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2화 〉다섯가지 보물 (132/158)



〈 132화 〉다섯가지 보물

“새로운 교황직은 미카스님이 맡아주시기로 하셨어요.”
“미카스라면..?”
“네. 맞아요. 그때 지하감옥에서 만나셨던  분이요.”

나는 성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싶더니, 결국 그렇게 일이 흘러간 모양이었다.
나와 공주가 루케른에 찾아온 지 딱 이틀.
데메테르 교단은 그야말로 대격변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내가 보여준 환상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교황이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밝혔고, 그건  하나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교황과 마찬가지로 온갖 더러운 짓을 저질렀던 교단의 고위층들의 반발이 나타났고, 그들은 교황을 사로잡아서라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는 그나마 아직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하위 사제들의 증언에 의해 밝혀졌고, 그들의 시도는 시작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좌초되어 버리고 말았다.
결국 지도자를 잃은 교단의 인물들은 예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수감된 미카스를 꺼냈고, 수많은 사제들의 지지를 얻은 미카스는 그렇게 임시 교황의 직분을 맡기로 한 것이었다.

“공주는?”
“미카스 님께서 왕국에 도움을 요청하신 문제로 협의 중이에요.”

나는 하루 종일 보이지 않는 공주에 대해 그렇게 물었고, 성녀는 그에 대한 답을 빠르게 해주었다.
임시 교황의 자리에 오른 미카스는 교단 내부의 힘만으로는  상황을 수습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는 이시디나 왕국에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니까 반복만 거듭하던 왕국과 데메테르 교단이 처음으로 손을 잡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 성녀 또한 꽤나 흥분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나는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진 않았다.

‘이시디나 왕국이 남을 도울 처지인가?’

그런 질문을 던져보면, 씁쓸한 미소만 나올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한 국가 내에서 반목하던  세력이 손을 잡은 것은 이시디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일이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마왕의 강림을 앞두고 있는 위기 상황에는 더더욱.

“그리고, 이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성녀는 조심스럽게  앞에 책  권을 내밀었다.

“이게 뭔데?”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책을 바라봤고, 성녀는 이내 그것이 자신이 마왕의 정확한 강림 시기를 알게 된 책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급 흥미가 생긴 표정으로 책을 바라봤고, 성녀는 새로이 교황이 된 미카스의 허락을 받고 교단의 비밀 서고에 있던 책을 어떻게 빼어냈다고 말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미카스 님은 각국에 마왕의 강림에 대한 경고를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성녀는 미카스의 결정에 잘됐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솔직히 데메테르 교단의 경고가 각국에 어느 정도의 경각심을 줄 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미 마왕이 강림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수도 있었다.
당장 아르카 왕국 사건 때의 제국의 움직임만 생각해도 구린 냄새가 풀풀 풍겨왔기 때문이었다.

“아, 그리고 도움이 될 지 모르지만, 그 책에 마왕을 봉인하는 법이 나와 있어요.”
“봉인이라고요?”

나는 성녀의 말에 왜 그걸 지금 말하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성녀는 무안한 표정으로 책을 펼치고는 그 봉인에 관한 문구가 적혀 있는 페이지를 나에게 보여줬다.

-우리는 마왕을 봉인할 물건을 다섯으로 나눠 가지기로 했다.
 힘은 어느 개인이 소유하기에 너무 강력하기 때문이었다.
물건을 다섯으로 나누는 것은 드워프 하렌달의 손길이 필요했다.
하나는 용사인 내가, 하나는 성녀인 아르시온이, 하나는 제국의 황녀인 카밀라가, 하나는 마탑의 주인 브린니가, 마지막 하나는 엘프족의 족장 밀프온이 나눠가졌다.
하렌달의 힘으로 물건을 쪼개었지만, 그 힘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분지 일로 나뉜 물건은 그 주인의 특성을 따라 신비로운 힘을 지니게 되었다.
 자체로 귀한 보물이 되었지만, 우리는 모두 약속했다.
우리는 다시 마왕이 도래했을 때  나눈 물건을 다음 대의 용사에게 아낌없이 건네줄 것임을.

