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보은 요구
“기적! 기적이다!!”
내가 어깨가 갈라진 남자를 치료하는 것을 본 용병 하나가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리커버리를 쓰는 것은 나 또한 처음이었기에, 나 역시 그 효능에 놀란 것이 사실이었다.
반쯤 갈라진 남자의 어깨가 내 손에서 뻗어나간 빛에 의해 치료되기 시작했다.
아니, 그건 치료라기 보다는, 아예 그의 어깨에 난 상처를 없던 것으로 만드는 것과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빛이 사라지자, 완전히 갈라져 버렸던 남자의 어깨에 작은 흉터조차 남지 않은 것이 보였다.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능력이었다.
‘괜히 비싼 게 아니었군.’
나는 완전히 회복된 남자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무슨 회복 마법이 8서클에 있나 싶었지만, 그 효능이 장난이 아니었던 탓이었다.
상처가 중했기 때문인지, 남자가 바로 의식을 차리지는 못했지만 숨 소리가 편안해진 것이 남은 일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었다.
“…아아, 고, 고마워!!”
트리샤는 남자가 살아난 것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 남자가 살아난 것이 그렇게 기쁜 건가 싶었지만, 어쨌거나 빚을 하나 더 지워둔 셈.
나는 트리샤를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말로만요?”
“….어?”
내 말에 트리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되물었다.
나는 슬쩍 주위의 용병들의 눈치를 살피고는 다시 트리샤를 향해 말했다.
“전에 내기에서 진 빚도 있고, 이번 일도 있고…이거 트리샤 님에게는 받을 빚이 많네요?”
“….내, 내가 뭐든지 할게.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은혜는 갚을게.”
트리샤는 내 말에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런 트리샤의 반응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지라…? 진심이에요, 선생님?”
나는 일부러 트리샤를 향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그 말에 트리샤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어깨가 갈라졌던 남자가 신음 소리를 내며 정신을 차리는 것이 보였다.
“으음…”
“제이크!!”
트리샤의 절절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내 제이크라는 남자가 트리샤를 바라보며 웃는 것이 보였다.
“누님…도망치라니까, 뭐 하러 여기까지 같이 왔어요.”
“무슨 소리야?”
“….죽는 건 나 혼자면 충분했는데.”
나는 제이크라는 남자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죽었고, 트리샤 또한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하긴, 그 어깨의 상처를 생각하면, 그가 그런 오해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살았어. 너, 살았다고.”
트리샤는 제이크에게 그렇게 소리쳤다.
이내, 주변의 상황을 둘러 본 제이크는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돼. 어떻게 그 상처가…기적이라도 일어 난 건가요? 아님 제가 꿈이라도 꾼 거예요?”
제이크는 흉터 하나 남지 않은 자신의 어깨를 보며 그렇게 말했고, 트리샤는 그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감사합니다.”
결국 트리샤에게 설명을 다 들은 제이크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트리샤와 제이크를 번갈아 바라 보다가, 묘한 미소를 흘렸다.
솔직히 제이크라는 놈에게 셈이 났는데, 이 기회에 좀 골려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감사할 것 없어요. 빚은 트리샤 님에게 받을 거니까.”
“…그게 무슨?”
내 말에 제이크는 놀란 눈으로 트리샤를 바라봤고, 트리샤는 괜찮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눈짓을 보냈다.
나는 둘의 그 절절한 관계를 보자 또 괜한 심술이 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 빚을 어떻게 받아야 할까요?”
“…..그, 그건 네가 원하는 대로. 어떤 거라도 좋아.”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트리샤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 여자가 도대체 내가 자신에게 뭘 바랄 줄 알고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것인지 의아했기 때문이었다.
“트리샤 님은 어쨌거나 용병이니까, 이 빚은 몸으로 갚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 그게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 네가 원하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그리고 그 상대가 누구던 가리지 않고 싸울게.”
