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9화 〉수상한 무리 (59/158)



〈 59화 〉수상한 무리

“본 씨. 언제까지 여기서 이러고 있나요?”

알렌은 나를 보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은 지,  시간이 넘게 지난 상태였다.
아무리  호구 알렌이라지만, 이 정도면 의심을 품는 모양.
하지만 나는 뻔뻔한 표정으로 알렌을 보며 말했다.


“기다려 봐. 곧 올테니까…”
“온다니? 누가요?”


알렌이 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알렌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토룡이 지나갈 거라고 말하자니, 내가 생각해도 미친 소리 같았기 때문이었다.

‘근데 이 새끼는  멈춘 거야?’


사실 답답한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적당히 싸움을 벌일만한 공간을 찾아 토룡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니스를 향해 빠르게 접근하던 상대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근처에 멈춰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토룡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는 다른 것도 아니고 토룡이었다.
대부분 판타지에서 용이라는 놈들은 무식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더군다나 미친 엘프의 던전을 생각하면, 이번 이벤트 또한 결코 방심을 할 수 없었다.
나와 알렌이 숨어 있는 곳은 수 틀리면 언제든 몸을 뺄 수 있을 만큼 지리적 이점이 있었고, 그를 포기하는 것도 그리 현명한 일은 아닐 듯 했다.

“저기, 본 씨. 아무리 그래도 누굴 기다리는 지 정도는 말씀을 해 주셔도…”

알렌은 상당히 좀이 쑤신 표정으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결국 한숨을 푹 쉬며, 알렌이 좋아할 만한 떡밥을 던져주었다.


“대륙을 위한 일이야.”
“대륙이요?”


순간, 알렌의 눈이 별처럼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알렌이 용병 여제니, 현자니 하는 것들에 엄청난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딱 영웅 물 좋아하는 애새끼란 말이지.’

내가 파악한 알렌은 그런 인간이었다.
왜 상단 따위에 계속 붙어 있는 것인지 이해가 안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는 나름 용사나 영웅 같은 것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세계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세계의 주인공이 됐을지도 모를 인물.
그것이 내가 파악한 알렌이라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런 알렌에게 대륙이라는 거창한 단어는 쥐약이나 다름 없었다.
정의감이 넘치다 못해, 한 번 스위치가 들어오면 버서커나 다름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알렌에게 대륙을 위한 일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마법의 단어나 마찬가지였다.


“알렌. 내가 현자의 제자라는  알고 있지?”
“네, 당연하죠.”
“대륙의 위험이 찾아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해.”


나는 알렌을 향해 유치한 말들을 남발하며, 그를 꼬시고 있었다.
실상은 내 정력제를 구하기 위함이었지만, 어쨌거나 토룡씩이나 되는 존재를 처리하는 것이니까 대륙을 위해서라는 것도 완전한 거짓말은 아닐 것이었다.

‘움직인다!’


내가 알렌을 그렇게 세뇌시키는 사이, 드디어 멈춰 있던 붉은 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붉은 점은 그 때까지 멈춰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니스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알렌, 온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바위 뒤에 몸을 더욱 바짝 붙였다.
그런 내 행동에 알렌이 몸을 숙이며, 양 손에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 모양새가 상당히 덜 떨어져 보였지만, 중요한 것은 은폐와 엄폐뿐이었다.


**


‘뭐야, 저게?’


잠시 후, 숲을 뚫고 일련의 무리들이 나타났다.
문제는 지도 상의 붉은 점의 위치가 정확히 눈앞의 일행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 자들이 대륙의 위험인가요?”


나뭇가지를 들고 위장한 알렌이 나에게 다가와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나는 알렌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맵을 보면, 눈 앞의 상대가 토룡과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앞의 일행들과 토룡을 연관 짓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아무리 봐도, 그냥 평범한 상단이잖아!’

늙은 마부가 여유롭게 마차를 끌고 있었다.
희망에 가득 찬 청년들의 얼굴에는, 이번 상행을 통해 번 돈으로 고향의 소꿉친구와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들뜬 표정이 어려 있었다.
모두가 이번 상행에서 얻을 이익에 행복해 보였으며, 나름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응….그럴걸?”


덕분에 나는 상당히 자신 없는 말투로 알렌의 질문에 답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내가 믿을 거라고는 시스템 밖에 없었지만, 알렌에게 눈 앞의 상단을 공격하라고 설득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음…..”


