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제 8화. 전환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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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 드래곤이 그려진 문양. 제국군의 문양이군요."
하얀 제복을 입은 여성을 가리키며, 세라자드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중에서 가장 인간들에 대해서 잘 아는 게 세라자드였지?
죽기 전까지 인간 왕국의 발키리 였으니까.
"더욱이 목에 하얀 드래곤이 그려진 문양이 팬던트를 하고 있는 걸로 보아, 황족일 확률이 높습니다."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세라자드의 늘어진 머리카락이 왠지 예쁘게 느껴졌다. 손가락으로 한번 베베 꼬아보고 싶을 정도로.
내 시선을 느꼈는지 세라자드가 자신의 금발 늘어진 금발 머리카락을 귀 뒤로 스윽 넘기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뒤에 있는 붉은 제복의 여성들은 처음 보는 군요. 붉은 장미 문양이 있는 걸로 보아 소속 부대나 왕국을 뜻 하는 걸 텐데. 저런 문양은 본 적이 없습니다."
세라자드의 말에 여성 일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저런 문양의 기사들이 있다는 건 처음 봐."
"저도 처음 봐요. 저희 왕국이 교류했던 인간들 중에 저런 문양을 쓰는 이들은 본 적이 없어요."
"흐응... 실력은 소드 익스퍼트 중급인가?"
루루, 아이린, 에슬리 순으로 말을 내 뱉었다. 근데 잠깐.
소드 익스퍼트? 그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오던 그런 소드 마스터 그런 개념의 명칭인가?
"잠깐. 에슬리. 소드 익스퍼트가 뭐야?"
"흐응. 그러고 보니 김지호는 이세계에 대해서 거의 모르지?"
그러면서 침대 위에 앉아 있는 내게 다가오더니 내 옆자리를 꿰차듯이 걸터 앉았다.
그 모습에 자극 받은 사린이 주섬주섬 다가와 내 남은 옆자리를 꿰차듯이 걸터 앉았고.
"이세계에는 마나라는 게 있어. 이 마나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생명체에게 깃드는데. 그걸 느끼기 시작하는 단계가 마나 유저라고 불러. 그리고 이 마나 유저의 단계에서 느끼는 마나의 종류에 따라서 소드 유저, 마법사로 나뉘어."
"소드 유저와 마법사?"
"응. 소드 유저는 마나를 검이나 신체에 발현하는 이들이고, 마법사는 마나를 심상 세계를 통해 이미지화 시키는 이들이지."
이어지는 에슬리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판타지 세계가 맞구나.
처음에는 그저 주위에 마왕군이라 불리는 몬스터 들만 잔뜩 있기에 무슨 몬스터 세상인지 알았는데.
"그리고 소드 유저가 마나의 발현에서 이제 무기나 신체에 강력하게 발현되기 시작하면 소드 익스퍼트. 이 단계부터는 무기에 마나를 부여하면 돌이나 바위 정도까지 베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야 돼. 그리고 이 익스퍼트 단계도 상중하로 나누는데, 지금 저 붉은 제복의 병사들이 중급이면 거의 강철까지 벨 수 있다고 생각 해야 돼. 물론 마나가 깃들지 않은 강철을 말이야."
강철을 벤다? 철을 벤다고? 그것도 칼로?
뭔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물론 소설이나 만화에서는 가끔 보기는 한 내용이지만, 실제로 마나를 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내 상식선에서 뭔가 딱 하고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었다.
"그럼 지금 강철을 벨 수 있는 병사 몇 명이 제국군 황족과 제국군 기사를 추격 중이라는 거지?"
"흐응. 맞아. 조금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기는 해. 병사들 중에 소드 익스퍼트가 없는 건 아니지만. 보통 왕국 기준으로 보면 천인 대장 수준은 되어야 소드 익스퍼트 중급 정도 될 거야."
"보통 기사의 수준은?"
"소드 익스퍼트 하급이나 중급이지. 물론 기사대장 수준으로 올라가면 상급에 달할 것이고."
"그 위에는?"
"소드 마스터가 있는데, 이 정도면 기사 대장이 아니라 보통 국가에 중요 인물의 자리에 있다고 봐야 돼."
