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5화 〉자각 (55/158)



〈 55화 〉자각

“정확히 나는 내 몸이 선 밖으로 전부 나가야만 패배라고 했어. 그러니까 금을 밟았다고 내가 진  아니라는 말이지. 약간의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그런 눈으로 보는 건 조금 삼가 줬으면 좋겠군.”

트리샤가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말이 길고 장황하다는 것은 후달린다는 증거였다.
애써 태연한 척을 하고 있었지만, 나 또한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미노타우르스의 대가리를 한 번에 뚫어버릴 때부터, 어쩌면 내가 내 예상보다 강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용병 여제라는 여자까지 내 마법 한 방에 당황하는 것을 보자 그 의심은 거의 확신이 되고 있었다.


“방심한 거야. 내가 아주 잠깐 방심을 했지. 자, 제군. 다시 공격을 해 보거라. 이번에는  실력을 드러낼 테니.”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안전한 법.
나는 마침 눈 앞에 적당한 실험 상대도 있는 상황.
나는 다시금 마법을 장전했다.

“라이트닝 체인.”
“뭐, 뭣?”

 앞에 노란 색의 불빛이 구현됐다.
노란 불빛은 마치 전기를 내뿜는 쥐새끼 마냥 파직 소리를 내며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
그 모습에 트리샤의 표정이 사색이 되는 것이 보였다.
순간, 고민이 되기는 했지만 상대는 용병 여제였다.
개나 소나 여제라는 칭호를 붙여주는 것이 아니라면, 4서클 마법 정도는 쉬이 막아낼 것이었다.

“갑니다!”
“이런, 미친 새끼가!!”


내가 마법을 쏘아내자, 트리샤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재빨리 검을 휘둘러, 내 마법을 허공에서 요격하려고 했다.

‘응?’


나는 트리샤의 검에 희끄무레한 빛이 어리는 것을  수 있었다.

“소드 오러!”


누군가 트리샤의 움직임을 보며 그렇게 소리쳤다.


‘역시, 검기로군.’


나는 트리샤의 검을 감싼 하얀 기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떡타지 전문이라지만, 그래도 나는 웹 소설 작가였다.
당연히 그녀의 검에 어린 기운이 소드 오러라는 것쯤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뭐, 무림을 배경으로 한다면 검기 따위 동네 똥개들도 쓰는 것이 사실이지만, 판타지에서 검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나름의 실력이 있음을 의미했다.


“크읏!!!”

트리샤는 재빠르게 검을 움직여, 내가 날린 전격을 쳐 내고 있었다.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검에 부딪친 전격은 어디론가 튕겨져 나가려고 움직였고, 트리샤는 재빠르게 검을 휘둘러 그 전격을 계속해서 깎아 나가는 중이었다.
마치 뜨거운 고구마를 엉겁결에  것처럼 보이는 트리샤의 모습에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법을 상쇄시킨 트리샤는 열이 잔뜩 뻗친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애들  죽일 생각이야?”
“….예?”
“씨발. 너 정체가 뭐야? 제국의 첩자냐?”


트리샤가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나는 그제야 그녀가 왜 혼자서 삽질을 하듯 계속 마법에 칼질을 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내가 사용한 라이트닝 체인이 범위 마법이라는 것을 뒤늦게 떠올린 탓이었다.

“…..몰랐습니다.”
“뭐?”
“범위 마법이라는 거 깜빡 했네요.”


나는 트리샤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순간, 트리샤의 표정이 그야말로 악귀처럼 구겨지기 시작했다.

“그걸 변명이라고 하고 있어?”
“….저도 처음 사용해보는 거라서요.”


나는 나름 솔직하게 대답을 하는 중이었지만, 어째 트리샤의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지는 중이었다.

“하아? 처음? 4서클 마법을 처음 사용해 본다고?”
“…..네.”
"미친. 그걸 변명이라고 하고 있어? 어디 산에 은거한 현자 밑에서 수련이라도 하셨어요?”

나는 비꼬듯 말하는 트리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 변명이었던 탓이다.
애초에 니스에 퍼진 역병을 치료할 때부터 산에서 살았다고 주장했으니, 거기에 현자 하나쯤 끼어 든다고 이상할 것은 없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평범한 약초 꾼이 성녀도 치료 못한 역병을 해결했다는 것 보다는, 현자의 제자라는 설정이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

“…..그렇습니다. 하하. 걸렸네요.”

