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0화 〉동행 (80/158)



〈 80화 〉동행

“동행이요?”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눈 앞의 여자를 바라봤다.
왕성으로 향하는 길에 뜻밖의 인물이 동행을 요청해왔기 때문이었다.


“네. 저도 마침 마탑에 들릴 일이 있어서요.”

나에게 동행을 요청한 것은 다름 아닌 로잘린이었다.

‘그러니까, 얘가 날 의심하지 않는다는 건 알겠지만…’


연재창에 올라온 로잘린의 생각을 대충 읽었기에, 그녀가 나를 의심하지 않는 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와의 관계가 그리 편치 않은 나로서는 꽤나 부담스러운 부탁.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로잘린을 바라봤다.


“설마, 거절은 아니겠죠? 나한테 진 빚도 있을 텐데.”

로잘린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쏘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빚은 아마도 던전의 보상을 내가 날름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전 죽을 뻔 했는데요?”


하지만 나는 로잘린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어쨌든 나는 그녀가 날린 마법을 피하느라 절벽에서 떨어졌고, 이건 누가 봐도 그녀가 나한테 빚을 진 상황에 가까웠다.

“그거야, 그 쪽이!! ….후, 그래서 싫다는 건가요?”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던 로잘린은, 그 일 자체를 언급하기 싫다는  그렇게 물었다.
어쨌거나 그녀는 마탑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었고, 이 기회에 그녀에게 작은 빚 하나를 더 달아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했다.


“그런데, 수업은 안 합니까?”
“….그거야, 다른 교사들이 알아서 하겠죠.”


내 말에 로잘린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답했다.
그 공주마저도 아카데미 수업을 빼먹을 수 없어 니스에 남기로  상황.
교사로서 실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내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었다.


“좋습니다. 그럼 같이 가시죠.”

나는 로잘린을 보며 그렇게 말했고,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으하하핫! 달려라, 썬더!”

왕성으로 향하는 일행은 나와 로잘린, 그리고 알렌이 전부였다.
백작 사건에 깊은 관계가 있는 성녀는 자신만 빠지는 것이 엄청나게 불만을 품었지만, 공주가 나서서 그녀를 붙잡았기에 결국 니스에 남기로 했다.

‘애초에, 수업은 핑계고 성녀를 견제할 속셈이었겠지.’


달리는 마차 안에서, 나는 공주가 니스에 남은 이유를 그렇게 추측했다.
왕국에서 나에게 귀족 작위를 내리는 것은, 나와 관계를 좋게 만들기 위함이었고  일에 성녀는 방해만 될 것이 뻔했으니까.
대충 생각을 마친 나는 마차 맞은 편에 앉은 로잘린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나를 빤히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뭘 봐요?”
“….그냥 앞에 당신이 있는 것뿐이니까 불쾌한 오해는 하지 말아 줄래요?”

로잘린은 샐쭉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어색한 침묵이 마차 안에 감돌았다.

“저기요,  현자님은 어떤 분이세요?”


잠시 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로잘린이 나를 향해 그렇게 물어왔다.
나는 그런 로잘린을 보며 머리를 굴렸다.
어쨌거나 나는 그녀가 현자의 제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글쎄요…조금 괴짜라고 할지.”
“괴짜요?”
“네, 원래 한 분야에 특출난 사람들은 조금 이상하게 보이잖아요?”
“…그렇기는 하죠. 그래서 어떻게 괴짜신데요?”

나는 로잘린을 향해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줄은 꿈에도 모르는 로잘린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로잘린의 모습에 장난끼가 샘솟기 시작했다.
한 번 나를 죽일 뻔 한 탓인지, 그녀를 보면 괜히 놀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게, 엄청나게 남녀 차별주의자예요.”
“네?”
“남자가 아니면, 아예 사람 취급도 하지 않죠.”
“….그런!”

로잘린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현자의 제자가 되기를 바라는 그녀로서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소리.
하지만 내 장난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여자는 엄청나게 밝혀요.”
“여자를…밝힌다니요?”


나는 운디네가 했던 것처럼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고는 다른 손의 손가락으로 구멍을 쑤시며, 로잘린을 바라봤다.

