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섭취
“어? 이거 토룡 아닌가요?”
어느새 마차로 다가온 알렌이 좆…아니, 토룡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알렌의 그 말에 나는 뜨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알아?”
“아, 실제로 본 적은 저도 처음이지만, 어릴 때 영웅담 책에서 삽화로 본 적이 있어요.”
알렌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아니, 어릴 때부터 좆 대가리가 삽화로 나오는 책을 읽다니,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산 건가 싶었지만 그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오오! 드디어 말이 통하는 인간이 나타났구나. 나를 땅에 풀어 다오! 내 대륙을 다 뒤집어 엎어 주겠다!]
토룡은 알렌의 말에 반가움을 드러내며, 그렇게 말했다.
문제는 그 반가움을 표현하는 방식이 머리를 흔드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나 때문에 억울함의 좆물…아니, 눈물을 흘린 토룡이 대가리를 흔들자, 하얀 액체가 사방으로 뿌려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액체가 높이까지 튀지는 않았지만 상자 벽면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괴기스럽기 그지 없었다.
“…이야, 실제로 처음 보는데, 진짜 좆같이 생겼네요.”
토룡에 대한 알렌의 감상은 그게 끝이었다.
그러니까, 알렌은 토룡이 떠든 말을 못 들은 거 같았다.
“너, 방금 얘가 한 말 못들었어?”
“….토룡이 말을 해요? 에이, 본 씨. 장난 치지 마세요.”
알렌은 순박한 얼굴로 나를 향해 그렇게 대답했다.
[이런, 하필이면 대가리에 이미 잡것이 자리잡은 인간인가!]
토룡이 알렌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알렌은 토룡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알렌은 그저 토룡을 실제로 본 게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뻗으며 나에게 말했다.
“그랬구나. 그래서 저 놈들이 자신감이 넘쳤던 거네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쟤들 그렇게 강하진 않았잖아요. 아니, 강하긴 한데 조금 애매하니까. 아마 아카데미 교사들 중 몇 명만 나서도 금방 정리될 수준이잖아요.”
“그렇긴 하지.”
나는 알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내가 강해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세계관 최강자가 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용병 여제와의 내기에서 이기긴 했지만, 그 당시 빠르게 도망치던 용병 여제의 모습은 감히 눈으로 쫓기도 힘들 정도였으니까.
아마 그녀가 그 속도로 나에게 공격을 했다면, 패배하는 것은 내 쪽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용병 여제라면, 눈 앞의 늑대새끼들 잡는 것은 일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쟤네 니스에 이 토룡을 풀려고 한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뭐?”
나는 알렌의 말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겨우 지렁이 한 마리 푸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토룡이 땅 속에 자리를 잡으면, 산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어진다.”
“어?”
“제가 읽은 책에 그렇게 써 있었어요. 지금이야 좆…아니, 지렁이 같이 생겼지만 이거 땅에 풀면 한 시간도 안 지나서 샌드 웜을 잡아 먹을 정도로 자란다고요.”
나는 알렌의 설명에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토룡을 바라봤다.
산을 무너뜨리고, 땅을 뒤집는다니 아무리 봐도 그런 존재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거…강해?”
“책에서 본 대로라면, 용사 파티도 몇 달을 고생해서 잡던데요?”
나는 알렌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이제 알았나, 인간? 뒤늦게라도 잘못을 깨달았다면 머리를 박아라. 그리고 나를 땅에 풀어주면…]
“좀 닥쳐!”
나는 토룡을 향해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는 녀석의 목소리가 듣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물어봐 놓고 닥치라니. 조금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하지만 내가 토룡에게 말을 했다는 것을 알 리 없는 알렌은 조금 서운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아니, 너한테 한 말은 아니니까…”
“아. 그런가요? 아무튼 이거 엄청 강하대요. 이게 진짜로 존재하는 지는 몰랐지만요.”
“아니, 근데 넌 왜 그렇게 태연 한 거야?”
“에이, 어차피 땅에 풀린 것도 아니고, 본님이 잡으셨잖아요. 대륙의 위기라더니, 이 놈이 풀렸으면 진짜 큰일 날 뻔 했네요.”