트리샤는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제이크의 표정은 꽤나 애절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굳이 싸움을 요청할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싸우는 것은 나 혼자서도 충분했으니까.
“아, 뭔가 오해가 있는가 본데, 몸으로 갚으라는 것이 그런 의미가 아닌데요?”
“….뭐?”
나는 당황한 트리샤를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그리고는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살짝 입술을 핥았다.
굳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제이크라는 놈이 조금 더 열이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세계에 와서 많은 여자들을 만나게 되긴 했지만, 커플이 나의 적인 것만은 조금도 변치 않았다.
“그러니까, 한 번 대 주셔야겠습니다. 선생님.”
내 말에 트리샤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내 주변에 있던 데이나와 여급의 몸이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지만, 나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마차 안에서의 일로 그녀들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는 알고 있을 테니까.
나는 온 신경을 트리샤에게 집중했다.
사랑하는 연인의 앞에서 다른 남자에게 다리를 벌려야 하는 여자의 표정을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
“….정말 그걸로 되겠어?”
“예?”
하지만 트리샤의 반응은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진짜, 고작 그걸로 만족하는 거야?”
“…..그게 무슨?”
나는 눈을 깜빡이며 나에게 말하는 트리샤를 보며 일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낄낄. 우리 누님도 아직 안 죽었네.”
“이야, 누님 오랜만에 회춘하겠소. 거기다 제자를 따먹다니, 이게 왠 복이요?”
주변의 용병들이 트리샤를 향해 그렇게 한 마디씩을 던지고 있었다.
더욱이 내가 트리샤와 연인 관계라고 의심하고 있던 제이크 또한 배를 잡고 바닥을 구르는 중이었다.
“아이고, 내가 이 장면 못 보고 죽었으면, 저 세상에서도 억울해서 눈을 못 감았겠네.”
나는 그런 용병들의 반응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트리샤는 얼굴이 빨개져 있었지만, 그건 부하들이 자신을 놀리기 때문이지 내가 잠자리를 청한 것 때문은 아닌 듯 보였다.
“…이게 무슨 반응이죠?”
나는 트리샤를 향해 그렇게 물었고, 트리샤는 내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마법사 양반. 용병에 대해 잘 모르나 본데, 여긴 이놈 저놈 다 몸 비비면서 살아남는 법이거든. 아마 여기서 누님과 안 잔 놈을 찾는 게 더 어려울 걸?”
나는 내 어깨에 팔을 걸치며 말하는 용병을 노려봤다.
그제야 내가 마물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억이 난 용병이 다급히 몸을 사리며 물러났지만, 대부분의 용병들은 나를 가엽다는 표정으로 보는 중이었다.
“….그럼, 설마 저 여자 용병도?”
나는 살아남은 용병대원 중에 남은 여자 용병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고, 이내 그 여자 용병이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게 뭔….’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용병들을 바라봤다.
그들이 서로 구멍 동서 관계라는 것이 충격적이기는 했지만, 트리샤가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까지 섭렵했다는 것 보다는 덜 충격적이었다.
짐승에 가까울 정도로 문란한 성생활을 하는 직업이라니.
아마 사춘기 남자애들에게는 꿈의 직업이 아닐까 싶었지만, 까딱하면 목숨이 날아가는 것을 생각하면 실제로 용병이 될 만한 인간은 몇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지…’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트리샤를 그녀를 따먹기 위해 전장까지 달려오는 노력을 했건만,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내가 내기에서 이긴 순간 한 번 대 달라고 했어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다리를 벌렸을 것 같았다.
그간의 노력이 억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먹지 않을 것도 없는 일.
나는 어쩐지 손해를 본 것 같은 기분을 억지로 씻어내며 트리샤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대답은?”
내 말에 용병들이 휘파람을 불어대며, 트리샤를 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트리샤가 흘끗 노려보자, 그 휘파람 소리는 금새 사라져 버렸다.