나는 책에 적힌 문구를 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뭔지는 몰라도 일단은 그 물건을 모아야만 마왕을 봉인시킬 수 있는 모양이었다.
어쩐지 게임을 할 때 제일 귀찮은 재료 모으기 퀘스트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당장 마왕의 강림이 1년도 남지 않았다는데 귀찮아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두 개는 확보인가?’

나는 책 속에 나온 문장을 떠올리며, 머리를 굴렸다.
일단 전대 용사와 성녀가 물건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 물건은 이미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 없었다.
전대 용사는 이시디나 왕국의 초대 왕이었고, 그 시기의 성녀 또한 데메테르 교단의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물건은요?”

나는 성녀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머리가 좋은 성녀이니만큼 내가 무엇을 묻는지 모를  없었지만, 성녀는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게, 없어요.”
“예?”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성녀를 보며 되물었다.
특별히 책에 서술까지 해 놓은 것을 보면, 그 물건이 범상한 물건은 아닐 것이었다.
아니, 용사의 일행이었던 성녀가 마왕을 물리치고 가져온 물건이었으니, 성물이라고 봐도 무방한 물건이었다.
그럼에도 성녀는  물건의 행방을 모른다고 말했던 것이다.

“분명 전대 교황까지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갑자기 기록이 끊겨 버려서…”
“그럼, 이전 교황은 알고 있을 거 아닙니까?”

나는 성녀를 향해 그렇게 물었고,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물어보면 되지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성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곤란한 표정을 지은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게, 전 교황님의 상태가…”
“상태가 왜요?”
“대화를 나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에요. 완전히 실성이라도 한 것처럼 망가져 버려서…”

성녀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당장 그 물건의 행방을 아는 인물의 상태가 그 모양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길, 대체 뭘 봤길래.’

교황이  모양이  원흉은 나였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잘못은 없던 일로 치부하고 있었다.

“아! 그 방법이 있었네요.”

내가 이제 어떻게 해야 고민하는 사이, 성녀가 날 향해 그렇게 말했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나는 미약한 기대를 품고 그녀를 바라봤다.

“여신님께 물어보면 되잖아요.”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나는 성녀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성녀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원흉은 나였다.
악인을 여신에게 데려다 줄 정도의 능력이 있다고 뻥을 쳤으니, 여신에게 물건의 행방을 묻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왜요?”

성녀는 자신의 생각이 뭐가 잘못됐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놓은 거짓말을 생각하면, 딱히 잘못된 점은 없었기에 나는 성녀를 향해 다른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

“좀 생각을 하고 말하십시오!”

원래 캥기는 것이 있으면, 사람은 목소리가 커지는 법이었다.
딱히 핑계를 댈 것이 없던 나는 성녀를 향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소리쳤다.
갑자기 내가 소리를 지르자, 성녀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는 것이 보였다.

“…뭐가 잘못됐어요?”
“늘 여신님에게 기대기만 할 생각 말고, 스스로 어떻게든 해결할 생각을 해야죠.”
“…..하지만 중요한 문제잖아요, 여신님도  정도는…”

당연히 내가 여신과 진짜로 소통을 할  있다면,  정도의 문제는 물어볼 만 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여신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럼 아예 마왕을 죽여달라고 청하지요! 뭐하러 물건을 찾아달라고 합니까?”

나는 엉겁결에 성녀를 향해 그렇게 소리쳤다.
궁지에 몰린 탓에 내 놓은 변명이었지만, 나름 설득력이 있었는지 성녀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건, 그러네요.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신은 인간에게 먹이를 잡아주지 않습니다. 먹이를 잡는 방법과 그 먹잇감이 있는 곳을 알려줄 뿐이지요.”

나는 어디선가 들었던 그럴듯한 말로 성녀를 달래 주었다.
성녀는 그 말에 뭔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으힉….자, 잘못했어요!”

