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여신강림?
“그래서, 두 분이 어떤 자세로 사랑을 나눈 겁니까?”
공주는 교황의 질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대충 성녀와의 관계를 꾸며내 둘러대는 중이었지만, 집요하게 자세까지 물어오는 교황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 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건 개인의 프라이버시…”
“아, 그렇다면 더는 하실 말씀이 없다는 거군요.”
“그러니까, 그게 말하자면 조금 부끄럽지만, 서로 다리를 교차해서….”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자 대화를 끝내려는 교황의 모습에, 공주는 다급히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공주가 여자들끼리 사랑을 나누는 방법 따위를 알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교황이 여성끼리의 동성애를 즐긴다는 정보를 듣게 된 공주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건 나름 순진한 인생을 살던 공주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그저 시간을 끌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뿐이라고는 하지만, 그 거짓말이 자신과 그 성녀.
공주는 거짓말을 지어내면서도 수치심을 느꼈고, 그녀의 볼은 자연스럽게 붉어지는 중이었다.
교황은 그런 공주의 반응을 이상하게 받아들인 것인지, 스스로의 고간을 만지며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성녀님은, 은근히 적극적인 타입으로, 제 몸의 구석구석을…”
말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영혼이 더렵혀지는 느낌이었지만, 공주는 교황의 질문에 계속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공주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빨리 본 후작이 성녀를 구하고 자신을 데리러 오는 것 뿐이었다.
“아아! 그런…하아…”
교황은 공주의 말을 들으며, 같이 흥분한 듯한 목소리를 흘려댔다.
공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성적 취향이었다.
순간, 공주를 바라보던 교황의 몸이 바르르 떨리며, 묘한 향기가 그의 방 안을 채우는 것이 느껴졌다.
‘우욱.’
공주는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지만,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교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공주와 눈이 마주친 교황의 표정이 돌변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야릇한 표정으로 공주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차갑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왜, 그렇게 보시죠?”
“공주님의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다만 제 입장에서는 어째서 이런 거짓말까지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교황의 말에, 공주는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 기분이었다.
교황의 말이 그냥 떠보는 것이 아니라, 확신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실수를 한 걸까?’
공주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가장하며 자신이 늘어 놓은 거짓말을 다시 한 번 복기해 봤지만, 딱히 이상하게 들릴만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주는 성녀의 음부에 정조대가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속셈이신지 털어놓으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공주.”
교황은 냉랭한 목소리로 공주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공주로서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는 노릇.
공주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교황은 밖에 대기중인 성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봐라!”
“부르셨습니까?”
교황의 목소리에 문이 열리고, 성기사 하나가 방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공주께서 돌아가신다고 하니, 성 밖까지 안내를 해드려라!”
“교황님, 제 말은 아직 안 끝났….”
교황이 축객령을 내렸고, 공주는 어떻게든 그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교황의 방에 기사 하나가 허겁지겁 뛰어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교황은 뛰어들어온 기사를 향해 그렇게 물었고, 기사는 그런 교황의 질문에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것이, 성녀님이 탈출하셨습니다.”
“뭐라?”
‘해냈어!’
성녀가 탈출했다는 소식에, 공주는 교황 몰래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교황도 머리가 있는 이상, 이 사건에 공주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공주님, 이건 해명을 해주셔야 하겠소만?”
“뭘 해명하라는 말이죠?”
공주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교황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공주가 본에게 배운 것은 거짓말뿐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뻔뻔하게 대처하는 본의 모습이야 말로, 공주에게는 큰 깨달음을 주었던 것이다.
‘우기면 돼. 어차피 증거는 없으니까.’
“아무리 공주라고 해도, 이 일은 그냥 넘어가지는 못할 것이오.”
하지만 상대는 그 교황이었다.
교황은 공주를 거의 협박하다시피 그리 말했고, 이내 기사들에게 공주를 붙잡으라 명했다.
