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꽃놀이패
‘역시, 쉽게 물지는 않는군.’
나는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로잘린의 모습에 인상을 구겼다.
그녀가 5서클 마법사임을 증명해 보라고 했다면, 일이 조금 더 쉽게 풀렸을 지도 몰랐다.
원래 의심이라는 것은 한 번 증거를 내밀어 버리면, 다시 의심을 하기 부담스러워 지는 법이니까.
물론 세상에는 그렇게 증거를 보고도 끝까지 발악을 하는 인간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럴수록 그만 고립될 뿐이었다.
하지만 눈 앞의 마법사는 꽤나 신중한 타입인지, 내가 던진 미끼에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신중한 년이, 나한테 불덩이를 던져?’
로잘린 때문에 절벽에서 떨어졌던 일을 생각하자, 더욱 기분이 더러웠다.
지금은 말 하나도 신중하게 하는 여자가, 예전 나를 공격할 때는 아무런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문득 눈 앞의 여자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대는 다른 이도 아니고 마탑이라는 거대한 권력의 한 축을 등에 엎은 여자.
거기다 천재라 불릴 정도로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던전에서 몬스터들을 학살하던 그녀의 모습이 내 기억 속에 똑똑히 남아 있었다.
쉽게 말해, 함부로 건드리기엔 이래 저래 걸리는 존재라는 소리였다.
“아악! 둘이 아냐고 묻잖아? 뭔데? 왜 둘만 그렇게 눈빛을 주고 받냐고?!”
순간, 트리샤의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로잘린의 등장에 잊고 있었지만, 이 자리에는 그 용병 여제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로잘린과 용병 여제의 사이가 앙숙이라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순간, 내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뭐야? 뭘 그렇게 봐?”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용병 여제 트리샤가 당황한 듯 목소리를 내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녀를 보며 상큼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애초에 둘이 함께 나타났기에 생각지 못하고 있었지만, 트리샤는 로잘린의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건, 충분히 이용해 먹을 수 있어.’
나는 트리샤를 향해 살가운 미소를 보이기 시작했다.
“저, 트리샤님?”
“….어? 왜?”
“전에 그 내기 말입니다만…?”
“……….내기? 무슨 내기?”
트리샤는 시침을 떼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은 흡사 지진이라도 난 것 마냥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뻥을 칠 때는 뻔뻔한 것이 제일의 미덕이었다.
“아아, 설마 그 대단하신 용병 여제께서 한 입으로 두 말을?”
“…..아니, 그게 아니라 그거 승부가 제대로 나지 않았던 거 같은데?”
“이상하네요. 분명 내기는 트리샤님이 원 밖에 나가느냐 마느냐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더는 잡아 뗄 수 없다고 느낀 것인지, 트리샤가 입을 꾹 다무는 것이 보였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로잘린은 그런 트리샤의 모습이 흥미로운 것인지 눈을 반짝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결국 트리샤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어째서 정작 자신의 약점을 틀어 쥔 나보다 옆에 있는 로잘린을 더욱 신경쓰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나야 원하는 게 하나긴 하지만…’
나는 트리샤를 보며 침으로 입술을 적셨다.
눈 앞의 용병여제 또한 그리 나쁘지 않은 외양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봐도 타이밍이 안 좋은 상황.
나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흘끔거리는 트리샤를 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거야, 천천히 생각해 봐야죠.”
나는 트리샤에게 그렇게 말하며, 로잘린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압박이었다.
내가 그 용병여제의 약점을 잡고 있으니 함부로 건들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로잘린의 표정은 뭔가 미묘했다.
당장 내 정체를 까발리지 못해 억울하고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가 두려운 듯한 표정.
‘두려워? 뭐가?’
나는 로잘린의 표정을 읽고는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정작 나는 모르고 있지만 나한테 상대가 두려워할 만한 패가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이 년 설마?’
그리고 나는 곧 그 패로 의심되는 걸 찾았다.
내 찌질한 인생에서야 그냥 오늘도 봉영기 했다라고 할 만한 일이었지만, 그야말로 빛나는 일로만 가득한 로잘린의 인생에는 오점이 될 만한 순간.
“….똥?”
