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5화 〉마법의 위력 (85/158)



〈 85화 〉마법의 위력

‘시원하군.’


주문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등 뒤에서 옅은 바람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미약했던 바람은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그 힘을 키워갔다.
처음에는 작은 먼지들이 바람을 타고 적진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모래 알갱이들이 바람을 타고 허공을 날기 시작했고, 작은 돌맹이들이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뭐, 뭐냐! 이건?”
“마법, 마법사다!!”

일방적인 학살을 생각하며 달려오던 용병들은,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난 모래 폭풍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누가 봐도 이상할 정도로 갑작스러운 모래 폭풍에, 용병들이 마법사의 존재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음…효과가 조금 애매한가?’


나는 모래 폭풍에 휩싸인 용병들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당장, 이쪽으로 접근하던 상대의 움직임은 막았지만, 상대를 무력화 시키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작은 돌멩이들을 날리던 바람이 이제는 사람의 머리만한 크기의 돌들을 뽑아서 던져대는 중이었다.
깡-!
용병 하나가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는 바위를 칼로  내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엄청난 속력으로 날아간 바위는, 용병의 칼을 부러뜨리고는 그대로 놈의 얼굴을 들이 받아 버렸다.
빨간 피와, 이빨 몇 개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지만, 이내 그 마저도 바람에 날아가 버리는 상황.
적의  돌격은 그렇게 예리함이 꺾여 버렸고, 갑작스러운 모래 바람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알렌, 알지?”

나는 알렌의 이름을 부르며 그렇게 말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일러둔 것이 있었고, 알렌은 내 말에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녀석의 몸이 허공에 녹아들 듯 사라져 버렸다.
주위의 노병  명이 눈을 비비며 알렌을 찾는 것이 보였지만, 이미 투명화 마법이 걸린 알렌은 적진을 향해 달리고 있을 것이었다.

“좋아, 이제 제대로 좀 놀아볼까?”

나는 모래 폭풍이 조금씩 힘을 잃는 것을 보며, 소매를 걷어 올렸다.
주위의 노병들이 얼 빠진 표정으로 나를 보는 것이 보였지만, 지금은 그들에게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도망쳐도 된 다니까. 쯧.’


나는 그냥 혀를 한 번 차고, 다음 마법을 준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


“마, 마법입니다.”


자신의 기사의 말에, 찰슨은 인상을 구겼다.
찰슨도 눈이 있었고,  앞에 펼쳐진 괴상한 일이 마법에 의한 것이라는 것 쯤은 봐서 알고 있었다.

‘마탑? 마탑이 배신을 했나? 도대체 왜?’


찰슨은 부하에게 짜증을  여유조차 없을 만큼, 머리가 차게 식었다.
마탑이 무슨 이유에서 적에게 붙었는지는 몰라도, 이대로 가면 자신이 불리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었다.
당장 앞 세운 용병단들의 예기가 꺾인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기사단이 남아 있었으니까.
그리고 남들은 모르지만, 기사단의 수준은 평범함을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오로시우스 후작의 야망을 위해 몰래 키운 검들이었다.
고작 옆 영지의 미망인을 차지하기 위해 그 검들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후작도 이 정도는 얼마든 이해해  것이라 믿었다.


‘나중에 뭐라 하면, 테나 년을 바치면 될 거야.’

남을 주기에는 상당히 아까운 여자였지만, 그래도 후작의 눈 밖에 날 정도의 가치는 아니었다.
한 번도 맛 보지 못했기에 집착을 하는 것뿐이지, 맛을 본 이후라면 후작에게 바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선택지라는 것이 찰슨의 생각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계기로 후작의 총애를 받게  지도 몰랐다.
행복회로를 최대로 돌린 찰슨은 자신의 기사단을 보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돌격해, 적의 마법사를 죽여라!!!”


마탑의 마법사일지도 모를 존재를 죽이는 것이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먼저 배신을 한 것은 마탑이었고, 이를 빌미로 삼으면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을  싶었다.
더군다나 방금 대규모 마법을 사용한 마법사가 다시 마법을 시전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기회는 지금 뿐이었고, 찰슨은 그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죽여! 죽이는 자에게 황금을 하사하겠다!!”


찰슨의 피맺힌 목소리가 기사들을 자극했고, 기사들은 몸을 움츠리고 있는 용병대를 뚫고 적에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찰슨, 아니 오로시우스 후작의 암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

“음. 역시 별로야.”