아무리 교황의 말이라지만 공주를 잡으라는 명령에 성기사들은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는 잠깐 뿐이었다.
“공주님, 잠시 실례를 하겠습니다.”
“지금, 뭐하는 짓이죠? 아무리 그대들이 교단에 속한 이들이라고 하나, 그대들 또한 이 나라의 백성입니다!”
공주는 그렇게 반항을 해봤지만, 성기사들은 이미 교황의 말을 따르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성기사들이 조금씩 공주에게 다가서던 그 순간, 교황의 집무실에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불길할 정도로 검은색의 구멍이 나타났고, 그 안에서 도망친 성녀가 나타난 것이었다.
“공주님?”
성녀는 기사들에게 위협을 당하는 공주를 보며 그렇게 말했고, 이내 그녀의 뒤로 본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네, 네놈은 뭐냐?”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난 성녀와 본을 발견한 교황은 본을 향해 당황한 목소리로 그렇게 소리쳤다.
성녀를 어릴 때부터 봐온 교황은 그녀의 능력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눈 앞에 나타난 이상한 구멍이 성녀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단숨에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
“아, 나 본 후작이라고. 들어봤나 모르겠네?”
나는 교황의 말에 귀를 후비며 그렇게 말했다.
순간, 교황의 눈빛이 의혹으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런 교황을 보며 어깨를 으쓱 거리고는 그가 더 친숙할 만한 내 별명을 말해주었다.
“니스의 성자. 그건 알겠지?”
“네, 네놈이 그 사기꾼?”
“사기꾼이라니. 이건 좀 서운한데? 내가 살린 니스 시민이 몇 명인데, 그런 소리를 해?”
나는 당황한 교황을 보며 그렇게 이죽거렸다.
순간, 눈짓을 한 기사들이 공주를 두고 나에게 달려드는 것이 보였지만, 나는 그 기사들을 향해 가볍게 마력을 분사했다.
허공에 나타난 마력 올가미가, 두 기사의 몸을 옥죄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균형을 잃은 기사들은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이,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교황은 바닥에 쓰러진 기사들을 보며 겁을 먹은 표정으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교황의 몸에도 공평하게 마력을 쏘아냈다.
교황의 육중한 몸이 허공에 굳은 것처럼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들어보니까, 너 아주 썅놈이던데? 어때, 좋은 말로 할 때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건?”
“설마…계획이 이거였어요?”
내 말에 놀란 것은 교황이 아닌 성녀였다.
성녀는 협박으로 교황을 끌어내리려는 날 보며 기가 찬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왜요? 뭐 문제 있습니까?”
“이런 방식이 통할 리 없잖아요?”
성녀가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킬 수 없는 것은, 그 힘이 애매하기 때문이었다.
절대적으로 힘의 차이가 난다면, 그 어떤 상대라도 자연스럽게 굴복하기 마련이었으니까.
“내 이런다고, 사기꾼 같은 네 놈의 말에 넘어갈 거 같으냐! 당장 이걸 풀어라!”
교황은 성녀의 말에 눈을 반짝이고는 나를 향해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다.
그래도 놈을 죽일까 싶었지만, 그래서야 데메테르 교단 자체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될 수도 있는 상황.
‘아, 귀찮은데….’
성녀의 눈치가 보였던 나는 조금 방법을 달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당신, 신을 모시는 자가 참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더군.”
나는 교황을 보며, 아까 전 사제들이 나누었던 험담을 그대로 들먹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자신의 잘못이 까발려지자, 교황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이 보였지만 내 이야기가 끝날 때쯤에는 오히려 자신감을 찾은 표정으로 변해있었다.
“어리석은 놈. 네 놈이 감히 신의 뜻을 어찌 알겠느냐! 어리석은 인간의 눈으로 신의 뜻을 헤아리려는 것이 오만이다.”
“신? 그거 당신 이야기야?”
