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7화 〉재회 (67/158)



〈 67화 〉재회

“로하임 백작님이요?”


아직 수업이 시작하려면 시간이 남아 있었고, 나는 알렌을 졸라 샬롯을 찾았다.
B반 교실에서 나온 샬롯은  질문에 의아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래. 알고 있는 거 다 말해봐.”
“하아?”


내 말에, 샬롯은 마땅치 않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내 배경이 배경이니만큼 함부로 대하긴 어려웠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뭐, 저도 아는 거 없어요. 애초에 백작님 같은 분을 미천한 상인의 딸인 제가 어찌 알겠어요?”

그리고 샬롯은 새침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못해도 비협조적으로 굴겠다는 의미.
나는 그런 샬롯을 보며, 가볍게 미간을 좁혔다.
언젠가는 제대로 버릇을 길들여 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하하. 이거 왜 이러십니까, 샬롯 양. 알렌에게 백작가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다 들었는데요.”


내 말에 샬롯이 슬쩍 알렌을 흘기는 것이 보였다.
어쨌거나, 내가 태도를 바꾼 것이 나쁘지는 않은 모양.
샬롯은 한숨을 푹 쉬고는 나를 향해 조금 더 성의 있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물론, 친분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만, 백작님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게 무슨…”
“백작님이야, 워낙 사람들을 곁에 두지 않으시니까요. 저희 가문도 백작가와 거래를 하지 않았다면, 아예 상대도  해 주셨을 걸요?”


나는 샬롯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작씩이나 되는 인물이 주변에 사람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 쉬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녀나 공주를 보면 알겠지만, 이 세계는 철저한 신분제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정치 질을 계속해야만 했다.
신분제이기는 하지만, 마법과 신이 존재하는 세상.
 나라의 왕 조차도 절대 권력이라고는  수 없는 탓에 자신이 가진 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주변의 상황을 살피고 능동적인 대체가 필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백작이라는 양반이 대인 기피증이라고?’

나는 샬롯의 말에 뭔가 수상쩍은 느낌을 받았다.
뭐, 대인 기피증에 걸린 귀족이 하나쯤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하필이면 이벤트가 발생한 백작이 그 귀족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럼, 샬롯 양도 저와 백작님의 만남을 주선하기는 힘들겠죠?”

나는 넌지시 샬롯을 떠보기 시작했다.
은근히 무시가 담긴 말로 그녀를 자극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기대와는 달랐다.

“저뿐 아니라, 제 아비가 나선다고 해도 힘들 겁니다. 백작님은 자신이 모르는 이를 만나지 않으니까요.”


나는 샬롯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수상쩍은 백작에 대해 조사를 하려면, 일단 그를 만나 보기라도 해야 할  같았다.
하지만, 샬롯 뿐 아니라 그 아버지인 샤일록이 나서도 불가능하다는 말은 내 의욕을 뭉텅이로 꺾어 놓기에 충분했다.


‘내 주변에 그걸 가능하게 할  있는 이가 있기는 하지만…’


나는 곧바로 공주의 얼굴을 떠올렸다.
솔직히 공주에게 부탁하면, 아무리 히키코모리인 백작이라도 나를 만날  밖에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 공주에게 부탁하는 것 자체가 망설여 질 수밖에 없었다.
공주는  앞의 철딱서니 없는 상인의 딸과는 달리 주고 받는 것이 명확해 보였으니까.
내가 부탁을 하는 순간, 공주 또한 나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먹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기에, 그녀에게 부탁하는 것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글쎄요? 저로서는….아!”

고개를 흔들며, 방법이 없다고 말하던 샬롯이, 뭔가 떠오른 표정으로 탄성을 터트렸다.
나는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샬롯을 바라봤다.


“무슨 방법이라도 떠오른 겁니까?”
“예전 백작님이 성녀님에게 관심을 두셨다고 들었던 게 기억나는 군요. 성녀님이라면 백작님도 흔쾌히 만나주실지도 모릅니다.”
“그…관심이라는 것의 의미가?”
“네. 예상하신 대로…연심입니다.”

