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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화 〉제국 황제 (125/158)



〈 125화 〉제국 황제

“그래서, 저것으로 이동할 수 있는 인원은 얼마나 되는가?”

이시디나의 왕은 나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제국을 등에 없는 대신들에게 힘 없이 휘둘리기만 하는 왕이었지만, 그도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신하들이 다른 나라의 국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이를 뿌득거리고 있었을 지도 몰랐다.
제국의 심장을 단번에  수 있는 능력에, 국왕은 욕심을 드러냈고 제국 쪽에 붙은 신하들은 당장 반발을 하고 나섰다.

“폐하! 어찌 그런 것을 묻는다는 말입니까?”
“제국의 황궁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해도, 제국에는 무수한 기사와 마법사가 있습니다. 감히 저희의 국력으로는 제국에 맞설 수 없습니다!”

왕은 옥좌를  손을 부들거리며, 그런 신하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모든 일에 무관심한 듯 보였던 왕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으며, 기운 없이 늘어져 있던 그의 수염은 분노로 푸들거렸다.

“닥치시오! 경들은 부끄럽지도 않소? 대체 경들은 이 이시디나 왕국의 귀족이오? 아니면  제국의 귀족이오!”

왕의 호통에 당장 앞으로 나섰던 신하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뒤로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당혹감을 읽을  있었다.
아마 지금까지 이시디나 국왕이 저런 모습을 보였던 적이 없었기에 느끼는 당혹감.

‘이거 완전 명나라하고 조선이네.’

마치 조선의 왕이 그랬던 것처럼, 이시디나 왕국의 국왕은 대국에  붙어 있는 신하들을 보며 좌절했을 것이다.
아니, 그건 그가 국왕에 오르기 한참 전부터 반복되어 온 일일지도 몰랐다.
그런 상황이 꼭 이시디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으니, 어쩌면 국왕은  것을 바꿀 의지를 잃어버렸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제국의 심장을 겨눌 비수를 손에 넣자, 국왕은 그 태도를 바꾼 것이었다.

“대답하라. 본 백작. 저것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인원이 이동할 수 있는가?”

제국 쪽에 빌붙은 귀족들을 입다물게 만든 국왕은 다시 한 번 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순간 대전 안의 모두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제국에 빌붙은 이시디나의 귀족들도, 또 다른 이권을 보고 눈이 돌아간 귀족들도, 그리고 그 얼음장 같던 공주도.

‘아니, 근데 너희는 왜 그렇게 보는 거야?’

나는 침을 꼴깍이며 나를 바라보는 알렌과 트리샤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마차 덕후인 알렌이나, 용병인 트리샤는 당장 제국을 무너뜨린다고 해도 그리 큰 이득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위기를 탄 것인지,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안타깝지만…그리 많은 인원은 옮기지 못합니다.”

나는 국왕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와 동시에 제국 쪽의 귀족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국왕파 귀족들은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나는 원한다면 이시디나 군 전체를 제국 중심에 떨굴 능력이 있었다.
텔레포트와는 달리 포탈은 여는 것에  많은 마력이 소비되지만, 이동시키는 인원에는 그리 마력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당장 마차를 포탈로 이동시킬 수 있다는 거 자체가 그를 증명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국왕에게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놨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간단했다.

‘비밀을 공유하기엔 인원이 너무 많지.’

나는 제국 쪽에 붙은 귀족들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도 내가 대단위의 인원을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을 했다면, 그 일이 제국까지 흘러 들어가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을 것이었다.
아마, 제국 쪽에 붙어 있던 귀족들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제국에 연락을 취해 오늘 일을 보고할 것이었다.
아무리 이시디나 왕국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고 하나, 인간은 의외로 관성이라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제국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제국은 이시디나와는 달리 수많은 마법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나처럼 포탈을 열 수는 없더라도 그를 방해할 만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굳이 이쪽의 노림수를 상대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조금  약을 치기로 했다.

“….그런가?”
“네. 그리고 아쉽게도 정확한 좌표가 없으면 포탈을 열 수 없습니다.”

나는 아쉬워하는 왕을 바라보며, 그렇게 답했다.
물론 구라였다.
텔레포트와는 달리 포탈은 대략적인 위치만 알면 언제든 열고 닫는 것이 가능했다.
당장 아르카 왕국의 수도 또한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도를 통해  위치를 추정하고는 포탈을 열었다.
그러니까, 제국의 황성 또한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었지만 제국 쪽에 붙은 귀족들을 속이기 위해 거짓을 말한 것뿐이었다.

