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트리샤 구출전!
‘씨바, 까딱하면 늦을 뻔 했네.’
나는 멀리 보이는 트리샤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다행히 아직 트리샤는 멀쩡한 상황.
알렌의 마차에 타고 있었다면, 꼼짝없이 늦어버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조바심이 난 나는 마차에서 내려 일행보다 빠르게 전장에 도착했고, 그것이 트리샤를 살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괜찮아요?”
나는 트리샤의 앞을 막아서며, 그렇게 말했다.
당장 내가 날린 마법 화살에 마물 하나가 머리가 뚫린 채로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미노타우르스를 비롯해 소설에서나 보던 온갖 종류의 마물들이 주변에 잔뜩 있었지만, 조금도 쫄릴 이유는 없었다.
“….여, 여기는 어떻게?”
“구하러 왔죠. 그게 제자된 도리 아니겠습니까?”
나는 트리샤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물론 상큼한 미소를 머금는 것은 잊지 않았다.
멍한 트리샤의 표정을 보자, 나름 내 미소가 먹혀 들어간 모양.
‘이 정도면 백마 탄 왕자님 아니겠어?’
“….도망쳐. 여기서 빨리. 다들 도망쳐!!”
내 웃는 얼굴을 본 트리샤는 그제야 뭔가가 떠오른 얼굴로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목소리에 용병대가 반응하듯 천천히 몸을 빼려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마물들도 병신은 아니었고, 그런 용병대의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너도, 너도…빨리!”
트리샤는 나를 향해 그렇게 소리쳤다.
아마도 내가 합류했다고 해도, 이 전장에서 살아남기 힘들거라고 생각한 모양.
그녀의 그런 반응에 자존심이 살짝 상하는 것을 느꼈지만, 생각해보니 트리샤는 내 힘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 힘이 얼마나 대단한 지는 사실 나도 정확히 몰랐다.
‘매직 에로우를 써서 그런 건가?’
고작 나타나서 쓴 마법이 매직 에로우라니,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등장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다급했고, 나로서는 가장 손에 익은 마법을 사용한 것뿐이었다.
더군다나 용병들과 마물이 뒤섞여 있는 상황에서는 매직 에로우 말고는 딱히 사용할만한 마법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매직 에로우!”
오기가 생긴 나는 다시금 눈 앞의 빛의 화살을 만들어 냈다.
트리샤에게서 절망감이 가득한 기색이 흘러 나오는 것이 보였지만, 내 마법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매직 에로우! 매직 에로우! 매직 에로우! 매직 에로우! 매직 에로우! 매직 에로우!”
순식간에 내 주위에 빛나는 화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랬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말에, 나는 그저 8서클을 뚫은 상태만으로는 안심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쇼핑 타임을 가졌다.
목숨이 언제든 날아갈 수 있는 전장으로 향하는데, 그깟 조회수를 아껴 놓을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잡화상을 둘러보던 도중 눈에 띈 것이 바로 [다중영창]이었다.
나는 별 다른 고민 없이 다중 영창을 구매했고, 그 결과 지금처럼 동시에 여러 마법을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마, 말도 안돼…”
트리샤는 내 주변에 나타난 수 많은 빛의 화살들을 보며 멍청히 중얼거렸다.
꽤나 만족스러운 반응에 나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화살들을 날려보내기 시작했다.
원 샷, 원 킬.
고작해야 1서클 마법에 불과했지만, 내가 만든 매직 에로우는 조금 특별했다.
상대가 어떤 마물이든 상관없이 한 방이면 이 세상과 하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마물들이 하나 둘 쓰러져 가는 것을 보며, 계속해서 빛의 화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매직 에로우! 매직 에로우! 매직 에로우! 매직 에로우! 매직 에로우!”
그렇게 만들어진 화살들은 다시금 마물들을 향해 쏟아졌다.
나는 그런 전장의 상황을 살피며, 왜 이시디나 왕국의 군대가 힘없이 밀려 버렸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물은 사람과 달리 두려움이 없었다.
주변의 마물들이 마법에 목숨을 잃어가고 있음에도, 놈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용병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대.
그것이 나름 자부심이 넘치던 이시디나 왕국이 순식간에 패배한 이유였던 것이다.
“누님, 이 분은 누굽니까?”