나는 재빨리 트리샤의 드립을 주워 먹었다.
현자 따위 만나 본 적도 없지만, 걱정 따위는 되지 않았다.
이미 여신까지 팔아 먹은 상황에, 현자가 아니라 현자 할애비라도 팔  있었다.

“….뭐?”
“….현자님한테 마법 배운 거 맞다고요.”
“미친, 세상에 현자가 어디 있...”
“아!!!”


트리샤의 반박은 알렌의 호들갑스러운 탄성에 묻혀 버렸다.
알렌은 마치 세상을 관통하는 이치라도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당연히 그런 알렌의 행동에 트리샤는 물론이고 D반의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 됐다.


“그래서,  역병을 치료할 수 있었던 것이었군요. 역시!”
“….역병?”

나를 보며, 존경의 눈빛을 보내는 알렌의 모습에 트리샤는 미간이 일그러졌다.
트리샤는 알렌을 노려보며 역병이라는 말을 되물었다.

“니스에 퍼진 역병을 구한 영웅이 바로  분이세요. 트리샤님.”
“…저 인간이?”


트리샤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내가 니스의 영웅이라는 것을 증언해줄 아이들은 D반에 차고 넘쳤다.
결국, 내 정체를 납득한 트리샤는 묘한 눈길로 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 놈이 왜 D 반에 있지?”
“말씀 드렸잖아요. 그 문제로 교장 선생님하고 이야기를 하고 왔다고.”

 말에 트리샤가 눈을 깜빡였다.
이제야 내가 수업에 지각을 한 이유를 설명했던 것이 기억난 모양.

“…진작 말을 하지 그랬어?”

내 말에 트리샤는 어색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런 트리샤를 기가 막힌 표정으로 바라보며 대꾸했다.


“진작부터 그렇게 말을 했는데요?”
“그래? 난 왜 기억이 없지? 하하, 그럼, 이 일은 대충 이렇게 마무리를…”

트리샤가 상황을 억지로 얼버무리려고 했지만, 나는 눈 앞에 있는 실험 상대를 그냥 놔줄 생각이 없었다.

“아직  발 남았는데요?”


나는 나름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트리샤에게 그리 말했다.

**

“…그,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무슨 마법을  생각이지?”


트리샤는 결국 상황을 얼버무리지 못했다.
상대가 아무리 니스의 영웅이자, 현자의 제자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먼저 제안을  상황에서 도망치기에는 용병 여제라는 이름이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정신병자였다.
거의 기본적인 호신술 정도나 하는 애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상황에서 라이트닝 체인을 날리는 놈이 제 정신이라고 볼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트리샤는 자존심을 잠시 접고 상대에게 어떤 마법을 쓸 것인지를 물었다.
아무리 막나가는 용병 여왕이라고 해도, 자신이 맡은 학생들의 목숨은 지켜야 한다는 최소한의 자각은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구름이요.”


하지만 트리샤는 이내 미친놈과 대화를 해봐야 상식적인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마법도 아니고 독구름이라니.
아니, 트리샤가 알기로 독구름 생성은 5서클을 완벽히 익혀야 사용 가능한 마법이었다.

‘하아, 어쩌다 이런 미친놈이랑 얽혀서는.’


트리샤는 속으로 한숨을 내 쉬며 눈 앞의 상대를 바라봤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조금 겉늙어 보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마탑의 늙은이들처럼 죽을 날만 기다리는 상대도 아니었다.

’저 나이에 5 서클이라고?’

다시 한 번 의구심이 트리샤의 머릿속에 자리잡았다.
아무리 많이 봐줘야 20대를 넘기지 않을  같은 상대가 5서클 마법사라니.
검사들 중에야 어린 나이에 소드 오러를 깨우치는 경우가 드물게 있기는 했지만, 마법은 달랐다.
마치 어떤 깨달음을 얻는 것처럼 세월을 갈아 넣어야 성취를 이루는 것이 마법이라는 학문이었다.
아무리 빨라 봐야 5서클 마법사가 되려면 중년의 아저씨는 되어야 했다.


