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백작과의 전투
“데이나, 일단 숨어요!”
나는 데이나에게 그렇게 말하며, 백작을 향해 마법을 날렸다.
3서클 마법인 파이어 볼이 날아들자, 백작은 귀찮은 표정으로 손을 뻗어 내가 날린 불 구덩이를 쳐 냈다.
“….꽤 뜨겁군 그래?”
하지만 1 서클 마법과는 아예 위력이 달랐기에, 이번만큼은 백작도 데미지가 없진 않았다.
백작은 새까맣게 변한 자신의 손을 무감정한 눈으로 바라보고는 다른 손으로 자신의 탄 손을 뜯어 냈다.
“미친…”
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런 백작의 행동을 지켜보았지만, 아직 상황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뜯어져 나간 백작의 손을 대신해 새로운 손이 튀어 나온 것이다.
‘피콜로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알아들을 사람도 없는 상황.
나는 흘끗 데이나의 위치를 확인하며, 그녀의 앞을 막아 섰다.
지금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데이나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뭐하고 있어?!”
나는 데이나를 막아서며, 성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성녀가 백작을 향해 신성 마법을 펼치는 것이 보였다.
성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백작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백작은 신기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감싼 빛을 바라보다가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여신의 힘이 이 정도로 남아 있었나?”
백작은 몸을 가볍게 털어 자신을 옭아오는 빛 무리를 떨쳐 내고는 곧장 알렌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알렌!”
나는 알렌을 향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어쨌거나, 그간 쌓인 정이 있었기에 알렌이 다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알렌은 의식이 완전히 날아가 버린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알렌의 앞에 멈춰 선 백작이 녀석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인형처럼 들어올리는 것이 보였다.
“뭐, 사내 새끼는 마왕님의 취향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
‘빌어먹을…’
나는 장난감마냥 알렌을 들고 웃고 있는 백작을 보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순간, 내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데이나가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운디네.”
데이나의 손에서 뻗어 나온 작은 물의 요정이 백작의 몸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호오? 네 년, 감히 나를 거스르는 건가?”
백작은 데이나의 공격을 꽤나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차피 내 마법도 막아낸 백작에게 고작 하급 정령 따위의 공격은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을 테니까.
“…..네 년….이 아니에요.”
백작의 말에 데이나는 이를 꽉 깨물며 그렇게 말했다.
데이나의 손에서 뻗어 나간 물 줄기는 백작을 약올리듯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백작이 귀찮은 듯 손을 뻗어 운디네를 잡으려 했지만, 물의 정령은 마치 모기처럼 백작의 손을 요리조리 피하고 있었다.
“….제게도 데이나라는 이름이 있어요.”
데이나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나를 바라봤다.
어딘가 묘한 데이나의 시선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당장은 눈 앞의 백작을 처리하는 것이 급했다.
“운디네!”
데이나가 운디네의 이름을 부르자, 운디네가 갑자기 허공에서 몸을 틀었다.
그리고는 곧장 의식이 없는 알렌의 머리통에 몸통박치기를 시전하는 것이 보였다.
“뭐, 뭣?”
“하하. 적을 착각한 거 아닌가? 아님 이렇게라도 충성심을 증명하려고?”
나는 놀란 표정으로 데이나를 바라봤다.
엉뚱하게도 그녀가 보낸 정령이 알렌을 공격하고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운디네가 알렌의 머리통에 부딪쳐 사라지자, 백작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데이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백작은 남은 팔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데이나를 바라봤다.
“그래. 어차피 성녀가 손에 들어온 이상 굳이 너를 제물로 삼을 이유도 없지. 좋다, 데이나. 너도 마왕에게 충성을 바쳐라.”
“….이미 늦었어요. 백작님.”
데이나는 그렇게 말하며, 가만히 알렌을 바라봤다.
순간, 알렌의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감겨 있던 알렌의 눈이 떠졌다.
핏발이 선 알렌의 눈동자가 빙그르르-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상황을 파악한 알렌은 그대로 손을 뻗어 백작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뭐냐?”
나름 괜찮은 기습이었지만, 이미 백작과의 승부에서 확연한 실력 차가 나는 것이 드러난 상태였다.
