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8화 〉합류 (78/158)



〈 78화 〉합류

“그럼, 앞으로  부탁 드립니다.”

여관에 도착한 데이나는 여관 식구들을 보며 힘차게 인사했다.
그녀를 바라보는 여관 식구들의 눈빛이 그리 고운 편은 되지 못했지만, 일 평생을 하녀로 살아왔기 때문인지 데이나는 그런 시선을 오히려 익숙한 듯 받아들였다.
오히려 여관 식구들의 눈치를 살피는 쪽은 나였다.
성녀는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계속 나와 데이나를 번갈아 보는 중이었고, 여급은 자신이 내뱉은 말이 있으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하얀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멍한 눈으로 데이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이거…못할 짓이구만.’

이세계에 착실히 나만의 하렘을 구축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도대체 그 수많은 이세계 물의 주인공들이 이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지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정령이다!”


불편한 정적을 깬 것은 하얀이였다.
하얀이는 손가락으로 데이나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그와 동시에, 데이나의 옆에 숨어 있던 물의 정령 운디네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액에는 질린 것인지, 평소처럼 일반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운디네를 보며,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 정액이 등장했다가는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꼬일 것 같았으니까.

“….운디네가, 아가씨가 마음에 든다고 하네요.”


데이나는 하얀이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운디네는 어느새 하얀이의 어깨에 올라타 있는 중이었다.
어쨌거나 엘프의 피를 이은 탓에, 정령과의 친화력이 높은 모양.
귀여운 하얀이의 외모에 물의 정령까지 합세하자, 그것만으로도 뭔가 그럴싸한 그림이 만들어진 느낌이었다.

“아가씨?”

하얀이는 데이나의 말에 눈을 반짝이며 반응했다.
데이나로서야, 그냥 어린 하얀이를 부를 호칭이 마땅치 않아서 아가씨란 말을 내뱉은 것뿐이겠지만, 하얀이는 아가씨라는 그 호칭이 꽤나 마음에 들어 보였다.

“나, 이 언니 좋아!”

하얀이는 쪼르르 달려가 데이나의 손을 붙잡고는 그렇게 말했다.
데이나는 그런 하얀이가 귀여운지, 그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는 중이었다.

‘음…이렇게 풀리는 건가?’

하얀이의 돌발 선언으로 상황이 묘하게 변했다.
다수결의 원칙으로 데이나를 받아들이는 쪽이 3명,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쪽이 2명이 된 상황.
확실히 정치적인 사고가 뛰어난 것인지, 성녀가 다급히 의견을 밝혔다.


“뭐, 어쩔 수 없지요. 상황이 이러니까.”

데이나의 사정을 알고 있는 성녀는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금방이라도 데이나를 씹어 먹을 듯한 표정이었지만, 어쨌거나 그녀가 들어오는  찬성을 한 것.
 시선이 여급에게 향했고, 결국 혼자 남은 여급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손님이 늘면 좋지.”

여급도 전혀 기분이 좋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데이나의 합류를 받아들였다.

“그럼, 데이나가 쓸 방 좀 안내해 주겠어?”

내 말에 여급은 데이나를 데리고 2층으로 향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성녀는 그 둘을 따라 나섰다.
덕분에 하얀이와 둘만 남은 나는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정령과 장난을 치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아.”
“응? 왜?”

내 부름에 하얀이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나도 눈치가 있는 탓에, 성녀나 여급이 왜 데이나의 합류를 반기지 않는지는 알고 있었다.
오히려 가장 반대가 심할 거라고 생각했던 하얀이가, 데이나를 쉽게 받아  것이 의외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저 방금 그 사람, 왜 받아준거야?”


나는 하얀이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는 질문이었지만, 호기심을 억누를  없었기 때문이었다.

“응? 왜? 싫다고 했어야 해?”
“아니, 그건 아닌데. 그냥 하얀이 생각이 궁금해서.”

 질문에 하얀이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왜 데이나를 받아줬는지 이유를 모른다기 보다는,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가 감이  잡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냥…사람 많으면  심심하고 좋으니까?”

나는 뜻밖의 대답에 놀란 표정으로 하얀이를 바라봤다.
내 주변의 모든 여자들이 하얀이처럼 생각하면 좋겠다 싶었지만, 그건 그야말로 꿈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소유욕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고, 그건 비단 물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당장 나만 해도, 내 주변의 여자들이 나 외의 다른 남자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그리 기분 좋게 받아들일  없을 것 같았다.

‘엘프, 엘프기 때문인가?’


나는 하얀이를 보며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과 달리 엘프는 조화를 추구하는 종족.
어떤 소설을 읽더라도 그런 엘프의 특성은 공통적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하얀이 또한 절반은 엘프인 만큼 질투 같은 감정은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소리.


‘이 얼마나 아름다운 종족이란 말인가!’


나는 감탄한 표정으로 하얀이를 바라봤다.
그야말로 하렘의, 하렘에 의한, 하렘을 위한 위대한 종족이 바로 엘프였다.

“하얀이는 내가 다른 여자들이랑 놀아도 기분 안 나빠?”

나는 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하얀이에게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하얀이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지며,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기분…나빠야 해?”
“아니, 절대 아니야!”

나는 하얀이를 향해 다급히 그렇게 대답했다.
앞으로 내 하렘 구축에 힘이 되어 줄 주축에게 괜히 인간의 더러운 감정을 알려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하얀이의 대답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아빠가 여자들 잔뜩 데리고 왔을 때도, 그 여자들은 서로 안 싫어했는데? 의외로 사이 좋았다고, 여자들끼리. 나도 다른 여자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나는 하얀이의 말에 머리가 빠르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엘프의 특성이고 나발이고가 아니었다.
하얀이가  상황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은 것은 그 특이한 성장과정 때문이었다.
순간, 그 미친 엘프랑 동급이  불쾌함이 느껴졌지만, 찔리는 게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 여자도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할까?”