성녀에게 음험한 마음을 품는 백작이라니.
나는 교단과 왕가의 사이가 나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성녀라면, 내 입장에서는 공주보다 훨씬 상대가 편하기는 했다.

“그래요. 그럼, 성녀님께 부탁을 드려보도록 하지요.”


나는 샬롯에게 그렇게 말했다.
샬롯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나와 성녀가 친분이 있다는 것은 알려질 대로 알려진 탓이었다.

“찾았다!”


샬롯과 헤어지고 D반 교실 앞으로 돌아온 나는 날 보고 소리치는 트리샤를 볼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저 녀석이야, 내가 말했던 현자의 제자라는 녀석이.”

트리샤는 자신의 뒤에 돌처럼 굳어 있는 여자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여자는 서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야, 반응이  그래? 주말 내내 저 녀석에 대해 묻더니?”

나 는 트리샤의 뒤에 서 있는 여자를 보며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로잘린.’


그랬다.
트리샤의 뒤에 서 있는 여자는 다름 아닌 로잘린이었다.
내가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여자이자, 나를 쫓고 있던 인물.
내가 그녀와 만났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한  각인된 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었다.
나는 나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마법을 날리던 로잘린을 떠올리며, 등 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제길. 까맣게 잊고 있었네.’

로잘린이 나를 쫓고 있었다는 것이나, 또 학교에 와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을 알게 됐을  나는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그녀의 존재를 애써 무시했었다.
나는 니스를 구한 영웅이었으며, 그 현자의 제자였으니까.
아무리 로잘린이 마탑의 총애를 받는다고 해도 함부로 건들 수 없는 위치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서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로잘린을 보자, 긴장으로 몸이 굳은 것이었다.

‘하아, 내가 생각해도 병신 같네.’

함부로 건들 수 있는 위치라고 내 자신을 평가했지만, 그건 거의 대부분이 거짓으로 쌓아 올린 것들에 불과했다.
현자의 제자라는 것도 거짓이었으며, 신탁 또한 거짓이었다.
내가 이 세계에 온 처음의 모습을 기억하는 로잘린이라면,  거짓말 정도는 쉽게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오랜만에 뵙네요? 로잘린 씨.”

나는 로잘린을 향해 어색한 표정으로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자고로 웃는 얼굴에는 침을 못 뱉는 법이었으니까.

**


“뭐야, 둘이 아는 사이?”

트리샤의 말에, 로잘린은 표정을 굳혔다.
아는 사이?
당연히 눈 앞의 현자의 제자라는 남자는 로잘린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가장 더러운 순간을 목격한 자가 바로 눈 앞의 저 남자였으니까.
거기다 그 남자는 자신이 발견한 던전의 보상을 훔쳐가기까지 했다.
로잘린이 남자를 쫓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를 발견해, 살인멸구를 할 계획이었다.
던전의 보상이야, 로잘린에게는 그 과정에서 얻는 부가적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근데, 저 인간이 현자의 제자라고?’

로잘린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솔직히 다른 상황 같았으면, 무슨 개소리냐고 소리치고 당장 마법을 날려 눈 앞의 남자를 태워버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숲에서 봤던 흔적.
그 흔적을 남긴 자의 마법 실력은 절대로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거기다  앞의 남자를 현자의 제자라고 떠들어 대는 용병여제 또한 실력으로는 로잘린에 비해 조금도 꿀릴 것이 없었다.
물론, 로잘린이 작정하고 용병 여제를 죽이겠다고 생각한다면 불가능하지야 않겠지만.


‘그러려면 팔 한 짝 정도는 줘야겠지.’

하지만 트리샤는  앞의 남자에게 자신이 완패를 했다고 했다.
그러니, 로잘린이 결국 살인멸구를 하려다가는 되려 자신이 당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로잘린으로서는 트리샤가 자신을 놀리기 위해 허풍을 떨었다는 것을 꿈에도 몰랐기에 가능한 착각이었다.


‘그럼 던전에서는 왜…?’

로잘린은 그럼에도 눈 앞의 남자에 대한 의구심을 버릴 수 없었다.
현자의 제자라고 생각하기에는 던전에서 보여준 남자의 모습이 한심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밉살스럽게 자신을 놀리듯 웃는 남자를 보며, 로잘린은 차분히 머리를 식히기 시작했다.