소드 마스터라... 그 소설에 보면 검강을 날리면 바다가 갈라지고 계곡이 갈라지는 그 수준인가?
"소드 마스터는 얼만큼 쌔?"
"흐응. 글세? 인간들의 기준으로 따지면 손에 꼽을 정도고, 지금 우리들 중에서 소드 마스터를 잠시 동안 막을 수 있는 건... 흐응. 세라자드 정도?"
에슬리의 말에 세라자드를 바라보자, 어느새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내 맞은편에 선 세라자드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주인님께서 원하신다면 상대가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상관 없습니다."
그 말에 왠지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 같았는데, 옆에 있던 에슬리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흐응. 잠깐동안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만 말한 거지. 이긴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세라자드 네가 아무리 인간 때에는 소드 마스터를 이긴 발키리 였다고 해도. 지금은 아니잖아?"
그 말에 세라자드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주인님이 원하신다면, 이 한 몸 불살라 소드 마스터의 팔 하나라도 가져가겠습니다."
말 그대로 노력은 해 본다는 얘기였다. 그나저나 지금이 약화된 상태라면 다시 강해질 방법이라도 있는 걸까?
에슬리의 말투를 보면 가능하다는 것 같은데.
"뭔 소리야. 세라자드. 지금은 소드 마스터랑 싸우면 절대 안 돼. 물론 소드 익스퍼트 정도라면 상관 없지만 말이야."
루루가 다가와서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근데 에슬리가 세라자드의 과거를 알고 있다는 듯이 얘기하니까. 뭔가 신기했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서로 잔뜩 이야기라도 나눈 걸까?
"그리고 오빠 언니들 지금은 소드 마스터니 뭐니를 설명할 때가 아니라 이거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얘기해야지."
"맞아요. 지금은 위급 상황이라고요."
루루의 말에 아이린이 지원사격을 하자, 내 옆에서 호시탐탐 대화에 끼어들 기회를 잡고 있던 사린이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게 가장 급한 일이지요. 일단. 루루 지금 지하 1층 상황을 알려주시겠어요?"
사린의 말에 루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지하 1층에 있던 광부들을 전부 2층 입구에 있는 거점으로 이동 시킨 참이고, 이쪽 인간들은 1층 통로 중간을 통과하고 있어. 이대로 간다면 10분 내에 2층 입구에 있는 거점에 도착할 거야. 그 전에 무조건 이 인간들을 처리해야 돼."
"처리한다고?"
"응. 전부 죽여서 없애야지."
내 질문에 루루가 답변을 했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보는 인간이라서 반갑게 느껴졌던 건 나 뿐인가.
하긴 인간이라고 해 봤자 나 뿐이고. 지금은 다들 마왕군 에다가 인간을 적대시 하는 세력이니까 어쩔 수 없지.
잠시 생각하는 동안 나를 제외한 여성진 전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이야. 일단은 인간들이 죽지 않고 도망갈 가능성을 생각해서 사린 언니와 아이린 언니는 1층 입구로 가서 거미줄과 버섯 함정으로 출구를 막고, 나와 에슬리 언니는 거점에서 혹시 모를 대비를, 그리고 오빠와 세라자드가 나서서 저 인간 일행들을 처리해 주길 바래."
"내가?"
갑자기 뜬금없이 나보고 인간들을 상대하라니?
내가 경악하는 표정을 짓자 루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오빠한테 전투력은 기대하지 않으니까. 그냥 세라자드랑 인간 앞에 나타났다가 뒤로 빠져 있어도 돼."
윽. 팩트 공격에 가슴이 아팠지만.
근데 그럴 거면 굳이 내가 세라자드와 함께 갈 필요가 있을까?
"아니. 잠깐만. 그럴 거면 내가 굳이 갈 필요가..."
"오빠. 우리는 마왕군이잖아. 전부다 죽여 버릴 거긴 하지만 굳이 마왕군이 이 곳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인간들에게 들키면 큰일 나거든. 그러니까 최대한 오빠와 인간을 닮은 세라자드의 모습을 보여서 인간들을 해치우는 게 좋을 것 같아."
"어차피 그냥 죽일 거라면 상관 없지 않아?"
