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토룡의 정체
“마법이 끊겼다. 버텨!”
내가 마법을 날리지 않자, 상단으로 위장했던 놈들은 빠르게 전열을 가다듬었다.
셋 이상이 짝을 지어, 알렌을 상대하는 것과 동시에 나머지 인원들이 뒤로 빠져 뭔가 수작 질을 부리는 것이 보였다.
머리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안 된다고 끊임없이 경고를 해 왔지만, 나는 도저히 마법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까 전 다리를 붙잡고 울부짖던 남자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용 허가 한다. 모두 복용해.”
마차를 끌던 마부가 뒤로 빠진 인원들을 향해 그렇게 소리쳤다.
마부의 말에, 마차 주위를 호위하던 인원들이 다급히 품에서 뭔가를 꺼내 삼켰다.
우습게도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씨발! 꺼져!!”
알렌이 고군분투 하고 있었지만, 철저히 그의 움직임을 묶는 것에만 집중한 상대의 대응에는 그도 어쩔 수 없는 듯했다.
‘하아…진짜,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내가 흔히 말하는 고구마 답답이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함부로 마법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솔직히 머리로는 벌써 백 번을 쏘고도 남았지만, 정작 그 시동어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크으으아아악!!”
순간, 뭔가를 집어 삼킨 놈들이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놈들은 괴로운 표정으로 소리를 질러대며, 스스로 옷을 찢어 발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찢겨진 옷 사이로, 놈들의 몸이 인간과는 다르게 변해버린 것이 보였다.
인간이라면 가질 수 없는 짙은 회색의 털이, 놈들의 몸을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 설마…?’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변신 중인 놈들을 바라봤다.
궁지에 몰린 악당이 도핑을 해서 갑자기 강하게 변신하는 거야 흔해빠진 클리셰 였지만, 그게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 터질지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크르르르륵-!”
가장 먼저 변신을 마친 놈이 알렌을 보며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를 냈다.
놈은 손에 들고 있던 검 마저 집어 던지고는 삐죽 솟은 손톱으로 알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알렌을 붙들고 있던 놈의 동료들은 혹시나 괴물로 변한 동료에게 당할까 두려운 표정으로 다급히 거리를 벌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거리를 벌린 놈들이 품에서 또 뭔가를 꺼내 집어 삼켰다.
“큭, 제길…”
세 놈이랑 싸워도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있던 알렌의 표정이 무참히 구겨졌다.
미친 놈 과 이성이 날아간 야수의 싸움이라니, 꽤나 흥미진진한 구경거리이긴 했다.
하지만 알렌이 힘에서 밀리는 것을 확인한 나는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알렌과 붙은 놈 말고도 다른 놈들도 변신을 끝내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라이칸스로프.”
알렌은 몸을 일으키는 적들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알렌의 말처럼 회색의 털과 늑대를 닮은 외양이,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늑대인간을 꼭 닮아 있었다.
‘이거야 말로,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 아닌가!’
알렌이 변신을 마친 적들을 보며, 낭패한 기색을 보이는 것과 달리 나는 적들의 모습에 쾌재를 불렀다.
인간을 공격하는 것에 느껴지던 거부감이, 놈들의 변신으로 인해 훨씬 줄어든 탓이었다.
누군가 듣는다면, 고작 모습이 변했을 뿐 놈들의 본질은 아직 인간이니 달라진 것이 없는 게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였다.
놈들의 본질은 악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착한 놈들이었다면 니스를 공격하러 왔다고 시인하지도 않을 것이며, 알약을 쳐 먹고 변신을 하는 것은 악당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였다.
내가 놈들에게 마법을 날리지 못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공격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지, 악당을 퇴치하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알렌, 빠져!”
나는 알렌을 향해 그렇게 큰 소리로 외쳤다.
내 목소리에 반응한 알렌이, 맞붙어 있던 놈의 손톱을 쳐 내고는 빠르게 뒤로 몸을 날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알렌이 범위에서 벗어난 것을 확인한 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바로 마법을 영창했다.
“독구름 생성.”
나는 범위를 조절해, 늑대 녀석들이 있는 곳에 독운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랬다.
내가 사용한 것은 그 용병 여제 트리샤를 상대하기 위해 구입한 마법이었다.
일단 내가 가진 마법 중에 가장 강력한 마법이 독구름 생성이기도 했고, 사 놓고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었기에 궁금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독구름 생성 마법의 효과는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였다.
불길한 느낌의 초록색 연기가 곳곳에서 피어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놈들의 모습을 시야에서 가릴 정도로 짙어진 것이다.
“크악!”
“크르르륵!!”
