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공주와의 거래
“그래서, 제국의 의도는 뭐지?”
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피는 사신을 보며,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그것이 일단은 관망하려는 것이 황제 폐하의 생각인 듯 하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아직은 마왕의 등장이나 신경 쓸 부분이 많으니까 말이오.”
나는 한결 대화가 수월해진 것을 느끼며 사신을 향해 미소 지었다.
정신을 차린 기사가 사신을 노려보는 것이 보였지만, 살짝 마력을 쏘아 보내자 기사는 황급히 땅을 향해 눈을 내리 깔았다.
“그래, 일반 방관이라…”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사신이 말한 것을 생각했다.
제국의 황제라더니, 꽤나 조심스러운 놈이구나 싶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제국이 당장 뭔가를 벌일 생각이 없다면 이쪽으로서는 안심이었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사신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네 놈이 온 목적은….”
“그것은…”
내 질문에 사신이 자신을 따라온 기사를 흘끔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호위 외에도 감시의 역으로 기사가 붙어 온 모양.
나는 사신의 반들반들한 머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내리치며 말했다.
“지금, 칼 자루 쥔 놈이 누군지 잘 생각해봐야 할 걸?”
“…..당신에 대한 정보 수집. 그리고 가능하다면, 암살이오.”
사신의 말에 방 안의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공주는 물론이고, 실비아나 교장도 상당히 놀란듯 싶었지만, 가장 놀란 것은 당연히 나였다.
“나를? 왜? 방관하겠다며?”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사신을 보며 되물었다.
이야기의 앞 뒤가 제대로 맞지 않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무서운 분이오. 제국이 아닌 이시디나 왕국 따위에서 다시 용사가 출현하는 것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시지. 그리고 말했다시피, 가능하면 시행하라는 명령이었소.”
나는 사신의 말에 흘끔 기사를 바라봤다.
그제야 그가 나를 만나자 마자 다짜고짜 기운을 쏘아 보낸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내가 자신의 실력 아래였다면, 어떻게든 기회를 봐서 암습을 가했을지 몰랐다.
아니, 오만한 제국인의 특성상 대놓고 시비를 걸어 왔을지도 모를 일.
나는 만난 적도 없는 황제에게 열이 뻗쳐 오르기 시작했다.
그냥 조심성만 많은 놈이 아니라, 무척이나 음험한 놈이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감히…나를 노렸다는 거지?’
황제가 보낸 기사가 전혀 위협이 되지는 않았지만, 이건 기분의 문제였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본 사신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래서?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는?”
나는 노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사신을 향해 물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인지, 몸에서 자연스럽게 마력이 흘러 넘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 그것이 회유요. 제국민으로 받아들이라는 명령이었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는 우리 왕국의 백작이에요!”
사신의 말에 즉각 반박을 하고 나선 것은 다름 아닌 공주였다.
나는 묘한 표정으로 그런 공주를 바라봤다.
그녀가 나를 그 정도로 아끼고 있다고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었기 때문.
나와 눈이 마주친 공주가 다급히 내 시선을 피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런 공주에게서 초조함이라는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호오, 이건 또 재미있는 상황이네?’
나는 순식간에 기분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음험한 제국 황제 놈이 내 목숨을 노렸다는 것은 아직도 열이 받았지만, 그 덕분에 얼음장 같던 공주를 공략할 찬스를 얻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군. 조건이나 들어볼까?”
나는 사신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등 뒤에서 공주가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일부러 그 반응을 모른 척 했다.
사신은 희망을 찾은 듯 밝은 얼굴로 나를 향해 자신이 내밀 수 있는 최대한의 조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국의 후작 위를 제안 드리오. 거기다 녹봉은 지금의 세 배. 기본적인 것은 이 정도이고, 원한다면 협상의 여지도 있소.”
나는 비굴하게 웃으며 설명하는 사신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쪽 세계나 저쪽 세계나 돈 많고 힘있는 놈들이 하는 짓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뭐, 나도 나름 출세했다면, 출세했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사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럼, 고민을 좀 해보도록 하지.”
