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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화 〉용사의 후예 (137/158)



〈 137화 〉용사의 후예

‘으음. 세척이 문제로군.’

샬롯을 통해 실험해 본 결과, 내 아이디어는 완벽했다는 것이 증명됐다.
마장기는 정확히 내 정액만을 모았고, 나는 그로서 혹시 모를 임신 공격에서 완전히 자유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마장기에 들러 붙어 있는 정액들.
물론, 물로 씻으면 깨끗이 제거가 되기는 했지만, 기분이 어째 조금 묘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늘 내 몸에 붙어 있는 물건이기에 아무리  정액이라고 하더라도 찝찝함이 남는 것은 어쩔  없었다.

‘마치 콘돔을 재사용하는 기분이군….’

현대인의 감성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당장 나로서는 다른 방법도 없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나요?”

내가 그렇게 마장기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공주가 날 향해 그렇게 물었다.
공주가 날 찾아온 이유는 뻔했다.
아마도 용사가 가져갔다는  물건의 행방에 단서를 잡은 것이리라.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네. 그럼 설명을 계속 이어가죠. 왕실에서 저는  가문에 대해 조사해 둔 기록을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공주가 말하는 그 가문이라는 것은 아마도,  천한 신분과 용사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직계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아마도 가문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집안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공주로서는 나름 고심해서 고른 단어일 듯싶었다.

“그래서요? 어딥니까?”
“….자그마치 100년이 넘는 기록이라고요. 이건 저니까 이렇게 빨리 찾아낸 것이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공주는 나를 흘겨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 꽤 공치사가 하고 싶었던 모양.
하지만 이 세계의 시스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나는 공주가 왜 그렇게 나오는 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컴퓨터처럼 특정 조건을 입력해서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을 리 없고, 당연히 그간 왕실에서 기록해둔 자료를 일일이 살폈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료라는 것도 주먹구구 식으로 운용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 어떤 기한 동안 올라온 보고서를 잔뜩 묶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었다.
거기다  마왕을 상대할 비보를 찾는 일이다 보니, 사람을 동원하기도 힘들었을 터였다.
그러니까, 공주는 그 수천장이 넘는 보고서를 일일이 읽어야만 했을지도 몰랐다.

‘하긴, 중간에 특정한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으니까…’

“…고생 했겠네요.”

나는 말을 멈추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는 공주의 눈치를 보다 그렇게 말했다.
순간, 공주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지금…웃음을 참은 건가?’

나는 공주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내 반응에 공주는 무안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는 언제 째려봤냐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겨우 찾아냈어요. 그 용사의 후예.”
“…그게 누군데요?”
“놀라지 마세요. 생각지도 못하게 엄청 가까운 곳에 있었으니까.”

공주는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무척이나 내 반응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공주를 보며, 난 불현듯 뭔가가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혹시, 여급?”
“…..어떻게 알았어요?”

공주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놀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힘도 없는 그녀가 그 용사의 후예 중 하나였다니.
같은 씨를 받았어도 누구는 공주가 되고, 누구는 기둥서방을 구해 생활하던 여급의 처지라니 이쪽 세상도 참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냥요.”
“….뭔가 있었죠? 그녀에게 뭔가를 느낀 건가요?”

공주는 나를 보며 그렇게 물었지만, 여급은 그냥 여급일 뿐이었다.
그녀에게 비범한 뭔가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런 게 있었다면 그런 비루한 삶을 살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아, 펠라는 비범하긴 하지.’

나는 그런 뜬금 없는 생각을 하며, 공주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런데 이걸 어떻게 알 수가 있냐고요?”

공주는 자신의 고생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억울할 것도 없는 것이, 나는 진짜로 여급이 용사의 후예일 가능성은 1도 생각지 않고 있었다.
그저, 공주가 언급한 가까운 인물이라는 말에, 여급이 가장 용사의 후예의 조건에 부합한다고 느낀 것뿐이었다.

‘뭐, 출생이 불분명한 것은 여급 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작가로서의 감 같은 것이었다.
뭐랄까.
여급이 그 용사의 후예여야지만, 이야기가 가장 깔끔하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냥 때려 맞춘 겁니다.”
“…..그럴 거면, 뭐하러 그걸 조사하라고 시켰어요? 처음부터 찍지.”

공주는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지만, 아마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평생 여급이 용사의 후예라는 것을 알 지 못했을 것이었다.

“아뇨. 공주님이  힌트 덕분이니까요.”
“…..아.”

별 말이 아니었음에도, 또 다시 공주의 입가가 씰룩이는 것이 보였다.
의외로 공주의 약점은 칭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지금 중요한 것은 그녀가 아닌 여급이었다.

“그럼, 그 이후의 이야기는 본인을 통해 들어보도록 하죠.”

어차피, 공주와 내가 대화를 나누고 있던 곳은 여관.
여급을 부르는 것은 1분도 걸리지 않을 일이었다.

**

“예?”

공주와 내 설명을 들은 여급은 고개를 들고는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여급의 모습에 한숨을 푹 쉬었다.
그녀가 원래부터 눈치를 잘 살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신분이 낮은 이가 생존을 하려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중요한 능력이 눈치였으니까.
하지만, 방금 전 여급이 보인 모습은 나로서도 조금 충격적일 수 밖에 없었다.
내 작위가 올라갈수록, 여급은 나를 어려워하긴 했지만 공주의 앞에서 여급이 보이는 반응은 그야말로 비굴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미네로바의 공주라는 신분이 그녀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해도, 그 정도가 심한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후. 그렇게 긴장할  없어요. 그저 뭔가를 확인하려는 것뿐이니까.”

