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제 5화. 새침한 아라크네.(5)
* * *
왜 다를까?
그리고 방적돌기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왜 거미줄의 상태가 이상할 걸까?
조금 생각해보다가 이내 내 지식 내에선 해결 될 것 같지 않아서 발걸음을 돌렸다.
이런건 길게 생각할 것 없이. 좀 더 아는 것이 많은 이에게 물어보는 게 낫겠지.
"가... 가는 거야?"
발걸음을 돌려서 왔던 길로 돌아가려 하자 등 뒤에서 사린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대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될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한테도 물어보려고."
"그... 그래? 으응... 난 또 나 땜에 그냥 돌아가는 줄 알았네..."
기둥 뒤에 숨어서 얼굴을 붉히면서 말해오는 사린을 향해 몸을 돌려 세웠다.
"음. 반 쯤 은... 맞지?"
"으응?... 내가 설마 앞 쪽을 안 보여 줘서 그런 거야?"
"응."
"그...그래도 앞에는 거미줄하고 정말 상관 없단 말이야."
"앞에 뭐가 있길래 그리 감추는 건데?"
내 말에 사린이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였다.
"보...보... 보지."
자그마한 목소리지만 확실하게 캐치했다.
보지란 말이지. 거미도 자궁은 있다는 걸 알고 있긴 한데, 그걸 거미인 아라크네에게 직접 보지라고 들을 줄이야.
진귀한 경험이네. 그나저나 거미의 보지는 어떻게 생겼는지 진짜 궁금해지네.
"그게 부끄러운 거야?"
"응?! 당연하지 거긴..."
"거긴?"
"으... 하여튼 안 돼! 보여 주는 것도 만지는 것도! 여긴 절대로 안 돼!"
소리를 버럭 지르는 사린을 보면서 확실히 보지 쪽은 보는 것도 만지는 것도 어렵겠다 싶었다.
한번 쯤 구경은 해보고 싶었는데.
잠시 생각에 빠져 있자, 사린이 나를 흘겨 보듯이 슬쩍 바라보더니 이내 기둥 뒤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사린과 헤어지고 난 뒤 송이 버섯 엘리베이터로 돌아왔다.
"오빠야! 잘 해결 됐어?"
내부로 들어가자 마법진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서 있던 아이린이 나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응... 그게 말이지."
아이린에게 방금 전 있었던 일들을 하나도 빠짐 없이 말해주었다. 옷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와 사린이 내게 부탁한 것들.
그리고 내가 직접 만져본 방적 돌기와 현재 상태에 관해서.
근데 중간에 방적 돌기 구멍에 손을 넣었다고 했을 때 아이린이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내 손과 팔뚝을 번갈아 쳐다보았는데.
아서라 설마... 아니겠지?
왠지 세라자드 때, 수면 버섯을 먹고 난 뒤의 기억이 짤막하게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 때도 내가 잠들었을 때 덮친 것 같은데, 정확한 기억이 없다 보니 현행미수범이구만.
"으음. 오빠야. 사린 언니 같은 경우는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아라크네가 거미줄이 안 나온다는 건 내가 포자를 다루지 못한 다는 것 만큼 치명적인 일이야."
하긴 거미가 거미줄을 못 만들면 문제긴 하지.
근데 아이린도 모른다고 하면 에슬리를 찾아가 봐야 하나?
"네가 모르면 에슬리한테 물어봐야겠네."
"음. 잠깐만 오빠야, 어쩌면 도서관에 자료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에슬리의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린이 도서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버섯왕국에 있는 도서관 꽤나 크면서도 책들이 뭔가 고풍스럽게 생기긴 했다.
아이린의 지식의 바탕이 도서관에 있다는 걸 생각하면 어쩌면 도서관에 해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일단 에슬리에게 물어 보기 전에 도서관부터 들려볼까?"
"응."
아이린과 도서관으로 돌아와 원형으로 되어 있는 도서관 내부를 천천히 뒤지고 다녔다.
희한한 게 있다면 이세계로 와서 몬스터들과 한국어로 대화가 통하는 것도 신기했는데,
책들 또한 한국어로 잘 읽혔다. 아이린에게 이에 대해서 물어보니 내가 소환되면서 부가 적으로 딸려온 능력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고 하며 호기심을 표했는데.
내 입장에서는 뭔가 깊게 파고들기는 귀찮아 그냥 그런가 싶다 하고 넘어갔다.
애초에 자지용사가 됐을 때부터 깊은 이해를 포기한 참이기에, 이제 뭔가 이해 안되는 일이나 현상이 벌어졌을 때.
누가 열심히 설명해주면 내가 이해하는 딱 거기까지만 생각하기로 생각했다.
"오빠야. 혹시 찾았어?"
1층 도서관을 뒤지던 아이린이 3층에 있는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니."
도서관 내부는 1층부터 5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송이 버섯의 기둥이 되는 부분이다 보니, 가운데에 원통 형으로 된 나선형 계단이 있고.
외벽으로 난간 식으로 책장들이 원을 그리듯이 주욱 진열되어 있는 구조였다. 그렇기 때문에 난간 밖을 통해서 1층부터 5층을 다 살펴 볼 수 있었다.
"음. 잘 안보이네. 아라크네에 관련된 서적은 조금 있는데, 거미줄에 관한 내용은 또 없어."
아이린의 혼잣말에 3층을 뒤지다가 1층으로 내려갔다.
"아라크네에 대한 서적이라도 좀 볼 수 있을까?"
