 어쨌거나 용병 여제라는 대단한 칭호를 가진 여자.
내 최선을 다해도 상대를 할 수 있을 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만물상, 5서클 공격 마법 추천.’
나는 다급히 상점을 열고 NPC에게 5서클 공격 마법만을 추천 받았다.
[공기 폭풍 10000G]
[바위 폭풍 10000G]
[화염막 15000G]
[독 구름 생성 15000G]
나는 눈 앞에 떠오르는 마법들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5서클쯤 되자, 가격도 미친 듯이 올라갔지만 그 마저도 거의가 범위 마법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지, 어차피 저 여자를 원 밖으로 밀어내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하지만, 다시 게임의 룰을 생각하니 범위 마법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독 구름 생성은 그야말로 게임에 확실한 승부를 낼 수 있는 필승 패나 다름 없었다.
“좋아요, 하겠습니다.”
나는 트리샤를 향해 그렇게 호기롭게 말했다.
“호오, 그 용기는 높이 사겠다. 내, 너를 진정한 검사로 만들어주지.”
트리샤는 기수식을 취하며,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공격은 몇 번까지 허용됩니까?”
“….뭐, 네가 납득할 때까지 해도 상관은 없다만?”
내 질문에 트리샤는 가소롭다는 웃음을 머금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도 존심이 있지, 그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최후의 수단이 안 먹히면, 다른 방법도 없으니까.’
“딱 세 번. 세 번 공격을 해서 안되면 포기하겠습니다.”
나는 트리샤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보통 무협지에서 삼초식을 양보하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호오, 볼수록 마음에 드는 녀석이군. 좋다. 얼마든지 해 보거라!”
나는 어딘가 신이 나 보이는 트리샤를 보며,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첫 주문은 가장 손에 익은 매직 에로우.
일단 트리샤의 실력을 가늠, 아니, 정확히는 나와 그녀의 격차를 확인하기 위해 고른 마법이 그거였다.
“매직 에로우.”
내 눈 앞에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화살이 나타났다.
마력이 100을 뚫고 뭔가 더 밝아진 느낌.
나는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며, 원 안에 있는 트리샤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자, 잠깐…이건 무슨!”
쾅!
트리샤의 검과 내 마법 화살이 부딪치며, 폭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내 마법의 위력에 눈을 깜빡이고는 트리샤를 바라봤다.
트리샤의 붉은 머리가 엉망으로 헝클어진 것이 보였다.
다행히 그녀는 아무런 상처도 없어 보였다.
‘….나, 어쩌면 엄청 강한 거 아닐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D반의 친구 중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금, 밟았는데요?”
그건 내가 들어도 꽤나 밉살스러운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