‘처음부터….날 속였다?’

로잘린이 마탑의 총애를 받는 것은 그 총명한 두뇌 때문이었다.
그녀는 빠르게 한 가지 가정을 세웠고, 그를 토대로 이야기를 다시 써 보기 시작했다.
남자가 자신을 처음부터 속였다면? 이유는?
아마도 누구도 몰랐던 던전의 새로운 루트의 보상을 훔쳐내기 위해서일 것이었다.
그 보상이 뭔지는 몰라도, 현자의 제자가 탐낼 정도라니 조금 아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어쩌면 남자는 처음부터 그 루트를 알고 자신에게 접근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어쩌면 현자가 자신의 제자에게 일러 마탑의 총애를 받는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려 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현자님이 나에게 관심을 가졌다?’

로잘린의 두뇌는 아주 짧은 순간에 거기까지 유추해냈다.
물론, 진실과는 아주 거리가  해석이었지만, 자의식이 강한 로잘린으로서는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기 싫은 꽤나 괜찮은 답이 나와버린 것이었다.


‘그럼,  남자가  사형이 되는 건가?’


로잘린은 눈 앞의 남자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마탑의 늙은이들이 자신을 끔찍이 아낀다는 것을 알았지만, 새로이 나타난 현자 앞에서 로잘린은 자신을 보며 미소 짓던 늙은이들의 얼굴을 조금도 떠올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순식간에 마탑에서 현자의 쪽으로 전향을 한 것이었다.


“…그, 본 씨. 현자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로잘린은 눈 앞의 남자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지금도 자신을 놀리는 듯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눈 앞의 남자가 사형이 된다는 것은 끔찍했지만, 그래도 현자의 명성은 그녀에게 그 정도의 리스크 쯤은 충분히 감당할  있다고 판단하게 만들었다.
그랬다.
로잘린은 이미 현자가 자신을 제자로 삼기로 했다고 김칫국을 사발째 들이키는 중이었다.


**


‘갑자기 그건 왜 묻지? 역시 처음부터 의심하는 건가?’

나는 갑자기 현자의 위치를 묻는 로잘린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혼자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그녀는 결국 진실에 다가선 모양이었다.


‘어쩌지? 튈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마탑에 찍힌 이상 이쪽에서 계속 생활을 하기는 힘들 테니 제국으로 넘어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제운종을 쓰더라도 눈 앞의 용병여제를 따돌릴 자신은 없었다.
그러니까 도망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소리.
나는 최대한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며, 로잘린을 향해 말했다.

“현자님의 위치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

나는 뻔뻔한 표정으로 로잘린을 향해 그렇게 대답했다.
제자라고 스승이 어디 있는 지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아마, 세상의 누구도 현자가 어디 있는지는 알지 못할 것이었다.


“그런가요?”

로잘린은 꽤나 아쉬운 표정으로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든 증거를 찾아 내 정체를 까발리겠다는 속셈이 보이는 표정.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런 로잘린을 바라봤다.


‘하아….이거, 긴장해야겠군.’

확실히 눈 앞의 여자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로잘린을 상대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 로잘린이 다시 눈을 반짝이며 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실례지만, 지금 성취는 어느 정도 입니까?”

현자에 대해 꼬투리를 잡지 못하니, 내 실력으로 꼬투리를 잡겠다는 반응.
나는 로잘린의 공격적인 질문에, 나름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답하며 웃음을 흘렸다.


“부끄럽지만, 이제 5서클을 무리 없이 사용할 정도입니다.”

나는 로잘린에게 그렇게 말했고, 순간 그녀의 눈이 커지는 것을  수 있었다.

“….그렇군요. 역시 현자님의 제자답네요.”

‘뭐지? 비꼬는 건가?’


나는 로잘린의 칭찬을 가장한 말에, 경계심을  껏 더 올리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로서도 꿀릴 것은 없었다.
그녀는 내 실력 자체를 의심한 모양이었지만, 내가 5서클의 마법사가  것은 진실이었으니까.
마법으로 붙자고 하면, 조금 곤란할  몰라도 내가 5서클 마법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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