3층에는 아라크네에 대한 서적이 하나도 없었다. 악마와 신에 관련된 서적들은 많았는데, 지금은 필요 없는 이야기들이라 조금이라도 비슷한 게 보이는 1층으로 내려온 것이다.
"응. 오빠야. 여기 여섯 권 정도 되는데."
아이린이 자그마한 탁자에 차곡차곡 쌓아 놓은 여섯 권의 책을 가리켰다.
저마다 제목도 다르고, 표지에 아라크네라는 단어 또한 보이지 않았다.
"하나하나 내용을 살펴 본 거야?"
"아니? 목차에서 아라크네가 있는 부분만 따로 찾아서 읽어봤어."
"그래?"
제일 위에 놓여 있던 두꺼운 책을 집어 들었다.
제목이... 어디 보자. 동쪽 숲에 사는 몬스터에 관한 생태학 이라니.
원래 아라크네가 있던 곳이 동쪽 숲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나 이 곳이 마왕궁의 미궁이라는 것 까지는 아는데, 여기가 어디 쯤인지.
그리고 이세계의 지도가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이 없다.
아이린에게 나중에 알려 달라고 해야지.
천천히 책을 넘기다가 아라크네에 대한 목차를 찾아서 읽으려고 할 때 쯤.
갑자기 1층에 있던 커다란 입구가 불쑥 열렸다.
애초에 잠금 장치가 따로 없는 버섯으로 만들어진 입구다 보니 손으로 밀어도 쑤욱 열리긴 했는데.
"에흠!"
엄청난 미인이 입구를 열고 들어왔다.
은발? 아니 보라 빛도 살짝 나는 게 아이 보리 색의 장발의 머리를 한 여인이 도서관 내로 들어섰다.
꽉 끼는 검은색의 타이즈 같은 옷에 맨발에 여인이 곧바로 내 쪽으로 성큼 성큼 다가오더니 내 앞에 마주 섰다.
"누...누구?"
아무리 봐도 마왕성에서 볼 법한 몬스터의 모습이 아닌...
아니 잠깐 자세히 보니까 이목구비가 1층에서 만났던 루루와 비슷하게 생겼다.
근데 루루와 다르게 완전 성숙한 여인의 몸에 다가 검은 옷이 꽉 낄 정도로 빵빵한 가슴과 엉덩이를 보자면 루루의 어머니 쯤 되나?
"크크크."
냉큼 내 앞까지 다가오더니 갑자기 내 황금 색 목걸이를 가로채듯이 휙 잡아 챈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내가 피하자, 공중에서 헛 손질을 하더니 이내 성난 표정을 지었다.
"이익! 내 놔라. 내 물건이단 말이다!"
성인의 모습과 다르게 약간 어린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는 것 같이 칭얼거리는 목소리에 순간 판단이 섰다.
"루루?"
"크크크. 이제야 이 몸을 알아 보더니."
으시대듯이 가슴을 쭉 펴는 모습에 확실하게 깨달았다.
어떻게 성인의 모습이 된지는 몰라도 분명 루루가 맞았다. 그리고 성인이 된 것 말고도 온 몸에서 무시무시한 압박감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처음에 내가 소환되었을 때 만났던 마왕 간부와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으윽..."
"사령관님?"
책을 두고 뒤로 살짝 물러서자, 녀석이 으스대는 표정이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린이 다가오자마자 손짓으로만 다가오는 것을 멈추게 했다.
말 그대로 아무런 강제력 없이 아이린을 멈추게 한 것이었다.
살짝 벙찐 아이린을 뒤로 하고 루루가 다시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팔짱을 끼며 내 앞에 바짝 다가와 섰다.
"네 놈이 나한테 한 짓을 알고 있다. 요 괘씸한 놈의 똘똘이도 말이지."
루루의 말에 똘똘이가 성난 듯이 껄떡였다.
"덕분에 갑자기 굉장한 마력이 생겨서 순간적으로 진화를 성공했지만, 뭐 상태를 보아하니 일시적인 것 같고. 네 놈의 똘똘이에 대해서 엄청 흥미가 생겼다고 할까?"
하면서 내 앞에 다가와 손으로 똘똘이를 움켜 잡았다.
전에 작은 소녀였을 때와 다르게 한 손에 쥐어지는 똘똘이의 모습에 루루가 입이 찢어지게 웃었다.
"크크크. 네 놈의 똘똘이가 내 소중한 곳을 관통하던 그 고통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미약 때문에 모를 줄 알았는데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니?
"자...잠깐. 그건 네가 내 똘똘이를 잘라버리려고 해서 그런 거잖아!"
내 말에 아이린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린에게 루루와 있었던 일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대충 루루와 마찰이 있었고 목걸이를 가져 왔다고 만 말했는데.
그 진실의 일부를 알아버린 것이었다.
"그...그건 사실 장난이었다. 장난이었다고... 사실 내 연구실에 있는 자지들도 전부 서큐버스들이 모아와 준거란 말이다."
장난이었다고?
아무리 봐도 장난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그냥 몰아 부치는 게 재미있어서. 적당히 하고 말랬는데!... 네 녀석은... 네 녀석은..."
그러면서 루루가 품 안에서 찢어진 곰돌이 팬티를 꺼냈다.
그 다음 스포이드와 미니멈 자지를 차례로 꺼냈다.
설마 아니겠지?
"크크크."
홀리.
순간 팔다리가 대자로 쫙 벌려지더니 이내 몸이 돌처럼 굳은 듯이 고정 되어 버렸다.
"자, 이제 복수의 시간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