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트리샤의 사정
나는 슬쩍 후작을 호위하던 기사단을 보며, 그 전력을 가늠해보기 시작했다.
인원수가 꽤 많아 보이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전장에서 도망치는 패잔병이나 다름 없었다.
아니, 내가 8서클에 오른 이상 패잔병이 아니더라도 이들을 상대하는 것에는 그리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아직 8서클 마법을 사용해 보지는 않았지만, 7서클에 배운 헬 파이어만 하더라도 이들을 세상에서 지우기에는 충분한 위력이 있을 것 같았다.
‘흐흥, 이제 내가 법이고, 진리라 이 말씀이야.’
나는 내 쪽을 노려보는 기사를 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격세지감이라.
이세계에 끌려 오자마자 로잘린의 눈치를 살피며 던전에서 잡일을 하던 순간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건가? 볼 일 없으면, 마차를 치우게!”
오로시우스 후작은 생각에 잠겨 있는 나를 향해 그렇게 소리쳤다.
그리고는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보니, 엉덩이에 맞은 화살이 꽤나 아픈 모양.
나는 오로시우스 후작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앞으로의 일들이나, 왕국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이 놈은 여기서 처리하는 편이 나았다.
기사들이나, 병사들은 죄가 없다고는 하지만 인생이란 게 원래 줄 잘못서면 엿 되는 법이었다.
‘….아니지. 내가 언제부터 이런 식으로 생각했지?’
나는 문득 내가 한 생각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지구에서 생활하던 것과 달라졌다고는 하나, 나는 지금 수십 명의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려고 든 것이었다.
아무리 이곳이 살인이 밥먹듯 일어나는 곳이라고 해도, 나는 그러면 안됐다.
어쩌면 여기가 소설 속일지도 모른다지만, 사람을 그렇게 쉽게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후….”
나는 한숨을 내쉬며, 순간 끓어오른 살욕을 억누르기 시작했다.
냉철하게 생각하자면 여기서 오로시우스 후작을 죽이는 것이 옳았으나, 그건 내 방식이 아니었다.
“후작님, 상처가 이리 중하신데, 어딜 가신다는 말씀입니까?”
나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후작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내 미소에 후작이 불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모르시나본데, 저는 치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후작님의 엉덩이에 난 상처쯤은 말끔하게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됐으니, 그냥 갈 길이나 가게.”
오로시우스 후작은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후작이 지금의 상황을 꽤나 불편해 하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자신은 유리할 줄 알고 뛰어든 전장에서 패배해 도망을 치는 중이었고, 하필이면 그 도주 중에 정적이나 다름 없는 존재를 만난 상황이었다.
후작도 머리라는 것이 달려 있는 이상, 내가 자신을 적대하고 있다는 것 쯤은 당연히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적이라고 생각되는 이가 보이는 선의에 경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나는 나를 경계하는 후작을 보며, 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도 전시 아닙니까? 아무리 후작님과 제 사이가 엿같다고는 해도 같은 왕국의 식구끼리 어려움을 모른 척 넘어갈 수는 없지요.”
“….그냥 가래도!”
후작은 나를 향해 그렇게 소리쳤지만, 나는 손을 뻗어 후작의 엉덩이에 박힌 화살을 붙잡았다.
“컥!”
후작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꽤나 짜릿한 쾌감을 느낀 나는 상처를 살피는 척, 후작의 엉덩이에 박힌 화살을 이리 저리 움직여 보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이거, 깊게도 박혔군요. 후장, 아니 후작님.”
나는 비명을 질러대는 후작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순간 기사 몇몇이 검병에 손을 가져다 대는 것이 보였지만, 그건 내 호구 알렌도 마찬가지였다.
“저, 정령이다!!”
거기다 내 머리 위에 어느 순간부터 붉은 색의 정령이 빙글빙글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마차 안에서 상황을 파악한 데이나가 정령을 내게 보낸 것처럼 보였다.
결국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기사는 천천히 검병에서 손을 떼고는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으잇차!”
“끄힉!!”
나는 일부러 경쾌한 소리를 내며 후작의 엉덩이에서 화살을 뽑아냈다.
덕분에 후작의 더러운 엉덩이가 피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충격이 너무 컸던 걸까?
후작은 단말마의 비명 소리와 함께 마차 바닥에 축 늘어져 버렸다.
한도를 초과한 통증에 의식이 날아가 버린 모양이었다.
‘그리 마음에 드는 놈은 아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지.’
“힐.”