나는 내가 펼친 샌드스톰이라는 마법을 보며 짧은 감상을 내뱉었다.
용병대를 저지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적진의 기사들이 날아 다니는 바위를 뚫고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거금 15000G을 주고 산데다 6서클의 마법임을 생각하면, 실망스러운 효과가 아닐  없었다.


‘주변 지형에 영향을 받는 건가?’


나는 모래 바람을 뚫고 다가오는 기사들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영지전이 벌어지는 곳은 평야.
아무래도 샌드스톰이라는 마법과는 상성이 조금 맞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나는 천천히 다른 마법을 영창했다.


“파이어 스톰.”


같은 스톰 계열의 마법이지만, 샌드 스톰보다 5000G이 더 비싼 마법.
그리고 비싼 것 대게, 제 값어치를 하기 마련이었다.
한 차례 모래 바람이 쓸고 지나간 대지에 여기저기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그 불꽃들은 산소를 제물 삼아 점차 몸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악!!!”


갑자기 허공에서 타오른 불꽃에 적중 당한 기사 하나가 비명을 지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내,  비명 소리가 여기 저기서 동시에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장면을 보며,  삼국지에서 화계를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했는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살이 타는 역겨운 냄새가 퍼졌다.
불에  들어가며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바닥을 구르는 동료의 몸이 기사들의 발을 묶었다.
피부가 녹아 들어간 동료의 몸에 시선을 빼앗겨 발을 멈춘 기사들은 뒤늦게 자신이 불길 안에 포위되었음을 깨닫고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칼로 베어도 죽지 않는 불이라는 적은, 기사들의 전의를 단번에 꺾어내고 말았다.
그야말로  단위의 살상 마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지만, 나는 생각보다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내 손으로 직접 죽이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마법에 의해 죽어가는 기사들의 모습이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한 인간이 일으킬  없는 재난과 같은 장면 때문에, 내가 그 원인이라는 자각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따뜻하군.’


우습게도 나는 멀리서 타오르는 불꽃의 온기를 느끼며,  정도의 감상만 느낄 뿐이었다.
다행히 기사들의 수준은 내 예상보다 높았다.
금방이라도 전멸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제대로 훈련을 받은 기사들이 불길에 대항하는 것이 보였다.
놈들은 불에 타 쓰러진 동료의 몸을 끌어 모아 방벽으로 이용했다.
그리고 그렇게 뭉쳐있는 놈들이 나에게는 아주 커다란 표적으로 보일 뿐이었다.

“라이트닝 체인.”

 앞에 나타난 전격 마법이 뭉쳐있는 기사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미 불에 타 새까맣게 변한 시체 하나가 전격에 얻어 맞고는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인간의 몸은 전도체였고, 그게 아니더라도 기사들 대부분이 금속으로 이루어진 갑옷을 입고 있었다.
뭉쳐 있는 무리에 부딪친 전류는 그대로 놈들의 몸을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고, 다시  번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아악!!!”


다른 것은 괜찮았지만,  비명 소리가 묘하게 귀에 거슬렸다.
토룡을 섭취한 덕에 대량 살상 마법을 사용했음에도, 내 마력은 빠르게 차오르는 중이었다.
마력에 여유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귀찮은 표정으로 사일런트 마법을 걸어, 그 소리를 차단했다.
비명소리가 뚝 끊기자, 전보다 훨씬 쾌적해진 기분이었다.

**

“뭐, 뭐냐? 마탑 전체가 나서기라도 했다는 거냐?”

찰슨은 눈 앞에서 벌어진 참상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무려 10년을 공들여 키운 기사단이 고작 몇 분만에 살살 녹아버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건 테나를 바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당장 자신이 이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조차 확신할  없는 상황이었다.

“영지전에서 적 기사단을  죽이다니! 미친 것이냐!”


찰슨은 자신이 하려던 짓은 까맣게 잊고는 적을 향해 그렇게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기사단을 태운 미친 놈이 그 소리에 반응할 것이라고는 찰슨도 생각지 않았다.
이미 전투는 끝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용병대는 바위에 얻어 맞아 여기 저기 쓰러져 있는 상황이었고, 그가 믿고 있던 기사단은 숯덩이로 화한 상태였다.
병사들은 전의를 잃었으며, 그건 찰슨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찰슨이 항복을 선언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이번 전투로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격해! 공격하란 말이다!”