‘어차피 내가 어떻게 아르카 왕국까지 간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알렌이랑 트리샤 밖에 없으니까.’

혹시라도 누군가 그 문제를 꼬집는다고 하더라도, 예전에 아르카 왕국의 수도를 가봤다고 하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세계로 끌려 오기 전까지의 내 행적은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물론  아르카 왕국 출신이 아니냐는 논란이 만들어지긴 하겠지만, 제국 황제에게 한 방 먹일  있다면  정도 오명쯤은 써 줘도 될  같았다.

“그건…좀 아쉽군. 하지만, 그대가 왕국을 위기해서 구했구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나는 국왕의 말에 겸손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국왕은 그런 내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하들을 향해 새로운 안건을 내 놓았다.

“아르카 왕국의 침략을 백작이 혼자 해결한 것은 사실이니, 그 보답을 해야 할 텐데 뭐가 좋겠는가?”

아르카 왕국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회의였으나, 갑자기 전쟁이 끝난 상황.
국왕은 대신들이 모인 김에  논공행상을 결정할 생각인 듯 보였고, 대신들은 다시 치열하게 둘로 나뉘어져 설전이 시작됐다.
내 공은 인정하지만 백작이라는 신분을 받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작위를 올리는 것은 과하다는 제국 파와, 이미 권력을 쥐고 있는 제국파를 견제하기 위해 나에게 힘을 실어 주려는 국왕 파의 싸움이 이어졌다.
정작 나는 작위 따위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이 없었기에, 지루한 표정으로 대신들의 설전을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

“갑자기 아르카가  후퇴한다는 말인가?”

제국의 황성.
대륙의 주인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는 황제는 노한 표정으로 자신의 신하들을 향해 물었다.
제국은 이시디나 왕국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이시디나는 아르카의 항복을 본을 통해 전달받았지만, 제국은 아르카 왕국 군이 군을 물리는 것과 동시에 황제에게  사실이 전달되었던 것이다.
이시디나에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포한 제국이었지만, 이미 전투가 벌어진 이시디나와 아르카 왕국의 국경지에는 제국의 마법사들이  시간 상황을 제국 쪽에 전달하는 중이었다.

‘이 기회에 이시디나 놈들을 길들일 생각이었건만….’

이제 막 서른 중반이 된 황제가 이번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제국은 모든 면에서 최고여야만 했다.
하지만 용사의 후예를 자청하는 이시디나 왕국은 그런 의미에서 황제에게 눈에 가시나 다름 없는 존재였고, 이번 기회를 통해 그들을 제대로 길들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예 이시디나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기는 했었지만  혐오스러운 아르카 왕국과 국경을 맞대는 것은 싫었기에, 적당한 선에서 중재를 하려던 것이 황제의 계획이었다.
그렇기에 황제는 아르카의 후퇴가 더욱 못마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지금 상황을 파악 중입니다만…아직 정확한 정황은.”
“이런 무능한 것들!”

이시디나 왕국의 국왕이 들었다면 기가 막힐 소리였지만, 황제는 진짜로 자신의 신하들이 무능하다고 생각했다.
제국의 신하들이 고작 아르카나 이시디나 따위의 나라의 소식을 빼오지 못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할 정도였다.

“폐하. 아르카 왕국의 이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마침, 대전의 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황제를 향해 말했다.
이시디나 왕국에 제국파가 있는 것처럼, 당연히 아르카 왕국에도 제국에 줄을 댄 귀족들이 넘쳐났다.
그리고 그들  하나는 꽤나 자세한 상황을 제국으로 전달한 것이었다.
황제는 그의 말에 호기심을 보였고, 그는 황제에게 자신이 알게  아르카 왕국의 내부 사정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본. 또 그 놈이라는 말이냐!”

황제는 이를 갈며, 소리쳤다.
가뜩이나 마음에 들지 않던 이시디나 왕국이었다.
하필 그곳에 현자의 제자가 나타났다는 것은 황제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나 다름 없었고 황제는 그를 회유하려 했다.
수 없이 많은 마법사들이 있는 제국이었기에, 현자의 제자 따위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명성을 자신의 아래에 두는 것이 황제의 목표였다.
그리고 황제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남이 가지는 꼴을 못 참았고, 회유가 되지 않으면 그를 죽이라는 밀명을 내렸었다.