나는 후작의 엉덩이에서 한치쯤 떨어진 곳에 손을 뻗고는 마력을 사용했다.
왈칵왈칵 피를 토해내던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후작을 호위하던 기사도 내가 거짓말을 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상처 치료를 마무리 한 나는 기사를 향해 다가가 그렇게 물었다.
자신의 주인을 도와준 탓인지, 기사는 꽤나 성심껏 내 질문에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
“알렌, 더 서둘러!”
나는 마차를 모는 알렌을 향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가 알렌을 보채는 이유는 간단했다.
오로시우스 후작을 호위하던 기사에게 들은 전황이 생각보다 더 안 좋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출정한 가장 중요한 목표인 트리샤에 대한 이야기까지 들은 상황이었다.
‘용병 여제는 저희와 함께 움직였지만, 적들의 추격을 막기 위해 뒤에 남았습니다.’
트리샤가 후작과 함께 행동한 이유는 뻔했다.
그녀는 돈에 의해 움직이는 용병이었고, 아르카 왕국과의 전쟁에서 후작보다 높은 인물도 없었던 탓이었다.
‘제길, 아직 받을 빚이 있다고!’
그 용병여제가 후작 따위를 살리기 위해 전장에 남았다는 것은 믿기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기사의 증언 말고는 다른 정보도 없는 상황이었다.
기사의 말에 따르면, 용병 여제와 헤어진 것은 불과 6시간 전.
오로시우스 후작의 무리가 꽁지가 빠져라 도망친 것을 생각하면, 꽤나 먼 거리일지도 모르지만 후작의 상태를 생각하면 그리 멀지 않은 곳일 수도 있었다.
“알렌!!”
“….지금 죽어라 달리고 있다고요!”
나는 빽 소리를 지르는 알렌을 보며, 다시 마차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여급과 데이나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지만, 지금은 그녀들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아직 따지 못한 열매가, 맛을 보기도 전에 없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
“대장, 도망쳐요!”
“등신아, 이 상태로 뭘 어떻게 도망을 치냐?”
트리샤는 자신의 앞을 지키고 선 남자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르카 왕국과 교전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 최악으로 흐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실제로도 교전 초기에는 압도적인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실망스러울 정도로 무력하게 밀려나가는 아르카 왕국의 병사들을 보며, 트리샤는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로잘린 년의 명성을 자신이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마탑의 사랑을 받는 그녀에 비교하자면 자신은 고작 용병 따위일 뿐이지만, 전장에서 공을 세우는 것은 그만큼 큰 일이었으니까.
‘씨발. 찜찜할 때 물러섰어야 했는데.’
트리샤는 하나 둘 쓰러지는 자신의 동료들을 보며, 그렇게 지난 일을 후회했다.
그녀에게도 한 번의 기회가 있기는 했다.
아무리 왕국의 전력이 아르카 왕국에 비해 강하다고 하지만, 전장의 상황은 너무 이상할 정도로 잘 풀려가고 있었으니까.
트리샤는 계속해서 도망치기만하는 아르카 왕국 놈들을 보며 찜찜함을 느꼈고, 잠시 전열을 가다듬어야할 필요성을 느꼈었다.
하지만 전장의 총 책임자는 오로시우스 후작이었고, 후작은 트리샤의 말에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한창 전공을 세우는 와중에 태클을 거는 말이 달가울 리 없었던 것이다.
결국 트리샤는 후작을 말리지 못했고, 이시디나 군은 아르카 군을 추격하며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하긴, 그 아르카 놈들이 작전 같은 걸 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트리샤가 적극적으로 후작을 말리지 못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상대가 작전 따위는 없이 닥치고 돌격만을 해 오는 아르카 왕국이라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선전포고를 한 적은 없어도, 이시디나 왕국과 아르카는 종종 국지전을 벌였고 그 때마다 아르카 왕국의 군인들은 미친 놈들처럼 왕국군에 달려들기만을 반복해 왔었다.
그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처럼 목숨을 내다 던졌고, 왕국군은 조금 더 우아한 방식으로 놈들을 유린해왔었다.
그것이 왕국이 아르카를 깔 본 이유였고, 왕국인들이 아르카 놈들을 야만인이라 부르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런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트리샤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물들이 개입했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전략의 패배였다.
왕국군은 트리샤 놈들이 그랬던 것처럼 승리에 취해 적진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었고, 후위에서 나타난 마물들의 공격에 그대로 혼란에 빠져 버렸다.
