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살육전
“이런 애까지 데리고 간다고?”
트리샤가 내 일행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미 그녀의 용병대원들은 근처의 도시를 향해 떠난 상황이었다.
물론 용병들이 트리샤의 말을 곧바로 따른 것은 아니었다.
나와 함께 움직이겠다는 트리샤의 말에 약간의 반발이 따르기는 했지만, 그녀가 명령이라는 말을 하자마자 용병대는 불만은 가라앉았다.
그러니까, 트리샤가 나에게 지금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당장 내 일행들을 살펴보자면, D반 소속의 알렌과 데이나, 그리고 여급에 하얀이까지 섞여 있었으니까.
누가 보더라도 전장에 나간다기 보다는 피크닉을 떠나는 것 같은 구성이었고, 트리샤가 거기에 의문을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 애 아니거든?”
하지만 하얀이는 그런 트리샤의 말이 기분이 나빴는지, 미간을 좁히며 그렇게 소리쳤다.
트리샤는 그런 하얀이의 모습이 귀여워 보였는지, 바보 같은 웃음을 흘리며 하얀이를 보다가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굳이 하얀이와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진짜 얘들을 데리고 갈 생각은 아니지?”
“맞는데요?”
“미쳤어? 전쟁터에 애를 왜 데리고 가!”
트리샤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귀를 후비며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트리샤는 하얀이를 애로 치부하고 있었지만, 아마도 일행 중에서 피와 살육에 가장 익숙한 인물은 하얀이 일지도 몰랐다.
‘아, 물론 트리샤도 만만치는 않겠지만…’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냥 둬요.”
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트리샤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솔직히 하얀이보다는 여급이 더 도움이 안되겠지만, 당장 그녀들을 따로 돌려보낼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내 힘 정도라면 이들을 지키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오히려 여급 같은 경우에는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이 더 위험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아…도대체 뭔 생각인지.”
“일단, 교전이 벌어진 곳으로 가죠.”
나는 한숨을 내쉬는 트리샤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
“….진짜 이 정도면 죽으러 가는 거 아냐?”
결국 내 말에 따르기로 한 트리샤는, 그 뒤에 내가 내린 결정에 시시콜콜 잔소리를 늘어 놓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알렌의 마차를 타고 마치 유람이라도 하는 것처럼 전장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마차를 어딘가에 숨겨두고 은밀히 움직이는 것이었지만, 그러자니 여급이 따라 올 수 있을 지가 걸렸던 탓이다.
눈치가 빠른 여급은 내가 마차를 이용하는 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계속 내 눈치를 살피는 중이었다.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어제 봤잖아요?”
“….네가 강한 건 알겠는데. 그래도 이건….”
트리샤는 도저히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트리샤 또한 우리 일행과 아르카 왕국의 병사들과 조우한다 해도 딱히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선 모양이었다.
애초에 이시디나 왕국군이 밀린 것은 생각지도 못한 마물들의 등장 때문이지, 아르카 왕국 병사들이 강하기 때문은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트리샤가 불만을 터트리는 것은 내 움직임이 그녀의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백작님!”
그 순간, 마차가 멈춰서며 알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열고 바깥을 바라보자, 숲의 나무 사이사이에, 아르카 왕국 군이 기다란 검을 꼬나 쥐고 우리 마차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네 놈들은 뭐냐? 정체를 밝혀라!”
이내 마차 앞 쪽에서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당당하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고, 이내 마차를 가로 막은 무리의 대장을 조우할 수 있었다.
아르카 왕국군이 왜구와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다면, 눈 앞의 남자는 게임에서 보던 왜장의 갑주를 걸치고 있었다.
‘아니, 이거 완전히 일본이잖아.’
나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사슴 뿔이 달린 투구를 쓰고 있는 상대를 바라봤다.