“이거, 겁나 좋아하거든요.”
“……”

로잘린이 새빨개진 얼굴로 내 눈을 피하는 것이 보였다.
거의 성희롱이나 다름 없는 말이었지만, 솔직히 죽을 뻔한 것에 대한 복수라고 치면 상당히 가벼운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정도면 적당히 포기하겠지.’


나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피하는 로잘린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론 반쯤, 아니 그 이상 장난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로잘린이  이상 현자를 핑계로 내 주위를 파는 일을 막기 위해서 꾸민 말이기도 했다.

“….그, 자주면 제자가 될  있을까요?”


하지만 나는 로잘린이란 여자를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현자의 제자라는 타이틀에 집착했으며, 그를 위해서라면 스스로의 몸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미친….이미 여자랑 자고 제자 삼는 인간이면, 현자 탈락 아니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정답일테지만 욕심에 눈이 먼 그녀의 머리로는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글쎄요? 그건 현자님 만이 아시겠죠.”

나는 로잘린을 향해 그렇게 대답하며, 마차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그런 태도에 기분이 조금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

“그럼, 저는 여기서 따로 움직이도록 하죠.”


왕국 수도 앞.
목적지에 도착한 로잘린은 마차에서 내리며 그렇게 말했다.
마탑은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숲에 자리 잡고 있으니, 그녀가 우리 일행과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네. 그럼 다음에 학교에서 뵙죠.”


나는 로잘린에게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니스에서 왕국까지 오는 데 딱 3일이 걸렸다.
그 때의 대화 이후로는 로잘린과 나 사이에는 묘한 어색함이 흘렀고, 정말 필요한 대화가 아니면 서로 주고 받질 않았다.
그러니까 3일간 엄청나게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는 소리였다.


‘하아, 이건 이것대로 피곤하네.’


현자의 제자만 될 수 있다면, 몸이라도 바치겠다는 로잘린이었지만 그건 현자에게 바치겠다는 의미였지, 나에게 주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거기다 그녀의 생각지도 못한 모습에 괜히 실망을 한 나는 의식적으로 그녀와 대화를 피했다.
가뜩이나 불편했던 여자가, 불쾌한 소리까지 하자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그러는 걸까?”

나는 마차에서 멀어지는 로잘린을 보며, 그렇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마탑의 총애를 받는 여자이자, 마나의 축복을 받았다고 일컬어지는 여자.
그녀는 어떤 기준을 들이밀어도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여급이나 데이나 같은 신분을 지닌 여자들에겐 로잘린은 꿈에서나 그릴 만큼 완벽한 여자일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는 그녀가 굳이 현자라는 존재에게 집착하는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예? 뭐라고 하셨어요?”
“….아니, 아무 말도 안 했어.”


나는 마차 안으로 고개를 집어 넣고 묻는 알렌을 향해 그렇게 대답했다.
왕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문을 받아야 했고, 알렌은 그 검문을 기다리는 사이 마차를 손보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꽤나 행복한 표정으로 마차를 점검하는 알렌을 보며, 그가 조금 부러워졌다.
쓸데 없는 고민을 하느라 머리가 아픈 나보다, 마차 하나만 있으면 즐거워하는 알렌이 더 행복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오신 분들입니까?”

성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 하나가, 나와 알렌에게 다가와 그렇게 물었다.
마차가 워낙 고급품이다 보니, 병사가 저절로 조심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아, 국왕 폐하의 초청을 받고 왔습니다.”


나는 마차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병사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갑작스러운 국왕 소리에, 병사는 자신이 감당할  없는 상황임을 깨닫고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성문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말을 탄 남자가 마차로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오랜만이군.”

마차를  남자는 마차 창문 밖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날 보며 그렇게 말했다.
남자는 나 또한 안면이 있는 상대였다.
바로 공주가 니스로 향할  호위를 맡았던 기사단의 단장이었던 것이다.


‘이 꼰대 아저씨를 또 보네.’

예쁜 여자가 마중을 나왔다면  좋았겠지만, 공주나 성녀, 그리고 로잘린이나 트리샤 같은 특정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여자들은 신분이 낮은 편이었다.
당연히 왕국의 중요한 일에 남자가 나설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안 그래도 국왕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시네. 바로 왕성으로 가지.”

