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0화 〉성녀 구출 (130/158)



〈 130화 〉성녀 구출

‘여긴가?’

공주가 교황의 시선을 끄는 사이, 나는 성녀가 갇혀 있는 감옥의 끝자락에 당도해 있었다.
지하 감옥에서 만난 남자가 가르쳐 준 방향으로 쭉 들어간 나는,  길의 끝에 거대한 철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녀, 듣고 있어요? 이 소리가 들린다면, 어떤 소리든  주겠어요?

나는 문의 안쪽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혹시 모를 함정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철문에 귀를 가져다 대자, 안에서 읍읍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뭔가에 입이 막혀 있는 듯한 소리였지만, 나는 그것이 성녀의 목소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성녀와 대화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
안에 누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몸에 마력을 끌어 올리고는  앞의 육중한 철문을 열기 시작했다.
문을 열자마자 비릿한  냄새가 풍겨 왔다.
감옥 안이 어둡기는 했지만, 이미 어둠에 적응이  나는 성녀가 갇혀 있는 공간의 풍경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안에 있는 것은 성녀와 복면을 쓴 거구의 사내 하나.

"괜찮아요?"

성녀의 옷 여기저기가 찢어져 있는 것이 보였고, 그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 내리고 있었다.
거구의 사내는 손에 채찍을  채로, 갑작스러운 침입자인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채찍에 맞은 상처 외에는 다른 상처는 보이지 않는 상황.

“으읍!!!”

나를 발견한 성녀가 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내 머릿속에 묘한 기시감,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데자뷰 현상 같은 것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어쩐지, 이런 장면을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
하지만, 나는 이내 그 생각을 지우고는 복면의 거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런 개새끼가…”

다친 성녀를 보자 화가 났기에, 나는 굳이 마법을 쓰지도 않은 채, 복면을 쓴 놈의 뺨을 후려 갈겼다.
하지만  덩치가 장식은 아니었는지, 놈은 미동도 않고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놈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내 팔목을 잡아 비트는 것이 느껴졌다.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지만, 나는 곧장 마력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미세한 조절까지 가능해진 마력이 놈의 팔꿈치를 그대로 터트려 버렸다.
복면의 사내는 엉망이 된 자신의 팔을 붙잡고는 바닥을 굴러 다니며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나는 무릎을 꿇은 놈에게 다가가 그대로 놈을 죽이려 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내가 통증을 느낀 것 만으로도 살인에 대한 거부감이 확 줄었던 것이다.

“읍!!”

하지만 내가 놈을 죽이려던 그 순간, 성녀가 비명을 질러대며 나를 바라봤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 성녀가 빠르게 고개를 흔드는 것이 보였다.
죽이지 말라는 뜻이 느껴졌기에, 나는 놈의 머리에 손을 대고는 슬립 마법을 걸었다.
어린애처럼 손을 붙잡고 비명을 질러대던 놈이 바닥에 축 늘어져 버렸다.
어차피 내가 굳이 죽이지 않더라도, 그대로 놈을 내버려 두면 출혈 때문에라도 살아남기 힘들어 보였다.

“괜찮아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나는 채찍에 맞아 상처가 가득한 성녀의 몸에 치료 마법을 걸어 주었다.
그녀의 상처가 순식간에 회복되는 것이 보였지만, 그간 얼마나 시달린 것인지 성녀의 안색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읍읍!”
“아, 깜빡했군.”

성녀의 입에 재갈이 물려 있다는 것을 떠올린 나는, 그녀의 치료를 마치고는 그녀의 입을 막고 있는 재갈을 풀어주었다.

“저 사람, 죽일 필요 없어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말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되찾자마자 성녀가  말은 그거였다.
나는 성녀의 말에 흘끔, 바닥에 쓰러진 놈을 되돌아봤다.
이미 놈의 손에서 흘러나온 피가 감옥의 바닥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아? 지금 저런 놈 걱정을  상황이에요?”
“….저 사람은 시키는 대로 한  밖에 없어요.”

내가 짜증이 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성녀가 날 향해 그를 변호하기 시작했다.
평소의 성녀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놈을 죽이겠다고 날뛰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성녀는 무슨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처럼,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중이었다.
어쨌거나 성녀의 표정이 꽤나 다급해 보였기에, 나는 죽어가는 거구의 사내를 향해 힐 마법을 걸어 주었다.
리커버리처럼 완전한 회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생명의 끈은 이어 놓은 셈.
놈의 구급 처치를 마친 나는 묶여있는 성녀의 몸을 풀어주며 다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일이죠?”
“…..교단 내부의 비밀 서고에 들어갔었어요.”

성녀는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살피고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이야기는 믿지 못할 것들뿐이었다.
데메테르 교단의 역사는 거의 대륙의 역사와 비슷할 정도이다.
그리고 지구의 교황청이 그러하듯, 교단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방대한 정보를 비밀스러운 공간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다.
성녀는 그 비밀에 접근했고, 그를 교황에게 들켰던 것이다.

“고작 그런 일로 이런 짓을 벌였다고요?”
“그것뿐만은 아니에요.”
“그럼 또 뭐가 있나요?”

나는 성녀를 향해 그렇게 물었지만, 어쩐 일인지 그녀는 더 이상의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해요.”

성녀는 내 손을 붙잡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시선이 잠시 바닥에 쓰러져 있는 거구에게 향했지만, 그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자 더는 관심을 두지 않는 느낌이었다.
나는 성녀와 함께 지하 감옥을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 전 나를 불러 세운 남자의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늦지는 않은 모양이군. 여신님의 보살핌이 있으셨던 거야.”