“뭔 소리야? 아침부터 더럽게?”
내 말에 반응을 한 것은 트리샤였다.
트리샤는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표정으로 짜증을 냈지만, 로잘린의 반응은 달랐다.
그녀는 가히 나 혼자만 보기에는 아까울 정도의 표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흐흐흐. 그러니까, 그 일이 알려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고?’
나는 로잘린을 보며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나는 나와 눈이 마주친 로잘린의 몸이 움찔거리는 것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자신이 더러운 똥을 싸던 것을 들킨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미치겠네. 일이 이렇게 풀리나?’
솔직히 나는 로잘린의 심리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도 사람인 이상 똥을 싸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세상의 어떤 멍청이도 로잘린이 똥 오줌을 싸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었다.
물론, 남자에게 그 더러운 장면을 들킨 것이 부끄러울 수는 있겠지만, 그게 전부였다.
막말로 내가 똥 싸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둔 것도 아니고, 그녀가 똥 싸는 장면을 디테일 하게 묘사해 봤자 한계가 있는 법이었으니까.
“…똥.”
“아이, 씨발. 왜 더럽게 자꾸 똥 이야기를 하냐고!”
내 말에 트리샤는 다시 한 번 인상을 구겼고, 로잘린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그녀의 약점을 확인한 이상, 나는 더욱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괜히 로잘린을 더 자극할 필요도 없었고.
나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로잘린을 흘끗 바라보고는 트리샤에게 물었다.
“그, 수업은 안 하시나요?”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내 질문에 트리샤가 황급히 교실로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참 별 일도 아닌 걸 신경 쓰시네.”
나는 멀어져 가는 트리샤를 보며, 로잘린이 들으라는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입을 함부로 놀리면, 제 명에 못 사는 법이죠.”
내 말에 로잘린이 섬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
“그럼, 입 다물면 살려 줍니까?”
“…..봐서요.”
내 질문에 로잘린이 그렇게 답했다.
“그럼, 던전에서 있었던 일 모두 없는 걸로 퉁?”
“….퉁이 뭐죠?”
내 말에 로잘린이 나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아, 없던 걸로 하는데 동의하냐는 뜻입니다.”
나는 로잘린을 향해 그렇게 물었고,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야!”
그 순간, 먼저 교실을 향해 뛰어갔던 트리샤가 다시 되돌아 와 나를 불렀다.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트리샤는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소리쳤다.
“너는 수업 안 들어?”
“….아, 지금 갑니다.”
나는 트리샤에게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로잘린이란 여자는 나로서는 꽤나 불편한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
“그러니까, 승부에서 이기는 법은 간단해. 적의 약점에 검을 박아 넣으면 되는 거지. 싸움에 비겁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고 나서도 비겁을 따지는 놈이 있으면, 데리고 와. 내가 놈의 대가리를 박살내 줄 테니까.”
트리샤의 수업은 상당히 과격했다.
로잘린을 의식해 반을 맡은 것이라지만, 그녀는 수업에 꽤나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성의 몸으로 그 용병 여제라는 명성을 얻은 것부터가 그녀가 평범한 여자는 아니라는 것을 뜻했다.
대충 알렌에게 듣기로는 트리샤를 따르는 용병 단원들만 거의 백 여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 하나 하나가, 왕국의 기사들에 필적할 정도의 수준.
‘물론, 왕국 기사단 수준이 처참하긴 하지만.’
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트리샤의 수업을 듣고 있었다.
당장 데이나의 일을 해결해야 했지만, 그건 성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
어차피 성녀 또한 수업을 듣고 있을 테니, 지금 당장 내가 할 일은 수업을 듣는 것 밖에는 없었다.
“자, 이건 왕국에 흔히 퍼져 있는 대거다. 칼은 15cm 이상만 되면 뭐든 죽일 수 있다. 다만 칼이 너무 얇아서는 안 된다. 몸 속에 있는 뼈 때문에, 칼이 뿌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숏 소드나 롱소드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넵!”
나는 칼까지 꺼내 들고 열심히 설명을 하는 트리샤를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애들한테 대체 뭘 가르치는 거야?’