알렌은 내 말에 미간을 좁히며, 다시금 상단의 모습을 살피기 시작했다.
역시나, 아무리  호구라도 내 말 한마디에 멀쩡한 상단을 공격하는 것은 어렵지 싶었다.
더군다나 알렌 또한 상단에서 자랐으니, 눈 앞의 일행에게 어느 정도의 호감을 품는 것 또한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수상하군요.”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일단은….뭐?”


하지만 알렌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내 예상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말이었다.
알렌은  옆으로 바짝 붙으며, 나에게 속삭이듯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저 상단이 사용하는 마차는 제국에서 생산되는 B사의 마차입니다. 전면과 측면의 디자인이 모던한데다, 도어 캐치의 높이 같은 것들이 안정적인 것이 사용자의 편의에 상당히 치중한 모델이죠. 거기다 저 7시리즈는 안정성에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설계된 마차인데, 카본 코어를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탑승자의 목숨을 지켜 준다는 명성을 가지고 있죠.”
“….어?”


나는 알렌의 설명에 얼 빠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분명 귀로 설명을 듣고 있는데, 머리로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알류미늄과 강철 혼합으로 견고함을 높인데다, 5:5의 무게 배분, 그리고 무게 중심을 더욱 낮춰서 주행 중의 안정감을 극대화 해 놓은 놈이죠. 승차감은 이전 모델에 비해 훨씬 좋아졌는데, 총 마차의 무게는  150Kg을 낮춰서 민첩성까지 높인 괴물입니다. 그야말로 마차 계의 혁신, 그 자체죠.”
“….어, 그래.”
“더욱이 트렁크의 모양이 잘 빠진 것은 기본이고, 전면 부와 후면 부에 모두 적용된 에어 서스펜서의 경우에는 가파른 곳에 오르거나, 고속 주행을 할 때마다 자동으로 조정되어 극대화 된 승차감을 자랑합니다.”

나는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는 알렌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녀석이 마차 덕후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기는 했지만, 솔직히 그걸  놓고는 아무것도 알아 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알렌. 나 네가 하는 말 하나도 못 알아 듣겠…”
“후…뭐, 어쨌거나 그래서 수상하다는 겁니다.”
“….도대체 뭐가?”


나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알렌을 보며 그렇게 물었다.

“저런 고급 라인의 마차는 상단이 쓰는 물건이 아니거든요. 저건 귀족 분들이 이동용으로 쓰는 거죠.”
“아!”

나는 드디어 알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눈 앞의 상단의 모습이 마치 BMW에 배추를 싣고 팔러 다니는 느낌이라는 소리였다.


“거기다 마차의 평균 적재량을 생각하면, 바디의 위치가…”
“아니, 그만! 됐어! 됐다고!”


나는 알렌을 향해 고함을 치듯 그렇게 소리쳤다.
끝도 없이 떠들어 대는 상대는 성녀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누구냐?!”


하지만, 내 목소리를 들은 것은 알렌 만이 아니었다.
당연히 숲 속을 지나가던 수상쩍은 상단 무리 또한  목소리를 듣고 반응한 것이었다.
뒤늦게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아 봤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는 노릇.
내가 당황한 표정으로 눈알을 굴리고 있는 사이, 알렌이 벌떡 일어나 상단을 바라보았다.

“당신들, 무슨 목적으로 니스에 접근하는 거지?”

상단을 향해 말을 거는 알렌을 보며, 나는 결국 숨는 것을 포기했다.
나 혼자만이라도 바위 뒤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려 했지만, 마차를 끄는 마부와 눈이 딱 마주쳐 버렸기 때문이었다.


“몰래 상단을 훔쳐보던 잡놈들 주제에 무슨 헛소리냐!”


상단을 호위하던 청년 하나가 검을 빼 들고는 알렌을 향해 소리쳤다.
누가 봐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이 쪽이 음흉한 속셈을 품고 상단을 노리고 있었다고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상단?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인다. 세상 어떤 상단이 B사의 7시리즈 마차를 상행에 이용한단 말이냐?”
“….그, 그건, 우리 상단이 이번에 돈을  벌어서 그렇다.”
“웃기는 소리.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상행에 도움이 되는 마차인 L사의 FH 라인을 구매하는 것이 상식적인 선택이다.”
“흥. 개소리. 우리는 고급 물품을 납품하는 상단으로 적재량보다 물건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 뿐이며…”
“헛소리 마라. 만약 안정성을 생각했다면, C사의 T시리즈가 정답이라는 것은 세 살 꼬맹이도 안다.”