“그러시오! 시간은 얼마든…아니,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유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
나는 사신의 웃는 낯짝을 보며 마주 웃어 주었다.
솔직히 내 목숨을 노린 놈의 아래로 기어들어갈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었지만, 아직은 제국을 이용해 먹어야 했으니까.
**
“설마 진짜로 제국 쪽으로 넘어갈 건 아니겠죠?”
사신들이 나간 교무실 안에는 공주와 나 단 둘 뿐이었다.
공주는 초조함을 감추며, 나를 향해 그렇게 물어왔다.
그녀 또한 스스로 초조함을 드러내는 것이 협상에 불리하다는 것은 알고 있는 모양.
나는 여러모로 애를 쓰는 공주를 보며, 느긋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 될 거 있습니까?”
“….당신, 이 나라의 백작이잖아요. 귀족의 작위를 도대체 뭐로 생각하는 거죠?”
공주가 차가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그렇게 말했다.
귀족의 작위라.
나는 공주의 말에 천천히 내가 만난 이시디나 왕국의 귀족들을 떠올렸다.
아서 오드왈의 경우 나이가 너무 어렸고, 로하임이야 이미 마왕의 수하가 된 상태였다.
결론적으로 남는 것은 오로시우스 후작과 찰슨 자작 뿐이었다.
“글쎄요. 제 안위를 위해서는 나라도 팔아먹을 수 있을 정도의 뻔뻔함을 갖추어야 하며, 또 여자를 따먹기 위해서는 이웃 영지에 금방이라도 전쟁을 벌일정도로 몰염치해야 하는 자리라는 정도는 알겠습니다만.”
내 말에, 공주는 주먹을 꽉 쥐고는 어깨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녀 또한 왕국의 귀족들이 이미 썩을 대로 썩어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으니까.
“귀족은…귀족은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애초에 귀족이란 것은 개개인의 힘이 미약하기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백성들의 권한을 대행하는 존재입니다. 그로 인해 귀족은 백성을 지키고, 그들의 삶을 안정시킬 의무가 있으며, 귀족의 자리에 있으며 얻어지는 모든 것들은 백성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신 또한 로하임 백작의 자리를 이어받은 이상, 그 의무를 지켜야 옳습니다.”
공주는 나를 노려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상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뜻밖의 말에, 신기한 표정으로 공주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사회계약설인가?’
고등학교만 졸업했다면, 다 알고 있는 개념이었지만 설마하니 이쪽 세상의 왕족에게 그 개념을 듣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탓이었다.
꽤나 감동스러운 연설이기는 했지만, 문제는 그 사회 계약설이라는 것이 내가 살던 곳 기준으로는 옛날 고리적에 나온 이야기라는 것.
나는 당연히 공주의 그 낡아빠진 논리를 얼마든 깨뜨릴 수 있었다.
“글쎄요? 좋은 말이기는 합니다만, 당장 이시디나 왕국의 어떤 이가 공주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가던가요?”
“그건…..”
내 질문에 공주는 말문이 막힌 것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당장 다른 이들이 그렇게 행하지 않음에도, 나에게만 그렇게 하라는 것은 억지나 다름 없었다.
나는 답답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공주를 보며,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아쉽지만 아직 내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백성이 권한을 위임했다고 하셨는데, 공주님은 어떻게 백성들에게 권한을 위임 받은 겁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억지입니까? 나는 이시디나 왕국을 세운 용사님의 후계로서 정당한 왕위 계승의 권리자 입니다.”
“물론, 용사가 나라를 세울 때는 백성들이 그에게 동조를 했겠죠. 공주님의 설명대로 그들은 자신의 권리를 용사에게 기꺼이 양도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용사는 그만큼 대단한 존재였으니까요. 하지만 공주님은 뭐죠? 그저 그의 핏줄을 이은 것 외에, 어떤 일을 했다고 백성들이 자신에게 권한을 양도했다고 자신 있게 떠드는 겁니까?”