‘물론 그 씨발 년은 예외지만.’

 하나, 예외가 있기는 했다.
마나의 사랑을 받는 여자, 로잘린.
그 재수 없는 년이 최근에 6서클에 발을 들였다고 했다.
마탑의 노친네들이 그런 년을 보며,  대마도사가 탄생 할 것이라는 호들갑을 떨어댔다.

“하아…독 구름.”


하지만 트리샤의 눈 앞에 또 다른 예외가 나타났다.
아직 로잘린이 도달한 6서클까지 가지는 못했을  몰라도, 이 쪽은 전설 속에나 등장하던 현자의 제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그 현자라는 것이 존재하는  확신을  수는 없었지만, 어쨌거나 눈 앞의 남자가 마탑에서도 놀랄 정도의 마법사인 것은 사실이었다.

“너, 제 정신이냐? 진짜로 이 학교에 있는 애들을 다 죽일 셈이야?”

트리샤는 남자를 향해 그렇게 물었다.
그녀가 아는 독구름 마법이라면, 운동장에 있는 D반 애들은 무조건 죽는다.
라이트닝 체인처럼, 트리샤가 어떻게 막을 방법조차 없는 범위 마법.
 앞의 미친놈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런 마법을 쓰겠다고 공언하는 중이었다.


“아뇨. 이번엔 조절할 수 있어요. 딱  원만큼만.”
“뭣?”

트리샤는 황당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마법사가 마법을 조종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었지만, 범위 마법은 애초부터 대단위의 살상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마법이었다.
그런 마법을 겨우 사람 하나가 들어가는 원 안에만 펼칠 수 있다는 소리는 수 많은 전장을 돌아다닌 그녀로서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믿어보세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리샤는 오랜만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아마 남자의 말대로 원 안에 독구름이 나타난다면, 트리샤는 어쩔  없이 원 밖으로 몸을 피해야  것이었다.
아무리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그녀 또한 숨을 쉬어야 했으니까.
애초에 마법사와 검사의 싸움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남자의 마법 조절이 실패한다면, 그 결과는 그야말로 끔찍  자체일 것이었다.


“잠깐!”

남자의 앞에 초록색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을 확인한 트리샤가 다급히 외쳤다.

“급한 볼 일이 생각났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트리샤는 남자의 말을 듣지도 않고 그렇게 말하고는 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녀로서는 용병 여제로 이름을 알리고  뒤, 처음으로 전장에서 몸을 뺀 것이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트리샤는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많은 않았다.
 재수 없는 년의 발목을 잡을 만한 존재가 나타난 것이었으니까.

‘흥. 로잘린, 이 썅 년. 언제까지 그리 잘난 척을 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

물론 스스로 로잘린에게 똥을 뿌리지 못했다는 것이 억울하기는 했지만, 원래 용병이라는 것은 유연한 사고를 할수록 오래 살아남는 법이었다.


**

“뭐야, 김 빠지게.”

나는 멀리 도망치는 트리샤를 보며, 그렇게  멘 소리를 내뱉었다.
자그마치 용병 여제를 물러나게 한 일이었지만, 내 마법 실력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D반의 애들이 그야말로 기적이라도 바라본 것처럼 나를 보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겠군.’

“대단해요, 본 씨. 설마 전설에나 나오는 현자 님의 제자였다니!”

내가 그렇게 판단을 내리는 사이, 알렌이 재빨리 나에게 다가와 꼬리를 치기 시작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용병 여제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보던 놈이, 이제는 그 시선을 나에게로 돌린 것이었다.

‘지조 없는 놈.’

나는 알렌을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비록  사람 저 사람에게 꼬리를 쳐 대는 놈이기는 했지만, 그 호의에 얄팍한 속셈 같은 것이 깔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용병 여제씩이나 되는 여자가  여기서 저러고 있는 거야?”

나는 알렌을 보며 그렇게 물었다.
뭔가 정신 없는 첫 만남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녀가  수도도 아닌 니스의 아카데미에 온 것인 것 호기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저도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알렌은 주위의 눈치를 살피고는 그렇게 운을 떼기 시작했다.
생긴 것과는 달리 소문에 아주 민감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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