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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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황은 압도적으로 연합군 쪽에 유리했다.
몬스터들은 흉포하긴 했지만, 인간과 달리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잔뜩 흥분한 몬스터의 경우에는 주위의 몬스터도 공격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엘프들은 날렵했고, 드워프들은 용감했으며, 인간들은 엄청난 단합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도 사기지만, 저건 진짜 치트키네.’
그리고 이 전쟁에 참여한 단 한 마리의 드래곤은 그야말로 미쳐 날뛰는 중이었다.
인간과 연합군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하나 둘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왕부터 잡는다.”
-잘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판단하자, 이제는 완전한 모습을 갖춘 현자의 돌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드워프들이 만들어준 마왕을 상대할 병기는 기본적으로 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내 근처의 몬스터들을 한 번에 쓸어 버리고는 검 중앙에 박혀 있는 현자의 돌을 바라봤다.
검을 받고 나서, 말이 없길래 인격이 사라진 것인가 했더니 지금껏 그냥 입을 닫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 살아 있었어?”
-….죽길 바랐냐? 그리고 죽은 건 예전에 죽었다.
“혹시 마왕이 어디 있는지는 확인 되나?”
나는 현자의 돌을 향해 그렇게 물었다.
마왕 전용 결전 병기인 만큼 위치 추적 기능 정도는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기다려.
검 중앙에 박힌 현자의 돌이 붉은 빛을 번쩍였다.
잠시 밝은 빛을 발하던, 현자의 돌이 이내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왜? 뭐가 잘 안 돼?”
-…..여기 없다.
“뭐?”
나는 현자의 돌의 말에 멍한 표정으로 그리 물었다.
설마하니, 이 전장에 마왕이 없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탓이었다.
순간, 등 줄기로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 몬스터 대군이 인간과 연합군을 낚기 위한 거대한 미끼였을 수도 있는 상황.
그렇다면 마왕이 진짜로 노리고 있는 것이 따로 있을 것이었다.
“그럼, 대체 어디 있다는 건데?”
-….기다려라. 찾고 있는 중이다.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검에 박혀 있는 현자의 돌을 바라봤다.
그 사이에도 몬스터들이 꾸역꾸역 내 근처로 몰려드는 것이 보였다.
내 곁에 있던 하얀이와 데이나가, 어떻게든 몬스터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마법을 쏘아대고 정령을 부리는 중이었다.
“파이어 월!”
나는 하얀이와 데이나, 그리고 나를 경계로 거대한 불길을 불러 일으켰다.
전장 한가운데 갑자기 생긴 거대한 불의 장막이, 몬스터들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아직, 멀었어?”
나는 불타 오르는 몬스터들을 확인하고는 현자의 돌을 향해 그렇게 소리쳤다.
어차피 마왕을 찾지 못할 거라면 주변의 몬스터들을 전멸시키는 것이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예상대로 마왕이 뭔가를 노리고 있는 중이라면, 여기서 힘을 너무 빼는 것이 중대한 패착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기다려라, 찾고 있으니!
내가 보채듯 말하자, 현자의 돌이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돌이라서 티가 나지 않을 뿐, 그도 지금 마왕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찾았…어?
“뭐야? 어딘데?”
나는 현자의 돌의 말에, 곧장 반응했다.
하지만 현자의 돌은 뭔가 망설이는 듯, 뜸을 들이다 한 템포 늦게 나에게 다시 말을 걸어왔다.
-니스다.
**
“씨발!”
나는 포탈을 열고 곧장 여관으로 돌아왔다.
하필이면 니스에 마왕이 나타났다는 순간,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여급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마왕이 고작해야 여관의 여급따위를 노릴 이유는 없었지만,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무도 없어?”
나는 여관으로 나오자 마자, 여급을 찾았다.
하지만 여관에는 여급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상황.
평소에도 여관 밖을 잘 나서지 않는 여급을 떠올린 나는 조금 더 불안함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일단 밖으로 나가자.
나는 현자의 돌의 조언에 따라, 여관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진 니스의 풍경은 정말로 끔찍했다.