구름 안에서 늑대 인간들의 괴로운 듯한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화생방 실에서나 들릴 법한 비명소리에 PTSD가 도지는 느낌이었지만,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역시, 대단하시네요. 이 순간을 노리고 계셨던 거군요.”
알렌이 날 향해 다가오며 그렇게 말했다.
뭔가, 상당히 큰 오해를 하고 있는 듯 했지만 나에게 나쁠 것은 없는 오해였기에 마음대로 생각하도록 두었다.
나는 눈 앞을 가득 채운 독운을 바라봤다.
상대는 다른 존재도 아니고 라이칸스로프.
종족 값으로 미친듯한 회복력과 질긴 생명력이 붙어 있는 놈들이었다.
판타지 작가 짬으로 봤을 때, 독운 따위로는 쉽게 죽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크아아악!!”
역시는 역시.
나는 독운 밖으로 튀어 나오는 라이칸스로프를 보며 가볍게 매직 에로우를 날렸다.
내가 날린 마법 화살이 정확히 놈의 목구멍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화살에 뚫린 놈은 기껏 독구름을 탈출한 보람도 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파들 거리는 것이 보였다.
‘음. 게임을 많이 해서 그런가, 아무 감각도 없군.’
스스로도 놀랄 만큼 존나 빠른 태세 전환이지만, 어쨌든 내 기분이 그랬다.
나는 다시금 독운을 뚫고 탈출하는 라이칸스로프를 발견하며, 무신경한 표정으로 마법 화살을 날렸다.
놈의 뒤통수를 정확히 뚫고 들어간 마법 화살이 멀리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알렌?”
“네?”
“설마, 나 혼자만 고생하게 둘 생각은 아니겠지?”
나는 알렌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라이칸슬로프를 잡는 것에 딱히 거부감이 든다거나, 마력이 딸린다는 이유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내가 잡아 온 호구가 멍을 때리고 있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하핫. 설마요!”
알렌이 웃음을 터트리며, 독구름 근처로 향했다.
알렌은 정말 신난다는 듯한 표정으로 독구름 밖으로 빠져 나온 늑대들을 하나씩 잡아 죽였다.
‘확실히, 스위치가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니까?’
개 호구 마차 덕후가 늑대 학살자로 변신한 장면을 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앞으로도 두고두고 알렌과 친하게 지낼 생각이었지만, 얼굴에 피를 묻히고 웃는 그의 모습을 보자 뭐든 적당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대충 다 정리 된 것 같은데요?”
알렌은 바닥에 널부러진 늑대 시체들을 끌어 모으며,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굳이 죽은 놈들의 시체를 모으는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친놈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그나저나, 토룡은?’
나는 한쪽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늑대 시체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애초에 니스 성 밖까지 빠져 나왔던 이유가 고작 라이칸스로프 따위를 잡으려던 것이 아니라는 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맵.’
나는 다시금 시스템이 제공한 맵을 켰다.
맵 위에는 아직도 토룡의 위치를 나타내는 빨간 점이 깜빡이고 있었다.
나는 주변의 풍경과 지도를 비교해, 토룡의 위치를 조금 더 세밀하게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알렌이 그토록 칭찬하던 마차가 붉은 점과 정확히 일치하는 장소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렌, 잠깐 거기 대기.”
나는 알렌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마차를 향해 다가섰다.
절대로 알렌에게 정력제를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상대는 어쨌거나, 토룡.
알렌이 위험해 질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나 혼자 접근을 한 것 이었다.
‘근데, 뭔 토룡이 이런 데 들어가 있어?’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마차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토룡이면, 어쨌거나 용이었다.
하지만 마차는 대충 보기에도 사람 6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의 크기.
토룡 정도나 되는 존재가 들어가 있기엔 상당히 비좁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그건 문을 열어보면 확인할 수 있는 일이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마차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음. 확실히 도어 캐치의 위치가 편리…아니지.’
순간, 알렌이 떠들던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지만, 나는 고개를 휙휙 젖고는 마차의 문을 열었다.
“이게…뭐야?”
하지만 마차 안에 있는 건 토룡이 아니라 작은 상자 하나뿐이었다.
그것도 강아지 하나 정도가 겨우 들어갈 사이즈의 낡은 상자.
물론, 그 상자가 조금 특별해 보이기는 했다.
부적 같은 것이 잔뜩 붙어 있는 모습이 아무 생각 없이 열었다가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 이상한 거라도 있어요?”
늑대 시체를 쌓아두는 것을 끝낸 알렌이 날 향해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나는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상자를 바라봤다.
알렌에게 대신 열어보게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싶었다.