“…나야…뭐, 상관은 없는데.”
트리샤는 민망한 표정으로 내게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런 그녀의 대답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딱히 경험이 없는 처녀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조금 김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었던 탓이다.
“본 백작님!!!”
그때, 멀리서 알렌이 나를 부르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일단 트리샤에게 약속을 받아낸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알렌을 살피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알렌의 뒤에 뭔가가 질질 끌려 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오래지 않아, 그것이 사람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그러니까, 이게 아르카 왕국 놈이라고요?”
“확실해.”
내 질문에 트리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알렌이 붙잡아 온 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작은 체구에, 거의 헐벗은 듯한 의상.
거기다 하체를 겨우 가리고 있는 하얀색 천이 나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불쾌감을 불러 일으키는 중이었다.
‘이거, 완전 왜구잖아?!’
나는 그제야 왜 이시디나 왕국인들이 아르카 놈들을 야만인이라고 떠드는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거기다 나를 아르카 놈이 아니냐고 물었던 오로시우스 후작의 말이 얼마나 모욕적인 것인지도 새삼 새롭게 느끼는 중이었다.
“…괜히 살려 보냈네.”
“네?”
나는 내 말에 반응하는 알렌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놈은 어디서 잡아 온 거야?”
“아, 그게 경계를 서고 있는데 이 놈이 조심스럽게 이쪽으로 접근하더라고요. 그래서 잡았죠. 저 잘한 거 맞죠?”
알렌은 내 말에 칭찬을 갈구하는 눈빛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대충 알렌을 칭찬해 주고는 녀석이 잡아온 왜구, 아니 아르카 놈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르카 놈들이 마물을 이용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놈들이 나타난 것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죽은 병사들의 갑옷이나, 무기 등은 당연히 돈이 되는 물건이었고, 마물이 한 번 훑고 간 자리에서 그것들을 회수해 가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나저나, 갑자기 왜구라니.’
나는 훈도시라고 불리는 일본 특유의 복장을 입고 있는 아르카 왕국의 인물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아무리 이 세계가 막나가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갑자기 왜구가 튀어 나온 것은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응?”
그렇게 바닥에 쓰러진 왜구를 살피던 나는 놈의 몸에서 익숙한 뭔가를 발견했다.
그건 왜구 놈의 귀에 걸려있는 귀걸이였다.
“이건…?”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놈의 귀에 있는 귀걸이를 빼냈다.
불길한 붉은 빛을 담고 있는 보석이 박혀 있는 귀걸이.
그건 분명 예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물건이었다.
‘그래! 그 미친 엘프 새끼!’
귀걸이를 살피던 나는 순간, 하얀이의 아빠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얀이가 지금도 가지고 있는 귀걸이가 아니라, 공주를 습격할 때 놈이 가지고 있던 귀걸이가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것과 똑같이 생겼었다는 것이 기억난 것이다.
그때도 놈은 마치 지금 아르카 왕국의 놈들이 그런 것처럼 마물들을 이용했었고, 그 귀걸이가 깨지던 순간에 마물들은 통제력을 잃은 것처럼 제 멋대로 날뛰기 시작했었다.
“그러니까, 이 귀걸이가 범인이라는 거네?”
“그게 무슨…”
나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트리샤를 보며, 대충 귀걸이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고작 귀걸이 하나로 그 많은 마물들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이제부터 눈 앞의 놈의 입을 통해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야, 새끼야! 일어나.”
나는 왜구를 똑 닮은 아르카 놈의 뺨따귀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그렇게 말했다.
알렌의 기습에 정신을 잃었던 왜구가, 기겁을 하며 깨어났다.
그리고 빠르게 눈알을 굴린 놈은, 자신이 적의 손에 잡혔다는 것을 깨닫고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야, 뭐 좀 물어보자.”
내가 귀걸이를 들고 그렇게 말하자, 왜구, 아니 아르카 놈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