찰슨은 검을 빼어들고는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신도 병사들로 상황을 뒤집어 엎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대로 죽기엔 억울함이 너무 컸던 탓이다.
찰슨이 검까지 빼어 들고 소리치자, 겁에 질린 병사들이 천천히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병사들은 아직도 평야를 태우고 있는 불의 폭풍을 보며, 일정 거리 이상을 나아가질 못했다.
그들도 검에 찔려 죽는 것이 불에 타 죽는 것보다는 덜 고통스러울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밥버러지들! 그간 네 놈들을 먹이고 재운 돈이 아깝…”

분노한 표정으로 소리치던 찰슨은 다급히 말을 멈췄다.
그의 목 앞에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놀랄만한 광경이 벌어졌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사람 하나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찰슨의 목에 검을 들이밀고는 큰 목소리로 병사들에게 외쳤다.


“전투는 끝났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당연히 찰슨 자작을 붙잡은 것은 알렌이었다.
본이 투명화 마법을 걸어준 순간, 알렌은 전장을 우회해 찰슨의 뒤로 접근한 것이었다.
본이 일러준 대로 찰슨을 잡은 알렌은, 지옥으로 변한 전장을 바라봤다.

‘후. 진짜 웬만하면 밉보이지 말아야겠군.’


어머니를 구해준 은혜도 있고, 원래부터 본을 좋아하는 알렌이었지만, 그는 다시금 그런 마음을 다잡았다.
솔직히 자꾸 이것 저것 시키는 본을 조금은 귀찮다고 여긴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챙강-챙강-.
병사들이 하나 둘 무기를 버리는 소리가 들렸다.
찰슨 자작은  모습을 보며 분노한  부르르 몸을 떨었지만, 자신의 목 앞에 겨눠진 칼 앞에 감히 어떠한 소리도 내지 못하는 중이었다.
결국 적의 수장을 잡으면, 모든 전투는 끝나는 법이었고 그건 영지전 또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찰슨의 성욕을 제외하면 벌어질 이유가 없던 전투였기에, 그 끝은 싱거울 정도로 가볍게 끝이 나고 있었다.


**

“네…이놈! 이러고도  놈이 무사할 성 싶으냐?”


알렌에게 포박당해 온 찰슨이  향해 소리쳤다.
무릎을 꿇고도 소리를 질러대는 놈의 기개가 꽤나 그럴듯해 보였다.

“응. 무사할 듯싶어.”


나는 찰슨의 기개를 높이 샀기에, 그의 질문에 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놈의 얍실한 수염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상황 파악도 못하는 무지렁이 같은 놈. 내 뒤에 후작님이 계시다는 것을 모르느냐!”

나는 결국 자신의 뒷배를 파는 찰슨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무나 판에 박힌 듯한 행동에 놀란 것이었지만, 찰슨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던 모양.
이내 기세가 등등해진 찰슨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이라도 이 것을 풀고 용서를 구한다면, 내 후작님께는 잘 말씀을 드려보마.”
“….후작이 그 오로시우스 후작을 말하는 것인가?”
“흥! 이제라도 알았으면…”
“미안.”

나는 찰슨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순간, 내 주위의 병사들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상황을 여기까지 끌고 와 놓고는 내가 찰슨에게 사과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나, 이미 오로시우스 후작이랑 사이가 안 좋거든. 그러니까, 그 말은 별로 흥미가 안 생기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나는 이죽거리는 얼굴로 찰슨을 향해 그렇게 말했고, 놈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네, 네놈 따위가 오로시우스 후작님을 안다고?”
“응. 며칠 전에 봤는데? 왕성에서?”
“개 소리 마라! 너 따위가 대체 뭐라고 왕성에서 후작님을 뵙는다는 말이냐!”

찰슨은 핏대를 세워가며 나에게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아, 말 안했구나. 나, 백작이야. 본 백작.”
“….왕국에 본이라는 이름의 백작 따위는!!”

그렇게 말하던 찰슨이 뭔가 떠오른 것처럼 눈을 치켜 뜨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중앙에서 활동중인 오로시우스 후작과 연관이  놈이니 만큼 정보에 민감한 놈인 모양.

“서, 설마 네 놈이…”
“맞아. 로하임 백작새끼 후임. 그러니까, 우리 자작 나부랭이는 좆 된 거라고 봐도 되겠지?”


나는 그제야 내 정체를 알아챈 찰슨을 보며, 상큼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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