내 덕분에 여유가 생긴 용병 하나가 트리샤에게 다가와 그렇게 물었다.
이만하면 꽤나 멋진 등장이라고 자부하고 있었기에, 나는 트리샤의 대답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내 제자.”
“예? 그게 무슨!”
“내 제자라고…”
하지만, 용병 여제는 말 주변이 없는 것인지, 정확한 팩트만을 부하에게 이야기할 뿐이었다.
덕분에 김이 빠진 나는, 트리샤를 향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빨리 부하들이나 빼요!”
“….어?”
“걸리적 거리니까, 다들 나오라고 하라구요!”
내 말에 용병이 나를 험상 궂은 눈으로 노려보는 것이 보였다.
평생 칼밥을 먹고 산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걸리적거린다는 말이 꽤나 모욕적으로 들렸던 모양이었다.
‘그러게 엄마가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몸이 고생한다고 말 안하디?’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용병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확실히 몸으로 싸우는 놈들보다는 마법사 쪽이 내 적성에 맞는 것을 다시금 느끼는 중이었다.
내 말에 열이 뻗친 용병과는 달리 트리샤는 곧바로 내 말을 따랐다.
“다들 물러서!!”
트리샤의 말에 용병들이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용병여제라는 명성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용병들의 움직임이 아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뒤로 물러서는 용병들의 모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설사 마물에게 등을 내주어 죽게 되더라도, 트리샤의 말을 따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들이 마물에게 죽도록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내가 만든 마법 화살들은 용병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적을 견제하는 중이었다.
‘이만하면 되겠군.’
나는 용병들이 마물들에게서 어느정도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제대로 된 마법을 사용할 순간이 온 것이었다.
“파이어 월.”
파이어 월은 이번에 새로 구입한 마법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고 서클에 오를수록, 낮은 서클의 마법의 가격이 싸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몇 개의 마법 가격이 내 기억보다 저렴해 진 것을 확인했고, 마법 상점의 NPC를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이번 쇼핑에서는 예상보다 많은 마법을 구매할 수 있었고, 솔직히 그 마법들의 성능을 테스트해보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이건…가성비가 쩌는데?’
고작 4서클 마법에 불과하지만, 그 위력은 4서클로 보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불의 장막이 나타났다.
아마도 파이어 월이 4서클에 랭크 된 것은 그저 견제용으로만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었다.
불의 장막을 소환할 수 있지만, 그걸 움직일 수는 없기에 공격용으로는 영 사용이 불가한 마법.
‘하지만…’
나는 용병들과 마물들 사이에 커다란 불의 장막을 소환하고는 마물들의 반응을 살폈다.
아무리 지능이 떨어지는 놈들이라도, 눈 앞의 불이 있으면 피하기 마련인데 놈들은 그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역시!’
내 예상대로 놈들은 마치 부나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타오르는 불길을 향해 제 몸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불의 장벽에 휩싸인 마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일반적인 불길이라면 끊임없이 들이닥치는 마물들에 의해 불길이 잡혔겠지만, 눈 앞의 불의 장벽은 아쉽게도 일반적인 불길이 아니었다.
불의 장벽은 마물들을 태우는 것과 동시에 내 마력을 먹어 치우며 점점 더 몸집을 불려가는 중이었다.
“대체….이게 무슨 일입니까, 누님?”
겨우 살아남아 도망친 용병들이 트리샤를 향해 물었다.
하지만 영문을 모르는 것은 트리샤도 마찬가지.
나는 빠르게 줄어드는 마물들의 수를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대충 상황은 정리 된 거 같은데요?”
나는 불의 장벽을 유지한 채, 몸을 돌려 살아남은 용병들과 트리샤를 바라봤다.
등 뒤로는 끊임 없이 몬스터들을 잡아 먹는 거대한 불의 장막이 피어 오르는 중이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상처 입고 지친 패잔병들이 나를 당황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꽤나 근사한 장면이 나왔다고 생각하며, 만족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마침, 멀리서 알렌이 끄는 마차가 전장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
“뭐가…어떻게 된 거야?”
몬스터들이 아무리 많다고는 하나, 그 수는 유한한 법이었다.
결국 대부분의 몬스터들이 불에 타 죽고 전투가 끝나자 트리샤는 날 향해 그렇게 질문을 던져왔다.
그녀는 도저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이 나와 알렌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는 중이었다.
