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잠입
“뭐, 뭐하시는 거예요!”
성녀가 빨개진 얼굴로 날 향해 소리쳤다.
그녀의 양 손은 자신의 엉덩이를 가린 채였다.
그리고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비단 성녀뿐 만은 아니었다.
불청객의 등장에 못 마땅한 표정을 짓던 백작 조차도 나를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중이었다.
물론, 우리 알렌은 지금도 마차 생각뿐인 듯 했지만.
“아, 죄송합니다. 모기가 있어서…”
나는 성녀를 향해 그렇게 변명했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개 뻥이었다.
겨울이라고 말해도 이상할 것 없는 날씨에 모기가 있을 리 없었으니까.
“하아…진짜?”
성녀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흘겼지만, 내가 그런 미친 짓을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것 봐라? 별 관심이 없어?’
나는 성녀가 아닌 백작을 보고 있었다.
야릇한 성녀의 신음소리.
분명 남자라면 흥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자극적인 소리였다.
더욱이 그것이 성녀에 대한 연심을 만천하에 떠들고 다녔던 백작이라면, 당연히 어떤 반응이 있어야 옳았다.
하지만 백작은 정신 나간 뜻밖의 상황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을 뿐, 조금도 그 쪽으로는 생각을 하지 않는 듯 했다.
‘잡았다, 요놈.’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백작과 눈을 마주치고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가 무슨 목적으로 성녀에게 관심을 표현한 것인지는 몰라도,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연심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백작에게 남들이 모르는 음험한 꿍꿍이가 있다는 소리.
“주인님. 준비를 마쳤습니다.”
내가 그 음험한 꿍꿍이가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사이,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던 하인이 나왔다.
“그, 그럼. 모두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백작은 한껏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성녀의 뒤를 따라 백작의 저택으로 들어가며 계속 생각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성녀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거짓이라면, 데이나에 대한 소문도 백작이 의도적으로 흘린 것일 수도 있겠네. 그렇다는 것은….음. 그나저나, 이 년. 생각보다 엉덩이 감촉이 괜찮군.’
꽤나 중요한 뭔가를 떠올린 듯 했지만, 눈 앞에서 살랑이는 성녀의 엉덩이에 시선이 계속 향했다.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때렸던 손바닥을 쥐었다 피며,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어제, 그냥 할 걸 그랬나?”
“뭘요?”
내 옆에 딱 붙어 따라오던 알렌이 그렇게 물었지만, 당연히 대답을 해 줄 필요는 없었다.
**
백작가의 응접실.
응접실로 안내 받은 나는 계속해서 주변을 흘끔거리며, 수상한 점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응접실이라는 곳이 원래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꾸며 놓은 장소인 만큼, 뭔가 단서가 될 만한 물건은 보이질 않았다.
“그럼, 용건이 뭔지 이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백작은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며 불편한 표정으로 성녀에게 물었다.
백작의 질문에 성녀는 팔꿈치로 빠르게 내 옆구리를 쳤다.
내가 그녀를 돌아보자, 성녀가 나를 향해 어쩔 거냐는 표정을 짓는 것이 보였다.
그러니까 성녀도 백작의 질문에 딱히 대답을 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은 모양.
‘얘는 쓸데 없는 정치 질은 잘하면서, 이런 건 잼병이구만.’
나는 한숨을 푹 쉬며, 성녀를 바라봤다.
성녀의 그런 태도에 백작의 얼굴에 더욱 의심스러움이 짙어진 상황.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것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백작님이, 성녀에 대해 안 좋은 추문을 퍼트리고 다녔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내 단도직입적인 말에, 백작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그건 성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백작가에서 일 하고 있는 하인들 조차 순간 몸이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아니, 그건 뭔가 오해가…”
“오해라고요?”
나는 백작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렇게 그의 말을 끊었다.
이미 다 알고 왔으니, 발뺌을 할 생각은 말라는 듯한 나의 눈빛에 백작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잠시, 내 눈치를 살피던 백작이 입을 연 것은 몇 초후.
“제가 성녀님에 대해 몇 마디를 하고 다닌 것은 사실입니다.”
“역시!!!”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백작이 움찔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것이 보였다.