전국시대의 것을 빼 닮은 갑주는 꽤나 위압감을 주고 있었지만, 나는 상대를 바라보며 엉뚱한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지구의 국가와 이세계의 국가의 복식이 겹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수학 전공이 아니었기에, 감히 계산할 수는 없었어도 그 확률이 엄청나게 떨어진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세계가 다른 차원의 세계라기 보다는 누군가 지구의 역사를 모티브로 삼아 만들어 낸 곳이라는 것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복식을 보아하니, 이시디나 놈들같은데? 겁도 없이 그 인원으로 오다니 무슨 속셈이냐!”
내가 자신을 보며 골똘히 생각에만 잠겨있자, 사슴 뿔 투구의 남자가 나를 향해 그렇게 소리쳤다.
나는 남자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계속해서 사색을 이어갔다.
내가 있는 이 곳이 가상의 세계인지, 아니면 다른 세계인지는 나에겐 꽤나 중요한 문제였다.
실제가 아닌 허구라면, 조금 더 내가 잔인해져도 괜찮을 테니까.
“어이, 왜 대답이 없는 거지?”
나는 사슴 뿔의 남자에게서 시선을 돌려 알렌을 바라봤다.
놈들이 허구의 존재라면, 그건 알렌 또한 마찬가지.
아니, 알렌 뿐 아니라 내가 지금껏 상대한 모든 여자들도 허구 속의 인물일 뿐이었다.
‘뭔 상관이야. 좋으면 됐지.’
나는 깔끔하게 내 주변의 인물에 대해서는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그들이 허구 속의 인물이든 아니든, 당장 내가 그들을 아끼는 마음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들이 허구 속의 인물이라면, 나는 조금 더 잔인해 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에어 블라스트.”
내 입에서 사슴 뿔 남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마법 주문이 흘러 나왔다.
마치 매직 에로우를 다중으로 펼친 것처럼 주위에 수 없이 많은 마법 화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뭐, 뭣? 마법사?”
나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슴 뿔 남자를 향해 화살 한 발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다른 화살들 또한 나무들 사이에 몸을 감추고 있는 적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큭!!”
사슴 뿔 남자는 그래도 한 가락 하는 인물이었는지, 왜도를 닮은 검으로 내가 쏘아 보낸 마법을 튕겨 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경우는 그와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맞이하고 있었다.
“크아아악!!”
“미, 미친!! 이건 말도 안돼!”
나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화살들이 적들의 몸을 꿰뚫었다.
어떤 화살의 경우에는 한 놈이 아니라, 두 세 놈의 목숨을 동시에 끊어 버리고 있었다.
그는 왜구, 아니 아르카 왕국 놈들이 뭉쳐 있었기 때문이고, 누군가의 몸을 깔끔하게 뚫고 나간 화살은 그 뒤에 붙어 있던 이의 몸까지 뚫고 들어가 버렸다.
“….아, 악마!”
순식간에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의 반 정도가 쓰러지자, 사슴 뿔 남자가 나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감이 넘치던 표정은 온데 간데 없었고, 그의 눈을 가득 채운 것은 자신의 상식을 초월한 존재에 대한 두려움뿐이었다.
“익스플로젼!”
나는 겁을 먹은 사슴 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주문을 외웠다.
순간,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터져버렸다.
내 마법에 의해 눈 앞에서 사람이 죽었지만, 생각보다 감흥은 그렇게 대단치 못했다.
그저, 게임에서 몬스터를 잡았을 때의 기분 정도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괴물, 괴물이다!!”
‘악마에서 괴물인가?’
나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아르카 군을 바라보며, 천천히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다시금 생성된 빛의 화살들이 도망치는 적군의 등 뒤를 노리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누간가 내 손목을 힘주어 잡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고 보니, 내 손을 잡은 것은 다름 아닌 트리샤였다.
“뭐하는 짓이죠? 지금?”
“….그만 둬. 도망치는 놈들까지 죽일 필요는 없잖아.”
트리샤는 용병이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나는 그런 트리샤를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와서 선생 짓이라도 하려는 건가 싶었지만, 그녀의 뒤에서 나를 바라보는 알렌의 표정 또한 그리 좋아 보이지는 못했다.
