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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화 〉호감도 (73/158)



〈 73화 〉호감도

“익스플로젼.”

다시  번 백작의 다리를 터트린 나는 차분히 백작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하인들이 도망쳤지만, 미쳐 도망치지 못한 자들은 울부짖는  주인을 보며 다리에 힘이 풀린  주저 앉아 있었다.
개중에는 기절을 하거나, 실금을  이도 보였다.

‘확실히,  보기 그렇기는 하네.’

나는 그제야 내가  심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제는 재생도 포기하고 몸통만 부들부들 떨고 있는 백작을 보자, 저절로 연민의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나는 성녀를 향해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성녀는 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볼 뿐, 딱히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죽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약간의 텀이 있은 후, 성녀가 한숨을 쉬며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성녀의 그 말에 놀란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죽이는 건, 조금 그렇지 않나요?”
“네?”


성녀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이런 말을 하기는 뭐했지만, 나는 아직도 사람을 죽이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었다.
비록 백작이 마왕에게 제물을 바치고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되었다지만, 그는 어쨌거나 사람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팔 다리를 날린 것도 실은 백작이 재생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손톱이나 머리카락처럼 다시 자라나는 부위라고 생각해서, 별 부담 없이 터트릴 수 있었다는 소리다.
백작의 머리를 터트려도 재생을 할 수 있을까 궁금했지만, 굳이 팔 다리만 노린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만약 백작이 그대로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내 멘탈이 멀쩡할 지 장담할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 생각보다 엄청 섬세하다고.’


내가 꿈틀거리는 백작을 보며 그렇게 고민하던 순간.
벽 쪽으로 물러서 있던 알렌이  걸음 앞으로 나서는 것이 보였다.


“죽이는 건, 내가 해도 될까?”

알렌은 핏발이 가득 선 눈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니까 막타를 자신이 치고 싶다는 소리.
나는 슬쩍 성녀를 바라봤고, 그녀 또한 뭔가를 죽이는 것에는 소질이 없었기에 암묵적인 동의의 시선을 보내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던가.”
“좋아. 너, 마음에 들어.”

알렌, 아니 지금 알렌의 몸을 조종하고 있는 분노의 정령은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백작에게로 다가섰다.
알렌의 검이 백작의 목을 끊어 놓는 것이 보였다.
백작은 몇 번인가 더 발작적으로 몸을 떨다, 그대로 축 늘어져 버렸다.


‘역시 머리가 약점이었군.’


“히힛! 잡았다. 마왕의 수하!”


나는 백작의 머리를 몸과 분리시켜 놓고 기뻐하는 분노의 정령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

“이번엔 백작입니까?”


공주가 나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나는 어쩔 수 없었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며, 그런 공주를 바라봤다.
 태도에 공주는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대기 시작했다.
로하임 백작이 마왕의 수하였다는 것은 급속도로 니스에 퍼져나갔다.
그렇게 쉽게 풀려서는 안 될 정보였지만, 백작가에서 도망친 하인들의 입을 동시에 막을 수 없었던 이상 소문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아. 그런 일이 있었다면, 이 쪽에도 언질을 주셨어야죠.”

공주는 피곤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당장 왕국의 백작 하나가 마왕의 수하였다는 말에, 제국은 물론이고 이웃한 왕국에서도 계속 항의가 들어오는 중이라고 했다.

“아무튼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왕국에서 조사관이 파견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당신도 왕성에 소환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공주는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공주의 옆을 지키고 있던 실비아는 공주를 따라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안 따라 가도 괜찮습니까?”


나는 실비아를 향해 그렇게 물었다.
공주의 호위를 책임지고 있는 입장인 이상, 실비아가 공주의 곁에서 떨어지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때뿐이었으니까.

“공주님이 전하라고 하신 말씀이 있어서요.”
“….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실비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까지 나와 대화를 하고 있던 상대가 공주였다.
할 말이 있었다면, 스스로 하면 될 것을 굳이 실비아를 통해 전하라고 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주님은 입장상 말을 조심해야 하니까요.”

어차피 공주의 곁을 지키는 인원이라고는 실비아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공주가 굳이 실비아를 통해 말을 전하는 이유는 하나 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자신의 말이 문제가  경우, 실비아를 잘라내서라도  문제에서 빠져나가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건 공주가 이 쪽을 그리 신뢰하지 못한다는 의미나 다름 없었다.


“일단 왕국에 화근을 없애  것은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왕성에 소환되더라도 예를 갖춰 대할 것이며, 오히려 득이 있을 거라고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나는 실비아의 말에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에 보고하지 않고 백작을 처단한 것은 분명히 문제의 소지가 있었지만, 마왕이라는 자의 수하를 없앤 것을 생각하면,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실비아가 따로 말을 전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나라도 공주에게 불쾌함을 느꼈을 것이었다.
그리고 내 주변에 성녀가 있는 이상 그 불쾌함은 가벼운 개인의 감정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제법이잖아.’


나는 그런 부분까지 신경을 쓴 공주의 행동에 흥미를 느꼈다.
상대의 사소한 감정을 신경 쓰면서도, 자신은 조금의 위험도 감수하려 하지 않는 그 모습이 어딘가 나와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뭐, 공주님에게 잘 들었다고 전해줘요. 실비아.”

나는 실비아를 향해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답했다.
공주가 이 쪽을 신경 쓰고 있는 이상, 굳이 왕국과 대립각을 세울 필요는 없었으니까.


“….깜짝 놀랐어요, 천족님.”

공주의 심부름을 끝낸 실비아는 주변을 살피고는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천족 소리가 어색했지만, 생각해보니 실비아는 나를 천족으로 오해하고 있는 상태였다.