기사단장은 나에게 그렇게 말하며, 길을 앞서기 시작했다.
그가 앞장서자, 왕성까지는 하이패스를 단 것처럼 빠르게 통과할 수 있었다.
나는 중세 시대의 유럽의 성과 비슷한 모습의 왕성을 보며 입을 벌렸고, 그건 이세계인인 알렌도 마찬가지였다.
기사단장이 왠 촌뜨기들을 보는  같은 시선으로 우릴 바라봤지만, 유럽은커녕 가까운 일본도 가 본 적 없는 나로서는 놀랄 수 밖에 없을 만큼 왕성은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두르지.”

기사단장이 촌뜨기 둘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기사단장의 안내를 따라 왕성 안으로 들어섰고, 그건 백작을 해치운 공이 있는 알렌도 마찬가지였다.
왕성의 외부처럼 그 안도 화려한 것은 마찬가지였고, 나와 알렌은 그야말로 눈이 돌아갈 정도로 성 안의 모습들을 눈에 담기 바빴다.

“국왕 폐하, 기다리던 이들이 도착했습니다.”


다른 문들과는 달리 화려한 금박 장식이 달린  앞에서 선 기사 단장이 그렇게 소리쳤고, 이내  화려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성문에서 도착한 소식에 다급히 모인 것인지, 귀족들과 병사들이  옆으로 도열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 사이로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것이 보였고, 그 끝에는 높은 계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계단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화려한 의자에 추레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머리에는 반짝이는 왕관이, 어깨에는 화려한 무늬의 망토가 걸쳐져 있었지만, 노인의 모습은 초라해 보이기 이를  없었다.

‘저게…국왕?’


나는 조금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국왕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그 공주의 아버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추레한 모습이었다.


“무엄하다, 전하께 예를 갖추어라!”


귀족 중 누군가 우리를 향해 그렇게 소리쳤고, 알렌은 그 말에 곧장 땅에 머리를 박았다.
그야말로 내추럴 본, 천민에 가까운 모습.
하지만 나는 귀족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국왕을 바라봤다.
딱히 국왕과 대립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눈 앞의 초라한 왕을 보고 있자니, 굳이 저자세로 나갈 이유가 있나 싶어서였다.

‘아직 계약도 안 했는데, 굳이 구단주에게 굽실 거릴 필요는 없잖아?’

축구 선수로 따지자면, 나는 한창 주가를 올리는 상태에서 FA 시장에 나온 상태나 다름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비위를 맞춰야 하는 것은 왕국 쪽 인사들이었지, 내가 아니었다.

“그대는….왜 내 앞에서 무릎을 조아리지 않는가?”


그 때까지 흥미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얼굴로 나를 보던 국왕의 눈에 이채가 감돌기 시작했다.
국왕의 곁에 도열해 있는 귀족들은 잔뜩 흥분한 상태였지만, 오히려 국왕은 건방진 내 모습을 신선하게 느끼는 모양이었다.


“간단합니다. 저는 이 왕국의 국민도, 폐하의 신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말에 귀족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입장을 다시 되돌아보면, 나는 진짜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상태였다.
니스를 구한 영웅, 신탁을 받은 성자, 현자의 제자, 토룡을 잡은 자, 마왕의 졸개를 해치운 자 등 수 많은 일들을 해치웠지만, 그렇다고 내가  세계에 속한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왕국의 입장에서 봐도 그건 마찬가지.
비록 내가 남작의 추천을 받아 아카데미에 입학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태어난 곳도,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이들은 몰랐다.


“….그런가? 혹시 그대는 제국 출신인가?”

국왕이 메마른 얼굴로 나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런 국왕의 말에 귀족들의 표정이 심각해지는 것이 보였다.
당장 제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이시디나 왕국의 입장에서는 내가 제국의 시민일 경우 절대 함부로 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이들은 나에 대한 정보가 없었고, 그건 충분히 이용해 먹을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아니요. 제국 사람은 아닙니다.”


 말에, 귀족들의 표정이 다시 돌변하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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