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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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따지자면 성녀나, 데이나, 그리고 여급이 그리 소유욕이 강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들 나름대로 한 공간에서 잘 지내는 것을 보면,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이 내 욕심이라고 생각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모여 살다 보니, 그들은 나름의 연대감 같은 것을 품게 된 모양이었다.
당연히 자신들을 제외한 또 다른 여자의 출현이 반갑지는 않았던 것이다.
“…얘, 드래곤이야.”
하지만, 그 한 마디에 모든 상황이 정리됐다.
아무리 질투에 눈이 먼 여자들이라고 해도, 목숨은 중요한 법이었다.
그러니까 압도적인 힘 앞에, 사소한 감정 따위는 아무런 가치도 없어진다는 소리였다.
아무리 그들이 성녀고, 정령을 다룬다고 해도 드래곤의 앞에서는 미물이나 다름 없는 존재였다.
그러니까, 정신이 제대로 달려 있는 이상 고작 남자 문제 때문에 드래곤과 시비를 가릴 여자는 없다는 소리였다.
“…아아, 드래곤.”
“놀랍네요.”
“그, 그래서 눈이…”
방금 전만해도 질투를 드러내던 세 여자는 그렇게 바로 카룬을 받아들였다.
솔직히 밀리나 정도나 되니까 카룬과 대거리를 한 것이지, 여관의 여자들의 분위기가 더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볼 수 있었다.
순식간에 카룬의 위치가 급부상했고, 카룬은 그런 분위기가 싫지는 않았는지 한껏 턱을 치켜드는 중이었다.
‘뭘, 만족스러워하고 있어?’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카룬을 보고 있었지만, 어쨌거나 상황이 그렇게 넘어가면 나로서도 다행이다 싶었다.
“나, 쟤 싫어.”
하지만 그 순간, 카룬에게 반기를 든 여인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하얀이였다.
하얀이는 카룬이 무섭지도 않은지,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그렇게 소리쳤다.
“지금 뭐라 했느냐, 이 반쪽자리 엘프년아?”
하얀이의 말에 카룬은 기세를 끓어올리며 그렇게 소리쳤다.
여관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바뀔 정도로 날카로운 기세가 카룬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하얀이는 그런 카룬의 기세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하얀이가 강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얀이는 그저 내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하아…그만 해.”
“예?”
“너, 경고야. 다시 한번 내 주위 여자들한테 함부로 대하면, 죽을 줄 알아.”
나는 카룬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순간 카룬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처럼 울먹거리는 것이 보였지만, 이런 것은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했다.
방금 떡을 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카룬과는 알게 된 지 고작 하루도 안 지났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 드래곤 보지가 대단하다고 해도, 지금껏 내가 관계를 맺은 모든 여자들과 바꿀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흥!”
하얀이는 기가 죽은 카룬을 보며 그렇게 콧방귀를 꼈다.
하얀이에 대한 내 태도는 조금 애매했는데, 하얀이와 했음에도 나는 그녀에게 조금 묘한 감정을 느끼는 중이었다.
어려 보이는 외모나 행동 때문인지는 몰라도, 딸이나 여동생 같은 포지션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아니, 그러면서도 잘도 따먹는 걸…’
내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들기는 했지만, 실상이 그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 경고의 효과가 있었는지, 카룬은 시무룩했고 하얀이는 잔뜩 기가 살아 있었다.
또 잔뜩 쳐져 있는 도마뱀 눈깔을 보자 마음이 쓰이기는 했지만, 찬 물도 위 아래가 있는 법이었다.
‘아…물론, 나이로 따지면 카룬이 제일 언니구나.’
헤츨링이라고는 해도 600살이니, 제일 연장자는 카룬이었다.
“아무튼, 다른 여자들이랑 잘 지내야 해, 카룬. 알았어?”
“….네.”
내 말에, 카룬은 고개를 푹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과연 그 소유욕 강한 드래곤이 얼마나 내 말을 잘 듣게 될지는 몰라도, 당분간은 괜찮겠지 싶었다.
