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마왕 간부에게 소환당해 착취당하고 있다-49화 (49/220)

〈 49화 〉 제 8화 전환점.(6)

* * *

"알았어."

아무리 잔인한 장면을 보는 것이 무뎌졌다고 해도 계속해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시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감각이 아니었다.

새로이 든 호기심이라는 것도 내부가 어떻게 생겼냐가 아니라 루루가 좀비를 만드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었지 시체 자체의 호기심이 아니었다.

조금 떨어져 있던 세라자드의 몸통으로 다가갔다.

무릎을 꿇은 채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 있는 세라자드의 몸통을 보면서 혹시 어딘가 다친 곳이 없나 살펴보았는데 메이드 복에는 먼지만 묻어있고 찢겨지거나 베인 곳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옷이 보호하지 못하는 손을 확인해 보았는데도 다친 곳은 보이지 않았고.

슬쩍 주위를 둘러본 후에 작게 속삭였다.

"세라자드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봐."

머리가 없어서 혹시 못 듣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과 달리 내 명령에 무릎을 꿇고 있던 세라자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누군가 가 보고 있지 않나 하고 주위를 둘러 본 후에

슬쩍 발목까지 닿는 펑퍼짐 한 메이드복 치마를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걷어 올렸다.

와우...

발 아래에 신은 검은 롱부츠와 그 위로 사슴의 뒷다리처럼 단련된 근육과 함께 시원하게 쭉 뻗어 올라간 다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 위로 통통하면서도 근육이 뒤편에 근육으로 인해 꽉 찬 섬유질 덩어리를 보는 것 같은 다리에 감탄사가 나왔다.

흡사 꽃게 앞 다리살을 뭉쳐 놓은 것 같이 새하야면서도 아름답게 뻗어 올라가는 허벅지를 본 나는 그 위에 금 빛깔로 수북이 나 있는 음모까지 시선이 올라가다 멈췄다.

응?

왜 노팬티지?

이럴 때는 보통 검은색의 가터밸트나 검은색의 음란한 프릴 팬티 같은 게 나와야 정석 아니냐고!

다시금 걷어 올렸던 세라자드의 치마를 내려놓으면서 몰려오는 실망감에 아차 했다.

아, 원래 상처가 있나 살펴보려고 했는데 단련된 여전사의 다리라는 호기심에 의해 마음과 시선을 둘 다 뺏겨서 그만 목적을 까먹었었다.

뭐, 그래도 상처가 없는 건 확인 했으니까. 목적은 달성이지.

"세라자드 이제 다시 앉아도 돼."

내 말에 정확히 다시금 정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는 세라자드를 보며, 나도 자연스럽게 그 무릎 위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바닥이 평평한 동굴 바닥이라 등 허리를 찌르는 것도 없고 망토 때문에 돗자리 역할도 하는 것이 있어 바닥의 찬 기운으로부터도 보호됐다.

크윽.

그것보다 머리에서 느껴지는 탄탄한 허벅지에 멍하니 하늘을 보고 누우니 스르륵 잠이 오는 기분이 들었다.

살짝 고개를 숙여보니 사각팬티 위로 거의 에펠탑 수준의 텐트를 친 똘똘이가 보였으나, 뭐. 팬티도 입었으니 자다가 몰래 빨리는 경험은 이제 없겠지.

잠깐 잠이 들었 던가?

거의 기절하다시피 잠에 들어서 몰랐는데, 어느새 상황 정리를 끝낸 것인지, 내가 누워 있던 동굴이 아닌 다른 공간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천장이 검은 돌로 만들어진 걸로 보니 잠들기 전 통로도 아니었고, 룸룸 왕국의 버섯 도서관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스윽 고개를 둘러보자, 여기저기 바삐 뛰어다니는 루루의 모습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린과 세라자드의 모습이 보였다.

"세라자드?"

제일 가까이 있던 세라자드를 향해 입을 열자, 어느새 원래대로 깨끗한 모습의 메이드로 돌아온 세라자드가 허리를 숙이면서 정중하게 인사를 해왔다.

"일어나셨습니까? 주인님?"