나는 도저히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백작을 노려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로서, 백작의 의구심은 완전히 날아간 상황.
“하지만 진짜 오해인 것이, 그냥 평소 성녀님을 흠모하는 생각에 몇 가지를 묻고 다녔던 것 뿐입니다.”
“흠모? 흠모라고 했습니까, 지금?”
“그런…남녀간의 감정 같은 게 아닙니다. 그저 같은 인간으로 신을 모시는 인생을 사는 성녀님이 대단하다는…그러니까, 존경에 가까운 감정이었습니다.”
백작은 필사적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변명을 했다.
슬쩍 옆을 바라보니, 성녀가 살짝 뺨을 붉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쨌거나, 훨씬 연상의 상대가 자신을 존경한다고 말하니, 조금 민망했던 듯 보였다.
“그나저나, 그 쪽 분은 누구…”
“잠깐!”
백작은 그런 성녀의 반응에 가슴을 쓸어 내리며, 다시 나를 보며 질문을 던지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백작의 말을 다급히 끊어버렸다.
사실 딱히 누구라고 말할 변명 거리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수세에 몰렸던 백작은 또 내가 뭐를 가지고 시비를 걸어올 지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화장실이 어디 있습니까?”
“네?”
“배가 갑자기 아파서 말이죠.”
내 말에, 다시 한 번 응접실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하지만 백작은 배운 사람.
배가 아프다는 사람을 붙잡고 늘어질 만큼 몰지각한 인간상은 아니었다.
“그…나가서 왼쪽의 하얀 문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나가서 왼쪽.”
나는 그렇게 백작의 말을 중얼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성녀가 자신을 버리고 혼자 도망치냐는 듯한 눈길로 나를 보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는 성녀가 적절히 시간을 끌어주어야 할 상황.
하지만, 내가 빠지는 순간 대화가 뚝 끊어질 분위기였기에 나는 남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눌만한 화제거리를 던져 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게 오해였다면 성녀님께 제대로 사과하십시오.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소문이 퍼졌다는 것을 백작님도 알고 있었다면, 그게 최소한의 도리 아니겠습니까?”
“…..네. 제가 생각이 짧았군요.”
백작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성녀도 돌 대가리가 아닌 이상은 이 정도로 판을 깔아 줬으면, 알아서 시간을 끌 수 있을 것이었다.
-시간을 끌어라, 성녀 세라여.
하지만 나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소심한 남자.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성녀에게 전음을 보낸 나는 다급히 응접실 밖으로 빠져 나갔다.
**
응접실 밖으로 나오자, 백작가의 하인들이 나를 흘끔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백작에게 내가 수상적은 행동을 하는 지 감시하라는 언질을 받은 모양.
아니, 어쩌면 평소에도 백작가에는 이 기묘한 긴장감이 계속해서 조성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태연하게 백작이 말한 화장실로 향했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마법을 발동했다.
[투명화]
나는 독자님에게 선물로 얻은 스킬을 사용했다.
이게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는데, 확실히 꽁으로 얻은 스킬이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하는 중이었다.
달칵-.
내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투명화를 사용해 문을 닫자, 날 지켜보던 하인들 중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설마 투명 마법을 사용했을 거라고는 전혀 예측을 못한 모양.
슬쩍 눈을 비빈 하인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후우. 다행이군.’
나는 백작가 안을 둘러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성녀에게 개무시를 당하는 입장이라고는 하나, 백작이란 직위는 결코 낮은 위치가 아니었다.
당연히 백작가는 내가 묵고 있는 여관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었다.
백작이 수상하다는 증거를 잡기 위해 몸을 빼 낸 상황이었지만, 어디서부터 뒤져야 할 지를 모르는 상황.
하지만, 우리 멍청한 백작은 보란 듯이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하인들을 배치해 두었다.
어떻게든 2층에 손님이 출입하는 것을 막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포메이션.
‘이거야, 원. 2층으로 꼭 올라가 달라고 비는 수준이잖아.’
물론 내 기준에서 멍청한 것이었지, 백작의 선택이 상식 밖의 일인 것은 아니었다.
물론, 내가 투명화라는 마법을 쓸 줄 모른다는 가정 하에.