나는 의외로 순종적으로 구는 카룬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었고, 카룬은 그 손길이 기쁜지 방긋 웃음을 보였다.
“흥!”
그 순간, 하얀이가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콧방귀를 끼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카룬이 내 무리에 합류하게 된 것이었다.
**
“젠장 늦었나?”
포탈을 빠져 나온 나는 멀리 보이는 마을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숲 안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룬. 엘프들을 돕는다.”
“네.”
나는 카룬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는, 하얀이를 엎은 채 빠르게 엘프 마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엘프라는 말 때문인지, 내 등 뒤에서 하얀이가 내 옷을 꼭 쥐는 것이 느껴졌다.
나와 카룬은 그렇게 엘프 마을로 들어섰고, 이내 몬스터들과 전투를 벌이는 엘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길! 이 놈들이 도대체 어디서?”
“저건 또 뭐야?”
엘프들은 갑자기 나타난 나와 카룬을 보며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나는 그들의 반응을 통해 몬스터들이 엘프 마을을 습격한 것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격하지 마라. 나는 너희를 도우러 왔다.”
나는 활을 들고 있는 엘프들을 향해 그렇게 소리치고는 마법을 펼쳐 몬스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내 마법 한 번에, 수많은 몬스터들이 바닥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엘프들 또한 꽤나 잘 싸우는 듯 보였지만, 그들이 활로 몬스터 하나를 잡을 때, 나는 족히 수십은 쓰러뜨리는 중이었다.
‘와우. 역시, 드래곤은 드래곤이네.’
그리고 그건 카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신의 종족 값을 증명하듯, 그야말로 몬스터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중이었다.
몬스터들의 침입에 버티기만 하고 있던 엘프들은 나와 카룬의 합류로 인해 금새 공세로 돌아서고 있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것 같던 몬스터들의 수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을 때는 더 이상 멀쩡한 몬스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도움에 감사 드립니다.”
‘오우, 초 미인.’
나는 엘프들을 대표해 나선 여자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확실히 미를 대표하는 종족이라 그런지, 그 아름다움이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꼭 엘프 뿐만 아니라 드래곤이나, 드워프에게서도 아름다움을 느낀 것을 생각하면 그저 내가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고서라도 눈 앞의 엘프의 용모는 훌륭했다.
섹시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고고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흥. 고작, 인사는 그게 끝인가? 미약하면서 오만하군. 역시 귀만 큰 종족 답구나!”
카룬은 엘프의 인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렇게 소리쳤다.
순간, 대표로 나선 여자 주변의 엘프들이 적의를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카룬으로서는 우습지도 않은 꼴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불쾌하셨다면 사과 드립니다. 다시 인사 드리겠습니다. 숲의 종족을 이끌고 있는 아로하가 위대하신 드래곤과 그 일행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아로하라는 엘프는 카룬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카룬을 향해 드래곤이라고 말하자, 그 전까지 적의를 드러내던 엘프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것이 보였다.
‘아, 엘프도 드래곤에게 만만치 않게 당하는 입장이니까.’
뭐, 드래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존재는 드워프였지만 엘프 또한 수난을 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카룬은 잔뜩 겁을 집어 먹은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엘프들을 보며, 목에 깁스라도 한 것처럼 잔뜩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하….이건 진짜 종특인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침울했으면서, 금새 오만해지는 카룬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카룬.”
“….아, 네? 아, 죄송합니다.”
내가 가볍게 이름을 부르자, 카룬은 깜짝 놀라며 내 뒤로 물러섰다.
주위의 엘프들의 시선이 만족스럽기는 했지만, 나보다 잘난 척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모양.
카룬이 그렇게 행동하자, 엘프들의 수장이라는 아로하는 묘한 눈길로 나를 바라봤다.
그녀가 처음에 간략하게 인사를 한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갔다.
한 눈에 카룬이 드래곤이라는 것을 알아 본 것은 의외였지만, 엘프 또한 그렇게 만만한 종족은 아니었으니까.