하얀이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향해 물었다.
마치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어하는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함이 가득한 얼굴.
나는 그런 하얀이의 얼굴을 보며 양심이 따끔거렸지만, 이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데이나도 하얀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을 거야.”


아마도 자존감이 낮은 데이나는 기존에 여관에 자리 잡고 있던 여자들의 눈치를 살필 것이었다.
하얀이의 순수함과, 데이나의 그런 성향을 이용해 먹는 것 같았지만, 인생은 실리를 따져야 편한 법이었다.

**


“음…역시 토룡이 대단하긴 대단하군.”

나는 잔뜩 성이 난 자지를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낮에 한 발을 뽑아냈음에도, 내 물건은 마치 사춘기 남자애의 그것처럼 아무 이유도 없이 다시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있었다.
어쩌면 실비아의 등장으로 인해, 내 양껏 욕구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당장 여관 안에 욕구를  여자가 넷이나 있는 상황.
여급, 데이나, 하얀이는 물론이고, 그 성녀 조차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다리를 벌리게 만들 자신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그리 좋지 못했다.
끼익-.
끼이익-.
그도 그럴 것이 아까부터 방문 밖에서 계속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투명화 스킬을 사용해 살짝 엿본 결과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여급과 성녀였다.
둘은 마치  방문 앞을 감시하듯이  이유도 없이 밖을 서성이다가 다시 제 방으로 들어가는 행동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이것이 바로 풍요 속의 빈곤인가!’

굳이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지만, 데이나가 합류한 첫날부터 분쟁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방 안에서 혼자 욕구를 억누르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지, 굳이 여관에 있을 필요는 없잖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굳이 태풍 속에서 비바람을 견딜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바람이 불면, 잠시 비를 피하면 그만.
여관 내에서 여자를 품을  없다면 밖으로 나가면 되는 일이었다.
어차피 내가 밤잠을 못 이루고 있는 이유가 실비아 때문이었으니, 그녀에게 욕구를 푸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약속한 것도 있고.’


즉흥적으로 세운 계획이었지만, 나쁘지는 않을 듯 했다.
어차피 공주가 묵는 곳은 알고 있었고, 그녀의 호위 기사인 실비아 또한 그곳에 있을 테니까.
나는 빠르게 방문을 잠그고는 창문을 열고 여관을 탈출했다.

**

“와우. 엄청 좋네.”


나는 공주가 묵고 있는 건물을 보며 감탄을 터트렸다.
당장 내가 묵고 있는 여관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란 건물이 눈 앞에 있었다.
듣기로는 원래 어느 귀족가의 저택인데, 그 귀족이 공주가 온다는 소식에 스스로 집을 내어줬다는  같았다.

‘그나저나 실비아를 어떻게 찾는다?’

나는 공주가 묵고 있는 숙소를 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실비아를 만나러  것 까지는 좋은데, 예상보다 저택이 너무 커서 실비아의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마치 성벽처럼 쌓아 올린 높은 담벼락은 내가 저택 내부를 확인하기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 까짓 돈  쓰지, 뭐.”

나는 높은 담벼락을 보며, 자연스럽게 상점 창을 열었다.
현재 총 조회수가 13만을 넘었으니, 이제는 어느 정도 여유롭게 물건이나 스킬을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예전 눈독을 들여 놨던 [투시] 스킬을 구매하고는 곧장 사용해 보았다.
그러자 거대한 담벼락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저택 내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오, 이거 신기한데?’

나는 새롭게 얻은 능력을 시험하듯 저택의 담벼락을 따라 걸었다.
그래도 공주가 묵는 곳이기에 그런지, 몇몇 병사들이 저택 내부를 지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얼마쯤을 걸었을까, 나는 드디어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실비아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꽤나 엄한 표정으로 병사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실비아의 모습을 잠시 동안 훔쳐서 지켜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미인은 미인이란 말이지.”


 공주의 옆에 붙어 있어서, 손해를 보기는 했지만 실비아 또한 미인인 것은 두말할 것 없는 사실이었다.
당장, 실비아에게 명령을 듣는 병사들조차 그녀를 흘끔거리는 것이 보였으니까.

-실비아.


나는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실비아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순간, 실비아의 몸이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병사들의 앞이기 때문인지, 실비아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놀라지 말아요,  본이에요.

내가 다시 전음을 보내자, 실비아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대한 놀라움과, 야릇한 기대가 뒤섞인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그런 실비아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가 기대를 하는 것만큼, 나 또한 그녀와 보낼 시간이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병사들을 근처에서 물려 주세요.

나는 실비아에게 그렇게 전음을 보냈고, 그녀는 곧장  말에 따라 병사들을 다시 배치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이 주위로는 누구도 접근하지 말거라! 여기는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넵!”


실비아의 말에 병사들이 대답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벽 너머로 병사들이 흩어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제운종을 운용했다.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낀 나는 빠르게 벽을 타 넘었다.
내가 벽을 넘어 오자, 실비아가 나를 보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여긴 어떻게….오신 겁니까?”
“약속했잖아요, 실비아.”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이는 실비아를 보며, 그렇게 대답했다.
낮에 했던 약속이 떠오른 것인지, 실비아의 뺨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애초에 계획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굳이 병사들까지 물린 상황.
당연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실비아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따뜻한 그녀의 볼의 온도가 손끝을 타고 전해져 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번 봐 볼까요,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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