남자는 무사한 성녀를 보며, 진심으로 기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와 눈을 마주친 성녀가 살짝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그런 성녀를 향해 빙긋 웃고는, 어서 나가 보라는 손짓을 할 뿐이었다.

“누구예요, 아까 그 남자는?”
“교황이 될 뻔 했던 분이에요. 비록 최종 선출에서 이번 교황에게 밀렸지만, 지금도 많은 존경을 받는 분이죠.”

나는 성녀의 말에 흘끗 고개를 돌려 감옥 안을 바라봤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그를 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눈빛으로 성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지금은 구해드린다고 해도 나서지 않으실 거에요. 일단 여기부터 벗어나요, 우리.”

나는 성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가 존경을 받건 말건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깨달은 것은 굳이 성녀와 이렇게 뛰어서 도망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감옥 안에 포탈을 열었고, 성녀는 의아한 눈으로  포탈을 바라봤다.

“일단, 상황부터 파악하죠. 들어가요.”

나는 성녀의 등을 떠 밀어, 포탈 안으로 집어 넣고는 곧장  뒤를 따라 들어갔다.
눈 앞의 풍경이 변했다.
내가 이동한 곳은 테나의 영지였고, 그곳에는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테나와 여급, 그리고 데이나의 모습이 보였다.

“가, 갑자기 뭐예요?”
“괜찮아요?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갑작스러운 나와 성녀의 등장에 세 여자가 놀란 표정으로 다가왔다.
재미있는 것은 그래도 같은 곳에 지낸 정 때문인지 테나와 여급이 성녀를 꽤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녀는 손을 들어 그들을 뿌리친 채, 나를 향해 다급히 말하기 시작했다.

“마왕, 마왕의 부활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성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고,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나를 포함한 인원들은 멍청한 표정으로 성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

“그러니까, 고작 1년 정도 남았다는 거죠?”

테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성녀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이미 아르카 왕국의 국왕을 통해 마왕의 부활시기가 가까워졌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성녀는 그보다 더 구체적인 시기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네. 제가 본 책에 의하면 아마 정확할 거에요.”

성녀는 눈을 빛내며 그렇게 말했다.
애초에 성녀가 교단의 비밀 서고에 숨어 들어간 것은 마왕에 관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모두가 아르카 왕국의 갑작스러운 선전포고에 의문을 품었듯이, 성녀 또한 거기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교단의 서고로 들어간 것이었다.
역사라는 것은 반복되기 마련이었고, 그 비밀을 풀지 못하더라도 아르카의 이전의 패턴을 보면 분명 전쟁에 도움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거기서 저는 뜻밖의 책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아르카 왕국이 전쟁을 선포한 이유를 찾기 위해 들어간 성녀는, 그곳에서 뜻밖의 정보를 확인하게 됐다고 했다.
대륙에 마왕이 나타난 것은 저번 용사의 출현했을 때가 세 번째.
그리고 마왕은 121년이라는 같은 주기로 대륙에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기가  찬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었다.

“저는 당연히 교황 성하께 그것에 대해 묻기 위해 찾아갔죠. 그리고, 교황 성하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교황님이 알고 있었다고요? 그런데 왜 그 사실을 공표하지 않았죠?”

테나는 도저히 성녀의 이야기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교황 성하의 말씀으로는 수 많은 예언서들이 존재하는데, 그 예언들을  맹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저는 그분의 눈에서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성녀는 테나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했다.
그건 교황이 의도적으로 마왕의 부활에 대한 정보를 감추고 있었다는 것이나 다름 없는 소리였다.

“그래서, 당신을 가뒀다고요?”

나는 성녀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성녀가 설명한 부분까지만 들으면, 교황이 무리해서 성녀를 가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내가 성녀에 대한 정보를 엿들은 사제들만 하더라도, 이번 일을 통해 불만을 터트리는 중이었고 그건 교황의 정치적인 힘이 약해지고 있음을 뜻했다.

“….그 뒤에도 일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질문에 얼굴을 붉힌 성녀가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분명 뭔가가 있다는 느낌은 드는데, 웬만해서는 말을 해주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성녀가 갇힌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그녀를 향해 조금 더 실용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어쩔 생각입니까?”
“저야말로 묻고 싶은데요? 여신님께서는 다른 말씀이 없으신가요?”

성녀는 나를 향해 그렇게 물었다.
내가 여신의 신탁을 들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잠시 고민스러운 얼굴로 성녀를 바라봤다.
귀찮은 일에 끼어드는 것은 사절이었지만, 교황이라는 놈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음…잠시만요.”

나는 성녀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눈을 감고는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마치 여신과 대화를 주고 받는 것처럼, 눈을 감고는 뭔가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생각보다 연기는 어색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진짜 초월적인 존재와 소통을 하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연재창을 열었고, 독자들의 댓글을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딱히 중요한 이야기는 없는 상황.

‘아….비인기 작의 설움이란.’

마침 알렌에게 싸대기를 맞은 상황까지 연재가 된 탓에, 알렌에 대한 복수 의지를 다시금 다지는나름 유익한 시간이기는 했다.

“여신님께서 응답하셨나요?”

내가 다시 눈을 뜨자, 성녀가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나는 성녀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 힘을 얻어 좋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굳이  같은 일을 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교황에게 다시 가죠.”

나는 성녀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성녀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겨우 빠져 나온 사지에 다시 기어 들어가겠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모르고 있었지만, 교단에는 아직 공주와 알렌이 남아 있었다.
공주야 그 신분을 생각하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다고 모른 척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계획은요?”

성녀의 질문에 나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교황을 갈아치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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