그들을 이끌 지도자쯤 되면, 꽤나 많은 세월을 살아왔을 것이었고 나름의 지혜를 갖추고 있을 것이었다.
결국 아로하는 나와 카룬 중 누가 일행의 리더인지 확신하지 못해 소극적인 인사를 한 것이었다.
“뭔가 착각했나 본데, 이 일행의 리더는 나야.”
나는 아로하를 향해 그렇게 말했고, 그녀는 이미 그럴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고 있던 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로하와 달리 다른 엘프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드래곤보다 높은 사람이 나타난 것이었다.
대부분의 엘프들은 나 또한 카룬처럼 드래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보였지만, 아로하는 드래곤을 구별하는 능력이 있는지 착 가라 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상했겠지만, 나는 너희를 도우러 왔다.”
내 말에, 엘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뜻밖의 원군이 반갑기는 했지만, 워낙 타 종족과 교류를 꺼리는 엘프이니 만큼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안 되는 느낌이었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이 일은 저희 부족이 처리할 수 있습니다.”
아로하 또한 그건 다른 엘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녀는 나와 카룬을 향해 조심스럽게 거부의 뜻을 밝혔다.
순간, 등 뒤에서 카룬이 분노한 기운을 뿜어 내는 것이 느껴졌지만, 내가 슬쩍 돌아보자 그 기운은 씻은 듯 사라져 버렸다.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야지. 나는 이 사건을 일으킨 범인을 알거든.”
“….범인이라니? 그저 몬스터들이 날 뛰는 것뿐 아닌가요?”
내 말에 아로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
나는 아로하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시작일 뿐일 걸? 그 마왕이 너희 엘프들을 노리고 있으니까.”
“…..마왕이라니, 갑자기 그런 말을 한다고 해도.”
내 말에 아로하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건 아로하 뿐만 아니라 다른 엘프들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얘네?’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엘프들을 바라봤다.
대륙의 인간들은 이미 어느 정도 마왕의 강림에 대해 감을 잡고 있었다.
제국이나, 여타의 왕국들 모두 대 놓고 그 이야기를 떠들고 있지는 않아도, 나름 준비해 둔 비장의 수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드워프들 또한 곧 바로 협력을 해 온 것을 보면 마왕의 강림에 대해 아예 모르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엘프는 달랐다.
아예 마왕이 별 나라 이야기인 것처럼 눈만 껌뻑 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느낌은 마치…
‘동막골?’
딱 그거였다.
전쟁이 난지도 모른 채 자기들끼리 행복하게 살아가는 촌구석 마을 사람들.
나는 한심한 표정으로 엘프들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모르나 보군.”
“……”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이 일을 벌인 범인은 알이라는 엘프일 것이다.”
내 말에, 엘프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 반응으로 보아, 알이라는 엘프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
나는 그런 엘프들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하얀이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 아이는?”
그제야 하얀이에게 관심을 가진 아로하가 나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나는 하얀이를 한 번 바라보고는 아로하에게 하얀이를 소개하려 했다.
하지만 애들은 생각보다 빨리 자라는 법.
하얀이는 내 도움 없이 스스로를 아로하에게 소개했다.
“….알, 그 자가 제 아버지예요.”
하얀이의 말에, 엘프들의 술렁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던 아로하 또한 하얀이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로하는 천천히 하얀이에게 다가갔다.
잠시 동안 하얀이와 눈을 마주치고 있던 아로하는 차분한 목소리로 하얀이에게 말했다.
“반갑구나. 이름이 뭐지?”
“하얀이요.”
아로하의 질문에 하얀이는 씩씩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런 하얀이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아로하가 미소를 지으며 하얀이를 바라봤다.
“그래. 나는 아로하라고 한다. 너에게는 언니가 되겠구나.”
나는 아로하의 말에 눈을 부릅떴다.
당연히 하얀이보다야 아로하의 나이가 훨씬 많을 테니, 언니는 맞겠지만 뉘앙스가 그런 뜻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설마…”
“네. 알. 그 자는 저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엘프의 수장, 아로하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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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소설에 자매가 나왔다는 것은...
므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