알렌이 뻗은 손은 백작의 손에 가볍게 막혔고, 백작은 그런 알렌을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크윽.”
하지만 알렌은 기습을 실패했음에도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실망 따위를 할 이성 자체가 남아 있지 않은 듯 보였다.
알렌이 몸을 뒤틀며, 억지로 백작의 눈을 향해 손가락을 찔러 가는 것이 보였다.
백작이 알렌의 머리카락을 쥐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알렌의 머리카락이 뜯기는 것이 보였다.
한쪽 머리가 뭉텅 빠진 곳에서 피가 흘러나왔지만, 알렌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직 백작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처럼 공격을 이어갈 뿐이었다.
“미친!”
완전히 목숨을 도외시한 공격은 아무리 백작이라도 당황시킬 수밖에 없었다.
알렌이 눈을 찔러 오는 것을 본 백작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고, 알렌은 그 사이 몸을 날려 자신의 검을 주워 들었다.
“히힛! 죽어!”
검을 꼬나 쥔 알렌이 백작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마치 갓파처럼 머리 중앙이 다 날아간 채로 히죽거리는 알렌의 모습은 그 자체로 어딘가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나는 흘끗 데이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이제야 조금 짐작이 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데이나가 알렌의 머릿속에 잠자고 있는 분노의 정령을 깨운 모양.
하지만 대충 상황을 통해 그리 짐작할 뿐, 정령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확신할 수는 없었다.
“미친 인간이었군.”
“죽어. 죽으라고! 죽어!”
알렌은 웃으며 백작을 향한 공격을 이어갔다.
방금 전까지와는 달리 백중지세.
스위치가 켜진 알렌은 마왕에게 영혼을 팔아 먹은 백작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리버스 타임.”
순간, 성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그녀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밝은 빛이 저택의 1층을 가득 채웠다.
백작은 그 빛이 거슬리는 표정으로 성녀를 노려보았다.
확연히 느려진 백작의 움직임에 알렌은 그야말로 물을 만난 미친 놈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알렌의 검이 백작의 몸에 자잘한 상처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백작은 상처들이 즉시 회복되는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고작 인간 따위에게 밀리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는 느낌이었다.
“성가신 년.”
백작이 그렇게 말하며, 성녀를 향해 달려 들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까지 흐른 이상 나 또한 계속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파이어 볼!”
“홀리 프로텍트!”;
내 손에서 뻗어나간 화염구가 백작의 등을 노리고 날아들었고, 성녀는 그녀 나름대로 방어 마법을 펼치는 중이었다.
“크악!”
등에 화염구를 얻어 맞은 백작이 매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것이 보였다.
또 공격 대상을 바꾼 모양이었지만, 백작은 나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이힛!!”
그가 무방비한 틈을 타 알렌이 백작의 팔에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툭-.
알렌의 검에 백작의 팔이 다시 한 번 바닥에 떨어졌다.
“이 버러지만도 못한 것들이!!!”
팔이 잘린 백작은 아까처럼 또 새로운 팔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 끔찍한 재생도 계속될 수는 없는 모양.
백작의 호흡이 조금씩 거칠어지는 것이 보였다.
‘제대로 끝낼 마법이 필요해.’
나는 백작을 향해 계속 칼을 휘두르는 알렌을 보며, 빠르게 연재창을 열었다.
봉영기 [32세/작가] (+65)
[근력]10 [민첩]10 [체력]10 [마력]100 [행운]12
어느새 스탯 포인트가 65개나 쌓여 있는 것이 보였고, 나는 재빨리 다음 서클 생성을 위해 서른 다섯개의 스탯을 마력에 투자했다.
![사용자의 마력이 기준치를 초과했습니다.]
![새로운 서클을 생성합니다.]
눈 앞의 메시지를 확인할 틈도 없이 나는 곧장 상점창을 열었다.
어차피 스탯 만큼이나, 조회수도 잔뜩 쌓여 있는 상황.
나는 NPC를 향해 6서클 마법 중, 단일 개체에 대한 공격력이 가장 높은 마법을 추천해 달라고 말했고, 이내 눈 앞에 한 가지 마법이 떠올랐다.