내 말에, 언제나 올곧던 공주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아무리 깨여 있는 여자라고 하더라도 그녀는 스스로가 왕가의 후계자라고 당연히 여기고 있었을 뿐이었고, 내가 한 말은 그녀에게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궤변이군요. 권력을 얻기도 전에 어떻게 공을 세울 수가 있다는 말이죠? 그건…제가 왕위에 올라서면…”
“하아, 나중을 기약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말도 없는 법이죠. 그리고 그 괴변에 가까운 일을 용사는 해냈지 않습니까?”
나는 공주를 향해 그렇게 말했고, 공주는 분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왕국의 체계를 부정하시는 건가요? 이시디나 왕국뿐 아니라 다른 왕국, 아니 제국도 마찬가지로 혈통승계를 원칙으로 합니다. 매번 백성들이 자신의 대표자를 뽑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까?”
“글쎄요?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공주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신분제 사회에서 자란 그녀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살던 세상은 백성, 아니 국민들이 자신의 대표를 직접 뽑는 곳이었다.
‘물론 그 결과가 이상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나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공주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그녀에게 민주주의니, 선거니 하는 내용들을 떠들 생각은 없었다.
내가 무슨 혁명가도 아니고, 왕정이 살아있는 세계에 굳이 민주주의를 퍼뜨릴 생각 따위는 없었으니까.
내 목적은 그것보다 훨씬 심플하면서도 실체가 있는 것이었다.
“….말도 안돼.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결국은 당신이 이익을 쫓아 제국에 넘어가는 것을 정당화 할 수는 없어.”
공주는 나를 설득하기를 포기한 것처럼 그렇게 소리쳤다.
나는 혐오감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공주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원래 사람은 개인의 이득을 쫓는 존재죠.”
“…파렴치한!”
“오히려 의리나 인정, 그리고 말 뿐인 정의를 떠드는 군주야말로 파렴치 하지 않습니까? 제가 제국에 가는 것이 싫다면, 공주께서도 저에게 근사한 제안을 해 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대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짜증이 난 나는 공주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자, 이 정도면 힌트는 다 줬잖아?’
그리고는 공주가 내밀 제안을 기대하며, 그녀의 아리따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내가 당신에게 뭘 줄 수 있다는 말이지?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아직 공주에 불과하다. 제국처럼 후작의 위도, 그리고 그 대단한 녹봉도 제안할 수가 없다!”
공주는 자신을 놀리냐는 것처럼 나를 향해 분노를 터트렸다.
나는 답답한 표정으로 그런 공주를 보며, 조금 더 노골적인 힌트를 주었다.
“그러니까, 공주만이 제게 줄 수 있는 것을 제안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내 말에 영민한 공주의 눈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분명 내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있음을 눈치 챘다.
공주의 붉은 입술이 달싹이는 것이 보였다.
“나만이….줄 수 있는 것?”
“인간의 욕구란 다양해서 돈만으로 충족이 되지는 않지요.”
공주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느긋한 표정으로 공주가 생각을 할 시간을 주었다.
조금 조바심이 나기는 했지만, 여자경험이 풍부해진 탓에 그 조바심마저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어디 잘 고민해 보라고…’
나는 장고에 들어간 공주를 내버려 둔 채로, 연재창을 열었다.
멍하니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느니, 차라리 뭐라도 이득이 되는 일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으니까.
‘으음…조회수는 그럭 저럭 오케이군.’
벌써 100편이 넘어가고 있었지만, 조회수는 어느 정도 유지가 되는 상태였다.
선작도 차근히 쌓여 나가는 것을 보면, 조만간 8서클 또한 뚫을 수 있을 것.
인간의 한계가 7서클이라고 했으니, 8서클에 올라서는 순간 나는 인간에 한정해서라면,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알았다. 나만이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
내가, 연재창을 확인을 끝내는 것과 동시에, 공주가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런 공주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어디 한 번 맛을 봐 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