나는 알렌과 상단을 호위하는 청년의 대화를 들으며,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냥 대화를 듣고만 있을 뿐인데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피곤함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산적이 아니라면 더는 우리 앞길을 막지 마라!”
“하. 니스를 침략하러 온 도적놈들 주제에 우릴 보고 산적이라니.”

청년의 말에 알렌은 모욕감을 느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굳이 정정하자면, 나는 단 한 번도 눈 앞의 상대가 니스를 침략하러 왔다고는 말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알렌의 그 말에 정곡을 찔린 듯, 입술을 깨물었다.

‘뭐야? 진짜 침략이라도 하려던 거야? 토룡이는 어디가고?’


“너, 정체가 뭐냐?”

청년이 알렌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그렇게 물었다.
알렌은 청년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나를 가리켰다.

“이 분이 바로 현자님의 제자시다. 세상의 모든 일을 알고 있는 현자께서는 이미 너희들의 더러운 속셈을 알아차리고 제자 분과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

현자가 산타 할아버지가 아닌 이상에야 모든 일을 알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알렌의 말에 상단을 가장한 무리는 동요하기 시작했다.


“현자라니…? 현자가 나타났다고?”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인데…?”
“계획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어? 그냥 저 새끼들 죽이고, 계획대로 하면 되는 거야!”

저들끼리 그렇게 떠들던 상단 무리가 하나씩 무기를 꺼내 드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알렌 또한,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니스를 침략하는 적도들아! 이 알렌이 너희를 상대해주마.”


나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적들을 향해 달려 나가는 알렌을 바라봤다.
대충 보기에도 적들의 숫자는 10명이 넘었고, 알렌은 혼자 뿐이었다.
그 미친 엘프 놈과도 호각을 이루었던 알렌이니, 쉽게 죽지야 않겠지만 저런 식으로 닥돌을 하다가는 제 명에 죽지 못할  분명했다.

‘하아, 미친.’

“크하하! 고작 이 정도 실력으로 니스를 침략하려 했단 말이냐!”
“닥쳐라! 다들 덮쳐!”

스위치가 제대로 들어 온 알렌은 그야말로 이 구역의 미친놈이 자신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비록 쪽수에 밀려 확실한 승기를 잡아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적들은 미친 듯이 날 뛰는 알렌을 막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매직 에로우.”

나는 알렌을 막느라 고군분투 중인 적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마법을 영창했다.
 앞에 하얀 화살 하나가 떠올랐고, 화살은 빠르게 날아가 적의 다리 한 쪽을 뚫어 버렸다.

“끄악!”
“조심해. 한 새끼는 마법사다!”

갑자기 날아온 마법에 적들은 더욱 혼란에 빠져 들었다.
고작 저런 실력으로 어떻게 니스를 침략할 생각을 한 것인지가 의문이긴 했지만, 나는 전혀 다른 문제로 고심을 하고 있었다.

“크하핫. 현자의 제자님 마법 맛이 어떠하냐? 네 놈들은 이제 다 죽었다!”

알렌의 검에 어느 한 녀석의 손목이 잘려 바닥에 나뒹구는 것이 보였다.
정작 손목을 자른 알렌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지만, 나는 알렌과는 달랐다.
내 마법에 다리가 관통 당한 사람을 보자,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린 것이다.
구멍이 뚫린 다리에서 거짓말처럼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나쁜 놈일 확률이 99.9 프로일 놈이라지만, 다리를 부여잡고는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꽤나 끔찍하게 보였다.

‘하아…씨발. 씨발. 씨발.’


나는 속으로 계속 욕설만을 내뱉었다.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이 그냥 그대로 날아가 버릴  같았기 때문이었다.
고블린을 잡았을 때의 기분도 더러웠지만, 직접 사람을 헤친 기분은 그거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빌어먹을.  미친 새끼부터 막아!”
“크하핫. 막을 수 있다면, 막아봐라!”


 눈에는 니스를 침략하러 왔다는 놈들보다, 그 놈들의 몸을 아무렇지 않게 도륙하는 알렌이 훨씬 더 악당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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