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3화 〉집으로 (103/158)



〈 103화 〉집으로

“어떻게 안 되는 건가요?”
“네, 노력은 해 봤지만….”

로잘린은 씁쓸한 표정으로 성녀에게 대답했다.
성녀와 붙어 다니던 그 현자의 제자, 아니 본 백작이 사라진 지도 벌써 일주일이 흐른 뒤였다.
본 백작이 사라지고 이시디나 왕국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백작이 그 데안과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데안은 공주의 호위 기사인 실비아와 같은 가문이었고, 그건 그가 명문가의 자제라는 소리였다.
나름 중앙 정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던 그가, 니스에 갑자기 나타난 것도 놀랄 일이지만 문제는 그가 포탈을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포탈을 열기 위해서는 대마도사도 많은 준비가 필요한 법이었고, 알려진 바에 의하면 데안은 마법을 사용할  몰랐다.
그런 그가 갑자기 포탈을 사용해  백작과 사라졌다는 것은, 그의 정체에 의구심을 심어줄 수밖에 없었다.

‘전의 로하임 백작 사건에 이어, 데안까지. 제국과 다른 왕국들이 난리를 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제국은 당장 이시디나 왕국에 마왕의 손길이 뻗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해오는 중이었다.
덕분에 니스에서 수업을 받던 미네로바 공주까지 수도로 돌아간 상황이었다.
왕국의 대사들은 어떻게든 제국과 다른 왕국에게 무고함을 주장하고 있었지만,  이어 두번이나 마왕과 관련됐을지도 모를 인물이 튀어나온 상황이라 그 주장은 힘을 얻기 어려웠다.

‘하아….고작  남자 하나 때문에.’

로잘린은 미간을 찌푸리며 본을 떠올렸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남자 하나가 왕국 자체를 뒤흔드는 사건을 연달아 일으키는 중이었다.
당장 그가 머물던 여관에 모인 인물들만 하더라도 만만치 않았다.
로잘린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성녀에다가 그 용병여제인 트리샤까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안 된다는 말만 하지 말고, 어떻게 좀 해 봐!”

트리샤는 로잘린을 향해 그렇게 닥달을 했다.
로잘린으로서는 그녀가 왜 본이라는 남자의 일에 끼어든 것인지  수 없었지만, 굳이  점을 꼬집어 묻지는 않았다.

“분명 포탈의 흔적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제 능력으로는 도저히 복구할 수 없네요.”

로잘린의 말에 성녀는 눈물을 글썽였고, 트리샤는 가볍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뿐 아니라 여관에 묵고 있는 백작 사건의 피해자며, 하프 엘프에, 여급까지 모두들 본이라는 남자를 걱정하는 것이 보였다.

‘내가 그를 오해하고 있었던 것인가?’

정상이 아닌 남자라고 생각했지만, 그와 얽힌 인물들이 진심으로 그 남자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듣기로는 당장 오드왈 가문부터가 본 백작을 찾는 일에 가문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천명한 상황이라고 했다.
세간에는 뜬금없이 끼어든 오드왈 가문이 그저 관심을 얻기 위해 쇼를 벌이는 것뿐이라는 소문이 흘렀지만, 로잘린은 본이라는 남자와 오드왈 가문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뭐야? 왜 갑자기 얼굴을 붉혀?”
“누, 누가요!”

로잘린은 트리샤의 말에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그렇게 대답했다.
오드왈 가문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린 탓이었다.
그 남작 부인과 본이 몸을 뒤섞던 장면은 아직도 로잘린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었으니까.
어쩐지 하반신이 간지러워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로잘린은 그 감각을 억지로 억누르는 중이었다.

“어떻게…진짜 방법이 없는 건가요?”

당황한 로잘린을 구해준 것은 성녀였다.
성녀는 로잘린이 얼굴을 붉히든 말든 관심도 없는 표정으로 눈물을 닦으며, 그렇게 본을 찾는 것만을 생각하는 중이었다.
 성녀가 고작 남자 하나 때문에 눈물을 보인다는 것이 믿겨지지는 않았지만, 본이라는 남자의 위치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왕국의 백작이자, 현자의 제자라는 신분 외에도,  여신과 소통이 가능하다고 알려진 이였으니까.

