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나를 팔아라
“….안색이 좋아 보이네요?”
“뭐, 문제라도 있나요?”
나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공주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드미트리의 성에서 니스로 돌아온 이후로 매일 같이 꿈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귀환 첫 날 하얀이를 시작으로, 데이나와, 성녀, 여급까지 돌아가며 예뻐해 준 탓에 내 기분은 날아갈 듯 했다.
‘아, 물론 성녀는 아직 미개봉 상태지만 말이야.’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성녀를 떠올렸다.
아직 정조대를 풀지 않았음에도, 그녀와는 다른 방법으로 밤을 즐겼기 때문이었다.
성녀 또한 점점 더 항문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해졌기에, 그 맛이 조금씩 깊어지는 중이었다.
“….큼.”
내가 헤실거리는 것을 본 공주는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나도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기에, 다시 진지한 얼굴로 공주를 바라보았다.
“걱정이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누구 덕분에요.”
공주는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대충 이야기를 듣기로는 왕실까지 불려갔다가, 내가 귀환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급하게 니스로 내려온 것이라고 했다.
눈 앞의 아리따운 여자가 날 위해 그 먼 길을 달려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을 수 밖에.
나는 짜증이 묻어 나오는 공주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공주가 다른 이야기는 들을 것도 없다는 것처럼 나에게 그간의 정황을 묻기 시작했다.
나는 대충 데안, 아니 드미트리와 있던 일들을 이야기 해주었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공주의 표정은 어둡게 변해가고 있었다.
“결국, 그 자가 그런 짓을…”
“어라? 알고 있었습니까?”
나는 공주의 반응에 의아한 표정으로 그렇게 되물었다.
그녀의 말투가 꼭 데안이 마족이었다는 것을 미리 감지하고 있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공주와 실비아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녀가 데안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데안의 일은 실비아에게는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끔찍한 기억이었고, 전에 나와 이야기 할 때까지만 해도 실비아는 공주에게조차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었다.
“당신이야말로 어떻게 알고 있었죠?”
공주가 눈을 번쩍이며, 나를 향해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한 말에서, 이미 이쪽이 대안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었다.
“저야, 뭐 이런 저런, 여차저차한 과정을 통해 알고 있었죠.”
대답하기 싫다는 뜻을 밝히자, 공주의 미간이 더욱 좁아지는 것이 보였다.
어차피 자신이 물어 봐야 대답을 해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파악한 공주는 한숨을 내쉬며 조금 더 실용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그 자가 마왕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아마도요.”
나는 공주를 향해 그렇게 대답했다.
애초에 드미트리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내 전임인 로하임 백작 때문이었으니까.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내 대답에 공주의 표정이 심각해지는 것이 보였다.
“걱정할 거 없습니다. 어차피 그 자는 죽었으니까요.”
“…..지금 상황이 어떤 줄 알고?”
공주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드미트리가 죽은 것은 다행인 일이었지만, 그로 인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소리였다.
아마도 제국과 이웃 왕국들에서 이시디나 왕국을 압박해 오는 것 때문인 듯싶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왕국의 귀족 둘이 연달아 마왕의 수하임이 밝혀진 상황이잖아요! 당장 죽였다고 땡이 아니란 말입니다!”
나는 공주의 말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솔직히 내가 마왕의 수하를 심어 놓은 것도 아니었기에, 나한테 화낼 일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밝혀낸 것이 나였으니, 아예 관련이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게 뭐라고. 대신 왕국에는 제가 있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공주가 얼굴을 붉히며 나에게 소리쳤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공주를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가 자신을 보고 웃자, 공주의 얼음 같은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확실히 표정이 있는 쪽이 보기 좋네요.”
나는 공주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무표정한 그 얼굴보다는 찡그린 지금의 얼굴이 더욱 매력적인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지금 당신의 농짓거리를 받아줄 여유 같은 건 없습니다!”
하지만 공주는 내 칭찬을 발로 걷어 차 버렸다.
나는 그런 공주를 보며 뺨을 긁적거렸다.
“그거, 저를 팔아먹으면 되는 일 아닙니까?”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겁니까?”
공주가 더는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쏘아붙였지만, 나는 그녀의 말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이 대화의 승자는 나로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제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습니다만, 저는 현자의 제자이자, 여신의 충실한 종이며, 또 니스를 구한 영웅이지요. 거기다 로하임 백작이라는 마왕의 수족을 밝혀낸 자이며, 마족 또한 죽인 자입니다.”
“….지금 공치사를 하는 건가요?”
공주가 한 풀 꺾인 기세로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어쨌거나 내가 벌인 일들은 왕국의 입장에서는 백 번 감사를 표해도 모자랄 일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고작 공치사나 하자고 그녀에게 그 말을 꺼낸 것이 아니었다.
“답답하시네요.”
“….뭐라구요?”
공주가 눈썹을 치켜 뜨며 나를 노려보는 것이 보였다.
“그러니까 제 말은, 그 이력들을 팔아먹을 권리를 이시디나 왕국에 드리겠다는 말 입니다. 마침 잘 됐지 않습니까? 왕국은 그 옛날 용사가 세운 나라이고, 거기에 다시 나 같은 존재가 나타났다는 건 충분히 먹힐 이야기일 텐데요?”
내 말에 공주의 눈이 커지는 것이 보였다.
원래부터 머리가 쌩쌩 잘 돌아가는 여자답게, 지금 내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달은 것이었다.
제국과 여타의 왕국들이 이시디나를 공격하는 명분은 마왕에게 틈을 내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왕국들은 손가락만 빨고 있었을 뿐, 어떠한 도움조차 주지 않은 상태였다.