‘괜히 소유권을 주장하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니까…’
나는 알렌이 다가오기 전에 다급히 상자에 붙은 부적을 뜯어냈다.
부적 외에는 별다른 잠금 장치가 없었기에, 나는 어려움 없이 상자의 뚜껑을 열 수 있었다.
[누가 감히 나의 잠을 깨우는가!]
상자의 뚜껑을 열자, 불길한 색의 연기가 피어 올랐다.
마치 내 머릿속에서 말을 걸어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상자의 안을 바라보며,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이게 뭐야?’
**
“지렁이?”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지렁이와 비슷한 모습을 한 괴생명체였다.
어딘가 상당히 좆같이 생긴 지렁이.
아니, 그러니까 욕을 한 게 아니라 진짜 생긴 게 꼭 좆, 아니 자지 같이 생긴 지렁이였다.
[무엄하구나! 감히 이 몸을 보고 지렁이라니!]
좆 같은 지렁이가 대가리를 세우며,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 황당한 장면을 입을 쩍 벌린 채로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이게….토룡?”
나는 멍한 표정으로 지렁이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막 나가는 세상이라지만, 토룡이 지렁이라니 이건 좀 아니지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 내가 바로 땅을 지배하는 토룡이다. 알아봤으면 당장 무릎을 꿇어라, 인간 놈아!]
토룡은 대가리를 흔들며, 나에게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좆같이 생긴 대가리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이 뭔가 상당히 내 기분을 더럽게 만들었다.
마치 야동을 보다가 장면을 빨리 넘겼는데, 남자 배우의 성기를 한껏 클로즈 업 한 것을 보는 느낌이랄까?
‘좆같네, 씨발.’
이번엔 토룡의 생김새가 아니라, 그냥 욕설이었다.
[어헛! 이 인간 놈이, 그래도 무릎을 꿇지 않고 뭘 빤히 보고만 있는 게냐?]
나는 토룡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놈이 진짜 용이건 아니건 사실 그렇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내 목적은 정력을 키우는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좆같이, 아니 자지 같이 생긴 놈을 내가 잡아 먹어야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하아…먹는 거겠지? 아무래도, 먹는 거 밖에 없잖아.’
나는 토룡을 보며 갈등에 휩싸였다.
아무리 정력에 좋다면 못 먹을 것이 없다지만, 상대는 어떻게 보나 남성의 그것과 너무 닮아 있었다.
그걸 입에 무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치는 중이었다.
[뭐냐? 그 눈빛은?]
내가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토룡이 고개를 바르르 떨며 그렇게 물었다.
그 모습이 또 어찌나 혐오스러운지, 나는 나도 모르게 현실 도피를 하고 있었다.
“너, 토룡 아니지? 제발 아니라고 말해주라.”
[토룡 맞다! 알아 봤으면 무릎을 꿇어라!]
“아니, 그래도 용이잖아. 용이면, 도마뱀을 닮아야지, 왜 지렁이를 닮아?”
[선입견이다, 인간!]
내 말에 토룡은 곧잘 대답을 해 주었다.
한 쪽은 자신이 토룡이라 주장하고, 한 쪽은 애써 부정하는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니, 뭘 잘난척이야, 토룡이고 나발이고, 지렁이니까 힘도 없어보이는 구만.”
[하! 지금은 내가 힘이 봉인되어서 그런 것뿐이다. 나를 땅에 풀어놔 다오! 그럼 세상을 뒤집어 엎어 주마!]
“아니, 애초에 세상을 왜 뒤집어 엎어, 미친놈아.”
[뭐? 미친놈? 인간아 정말 죽고 싶은 거냐?]
토룡은 화가 난 듯이 몸을 꿈틀거리며, 상자 밖으로 빠져 나오려 했다.
하지만, 손이 달린 것도 아닌 탓에, 놈은 겨우 30Cm 정도의 벽도 넘지 못했다.
[분하구나! 원통해!]
토룡이 좆 대가리를 세우며, 나를 향해 그렇게 외쳤다.
순간 놈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뭔가 엄청나게 불길한 느낌에, 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놈의 행동을 주시했다.
‘뭐지? 진화라도 하는 것인가!’
하지만 놈은 진짜로 원통한 것처럼 눈물을 흘렸다.
어떤 의미에서 진화라면 진화이긴 했다.
안 그래도 혐오스럽던 놈의 모습이 훨씬 더 혐오스럽게 변했으니까.
어째서인지, 놈의 정수리 부근이 갈라지며, 뭔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크윽! 분하다!]
그랬다.
토룡은 울고 있었다.
놈은 대가리로 울었고, 하필이면 그 눈물은 어느 익숙한 것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씨발….왜 눈물이 백탁액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