‘진짜, 갑자기 나타나서 엄청난 일을 해냈네….가만, 현자?’

순간, 로잘린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마탑의 늙은이들조차, 일주일이나 지나 버린 포탈을 복구할 수는 없을 테지만 그게 가능한 인물이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현자님이라면…”

로잘린은 자신의 생각을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현자요? 그분이 어디 계신데요?”

로잘린의 말에 성녀가 다짜고짜 그렇게 물어왔다.
마치 어디라도 찾아갈 듯한 기세.
하지만 로잘린은 성녀의 그 기세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

“듣기로는 그 아르카 왕국에 있다고….”
“아르카 왕국?!”

로잘린의 말에 먼저 반응한 것은 트리샤였다.
야만인들이 사는 아르카 왕국은 툭하면, 이시디나 왕국에 시비를 걸어왔고 덕분에 이 자리에 용병 여제인 트리샤보다 아르카 왕국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 야만스러운 놈들만 있는 나라에 현자님이 왜…?”
“저도 모르죠. 저야 그냥 본씨에게 들었을 뿐이니까요.”

로잘린은 트리샤를 향해 그렇게 대답했다.
본에게 현자가 아르카 왕국에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도 사실이었고,  정도면 성녀도 현자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가죠! 아르카 왕국.”

하지만 로잘린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성녀는  아르카 왕국에 가는 일을 무슨  동네 마실 나가는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었다.

“아니, 제 말 제대로 들었어요? 다른 곳도 아니고 아르카 왕국이라고요!”

로잘린은 당장 성녀의 말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그 남자가 걱정이 된다고 하지만 아르카 왕국에 들어가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로잘린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도, 나도 갈래.”

가장 먼저 성녀의 말에 동의를 한 것은 트리샤였다.
가장 아르카 왕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로잘린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트리샤를 바라봤다.

“그게, 녀석한테 빚이 있어서 말이지.”

트리샤는 로잘린의 싸늘한 시선에 민망한 표정으로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둘이 사이가 안 좋다고 알려지긴 했지만, 아니, 실제로도 그렇게 좋은 사이는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오래 보아온 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로잘린은 트리샤가 개죽음을 당하러 가겠다는 소리에 이마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니, 빚이고 나발이고, 가면 다 죽는다니까?”
“….저도 갈 수 있을까요?”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가관으로 흘러가는 중이었다.
로하임 백작의 하녀였던 데이나가 성녀에게 자신도 가고 싶다고 말한 것이었다.
그녀가 정령을 다룰 줄 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 봐야 아직 하급 정령 정도나 다룰 수 있을 뿐이었다.
즉 데이나는 전력이 아니라, 혹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

“그럼 하얀이도 갈래.”

거기다 엘프의 피가 섞인 여자 아이가 따라 나서겠다고 했고, 이내 눈치를 보던 여급도 천천히 손을 들어 참여 의사를 밝혔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가는 여자들끼리 피크닉이라도 떠나는 거라고 오해하기 충분한 상황.
로잘린은 한숨을 푹 쉬며, 여관에 모인 이들을 바라봤다.

“….이건 뭐, 말린다고 듣지도 않겠네요.”

로잘린이 보기에 이것들은 다 미친년들이었다.
트리샤는 원래 뇌에 근육밖에 없는 바보니 그렇다 치더라도, 성녀까지 그런 선택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로잘린이었다.
아예 얽히지 않았으면 모르되, 그냥 이들끼리 아르카 왕국으로 보내는 것은 죽으라고 등을 떠미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후우…그럼 저도 같이 가죠.”

결국 로잘린은 이성적으로는 절대 나올  없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자신이 합류하게 된다면, 아르카 왕국에 들어가도 생존을 할 수 있는 확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갈 테니까.
어떻게든 현자만 만나면 된다는 생각이 로잘린이 그런 말도  되는 결정을 내리는 것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자, 그럼 모두 준비 됐나요?”

