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두번째 비보
역시나…’
나는 여급의 반응을 보며 확신했다.
아마도 여급의 어머니가 겪은 마차사고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왕궁이 관여했기 때문이라는 증거는 될 수 없었다.
누누이 말했다시피 이세계의 천민의 목숨은 그야말로 파리 목숨일 뿐이었고, 마차는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니 귀족이 사용하는 마차에 치여 죽은 여관 주인 따위는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 오히려 귀족의 행차를 방해한 벌을 묻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인 일이었다.
“….약속, 약속할게요. 당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정확히 조사할게요.”
여급의 눈빛에 공주 또한 그 사실을 간파한 것인지, 공주는 여급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런 공주의 눈빛은 꽤 진실해 보였음에도, 여급은 그런 그녀의 호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중이었다.
‘하긴, 저런 말 한마디에 모두 용서할 수 있다면, 그게 보살이지.’
나는 여급의 그런 반응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푸는 것은 공주가 할 일이었고, 나는 당장 용사가 남긴 물건을 찾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여급의 어머니가 급살을 맞았다면, 딸에게 그 물건에 대해 전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충분해.’
나는 여관 안 어딘가에 용사가 남긴 물건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
여관 내부를 뒤져보면 나올 것 같은 느낌에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 순간.
여급이 나를 보며 입을 달싹이기 시작했다.
“그…찾는 물건이 맞는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여급은 아예 나에게 반말을 쓰기로 한 것인지, 그렇게 말을 열었다.
아마도 용사의 후예라는 자존감이 조금씩 살아나는 모양이었지만, 나로서는 그리 나쁘지 않은 변화였다.
“뭔가 기억나는 게 있나?”
내 말에 여급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쓰시던 방에 있지 않을까 싶어. 어릴 때, 그 방만큼은 내가 못 들어가게 하셨거든.”
자신의 딸조차 들어가지 못하게 한 방.
그 방에 뭔가가 감춰져 있을 거라는 것은 꽤나 그럴듯한 추론이었다.
나는 여급을 향해 기쁜 웃음을 보이며 물었다.
“그 방이 어딘데?”
“여기.”
“응?”
“네가 쓰는 방이라고.”
나는 여급의 말에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도대체 신경이 어떻게 되면, 자신의 어미가 쓰던 방을 몸을 섞는 남자에게 내어 줄까 싶었지만, 그렇게라도 여급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급의 말에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벌써 몇 개월 째 사용하는 방에, 갑작스럽게 특별한 공간이 보일리도 없었다.
“그거, 확실한 거야? 혹시 다른 곳은 없고?”
나는 여급을 향해 그렇게 다시 확인했지만, 그녀는 이 방 말고는 딱히 의심가는 곳이 없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아, 잠깐.’
그 순간 내 시선에 방 한 곳이 들어오며, 빠르게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장기간 이 방을 사용하면서도 단 한 번도 확인해 보지 않은 곳이 있었던 것이다.
**
“….이건 도대체가.”
공주와 여급이 나를 쓰레기 보듯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스스로 열어 제낀 곳은 판도라의 상자나 마찬가지였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여자 속옷부터, 정액이 말라 붙은 휴지까지 온갖 쓰레기라는 쓰레기는 다 굴러 나왔다.
그리고 그 쓰레기가 흘러 나온 곳은 당연히 내 침대 아래였다.
“하하…이거 네 거 아니냐?”
나는 엉망으로 구겨진 여성용 팬티 한장을 들고는 여급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을 보면, 분명 다른 여자의 것인 모양이었다.
범인은 데이나, 하얀이, 성녀 중 하나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팬티의 주인을 찾는 일이 아니었다.
‘…사이즈로 봐서는 하얀이는 아닐테고…흠.’
하지만 사람의 사고라는 것이 보다 자극적인 곳에 끌리기 마련.
그렇게 팬티의 주인에 대해 다시 유추하던 나는, 억지로 정신을 다잡고는 침대 아래를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미세한 균열을 찾았고, 그 균열이 정확히 직사각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 뾰족한 거 없어요?”
내 말에, 공주가 품에서 작은 단검 하나를 꺼내서 나에게 내밀었다.
그녀가 그런 물건을 늘 지니고 다닌다는 것이 놀랍기는 했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단검을 받아 그 틈새에 찔러 넣었다.
이내, 바닥이 툭 소리를 내며 열리고, 드디어 내 방에 감춰져 있던 비밀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건…?”
공주는 놀란 표정으로 바닥에 감춰져 있던 물건을 보며 소리쳤다.
“용사의 검이에요. 이런 특이한 모양의 검은 대륙에 없으니까…”
공주는 믿지 못할 기적을 목격한 것처럼 검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공주와는 다른 의미로 그 검을 보며 놀라는 중이었다.
검의 모습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수수한 듯 하지만, 아름다우면서도 고귀한 품격을 가지고 있는 검.
‘사인검.’
그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검인 사인검이었다.
나는 그 검을 집어 들며, 경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사인검이 용사의 검이라는 것은 돌려 말하면, 내 전대 용사가 조선인이라는 소리나 똑같았다.
지구의 선조가 사용하던 물건을 발견한 나는 꽤나 애틋한 표정으로 검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검을 검집에서 뽑아내자, 스릉-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품이 넘치면서도 위엄이 가득한 검명.
이내 검 표면에 음각된 한자를 확인한 나는 감정이 복받치는 것을 느꼈다.
‘回歸’
돌아올 회.
돌아올 귀.
그러니까 전대의 용사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담아, 여기에 그 글자를 새겼을 것이었다.
‘아니지, 아니야.’
잠시 감상에 젖었던 나는 빠르게 이성을 되찾았다.