정확히 공표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대륙에는 이미 마왕 군과 연합군의 전쟁이 벌어진다는 소문이 퍼져 나간 상태였다.
아르카 왕국과 가까운 니스의 시민들은 그 소식을 비교적 빠른 시기에 접한 이들이었다.
덕분에 내가 전장으로 떠나기 전에도, 니스의 거리가 텅 비기는 했었다.
고작 벽돌을 쌓아 만든 집이 그들을 마왕에게서 지켜주지는 못할 테지만, 그래도 인간은 불안함을 느끼면 집 안에 숨어들기 마련이었다.
“…..이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 같은 풍경은 아니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상황.
나는 마치, 생명체라고는 하나도 없는 유령 도시처럼 변한 니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쨌거나, 니스는 내가 갑자기 이세계로 끌려 와 처음으로 만난 도시였다.
거기다 나는 니스를 구한 성자였다.
니스 시민들 대부분이 나를 알고 있었고, 그들은 나를 마주할 때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해왔었다.
그렇게 하나 둘, 안면을 트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그들과 딱히 친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마찬가지로 그들이 나와 아예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당황하지 마라. 차라리 시체들이 쌓여 있는 것 보다는 지금이 나으니까.
내 감정이 요동치는 것을 느낀 것인지, 현자의 돌이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이내, 그 붉은 돌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빛은 실처럼 어딘가를 향해 직선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내 시선이 그 빛을 따라가자, 현자의 돌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이 끝에, 마왕이 있을 것이다.
나는 현자의 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들에 가려, 그 끝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방향은 아카데미를 향하고 있었다.
**
“….빌어먹을.”
역시나 내 예상대로 마왕을 가리키는 빛은 아카데미 내부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카데미에 도착하기까지, 나는 단 한 명의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 사람들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모든 것은 마왕을 만나면 밝혀질 일이었다.
나는 빠르게 아카데미 내부로 들어갔고, 이내 건물 안에 앉아 있는 여급을 마주할 수 있었다.
“왔나?”
여급은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급이되 여급이 아니었다.
내가 이세계에 오고 나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이 여급이었다.
외형은 그대로였지만, 그 분위기나 말투, 그리고 눈빛 같은 것은 그녀가 지금 전혀 다른 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타이밍에 그럴 존재는 딱 하나 밖에 없었다.
“…마왕?”
“후후후. 역시 속이는 것은 불가능했던 모양이군.”
마왕은 나를 향해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평소 여급이 짓던 표정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웃음이 그녀의 입가에 걸리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왜…?”
나는 여급의 몸에 들어간 마왕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런 능력도, 배경도 없는 그녀에게 들어간다고 해서 이득을 얻을 것이 없었으니까.
물론, 여급 또한 전대 용사의 후예라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아, 뭔가 오해를 하나 본데, 내가 이 아이를 택한 게 아니야. 이 아이가 나를 부른 것이지.”
그 순간, 마왕이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마왕을 보며 물었다.
“그녀가 널 불렀다고?”
내 질문에 마왕의 고개가 천천히 위 아래로 움직였다.
“그래. 이 아이는 강한 힘을 원했어. 그리고 대륙의 그 누구보다도 암울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 그 어두운 감정들이야 말로, 나에게는 힘의 원천. 나는 그 감정을 통해 힘을 얻고, 이 아이에게 그 힘을 아주 조금 빌려주기로 약속했지.”
“…..그렇다고 하기에는, 지금 그 몸의 주인은 그녀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마왕을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며 그리 물었다.
여급이 어떤 이유로 힘을 갈망했고, 또 어떤 이유로 암울하고 어두운 감정을 느꼈는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이럴 줄 알았다면….그렇게 그냥 두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여관의 식구들을 데리고 전장으로 떠날 당시에, 혼자 버려진 듯 날 바라보던 여급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의 모습이 불안해 보이기는 했지만, 나는 그 모습을 외면했었다.