그때까지 도망만 치던 아르카 놈들은 기세가 바뀐 것처럼 왕국군을 몰아 붙이기 시작했고, 앞 뒤에서 동시에 공격을 당한 왕국군은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엘린, 파우라, 세이던, 야도란.’
그 순간, 죽어가던 동료들의 얼굴이 하나 둘 트리샤의 눈 앞에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세간에서는 용병이 돈에 영혼까지 파는 놈들이라 욕하지만, 그들 또한 인간이었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술을 마시며, 같이 전장을 돌던 인간들이 서로에게 어떤 유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용병 여제라는 허명까지 얻은 트리샤는 그런 인간들이 주위에 셀 수 없이 많았었다.
트리샤가 죽을 자리임을 알고도 후미에 남은 것은 그런 이유였다.
전장에 수많은 동료들이 죽어 널부러져 있는 와중에, 혼자 목숨을 구걸하겠다고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굳이 후작이 그녀에게 협박에 가까운 명령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그 전장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크아아악!!”
“제이크!!”
하지만, 트리샤는 그게 옳은 일이 아니었음을 다시 몬스터 부대를 만난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죽는 것은 상관 없었지만, 자신을 따라 살아남은 용병들까지 죽일 권한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전장을 바라보던 트리샤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생 같은 용병 하나가 쓰러지는 것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괜히 그녀가 용병여제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은 비참한 절망감에 휩싸여 있었지만, 그녀의 몸은 섬전 같은 빠르기로 동료의 몸에 칼을 꽂아 넣은 몬스터를 향해 쏘아져 나가고 있었으니까.
트리샤의 칼 끝이 미노타우르스의 목젖을 정확히 뚫고 들어갔다.
“음머어어어!!”
소 대가리를 달고 태어난 괴물은 그 생김새에 어울리는 울음소리를 내며, 그렇게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트리샤는 자신이 물리친 마물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바닥에 쓰러진 자신의 동료를 껴안았다.
도끼가 어깨에 박힌 것이 성녀가 이 자리에 나타나도 살리기 어려울 듯 보였다.
“쿨럭. 누, 누님….울지 마요.”
제이크라 불리는 용병은 트리샤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말을 할 때마다 제이크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트리샤는 제이크의 몸을 껴안은 채로 오열했다.
아직도 수 많은 용병들이 살아남아 그녀의 곁을 지키며 싸우고 있었지만, 트리샤는 당장 죽어가는 동료 하나만을 생각할 뿐이었다.
“제이크, 말 하지마! 어떻게든 살아야지!”
“…흐흐, 살긴 뭘 어떻게 살아요. 나 말고 다른 놈들이나 살려 봐요.”
“…..제이크! 이 병신아! 왜 그딴 소리를 해?”
“이 정도면 여신님이 와도 못 살려요. 쿨럭. 누님, 이러지 말고 빨리 애들 데리고 튀어요.”
제이크는 점점 더 흐려지는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며, 트리샤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나마 트리샤에 비해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지만, 이미 멘탈이 박살 난 트리샤는 제이크의 충고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래도, 난 안 아쉬워. 큭. 누님하고 보낸 그 뜨거운 밤이…기억나네요.”
“…씨발. 살아. 살아나면, 몇 번이든 대줄 테니까!”
트리샤는 제이크를 향해 그렇게 소리쳤다.
아주 어릴 때부터 용병 생활을 했던 트리샤는 여러 명의 남자와 동침을 했었다.
목숨을 걸고 싸우고 돌아온 뒤의 스트레스를 푸는 것에는 그만큼 괜찮은 일이 또 없었으니까.
굳이 트리샤 뿐 아니라 대부분의 용병들이 문란한 성생활을 즐겼고, 그건 그들이 업신여김을 받는 또다른 이유였다.
“…아, 그건 좀 아쉽네.”
제이크가 피식 웃으며, 트리샤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어쩔 거요! 누님? 빨리, 명령을!!”
주위에서 마물 하나를 막아낸 남자가 트리샤를 향해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트리샤는 멍한 표정으로 남자의 등을 바라봤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녀는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신이시여, 아니, 그 누구든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트리샤는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간절히 빌었다.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 없었으니까.
어쩌면 그녀에게 용병여제라는 칭호는 너무나도 무거운 짐이었을지도 몰랐다.
나름 평화를 유지하던 대륙에서 그녀는 꽤나 유능한 리더였지만, 이런 엿 같은 상황에서는 최악의 리더였으니까.
“매직 에로우!”
그 순간, 트리샤의 눈앞에 기적이 일어났다.
아니, 지금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는 인물이 기적처럼 나타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