‘….그  같은 새끼를 어쩐다?’

황제의 이마에 힘줄이 툭 불거져 나왔다.
그건 얼마  황제가 겪었던 일 때문이었다.
회유, 또는 암살을 명령해 보냈던 사신이 갑자기 제국으로 돌아왔고 그는 곧장 황제를 알현을 요청했다.
황제는 무슨 일인가 싶어 그 사신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끔찍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사신은 계속해서 황제에게 이시디나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을 하다가, 기회를 틈타 황제의 암살을 기도했다.
물론 미수라고도 말하기 뭐할 정도로 어설펐기에  칼 끝이 근처에도 닿지 못하기는 했지만, 황제로서는 생에 처음으로 자신의 수하가 반기를 드는 것을 경험한 것이었다.
당연히 사신에 대한 치밀한 조사가 이어졌지만, 그 어디에도 그가 반기를 들거나 황제의 암살을 기도할 이유는 나오지 않았다.
황제는 그가 만난 본이라는 자를 의심했지만, 딱히 증거를 찾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아르카 왕국에서 온 소식에 따르면, 그 자가 공간 이동을 하는 마법을 사용할  있다고 합니다.”
“공간 이동? 텔레포트 말이냐?”

황제는 이어지는 보고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륙을 지배하는 이답게, 황제는 텔레포트 마법의 무서움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덕분에 제국의 마법사들에게 그에 관한 연구를 계속 이어가라고 명해둔 상태였지만, 그럴듯한 성과는 볼 수 없었다.

“그것이, 정확히 텔레포트인 줄은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아르카의 수도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은 사실이라고 합니다.”

송구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신하를 보며 황제는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고작  조그만 나라의 놈이 자신이 그렇게 가지고 싶던 마법을 얻었다는 것이 황제에게는 참을 수 없는 질투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이었다.
더욱이, 아르카 국왕이 그것 때문에 항복을 한 것이라면 제국 또한 완벽히 안전을 장담할 수 없기에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아르카 왕국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이어, 대전으로 뛰어들어온 서기관이 아르카의 오로시우스 후작에게서 온 정보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황제가 그렇게도 궁금해하던 현자의 제자의 텔레포트 능력에 대한 것이었다.

“소수 인원만 이동이 가능하며, 정확한 좌표 없이는 사용 불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회의 결과 본 백작은 후작의 위에 올랐다는 내용입니다.”

황제는 오로시우스 후작에게  정보를 들으며 이를 뿌득 갈았다.
다행히 제국이 위협을 받을 일은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자, 미약했던 두려움마저 분노로 변질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본이라는 놈을 잡아 죽이고 싶었지만, 당장 그를 붙잡을 명분이 없었다.

“폐하. 그 자는 제국에 위험하오니,  참에 제거를 하시는 것이 옳습니다.”

그 순간, 그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누군가 황제를 향해 그렇게 읍소했다.
나직하지만 대전 전체를 감싸는 듯한 힘있는 목소리.
황제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 목소리의 주인공에게로 향했다.

“헤리스 공.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제국 유일한 공작이자,  황제마저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자.
그리고 온 몸은 물론이거니와, 얼굴마저 은색의 갑주와 가면으로 무장하여 그 얼굴조차 아는 자가 없다는 신비로운 존재가 바로 헤리스였다.

“쥐를 잡으려면 쥐굴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 쥐를 끌어들여야 손이 덜 가는 법이죠. 그 자를 제국으로 유인할 수만 있다면 잡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헤리스의 말에 황제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황제조차 헤리스를 함부로  수 없다는 말이 나온 것은 그가 제국의 유일한 공작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국의 모든 일은 헤리스 가에서 이루어진다고  정도로, 그는 빼어난 능력을 지녔으며 때로는 황제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지낭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곳으로 오겠는가? 바보가 아니라면 죽을 자리라는 것을 눈치챌 것인데.”
“탐욕에 눈이 멀게 되면, 죽을 자리로도 기꺼이 기어들어가는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폐하.”

헤리스는 황제에게 허리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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