용병여제라더니 수업 내용은 거의 조폭이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용병이라는 직업의 특성을 생각하면, 트리샤가 그런 수업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지도 몰랐다.
어차피 용병이 하는 일 대부분은 돈을 받고 뭔가를 죽이는 일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물론 호위나 경호의 임무도 용병의 일이긴 하지만, 그 일 조차도 막상 상황이 벌어지면 상대를 죽여야 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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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중에 용병이나 할까?”
“아서라. 그거 10명이 시작하면 1년 뒤에 살아남는 놈이 2명도 안 된다더라.”
‘무슨 대한민국 자영업 생존률이냐?’
수업이 끝나고 수다를 떠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그 두 명 중 하나가 내가 될 수도 있잖아.”
솔직히 트리샤의 수업에 대한 애들의 반응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트리샤의 수업이 아니라 용병이라는 직업에 대한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이겠지만.
“굳이 왜 그 한 명이 되려고 하는데? 지금도 먹고 사는 데 문제 없잖아?”
“먹고만 사니까 그렇지. 야, 너도 우리 주인님 알잖아? 얼마나 개지랄을 떠는데. 씨발.”
왕국에서 용병이라는 신분은 꽤나 특이했다.
신분제가 확실한 세상이었지만, 용병의 신분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무력집단인 만큼, 왕국 내에서도 그들을 함부로 대하기가 어려웠다.
당장 용병여제 정도만 되도, 웬만한 귀족들은 그녀를 어려워할 정도였다.
‘그거, 순 깡패 아냐?’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나는 용병 집단을 그렇게 정의했다.
하지만 몬스터가 존재하는 세상에 용병은 필요악과 같은 존재였고, 당연히 대한민국의 깡패 보다야 훨씬 비전이 있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D반의 아이들 대부분이 하층민에 가까운 신분이었다.
물론 귀족가나 거부들의 가문에 얽힌 이들이니 먹고 사는 것이야 일반적인 시민들보다 나았겠지만, 그들에게는 자유가 없었다.
이제 고작 스무 살을 넘긴 아이들이 자유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용병 여제에게 빠져드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일지도 몰랐다.
나는 애들의 말을 엿들으며, 슬쩍 데이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반응이 꽤나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데이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것처럼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이 또 어쩐지 한 폭의 그림처럼 내 시선을 잡아 끌었지만, 그녀의 정체에 대한 자그마한 실마리라도 얻으려던 내 시도는 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아, 진짜 엉덩이를 까 볼까?’
마족의 왼쪽 엉덩이에 새겨져 있다는 진명.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멀쩡한 여자에게 엉덩이를 보여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로잘린은 마족이 아닌 것은 확실하겠군.’
순간, 로잘린의 뽀얀 엉덩이가 떠올랐다.
나는 피식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그 로잘린도, 그리고 용병 여제도 부려먹기 좋은 패 하나를 손에 쥐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
아이들이 트리샤의 수업에 대한 반응이 좋은 이유는 또 있었다.
명색이 왕국이 설립한 아카데미였고, 당연히 담당 교사 혼자서만 수업을 진행하지는 않았다.
주요 수업은 검술, 마법, 전략 등에 관계된 것이었으나, 교양이나 예술에 관한 수업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D반은 대충 자습하면 된다.”
D반 자체가 어차피 아카데미에 입학한 자녀들을 보조하기 위해 보낸 애들을 모아 놓은 곳이었고, 당연히 다른 교사진들은 D반에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몇몇 교사들이 내 눈치를 살피기는 했지만, 나도 굳이 자습을 반대하지는 않았기에 트리샤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사는 불성실하게 수업에 임했던 것이다.
‘이 나이 먹고 다시 학교에 다니다니.’
처음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만 해도 나름의 설렘이 있었지만, 그 설렘은 처음 수업을 듣는 순간 모조리 날아가 버렸다.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쉽다지만, 그건 땀 흘려 노동을 하는 것에 비해 공부가 쉽다는 소리일 뿐이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끝났다!!”
그리고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를 꼬박 보낸 끝에 나는 아카데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성녀님!”
수업이 끝나자 마자, A반의 교실 앞으로 향한 나는 밖으로 나오는 성녀를 만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