로잘린은 여관에 다시 모인 일행들을 보며 그렇게 물었다.
모두는 각자 짐을 챙겨 아르카 왕국으로 떠날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고,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로잘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 보죠.”

로잘린이 그렇게 말하며 여관 문을 열려던 그 순간.
여관 문이 먼저 스스로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열린 문 밖에는 아주 뜻밖의 인물이 서 있었다.

“뭐야? 다들 어디 가?”

태연한 얼굴로 그런 질문을 던져 온 것은 다름 아닌 이 모든 문제의 시발점인  이었다.

**

‘뭐야? 섭섭하게?’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여관 안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모두가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있는 폼이  피크닉을 가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환계에서의 일이 그렇게 나쁘게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빼고만 다들 어딜 간다는 것이 기분이 그리 좋지는 못했다.

‘거기다 로잘린이랑 트리샤까지? 얘들 언제 이렇게 친해진 건데?’

나는 예상치도 못한 인물들까지 여관에 함께 있는 것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샬롯은 일단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을   상황.
 딴에는 나름 여관에 있는 여자들이 나를 걱정할까  빠르게 돌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흘러가자, 샬롯이나   더 따먹을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흑! 아저씨!”

순간, 하얀이가 눈물을 흘리며 나를 부르는 것이 보였다.
이내 여급과 데이나 또한 펑펑 울기 시작했고, 성녀도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겁니까?”

로잘린이 나를 향해 그렇게 물었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흡사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는 중이었다.
거기다 트리샤 또한 나를 보는 눈길이 심상치 않았다.
나는 그제야 내가 당치도 않은 오해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잠깐 다른 세계에 다녀오느라….”

나는 로잘린의 말에 그렇게 대답했고, 나에게 달려와 안기는 하얀이를 품에  안아주었다.

‘응?’

말캉한 무언가가 내 가슴 아래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고작 일주일간을 안 봤을 뿐인데도, 하얀이의 키가 조금 자란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확실히 애들은 빨리 자라는군.’

나는 하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어쨌거나, 소풍을 떠나고 있었다는 것은 완벽한  오해.
여관에 있는 여자들의 반응을 봐서는 다들 내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했다.

‘이놈의 인기란.’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 뿌듯한 감정이 치솟아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신체는 원래 정신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었다.
내 다리 사이에 붙어 있는 물건은 급속도로 부풀어 올랐고, 하얀이의 몸을 찌르고 있었다.

“헤에?”

하얀이가 나를 올려다 보며, 묘한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이 감동적인 상황에 찬물을 뿌릴 수는 없는 노릇.

-비밀.

나는 하얀이에게 몰래 전음을 보냈고, 하얀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갑자기 다른 세계라니….그것보다 당신이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줄은 아는 겁니까?”

로잘린이 화가 난 표정으로 나를 향해 쏘아붙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내가  세계에 있던 것도 아니고,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뭐란 말인가.
내 뻔뻔한 표정을  로잘린이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드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로잘린은 대충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을 빠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흐응…제국이 압박을 해왔다는 말이지?’

로잘린은 꽤나 심각한  상황을 설명했지만, 나는  입지가  정도로 커졌구나 하는 감상만을 느낄 뿐이었다.
솔직히 이시디나 왕국이 어떻게 되든 나와 큰 상관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일단은, 알겠습니다. 저로 인한 문제는 제가 차차 해결하도록 하지요.”
“아니, 그런 말로 넘어갈 일이…”
“공주님께도 제가 잘 말하겠습니다.”
“이봐요!!”
“….아니, 나는 왜?”

나는 로잘린의 말에 대충 그렇게 대답하고는, 이내 그녀와 트리샤를 여관 밖으로 쫓아 보냈다.
 모두 나의 사정거리에 있는 여자들이긴 했지만, 오늘은 어째 하얀이에게 봉사를 해주어야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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