[익스플로젼 (20000G)]
비싸고 자시고를 따질 틈도 없이, 곧장 마법을 구매한 나는 백작을 노려보며 곧 바로 마법의 시동어를 외웠다.
“익스플로젼!”
펑!
백작의 왼쪽 다리에서 폭음이 들렸다.
시험 삼아 그의 다리를 노리고 마법을 사용했는데, 결과는 대 성공.
백작의 다리 한 짝이 그야말로 폭죽처럼 터지는 것이 보였다.
“크아아아악!!!!”
백작의 입에서 처음으로 분노가 아닌 고통으로 인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백작을 향해 달려들던 알렌이 우뚝 멈춰 선 것은 그 순간.
알렌이 나를 돌아보며, 히죽 히죽 웃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런 알렌의 시선에 소름이 쭉 끼쳤지만, 백작은 그 사이에도 다리를 재생해 내고 있었다.
“크읏…빌어먹을…”
백작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노려 봤다.
“익스플로젼.”
하지만 나는 다시 한 번 마법의 시동어를 읊었고, 기껏 재생한 백작의 다리는 다시 터져 나가 버렸다.
“크아아악!!”
백작의 비명 소리에, 알렌이 흘끗 그를 돌아보는 것이 보였다.
알렌은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고민하는 듯 하다가 한 쪽으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저 새끼, 지금 나 공격하려고 한 건가?’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런 알렌의 모습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알렌이 아니라, 그의 뇌 속에 기생중인 분노의 정령이 나를 공격하려 한 것일 테지만 어쨌거나 놈은 얌전히 물러서 있는 상태였다.
“익스플로젼! 익스플로젼! 익스플로젼!”
나는 그 와중에도 신체를 재생하는 백작을 보며, 계속해서 마법을 영창했다.
백작의 사지가 다 터져나가고 몸뚱이만 남은 것이 보였다.
“크아아아아악!!”
백작은 괴로운 표정으로 몸을 꿈틀 거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적당히 이 정도면 안심인가?’
나는 그런 백작의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도 백작은 바퀴벌레를 능가하는 생명력으로 신체를 수복하는 중이었지만, 그리 큰 상관은 없을 듯 했다.
‘토룡이 짱이네.’
토룡을 섭취한 덕에 얻은 능력으로, 마나가 계속해서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뭐. 낙승이구만.”
나는 몸부림치는 백작을 내려다 보며 그렇게 말했다.
백작이 분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것이 보였지만 나는 조금도 쫄지 않았다.
“익스플로전.”
겨우 다시 생성된 다리 하나가 다시 터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백작이 쓰러진 곳을 중심으로 그의 터져 나간 살점과 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역시 마법사가 딱이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성녀를 바라보았다.
어쨌거나, 백작이 마왕의 수하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뒷 일은 성녀가 알아서 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성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건 내 옆에 있던 데이나 조차 마찬가지.
“분위기 왜 이래?”
나는 억울한 표정으로 성녀를 보았지만,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피해 버렸다.
결국 믿을 것은 알렌 뿐이었다.
생사를 함께한 전우애, 그리고 승리의 기쁨이라는 감정을 여자와 나누기는 힘들어 보였으니까.
나는 곧장 한 쪽으로 물러선 알렌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알렌, 아니 그의 몸에 깃든 분노의 정령조차 어째서인지 내 눈을 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크윽…이 마왕보다 지독한…!!”
겨우 팔 한 쪽을 다시 만들어낸 백작이 나를 향해 그렇게 소리쳤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내가 백작을 너무 잔인하게 조져놨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 듯 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억울한 것이 폭발로 팔 다리를 날려버려도 계속 재생하는 놈을 상대하려면 나도 계속 공격을 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그게 보기에는 좀 잔인해 보이더라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으니까.
덕분에 백작의 회복 속도는 상당히 느려져 있었다.
‘이것들이 누구 덕에 목숨을 구했는데?’
나는 성녀와 알렌에게 괘씸함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말하자니 뭔가 쫌스러워 보였기에, 나는 만만한 상대에게 그 짜증을 풀기로 했다.
“익스플로전.”
“크아아아아악!!!”
다시 한 번 백작의 비명이 저택 안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