알렌은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뭔가 오해가 점점 더 심해지는 느낌이었지만, 이번에도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나는 알렌에게서 시선을 돌려 토룡을 바라봤다.
한 시간도 채 지나기 전에 샌드 웜을 잡아먹을 만큼 커지는 놈.
땅 속을 파고 들면, 산을 무너뜨리고 땅을 뒤집어 없는 능력이 있는 놈.
무엇보다 생긴 게, 좆같이 생긴 놈.
모든 신호가, 놈이 엄청난 정력제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먹자, 먹는다.’
나는 토룡을 바라보며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물개의 성기도, 그리고 소의 성기도 먹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였다.
거기다 상대는 시스템이 인정한 정력제.
비록 생긴 것이 조금 역하다고는 하나, 그 효능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참을 수 있을 듯 했다.
[뭐, 뭐냐? 인간. 왜 그런 눈으로….날?]
역시 상대는 토룡.
내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녀석은 뭔가 불길함을 느낀 것 같은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알렌.”
“네, 본 님.”
“이 놈을 처리하고 올 테니, 넌 여기서 기다려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나는 알렌에게 그렇게 말했다.
무려 영웅담에나 등장하는 토룡을 가지고 가겠다는 이야기였지만, 나를 현자의 제자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알렌은 너무나도 쉽게 수긍을 했다.
“네. 기다릴게요.”
알렌은 그렇게 말하며, 마차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대륙을 뒤집어 엎을 수 있다는 토룡보다, B사의 마차가 더 신기한 모양.
나는 알렌이 확실히 정상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정신상태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며, 토룡이 든 상자를 들고 숲으로 향했다.
**
[무, 무엄한 놈! 나를 어쩔 셈이냐?]
[왜 점점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냐!]
[하아, 이 봐. 친구. 그러지 말고 나와 협상을 하는 것이 어때?]
내가 숲으로 들어가는 사이, 토룡은 나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어떻게 된 곳이, 여기는 인간이나 토룡이나 말이 많은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룡은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놈의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어차피 잡아 먹을 놈과 말을 섞어봤자, 입 맛만 쓸 뿐일 테니까.
“이 정도면 적당하겠군.”
알렌이 있는 곳에서 적당히 멀어졌다고 생각한 나는 상자를 바닥에 내려놨다.
순간 불길함을 느낀 토룡이 상자 구석으로 몸을 바짝 붙이며,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뭐냐! 뭐냐고!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질을 할 생각이야!]
“파이어 볼.”
나는 토룡의 말에 대답을 하는 대신 가볍게 주문을 외웠다.
원래라면 사람 머리통한 화염구가 나타나야 했겠지만, 나는 토룡의 크기에 맞춰 화염구의 크기를 조절했다.
테니스 공 크기의 화염구를 본 토룡이 몸을 떨며 최후의 발악을 시작했다.
[크악! 나를 죽일 셈이냐! 인간, 널 저주할 거다! 죽일 거야!]
나는 토룡의 저주를 들으며, 화염구를 날렸다.
툐룡이 재빨리 몸을 움직여 내 화염구를 피하는 것이 보였지만, 그래 봤자 놈이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상자 안 뿐이었다.
[불타! 불탄다!! 뜨거워!!]
파이어 볼에 맞은 토룡이 바닥을 구르며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다.
놈의 말 대로, 나는 불타는 자지를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대로 구웠으니, 별 문제는 없겠지?’
타닥-타닥-.
놈이 타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발악을 하듯 상자 안을 빠르게 굴러 다니던 놈은, 이제 완전히 체력이 다한 듯 축 늘어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불에 익으면서 놈의 크기가 줄어들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생긴 건 여전히 좆같았지만.
나는 겨우 엄지 손가락 정도의 크기로 쪼그라든 놈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죽었나?”
혹시나 싶어 말을 걸어봤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 상태.
나는 눈을 질끈 감고는 놈을 입에 털어 넣었다.
잘 구운 오징어를 먹을 때와 비슷한 향이 입 안에 퍼졌지만, 워낙 생김새가 역해서 그런지 그 냄새도 엿 같게 느껴졌다.