지하감옥 안.
나는 완전히 맛이 간 교황, 아니 전대 교황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교황이 갇혀 있는 곳은 이번 대의 교황이  미카스가 갇혀 있던 곳이었다.

‘그 아저씨도 마냥 호인은 아니라는 거네.’

나는 인자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걸던 미카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하긴 앞으로 거대한 적과 싸울 생각을 하면 교단의 수장자리를 마냥 사람 좋은 호구 보다는 어느 정도 독심이 있는 인물이 맡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물론,  앞에 완전히 맛탱이가 간 전대 교황은 그 독심이 너무 지나치긴 했지만 말이다.

“저기요, 아르시온 성녀님의 물건은 어디 있어요?”
“히이익- 잘, 잘못했다니까요?”

사실 조금 전부터 계속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중이었다.
성녀는 교황에게 용사의 일행이었던 아르시온 성녀가 가져온 물건의 행방을 묻고 있었고, 교황은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성녀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만을 할 뿐이었다.
나는 혹시라도 전대 교황이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살펴보고 있었는데, 그의 옷이며 감옥 바닥이 똥오줌으로 더러워져 있는 것을 보면 연기는 아닌 듯 보였다.

“잠깐 나와봐요.”

결국 나는 성녀를 끌어 내고는 내가 교황을 직접 상대하기로 했다.
내가 다가서자, 교황은 더욱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나와 최대한 먼 거리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물론, 멀어져 봐야 감옥 안에서 도망칠 수 있는 거리는 한계가 있는 법이었고, 나는 교황의 머리를 향해 다시금 마력을 쏘아 보냈다.

‘원래 정신적인 치료는 충격 요법이 짱이지.’

교황이 내가 보여준 환영으로 인해 미쳤다면, 다시 환영을 보여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고는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대상자의 정신이 온전치 않아, 환영 마법이 걸리지 않습니다.]

“뭣?”

나는 메시지를 보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니까 미친놈을 대상으로는 환영 마법을 걸 수 없다는 소리였다.
가장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 여겼던 아르시온 성녀의 물건의 행방이 완전히 미궁에 빠진 것이었다.
그러니까 첫 시작부터 제대로 꼬인 셈이었다.

“왜요? 뭐가 잘 안돼요?”

내 표정이 심각해진 것을 본 성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그런 성녀를 보며, 무언가 번뜩이는 것을 느꼈다.
정신적인 충격을 주는 것이 꼭 마법일 필요는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었다.

“하나 묻지요. 그 교황과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나는 성녀를 향해 그렇게 물었고, 그게 무슨 뜻인지 깨달은 성녀는 얼굴을 붉히기 시작했다.
분명 성녀는 자신이 감금된 것이 교단의 비밀 서고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는 교황이 성녀를 그리 내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물거리며, 입술을 움찔거리는 성녀를 보자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그, 그건 왜요?”
“중요한 일입니다.”

나는 성녀를 향해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성녀와 교황 사이에 있었던 일이, 아르시온 성녀가 남긴 물건의 행방을 알아낼 단서일지도 몰랐다.

“그, 그게….걸렸어요.”

한참을 망설이던 성녀가 나를 향해 그렇게 비밀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 말뜻을 단번에 알아듣지 못한 나는 성녀를 보며 되물었다.

“…뭘요?”

내 질문에 성녀의 얼굴이 더욱 새빨갛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이내 무슨 생각이 든 것인지, 성녀가 당당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제 몸이 질병이 있다는  말이에요. 다시 그 색정증이라는 증세가  발현돼서,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교황에게 걸렸다고요.”
“에?”

나는 성녀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
오래전 일이라 떠올리는 것에 버퍼링이 걸렸지만, 색정증은 내가 성녀에게 했던 거짓말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그래서 만지다 걸렸어요?”
“……네.”

성녀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빨개진 얼굴로 그렇게 대답했고,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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