‘왜…나한테만 지랄이야?’
사람을 죽이는 게 일반적인 세상이었다.
적국의 병사를 죽인 것은 비난 받을 일이 아니라 오히려 공을 세운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알렌도, 트리샤도, 그리고 뒤늦게 상황을 살피고 있는 데이나나 여급도 나를 비난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건 안타까운 감정에 가까운 얼굴들이었다.
“뭐가 문제죠? 적이잖아요.”
“그래. 아르카 왕국 놈들 죽이는 건 아무 상관도 없어. 너만 멀쩡하다면…”
“그게 무슨…?”
나는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다리가 망가진 것처럼 힘이 빠졌고,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 앉아 버렸다.
나는 그제야 트리샤가 나를 말린 이유를 깨달았다.
나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적어도 내 주위의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나는 정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눈 앞에서 사람의 머리가 터져 나가는 광경이 다시금 재생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런 장면을 보고도 멀쩡할 수는 없는 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머리통을 그렇게 터트린 주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끔찍하게 다가왔다.
‘이렇게는 안돼…’
다행히 아르카 왕국의 사람들은 모두 도망친 상황.
당분간 안전이 보장되어 있기는 하겠지만, 이런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위기감을 느낀다면 상대를 죽이는 것을 망설이지 않을 테지만, 그래 봐야 얼마나 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지 몰랐다.
적군 몇 명을 죽여놓고, 지금처럼 멘탈이 무너진다면 머리가 날아가는 것은 내 쪽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언제나 방금 전처럼 적들이 나에게 겁을 먹고 도망쳐 주지는 않을 테니까.
“괜찮아. 처음 살인을 하면, 다들 비슷한 경험을 하니까…”
트리샤는 바닥에 주저 앉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그렇게 말했다.
마치 계속 이 짓을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 질 거라는 말투.
하지만 나로서는 이 짓에 익숙해지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살육에 익숙해진다면, 혹시라도 지구에 돌아갔을 때 적응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일단은….괜찮은 거 같아요.”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행들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직접 사람을 죽인 참이었지만, 숨을 몇 번 몰아 쉬는 것 만으로도 멀쩡해 진다는 사실이 조금 섬뜩하게 느껴졌다.
‘이대로는 안돼. 이대로는…’
나는 눈을 감고,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애초의 목표는 아르카 왕국군이 이시디나 왕국까지 쫓아오지 못하게 어느 정도 위협을 해 두는 것이었다.
국경 근처에서 부대 몇 개를 몰살시키고 나면, 아무리 닥돌 왕국이라고 해도 조금은 진군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당장 부대 하나를 잡아 먹는 것 만으로도 꽤나 심력이 소비된 다는 것을 느낀 나는 다른 방법을 찾을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그 힌트가 된 것은 죽어 나자빠진 아르카 군 놈들의 복장.
그들의 복식은 왜구와 꽤나 비슷했고, 그렇다는 것은 그들의 문화 또한 왜, 즉 일본과 비슷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였다.
“우리는….아르카 왕국의 수도로 갑니다.”
“뭐?”
내 말에, 당장 트리샤가 반발을 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당장 사람 몇 죽여 놓고 빌빌거리는 내가 적국의 수도로 쳐 들어가겠다는 소리를 하는 것이 정상으로 보인다면 그거야 말로 문제였다.
나는 그런 트리샤의 반응을 짐작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말을 막고는 조금 더 자세히 내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법이란 그야말로 자연법칙을 파괴하는 말도 안 되는 이능이었고, 그 이능은 꼭 공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마법이란 학문은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전쟁이나 전투 보다는 유틸리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효용성의 끝판 왕인 마법이 바로 8서클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뭐, 충분히 그 정도는 지불할 가치가 있겠지.’
나는 눈을 반짝이며, 상점 창에 떠오른 마법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