‘차라리 그때, 뭐라도 이야기를 했다면…’
이제와 후회하기는 늦었겠지만, 그 때의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마왕을 잡으면 끝난다는 생각에, 그냥 내버려 두었지만 그때 그녀에게 제대로 설명이라도 해줬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흐르진 않았을지도 몰랐다.
“….미안.”
나는 눈 앞의 여급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미안해. 너만 혼자 남겨둬서.”
나는 무표정한 여급의 얼굴을 보며 다시 그 말을 반복했다.
그녀가 내 말을 듣고 있는 것인지 조차 확신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렇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후회해도 늦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라도 용서를 빌고 싶었으니까.
“하? 웃기는 군. 그래 봐야 소용없다.”
마왕은 비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마왕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저 내 마음이 편하자고 그렇게 사과를 하는 것일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 내 눈에 여급의 손 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마왕이 완벽히 그녀를 지배하고 있다면, 보일 리 없는 행동.
‘….듣고 있는 건가?’
나는 여급의 손 끝을 보며, 미약한 희망을 느꼈다.
어쩌면 내가 읽어 온 숱한 소설들 속의 뻔한 내용들처럼, 여급의 의지가 마왕을 밀어내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으니까.
“….미안해.”
나는 여급을 보며 다시금 그 말을 반복했다.
다른 변명은 필요 없었다.
순간, 다시금 여급의 손 끝이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는 마왕조차도 그 움직임을 인식할 정도.
“……하아. 이래서 인간들이란.”
마왕은 귀찮은 표정으로 자신의 움찔거리는 손가락을 바라봤다.
마치 완벽하게 장악한 몸에서 손가락 하나만이 말을 안 듣는 다는 것처럼.
-지금이야.
순간, 현자의 돌이 나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지금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 밖에 없었다.
마왕이 자신이 차지한 몸에 남아 있는 여급의 존재에 시선이 팔린 순간, 공격을 가하라는 소리.
“….싫어.”
나는 현자의 돌의 말에 그렇게 대답했다.
손가락에 가 있던 마왕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로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머저리 같은.
완벽한 기회를 날려버리자, 현자의 돌이 답답한 목소리로 나를 향해 소리쳤다.
이미 기습을 가할 타이밍은 물 건너 가버린 상황.
“호오…? 죄책감 때문인가?”
일련의 상황들을 파악한 마왕은 나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나는 그런 마왕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그런 건 아니야.”
“그럼?”
“지금 공격 해봐야 널 죽일 수 없을 것 같았거든.”
현자의 돌의 말대로 마왕을 공격했다고 해도, 나는 그 공격이 성공했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자그마치 마왕과의 결전에서 용사가 기습을 해서 이기는 결말 따위는 누구도 바라지 않을 테니까.
나는 천천히 검 끝을 바닥으로 내렸다.
“…하핫, 하하하하하!! 기브 업이냐? 이번 대의 용사여?”
마왕은 내가 검 끝을 내리자, 웃음을 터트리며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나는 배를 잡고 웃는 마왕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마왕은 내가 포기를 한 것이라 여겼지만, 당연히 나는 내 목숨을 그렇게 쉽게 놈에게 내 줄 생각이 없었다.
마왕도, 그리고 현자의 돌도 생각지 못한 다른 방법으로 그를 물리칠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이야기 흐름을 보면, 꼭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모두가 미쳤다고 생각할 방법이었지만, 나는 의외로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여겼다.
나는 마왕을 보며, 천천히 바지를 풀어 헤쳤다.
속옷을 내리고, 내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
여급, 아니 마왕이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마왕의 두 눈에 혐오감이 가득 드러나는 것이 보였다.
그 혐오감에 찬 시선 때문인지, 축 늘어져 있던 자지가 순식간에 힘을 찾으며 머리를 세우기 시작했다.
“지금….이게 뭐 하자는 짓이지?”
마왕이 당황한 표정으로 내 물건을 보며 그렇게 물었다.
나는 그런 마왕의 얼굴을 살피며, 잔뜩 발기한 자지를 손으로 흔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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