"혹시 누군 가가 죽음과 동시에 마법으로 이 곳의 상태나 기억을 전송하기라도 하면 큰일 나니까. 만에 하나로 오빠까지 포함한 거야. 그리고 오빠는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니까? 저기 있는 세라자드가 다 알아서 할 거야."
루루가 그렇게 단언하면서 허공에 그린 마법진을 회수하자, 상황을 보여주던 안개가 사라졌다.
"아니 근데. 정말 내가 가야만 해?"
내 마지막 질문에 루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혹시 상황이 좋게 풀릴 것 같으면 오빠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거든."
"상황이 좋게 풀린다니?"
"예를 들어서 알아서 항복해 준다 거나? 혹은 기절해 준다 거나?"
무슨 말을 하는 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루루 말대로 세라자드가 나서서 전투한다면 내게 크게 부담은 없을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세라자드가 약해진 상태라고 해도, 내가 꿈 속에서 보았던 발키리 검술이라면 강철을 베어내는 기사라고 해도 질 것 같지가 않았다.
"흐응. 그렇게 걱정 된다면 나한테 똘똘이를 맡기고 가도 좋아."
내가 계속해서 걱정하고 있자,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에슬리가 풍만한 가슴을 들이 대며 내 똘똘이를 손으로 부드럽게 만지작 거렸다.
"그...그거라면 서방님 저한테 맡기셔도 상관 없어요."
"오빠야... 나... 나도."
"자...잠깐만. 누구 맘대로 내 똘똘이를 맡기니 가져가니 하고 있어. 절대 안 돼. 안 된다고. 루루, 세라자드 가자!"
내 다급한 목소리에 세라자드와 루루가 쿡쿡 대면서 뒤 따라왔다.
아이린의 순간 이동을 버섯을 통해 나와 여성 일동은 3팀으로 나뉘어서 흩어졌다.
중간에 에슬리가 서운한 표정으로 나와 함께 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나, 나머지 여성들에게 집단 린치를 받아 반대 당했다.
그리고 나는 결국 세라자드와 함께 미궁 지하 1층 거점에서 출발해서 인간들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세라자드."
"네. 주인님."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동굴을 걸어가며 세라자드를 바라보았다.
검은색과 하얀색이 조화롭게 이루어진 전통 메이드복. 그리고 그 위로 두드러지는 볼륨감 넘치는 세라자드의 몸매와 기쁨 감정을 참듯이 찔끔찔끔 올라가는 입꼬리가 보였다.
아마도 내 음흉한 시선에 기분이 좋아 진 것 같았는데. 이 음탕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 옷은 사린이 만들어 준거야?"
"네. 주인님. 사린님께서 저 같이 음란한 몸매는 주인님에게 치명적이라면서 꼭 꼭 감춰야 한다면서 이 옷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사린. 꼴알못이구나.
자고로 진정한 꼴림은 홀딱 벗은 몸보다 벗기지 않아도 드러나는 그 음란함이 꼴림의 포인트건만.
옷의 두께와 신축성 때문에 걸을 때마다 걸음에 맞춰서 출렁거리는 가슴이 내 시선을 계속해서 사로잡았다.
출렁출렁
지금의 내 마음처럼 출렁이는 가슴의 움직임에 시선을 주다 이내 갑자기 허공에 크게 출렁이는 가슴의 움직임에 호오 하고 감탄사를 내 뱉었다.
"주인님. 도착한 것 같습니다."
루루에게 받은 칠흑의 검 집을 한 손으로 붙잡고, 다음 손으로 그 안에 꽂힌 검의 손잡이를 붙잡은 세라자드에게 내 앞으로 나섰다.
"위험하니 뒤에 계세요. 주인님."
"응!"
빛보다 빠른 속도로 뒤로 물러섰다.
참고로 지금 나는 바닥에 살짝 끌리는 붉은 망토를 어깨에 두르고, 푸른색의 사각팬티만 입은 상태였다.
그 누가 보아도 변태로 의심할 만한 모습.
더욱이 똘똘이를 겨우 팬티 안으로 쑤셔 넣었는데, 방금 전 세라자드의 가슴을 본 것 때문인지, 축축하게 젖은 팬티 때문인지. 다시금 단추 사이로 살짝 튀어나온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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