용기를 내서 입 안까지 토룡을 넣는 것을 성공했지만, 나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도저히 씹을 엄두가 안 나!’
마치 누군가의 잘린 손가락을 입에 머금은 느낌이 들었다.
토룡이 하얀 눈물을 흘려대던 장면까지 떠오른 나는 결국 씹는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놈을 삼켜 버렸다.
가까스로 놈을 삼킨 나는 자연스럽게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딴 짓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심히 억울했기 때문이었다.
“효과만 없어 봐. 진짜 다 뒤집어 엎어 버릴 테니까.”
**
“토룡은 어떻게 됐습니까?”
다시 전투가 일어났던 장소로 향하자, 알렌이 날 향해 그렇게 물었다.
“잘…처리했어.”
알렌의 말에 나는 다시 구역질이 치미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역함을 누르며 그렇게 말했다.
“그나저나 늑대 시체는?”
“아, 마차에 다 실어 놨어요.”
늑대인간들의 시체가 사라진 것을 발견한 나는 알렌에게 그렇게 물었고, 알렌은 상쾌한 얼굴로 나에게 그렇게 답했다.
“….그건 왜?”
나는 도저히 알렌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확실히 눈 앞의 인간은 종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하필이면 대가리에 이미 잡것이 자리잡은 인간인가!]
나는 뒤늦게 토룡이 알렌을 보며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토룡 때문에 정신이 없어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알렌에게도 뭔가 비밀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청에 보고 해야죠. 그리고 그 라이칸스로프니까 이래 저래 쓸 모가 많을 겁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알렌의 말은 꽤나 상식적인 수준의 것이었다.
적들의 정체를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놈들이 니스에 토룡을 풀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더욱이 멀쩡한 인간들이었던 놈들이 이상한 걸 쳐먹고는 늑대인간으로 변한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판타지 세계에서 몬스터의 시체가 돈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설정이기도 했고.
대충 알렌의 의도를 이해한 나는 그를 보며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저 놈들 시체는 값 좀 잘 쳐주나?”
“일단 가죽이 제일 비싸고요, 피도 포션 재료로 쓰입니다. 고기는…사료값 정도는 나오겠네요.”
확실히 상단 출신이라 그런지, 알렌은 이런 쪽으로는 빠삭한 듯 보였다.
어차피 이 세계의 돈이야, 조회수만 올리면 얼마든지 벌 수 있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세상에 공돈 싫어하는 인간은 없는 법이었다.
“….7:3”
나는 알렌을 향해 꽤나 합리적인 제안을 했다.
어쨌거나 놈들의 위치를 찾은 것도 나였고, 죽인 것도 내 쪽이 훨씬 많았으니까.
그나마도 토룡을 나 혼자 꿀꺽했기에, 양심상 3을 떼어주는 거였다.
“하하. 수익은 본 님이 다 가지셔도 됩니다.”
하지만 알렌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호구였다.
‘이거, 인간 되려면 멀었네.’
나는 알렌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겨우 상단에서 종살이나 하는 주제에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모을 생각은 안 하고 인심을 써대는 그 모습이 기가 막힐 정도.
나는 왜 알렌의 어머니가 병에 걸렸음에도 치료를 거부하고 알렌을 학교에 보내려 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신, 이 마차는 저한테 주십시오.”
알렌이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다른 것을 요구해오는 그 순간, 나는 그 모든 것이 내 착각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알렌이 장황하게 설명한 마차는 B사의 7시리즈.
귀족들이나 사용할 정도의 마차라고 하니, 그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임은 분명했다.
마차에 대해 개뿔도 모르는 나조차도 감탄할 정도로 마차는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였다.
사용자의 편의성을 생각한 장인의 배려심과 감성.
그야말로 명품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물건이었다.
“음…”
나는 침음성을 흘리며, 고민하기 시작했고 알렌은 그런 내 모습을 초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라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바퀴 달린 것에 대한 욕망이 피어나기 시작했지만, 어차피 알렌과는 앞으로도 오래 가야 할 사이였다.
나는 통 크게 마차를 양보하기로 결심했다.
“그래, 너 가져라.”
“감사합니다! 본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