“역시 마왕을 잡으러 지상에 내려오신 거였나요?”
“….마왕뿐만이 아니라 환란을 막으러 왔죠.”

나는 실비아의 착각에 장단을 맞춰주며 그렇게 대답했다.
아직은 실비아를 여러모로 이용해 먹을 필요가 있었으니까.
나는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는 실비아의 모습에 속으로 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거, 하도 뻥을 치고 다녔더니, 이제는 내가 친 뻥도 제대로 기억이 안 나는구만.’


**

“쟤야, 쟤. 백작의 첩실.”
“아니, 내가 듣기로는 제물이 될 여자였다던데?”

백작 사건으로 왕국이 발칵 뒤집어진 만큼, 아카데미도 평소와 같을 수는 없었다.
물론, 왕국에서는 오히려 더욱 평소대로 수업을 진행하라는 명령이 내려왔기에 수업은 예정대로 진행되는 중이었다.
하지만 왕국이 데이나에게까지 신경을 써 주지는 않았고, 당연히 이런 저런 요직에 앉은 부모를 둔 아카데미 아이들 사이에는 데이나에 관한 소문이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오죽했으면, A반의 녀석들 까지 굳이 D반을 찾아와 그녀를 구경할 정도.

“….여기 뭐 볼일 들 있습니까?”


물론, 소문이  것은 데이나 뿐만 아니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니스의 영웅. 성자. 마왕의 수하를 가장 먼저 잡은 이.
수많은 수식어들이 내 이름 뒤에 붙었고, 제 잘난 맛에 사는 A반의 녀석들도 나를 보면 주늑이 들기 바빴다.

‘또 이 지랄들이네.’


내 등장에 우물쭈물하다 물러가는 구경꾼들을 보며 나는 인상을 구겼다.
솔직히 그들이 데이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소문 때문이라고 만은 볼 수 없었다.
만약 그 소문 때문이라면, 구경꾼 대부분이 남자들뿐인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데이나의 외모는 D반 여자애들을 완벽히 압살하는 수준이었다.
더욱이 그녀의 주인이 사라져 버린 이상, 귀족가의 남자애들이 그녀에게 호기심을 드러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호감도는 대체 어떻게  거냐고!’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
하지만 시스템이 알려준 것과는 달리, 백작의 마수에서 그녀를 구해냈음에도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고,  모습에 날파리들만 잔뜩 꼬이는 짜증나는 상황만이 펼쳐질 뿐이었다.

‘먼저 말을 꺼내볼까?’

나는 멍한 표정으로 창 밖을 보고 있는 데이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품었다.
예전부터 그녀를 먹겠다고 결심했던 만큼  인내력도 거의 한계에 달한 탓이었다.
그리고 아마, 이 상황을 지켜보는 독자들도 열불이 터질 것은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나, 괜찮아요?”
“….아, 본 님.”


내가 먼저 말을 걸자, 데이나가 한 박자 늦게 대답을 해 왔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데이나의 표정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그녀의 입장은 상당히 애매했는데, 당장 그녀의 후견인이던 백작이 사라진 만큼 아카데미를 계속 다닐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말이 퍼지고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런 상황의 여자에게 목숨을 구해준 값으로 다리를 벌리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남들이 뭐라고 떠들든 신경 쓰지 말아요, 데이나.”

나는 괜한 말을 하며, 데이나를 바라봤다.
내 말에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데이나가 지긋이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딱히 신경은 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나는 데이나의 말에 그렇게 대답했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끊겼다.

‘씨발, 호감도 어디 갔냐고!’

더 이상 화제 거리를 찾을  없던 나는 괜히 시스템을 욕했지만, 시스템은 언제나처럼 자신이 불리한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냐. 운디네. 그래도 그건.”


그 순간, 데이나가 자신의 허벅지 위에 있는 뭔가를 보며 혼잣말을 하는 것이 보였다.
나 또한 데이나의 시선을 따라 그녀의 허벅지를 바라보았지만, 탐스럽게 살이 오른 허벅지만 보일 뿐 딱히 운디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령이랑 대화 중입니까?”


나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데이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제야, 운디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 챈 데이나가 나를 올려다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평소에는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게 숨어 있어요. 굳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대화는 가능하니까.”
“아, 혹시 그럼 평소에 창문을 보던 것도?”
“네. 운디네가 햇볕을 좋아….”

그렇게 대답을 하던 데이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화끈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그녀를 빤히 바라보자, 데이나가 더듬거리며 나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그,  말은 혹시…평소에도 저를 자주 보셨다는 건가요?”


데이나의 물음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녀를 흘끔거린 것은 사실이었고, 굳이 그 사실을 숨길 필요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안 그래도 붉어져 있던 데이나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더욱 붉어지는 것이 보였다.

“왜, 왜…저 같은 년을?”


나는 데이나의 말에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아무리 내가 여자랑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병신이라도, 이 상황에서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거야, 데이나 당신이 아름다우니까요.”

나는 남들이 듣지 못할 정도로 나직한 목소리로 데이나의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등 뒤로 소름이 쫙 돋았지만, 눈 앞의 아리따운 여자를 먹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닭살스러운  따위 얼마든 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닭살스러운 말에 대한 데이나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그, 그런.”

얼굴뿐 아니라 귀까지 붉힌 채, 몸을 배배 꼬아대는 것이 확실히 호감도 100이 올라간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어쩔 줄 몰라하는 데이나를 바라보며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 의심하기는 했지만, 시스템은 지금까지 나를 속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 다시  번 상기되었기 때문이었다.

‘믿고 있었다고,  시스템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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