공주 또한 그런 여급의 반응이 당황스러웠는지, 좋게 타일러 보았지만 여급은 도와달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여급의  표정에서 어떤 불안감과 간절함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공주가 용사의 후예를 언급하면서 극도로 선명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심해. 아무도 너를 해치지 못하게 내가 지켜줄 테니까.”

나는 여급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내 말을 어느 정도 신뢰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여급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나와 공주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제가 용사님의 후예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급은 공주와 나를 보며 그렇게 말을 꺼냈다.
나는 그런 여급의 말에 조금 놀라움을 느꼈지만, 생각해보면 여급이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용사의 후예라는 것은 나름 자부심을 가질만한 일이었고, 여급의 부모도 그 사실을 굳이 딸에게 숨길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겁을 먹은 거야?”

 질문에, 여급은 흘끗 공주를 바라보았다.
공주가 괜찮다고 말을 하고 나서야, 여급은 그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건 나와 공주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종류의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여급은 어릴 때부터 이시디나 왕궁의 사람들이 언제 자신을 죽일지 몰라 불안함에 떨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렇게 기둥서방을 만든 것이었나.’

물론, 그녀가 만든 기둥서방 따위가 왕궁의 기사들을 당해낼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돈도 없고, 아무런 힘도 없는 여급으로서는 그나마 자신보다 강한 남자들에게 기대어서라도 조금의 안정을 찾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을지 몰랐다.

“하지만, 왕궁에서는 당신에게 어떤 해도…”
“….그냥 멀리서 보기만 해도,  같은 이들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억울한 듯 말하는 공주의 말에, 여급은 차분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공주의 말에 말대꾸를 했다는 사실에 놀라 다시 바닥에 머리를 처박기 시작했다.
공주 또한 왕국에서 여급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상대에게 어떤 위협으로 느껴질지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왕실에서는 아무런 힘도 없는 여급의 집안에 신경을 쓸 이유도 없었고, 공주 조차도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을 정도였지만, 실제로 감시를 받는 여급이 느끼는 위협은 그 정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미안해요. 나는 정말 몰랐어요.”
“….공주님이 미안해 하실 건 없지요. 제 어머니도, 그리고 할아버지도 겪은 일이니까요.”

그러니까 왕국의 관습처럼 내려온 일을 굳이 공주가 사과를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지만, 어떻게 들으면 그녀 하나가 사과한다고 보상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아아, 그 문제는 나중에 해결하고,  혹시 용사의 물건을 가지고 있어?”

나는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여급을 향해 그렇게 물었다.

“용사의 물건이라니?”

여급은  말에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되물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반말이 툭 튀어나온 것을 보면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같지는 않았다.

“그, 너희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이나 가보 같은 거 없냐는 말이야.”

나는 여급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마장기가 성녀의 정조대로 활약을 하고 있던 것을 생각하면, 여급 또한 용사의 물건을 엉뚱한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급은 전혀 떠오르는 것이 없는 표정으로 나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여급의 반응에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공주에게로 향했다.

“그, 그럴리가….하지만 이곳 빼고는 딱히 용사의 물건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곳은 없어요. 아니, 다른 곳으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도 있지만….그건 진짜로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에요.”

여급의 말에 당황하고 있던 공주는, 내 시선을 느끼고는 다급히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녀가 왕궁에 있는 모든 기록들을 뒤져서 찾아낸 가능성이 사라지면, 더는 찾을 방법이 없다는 소리였다.
결국 믿을 곳은 여급밖에 없었기에, 나는 다시 여급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너 말이야, 이 여관은 언제부터 했지?”
“….그, 어머니때부터.”

여급은 날 향해 그렇게 대답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실낱 같은 희망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어떻게 돌아가셨나?”
“…..그게, 밖에서 장을 보다가 마차에 치여서….”

여급은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 것인지 괴로운 표정으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교통사고도 아니고 마차 사고라는 것이 꽤나 특이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마차 사고로 사람이 죽는 게 흔한가요?”

나는 공주를 보며 그렇게 물었고, 공주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공주는 신세가 딱하다는 표정으로 여급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공주의 옆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너, 어머니의 죽음에 왕국이 있다고 생각했지?”

다시 여급에게 시선을 돌린 나는 그렇게 질문을 던졌고, 여급은 이내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급의 눈에서 원망 같은 것이 처음으로 흘러 나왔고,  감정을 직접적으로 부딪친 공주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 오해예요. 왕국 기록에 당신의 모친이 마차사고로 죽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그걸 유도했다는 말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공주는 여급을 향해 변명하듯 그렇게 말했지만, 한 번 터져 나온 여급의 감정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었다.

“글쎄, 그건 모르지.”

나는 공주와 여급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두 여자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는 것을 보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쩌면 감시를 담당하던 자가, 귀찮아져서 마차 사고를 일으켰을 수도 있지. 그리고 기록에 누락시킨다고 해도, 어차피 왕궁에서는 관심도 없는 일일 테니까. 아니, 어쩌면 그냥 운이 나빠서 마차 사고가 났을 지도 모르지.”

나는 두 가지 가능성이 모두 성립 가능하다는 말을 했다.
그 말에, 공주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요?”
“공주, 당신이 이 아이에게 약속을 해주면 될  아닌가? 어머니의 죽음을 지금이라도 제대로 조사해 주겠다고.”

순간 내 말에 여급의 눈이 커지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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