“뭐긴요. 제가 선생님을 구한 거죠.”
나는 얼이 빠진 트리샤를 향해 그렇게 대답했다.
“그걸 물은 게 아니잖아.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어떻게 인간이 이런 힘을…?”
“잊었어요? 제가 누구의 제자인지?”
내말에 트리샤의 얼굴이 굳어졌다.
물론 내가 현자의 제자라는 것은 그녀가 비아냥거리던 말을 주워 먹은 것이었지만, 이제는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아무리 현자의 제자라고 해도….그 때는 분명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트리샤는 도저히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것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녀와 대련을 할 당시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자면, 당시의 나는 겨우 4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8서클에 오른 상황이었다.
아무리 현자의 제자라고는 해도, 그 강해지는 속도가 비상식적인 것이 사실.
나는 트리샤의 의문을 종식시키기 위해 다시 그럴듯한 거짓말을 늘어 놓았다.
“설마 그쪽만 실력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죠?”
“…..!!”
내 말에 트리샤의 얼굴이 다시 한 번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나는 대련 당시 그녀가 적당히 힘을 빼고 나를 상대했다는 것을 이용해 먹은 것이었다.
“아, 그나저나 부하들이 많이 다쳤네요? 그냥 뒀다가 상처라도 곪으면 큰일인데?”
나는 빠르게 화제를 바꾸기 위해 트리샤의 부하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닌 게 아니라 용병들 대부분이 이런 저런 상처를 달고 있는 상황.
치료 마법 또한 가능했기에, 나는 트리샤의 부하들을 치료해주는 것으로 이 문제를 넘어가려 한 것이었다.
“부탁해.”
트리샤 또한, 자신이 가진 의문보다 부하들이 먼저인지 내가 치료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머리를 숙여가며 그렇게 부탁을 해 왔다.
“힐!”
내 손에서 뻗어나간 따뜻한 빛이 용병의 팔에 난 상처를 수복시켰다.
여급은 병사들의 위중한 정도를 나누는 중이었고, 데이나는 내가 상처를 치료하기 전에 운디네를 이용해 병사들의 환부를 씻기고 있는 중이었다.
알렌은 또 다른 적이 접근하지 않는 것인지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으며, 하얀이는…
“히힛!! 소 대가리! 구멍 뻥!”
죽은 몬스터 사체에 손을 쑤셔 넣고 놀고 있었다.
‘후우…애가 어떻게 자랄지 눈 앞이 캄캄하다.’
분명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것 같았지만, 딱히 하얀이에게 해 줄 말도 없었다.
내가 그녀의 부모도 아니었거니와, 살육이 일상인 세상에서 지구의 상식을 들이밀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여기, 이 사람. 아직 살아 있어.”
그렇게 병사를 치료하며 하얀이를 살피던 와중에, 멀리서 여급이 날 향해 크게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그리고 여급이 살아 있다고 말한 남자는 아까 전 내가 먼저 전장에 도착했을 때, 트리샤가 끌어 안고 있던 남자였다.
그리고 트리샤는 그 남자의 옆에서 손을 꼭 붙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눈에 불똥이 튄 나는 당장 죽을 염려는 없는 용병들을 놔두고는 여급이 부른 곳을 향해 뛰어갔다.
어깨가 반쯤 갈라진 남자가 숨을 쌕쌕 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 살릴 수 있어?”
내가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자, 트리샤가 날 향해 그렇게 물었다.
그녀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그런 트리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더러워지는 중이었다.
“뭐예요? 남자친구?”
나는 트리샤를 향해 그렇게 물었고, 이내 그녀가 고개를 가로 젖는 것을 보았다.
“그냥, 오래 된 부하야.”
트리샤가 부정을 했다고는 하지만, 남자를 대할 때의 그녀의 반응이 다른 용병들을 대할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상황.
나는 어쩐지 질투 비슷한 감정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살릴 수 있는 목숨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하아…살릴 수 있다고는 장담 못해요.”
나는 남자의 상태를 보며 트리샤에게 그렇게 말했다.
혹시라도 트리샤의 상태가 좋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사 놓은 마법을, 엉뚱한 남자에게 쓰게 되었지만 그래도 용병여제에게 빚을 지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 손해만 보는 일은 아닐 것 같았다.
“리커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