“당연히 데메테르 여신님을 말하는 것이다!”
교황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당하게 여신을 팔아 먹었다.
나는 그런 교황의 말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성녀 또한 처음 만났을 때는 여신의 존재에 대해 반신반의 하고 있었는데, 교황이라는 작자는 아예 여신 따위는 없다고 믿는 것처럼 보였다.
-로페이즈 교황. 당신의 죄는 더는 묵과할 수 없군요.
나는 교황을 향해 몰래 전음을 보냈다.
당연히 마법적인 처리를 통해 여성스러우면서도 성스럽기까지 한 목소리를 만들어 낸 상태였다.
순간, 교황의 몸이 움찔 거리며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성녀한테 듣지 않았나? 내가 여신과 소통을 할 수 있다고.”
“개 소리. 내가 바보로 보이나? 응?”
교황은 나를 향해 그렇게 소리쳤다.
성녀와는 달리 목소리만으로는 속아 넘기기 어려운 모양.
나는 끝까지 발악을 하는 교황을 보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래? 그럼 직접, 만나고 오도록.”
나는 교황의 머리를 향해 마력을 쏟아 부었다.
아르카 왕에게도 써 먹었던 환상 마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순간, 교황의 두 눈이 죽은 생선의 눈알처럼 뿌옇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으으….”
교황은 그렇게 초점이 없는 눈으로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아마도 지금쯤 여신과 함께 지옥을 여행하고 있을 것이었다.
“괜찮아요?”
교황을 그렇게 내버려둔 나는 공주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네. 그나저나 저게 어떻게 된 거죠?”
공주는 초점 없는 눈으로 어딘가를 보며 떨고 있는 교황을 보며 내게 그리 물었다.
성녀 또한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교황이 무방비로 내 마법에 당한 것이나, 공주나 성녀가 그를 보며 의아해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에게 환영을 보여주는 마법은 6서클이라는 애매한 위치에 있었고, 당연히 이세계의 사람들도 그 마법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환영마법이라는 것이 내가 지금 교황에게 걸고 있는 것처럼 완전히 상대의 정신을 농락할 정도의 수준은 되지 못했다.
원래의 환영 마법은 상대의 신경을 분산시키는 용도로 밖에 쓰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환영을 보고 있는 상대 또한 그것이 마법에 의해 보여지는 환영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진조의 힘으로 강화된 내 마법은 그것들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했다.
마법에 걸린 순간 환영이 아닌 실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뭔가가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여신님께, 이 남자의 혼을 보냈을 뿐입니다.”
나는 능숙하게 설명을 요구하는 공주와 성녀에게 또 다시 거짓말을 했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기는 했지만, 아마도 지금 교황이 겪고 있는 환영을 생각하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니지 않을까 생각되긴 했다.
어차피 신이란 것도 인간의 상상이 만든 산물이었고, 나는 지금 교황의 상상력을 극도로 자극하는 중이었으니까.
“아아!! 죄송, 죄송합니다.”
그 순간, 교황이 갑자기 바닥에 주저 앉아 허공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교황이 어떤 환상을 보았는지는 나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나는 그저 그에게 여신과 징벌이라는 키워드를 주었고, 두려움을 자극하라는 지극히 간단한 암시를 걸었기 때문이었다.
딱-.
내가 손가락을 부딪쳐 소리를 내자, 교황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교황은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중이었다.
“히익!”
나와 눈이 마주친 교황이 다급히 숨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공포에 질린 표정.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뭐, 지은 죄가 많은가 보죠.”
나는 공주의 말에 그렇게 대답하고는 교황의 곁으로 다가섰다.
겁에 질린 교황이 바닥을 기며 뒤로 물러서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런 교황의 모습을 보며, 이제야 대화를 하기 좋은 상태라고 느끼는 중이었다.
“자, 이제 대화를 제대로 나눠 볼까요?”
내 말에, 교황이 두려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