뭔가 되게 그럴 듯한 기분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결정적으로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용사의 행적과는 아귀가 맞지 않았다.
고향을 그렇게나 그리워하던 이가, 이 여자 저 여자를 임신시키고 다녔다는 것은 확실히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그리움을 채우기 위해 여자를 품었을 가능성도 있기는 했지만, 그건 뭔가 억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웹소설 작가로서, 회귀라는 단어는 나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이 검, 저한테 양보해 주시면 안될까요?”
내가 검을 보며,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공주가 여급을 향해 그렇게 개수작을 걸었다.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공주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물건을 발견한 것처럼 내 눈빛을 외면하는 중이었다.
‘이런 상도덕도 없는 년이…?’
나로서는 황당할 노릇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주 또한 다섯 가지 보물을 모아야만 마왕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쳤어요, 공주?”
나는 공주를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그렇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물건에 대한 소유욕을 드러낼 타이밍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 물론. 마왕과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 그 검은 필요한 이에게 무상 대여를 할 생각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그 싸움이 끝난 이후의 소유권을 말하는 것이에요.”
공주는 내 말에 그렇게 대답을 하고는 여급을 꼬시기 시작했다.
여급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해보라며, 쌈짓돈을 꺼낼 준비까지 하는 공주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공주님.”
하지만 공주의 꿀을 단지 채로 퍼다 나르는 꼬임에도 여급은 넘어가지 않았다.
여급은 공주의 제안을 그렇게 단번에 거절하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 물건의 주인은 아무래도, 본 후작님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여급의 말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공주가 제안한 것을 받았더라면, 여급의 팔자는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었다.
더 이상 돈이 궁할 일도 없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무시할 일도 없었을 것이었다.
아니, 여급이 작위를 원했다면, 어쩌면 공주는 자신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작위를 약속해 주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급의 선택은 나였다.
그야말로 확실한 우량주를 버리고, 요즘 뜬다는 테마주에 올라탄 격이었지만 나는 그런 여급의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그 선택 덕분에 내 마음 속에서 여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조금 더 많아진 것이었다.
‘그래! 여급아, 가즈아아아아!! 우리 같이 이 세상을 씹어 먹는 거야!!!’
나는 정식으로 여급에게 양도 받은 사인검을 손에 쥐며, 속으로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
“백작, 아니 후작님!!”
나를 향해 해맑게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것은 역시 알렌 뿐이었다.
알렌은 갑작스러운 내 부름에도 신이 난 표정으로 달려왔다.
확실히 얼마 전 마차 부품 몇 개를 사주었던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갑자기?”
알렌은 나를 향해 호의적인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고, 나는 알렌에게 검 하나를 던져 주었다.
알렌은 멋지게 공중을 날아간 검의 손잡이를 정확히 잡았고, 검을 쥔채로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련이나 한 번 하자고.”
“대련이요?”
알렌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나를 보고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알렌은 나를 완전히 마법사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주 예전에 알렌과 대련을 해 본적이 있기는 했다.
그 당시의 나는 지금과는 달리 아주 가난하고, 쓸모 없는 존재였고 가지고 있는 검술이라고는 삼재 검법이 유일했다.
“에이, 아무리 후작님이라고 해도, 검으로 제 상대는 안되실 걸요?”
알렌 또한 그 때의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지, 나를 향해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 웃음에 묘하게 사람을 깔아보는 기운이 서려 있었기에, 나는 인상을 구기며 알렌을 향해 말했다.
“그러다 지면 쪽팔릴 텐데?”
“에이, 제가 잃을 게 뭐가 있다고요. 들어오십쇼!”
알렌은 검을 뽑아 들며,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자신감이 넘치는 알렌의 모습을 보며, 사인검을 뽑아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후회할 거다.”
깡-.
내가 휘두른 검이 알렌의 검에 의해 막혔다.
마치 내가 어디를 칠 지 미리 읽은 것 같은 움직임.
내가 사용한 것은 역시나 그 삼재 검법이었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건, 너무 정직한데요?”
알렌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가 노리는 것은 검술로 알렌을 이기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검술로 알렌을 상대할 생각을 했다면, 상점에서 그럴 듯한 검술 하나를 구매했을 것이었다.
지금 내가 확인해야 할 것은 사인검의 성능.
나는 천천히 사인검에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사인검에 음각된 회귀라는 한자가 은은한 빛을 발휘하는 것이 보였다.
““에이, 제가 잃을 게 뭐가 있다고요. 들어오십쇼!”
알렌이 검을 뽑아 들며,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바로 몇 초 전에 있었던 일이 다시금 재현되는 것을 보며,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나는 사인검의 놀라운 기능에 환희를 느꼈다.
회귀라는 한자의 의미대로, 마력을 불어넣자 시간을 역으로 돌린 것이었다.
고작 몇 초의 시간이 한계인 듯싶었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행위 하나 만으로도 나는 그 무궁무진한 응용 방법이 떠오르는 중이었다.
마력 소모가 꽤 큰 것 같기는 했지만, 그 또한 토룡 덕분에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건 그야말로 밸런스 붕괴네.’
회귀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죽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부지불식간에 죽지 않는 이상, 나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기에 처하더라도 그걸 없던 일로 만들 능력이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은 헤드 샷을 당하더라도 즉사를 하지 않을 정도로 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더욱이 성녀가 남긴 마장기까지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한 번에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는 처지였다.
“나는 무적이다!!!!”
나는 알렌을 보며 그렇게 외쳤다.
그 목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순간, 알렌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검사라면, 상대의 빈틈을 놓쳐서는 안 되는 법!
나는 곧장 알렌을 향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