왜냐하면 바로 내가 그 모든 일을 벌인 원흉이자, 해결한 장본인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공주에게 내 영웅담을 퍼트릴 것을 권한 것이었다.
예전 용사가 세운 땅에, 새로운 영웅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그깟 마왕의 졸개 몇 명의 등장보다 훨씬 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을 만큼 매력적인 이야기였으니까.
‘어딜 중세 기반 놈들이 현대인에게 여론전을 벌일 생각을 하나?’
나는 우습지도 않은 제국의 수작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방법을 공주에게 일러준 것이었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공주는 가늘게 눈을 뜨며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대충 계산을 때려본 결과 이것이 왕국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한 모양.
하지만 그녀의 계산 끝에 나온 말은 내 마음에 들지 못했다.
“겨우, 그런 소리나 듣기엔 제가 조금 손해를 보는 거 같은데 말입니다.”
나는 공주를 향해 띠꺼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고, 순간 공주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녀 또한 지금은 자신이 약자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공주는 천천히 허리를 숙여 나에게 인사를 했다.
“이시디나 왕국의 제 1 계승권자로서 백작님의 배려에 감사를 표합니다.”
나는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공주를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그녀를 벗게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나는 욕구를 억누르기로 했다.
일단은 그 공주가 내 제안을 받아들일지도 미지수였고, 원래부터 나는 맛있는 음식은 남겨뒀다가 마지막에 먹는 타입이었으니까.
“인사는 일단 받아두도록 하지요. 그것보다, 실비아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요.”
“….그럼, 실비아를 들여 보내 드리지요.”
내 말에, 공주가 싱긋 웃으며 그렇게 대답을 했다.
하지만 웃고 있는 그녀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 생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한 듯한 반응.
나는 그런 공주의 표정에 자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며,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냥, 지금 딸 걸 그랬나?’
**
“….데안은 어떻게 됐습니까?”
공주가 나가고, 이내 실비아가 방으로 들어왔다.
실비아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데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한 번 잤던 여자가 내 앞에서 딴 남자의 이름부터 꺼내는 것이 조금 서운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데안에 대해 품고 있던 분노를 생각하면 충분히 용인해 줄 수준이었다.
“죽었습니다.”
“….죽어요? 그 자가요?”
내 말에 실비아는 도저히 못 믿겠다는 얼굴로 그렇게 되물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다른 이가 그렇게 말했다면 실비아는 데안이 죽었다는 사실을 끝까지 믿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천족으로 오해를 받는 중이었고, 적어도 이 세계의 천족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존재 같았다.
“하하…이렇게 허무하게….”
실비아는 바닥에 털썩 주저 앉은 채로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두 눈이 텅 빈 것처럼 까맣게 가라앉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텅 빈 두 눈에 금새 투명한 액체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죽도록 원망했던 드미트리가 죽은 것은 그녀에게 나쁜 일이 아닐 테지만, 자신이 직접 죽이지 못했다는 사실이 실비아를 허망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실비아. 그 자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으니까.”
나는 바닥에 주저 앉은 실비아의 뺨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해 주었다.
드미트리가 끔찍하게 죽은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어떻게요? 그가 어떻게 죽었나요?”
“지옥의 업화가 그를 불태웠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그 불길에서 도망치려 했지만, 업화는 그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육신 한 조각, 그리고 피 한 방울까지 타 들어가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실비아.”
내 말에 실비아의 눈이 몽롱하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런 실비아를 이채를 띄고 바라봤다.
진족의 능력을 흡수해서인지 실비아의 몸 내부에 드미트리가 뭔가를 숨겨 놓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천천히 실비아의 몸 한쪽에 뭉쳐 있는 기운을 손으로 툭 건드렸다.
“아아…”
실비아는 묘한 소리를 내며 몸을 부르르 떨었고, 그녀의 머리에 숨어 있던 기운이 빠르게 실비아의 몸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거….여기도 심어 놓았었군.’
기운이 해방되자, 실비아에게서 샬롯과 비슷한 느낌이 풍겨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도 드미트리는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실비아에게도 자신의 피를 감춰 놓은 모양이었다.
“…..보, 본님….저 기분이 너무 이상합니다.”
실비아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마치 샬롯이 내게 처음 안겼던 그 순간처럼, 그녀의 눈에서 욕정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실비아, 여기는 그대가 모시는 이의 처소…”
“아아, 그런 건 상관 없습니다. 제발, 저에게 은혜를…하악…”
실비아는 그렇게 말하다, 다급히 내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이 우악스러울 정도로 내 바지를 벗기고 있었지만, 나는 그냥 그런 실비아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내 내 남근을 꺼낸 실비아가 황홀한 표정으로 그것을 입에 무는 것이 보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공주와 대화를 나누던 공간에서, 그녀의 호위 기사의 입 보지를 사용한다는 것이 꽤나 짜릿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실비아,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허겁지겁 자지를 빨아대는 실비아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아무리 공주가 나와 실비아를 배려해 시간을 만들어줬다고 해도, 이런 상황을 생각한 것은 아닐 것이었다.
아니, 실비아의 증상이 샬롯과 같다면 그저 한 번 하는 것으로 끝날 리 없었다.
즉, 공주가 언제든 다시 방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녀와 하는 순간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후회…같은 건 없습니다.”
나는 나를 올려다 보며 대답하는 실비아의 턱을 붙잡고는 천천히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방금 전까지 내 자지를 빨던 입이었지만,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실비아는 마치 며칠은 물을 마시지 못한 사람처럼 내 침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와 혀를 얽으며, 천천히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