아무리 성녀의 일행이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백작가 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2층 계단 앞에 서 있는 하인들 사이를 지나쳐, 조심스럽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2층에 올라서자 수 많은 문이 보였고, 나는 제일 안쪽에 있는 방부터 뒤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천천히 발 소리를 죽여가며 움직이던 나는 어떤 소리에 걸음을 멈춰섰다.
‘물 소리?’
마치 아이가 물 장구를 치는 듯 참방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소리가 들려온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확실히 문 안 쪽에서는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문 고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살짝 문을 열자, 안에서 수증기가 흘러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묘한 긴장감을 느끼며,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엿 보고 있다고 말하기엔 가히 과감한 행동이었지만, 이 모든 것이 투명화 스킬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크윽. 독자님, 감사합니다. 충성, 충성!’
나는 다시 한 번 투명화 스킬을 선물해 준 독자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며, 욕실로 보이는 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욕실 안, 창문 쪽에는 하얗고 커다란 욕조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욕조 안, 은은한 하늘색 머리의 여인이 몸을 씻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랬다.
욕조 안에서 몸을 씻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데이나였다.
나는 침을 꿀꺽이며, 데이나의 모습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데이나는 특유의 그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가느다란 팔을 물로 씻어내기 시작했다.
나름 풍만한 그녀의 가슴이 물 위에 살짝 떠오른 것처럼 보였다.
‘오오. 핑두!’
나는 뽀얀 데이나의 가슴살 위에 자리잡은 유두를 보며 탄성을 터트렸다.
당장이라도 빨아 먹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젖꼭지가 내 시선을 잡아 끌고 있었다.
그녀의 탐스러운 가슴을 보자, 백작이 개새끼라는 것이 더욱 분명해졌다.
나는 욕실 한 쪽에 아예 자리를 잡고 서서 데이나를 바라봤다.
딱히 음흉한 마음이 있어서는 아니었고, 그녀의 엉덩이에 마족의 표식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진짜다.
“하아…”
조용히 몸을 씻던 데이나가 갑자기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그 분은 왜 자꾸 나 같은 것에게 말을 거는 걸까?”
데이나는 양 손으로 물을 떠올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분?’
나는 멍한 표정으로 데이나를 바라봤다.
도대체 그녀가 누구를 이야기 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나 같은 년 따위는 아무 관심도 없으실 텐데, 계속 기대하게 되잖아.”
데이나는 손을 모아 뜬 물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물에게 말을 거는 모습이 어딘가 조금 모자라 보이긴 했지만, 데이나 특유의 분위기가 그 장면을 꽤나 그럴싸하게 만들고 있었다.
만약 여기가 욕실이 아니었고, 내가 그녀를 몰래 훔쳐보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나는 데이나를 향해 말을 걸었을지도 몰랐다.
아마 어떤 남자도 그녀에게 관심이 없지는 않을 거라고.
실제로 D반의 남자 애들도 백작이라는 거물 때문에 그녀에게 접근을 못 할 뿐이지, 틈만 나면 그녀를 흘끔거리기 바빴다.
물론, 알렌은 예외다.
“대답해 봐. 응? 그 분이 왜 그러시는 걸까?”
나는 혼잣말을 넘어, 물에게 대답을 촉구하는 데이나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애가 좀 이상한 것은 알았는데, 그녀도 정상의 범주를 넘어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녀가 양 손으로 모아서 만든 물이 허공에 뭉치며, 묘한 형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답답하긴. 나한테 묻지 말고 직접 물어보지 그래?
뭉친 물은 아리따운 여자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사람의 몸의 70%가 물이라지만, 눈 앞의 여자는 100% 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니, 데이나가 몸을 씻었으니, 조금쯤은 그녀의 때도 포함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물로 이루어진 여자는, 투명하면서도 그 형체가 또렷이 보이는 것이 마치 유리로 만든 피규어처럼 보였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 물로 된 여자가, 데이나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다는 것.
순간, 물로 만들어진 여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왜? 저기 뭐가 있어?”
문제는 그 물 뿐 아니라, 데이나도 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데이나의 말에, 그 물로 된 여자가 나에게 쪼르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이건 또 뭐야,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