머리도 어느새 깨끗하게 정리했는지 뽀송뽀송한 느낌과 함께 달콤한 향기가 풍겨져 나왔다. 그리고 목에도 제대로 잘 붙어 있었고.

"응."

"오빠야!"

그리고 세라자드 와 두세걸음 떨어진 곳에서 루루를 지켜보던 아이린도 반갑게 다가와 누워 있던 내 품에 안겼다.

"괜찮아? 오빠야?"

"응. 괜찮아."

"기절하듯이 잠들어 있길래 세라자드가 조심스럽게 루루의 연구실까지 데려 왔어."

어느새 루루와 말까지 놓은 듯, 사령관이란 호칭까지 멀리 날려버린 아이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많이 피곤하기는 피곤했었나 보다.

꽤 오랫동안 잠든 것 같은데, 루루의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그리 오래 지난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얼마나 잠들었었어?"

"음... 시간은 잘 모르겠고. 오래는 아니야. 금방 잠들었다가 금방 깨어났어."

누운 자세에서 안겨온 아이린이 슬쩍 슬쩍 가슴과 허벅지로 내 몸을 부비적 거리며 말했다. 이 요망한 년 같으니라고.

똘똘이를 은근슬쩍 허벅지 사이에 껴서 비비적 거리는 아이린을 보며 잠시 상태 창을 떠올렸다.

[레벨:10]

[나이:32]

[직업:자지용사]

[스탯 힘 10 체력 25 민첩 10 지능 10 지혜 10 운 999 남은스탯 10 ]

[성검: 똘똘이(부식, 미약생산. 포자생산. 발키리 검술. 신체 분리. 점도 조절. 마력 결박. 자가 분열. 왕가의 피.)

체력은 원 상태로 돌아왔고 레벨도 오르지 않았다.

자가 분열?

이 스킬은 써보지 않았지만 에슬리에게서 얻은 스킬 같고, 왕가의 피는 아이린에게 얻은 것 같은데.

"아이린. 혹시 왕가의 피가 뭐야?"

내 질문에 아이린이 잠시 내 위에서 비비댄 것을 멈추고는 살짝 내 위로 올라오며 얼굴을 마주 보았다.

"응. 그건 말이야. 오빠야."

마주 본 새하얀 얼굴의 아이린의 연한 자주색의 두 눈동자가 날 담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약간 호박색 같았는데, 지금은 신비로운 자주색으로 바뀌어 있는 눈동자를 보며, 좀 더 인간처럼 뚜렷해진 이목구비를 훑어 보았다.

미녀.

아시아의 기준으로 보자면 눈 크고, 코가 작으며, 입술은 얇으면서도 길쭉해 청순미를 더해주는 느낌의 정형적인 미인의 얼굴.

그리고 허리 아래까지 시원하게 뻗은 은색 빛깔의 머리카락이 내 볼을 포함해서 귓가를 스쳐서 바닥에 늘어진다.

마주 본 얼굴에서 살짝 홍조가 피어나는 듯 한 아이린의 모습에 손가락을 뻗어 이마를 쭉 밀었다.

"너무 가까워 아이린."

"으...으응."

그제야 살짝 뒤로 물러나는 아이린과 그 옆으로 살짝 미소 짓는 세라자드의 모습이 보였다.

"왕가의 피는 말 그대로 왕족의 혈통을 말하는 거야. 오빠야. 각자 고유의 혈통과 기술이 있긴 한데. 그건 피만 있다고 가능한 게 아니야. 그러니까 만약 오빠가 왕가의 피라는 걸 얻었다면. 그냥 신분증? 정도 얻었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신분증?"

"으응... 그러니까 보통 왕의 위엄이랄까? 그런 게 느껴진다는 거야."

"왕의 위엄?..."

한마디로 전혀 쓸모 없는 스킬이라는 이야기였다.

"괜찮아. 오빠야. 왕가의 피 라는 스킬도 완전 쓸모가 없는 건 아니니까."

아이린과 왕가의 피라는 스킬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문득 제국의 황녀라던 소녀가 떠올랐다.

"아차. 그러고 보니 그 황녀라는 아이는?"

그러고 보니 완전 잊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세라자드에게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던 것을 누군 가가 전달 받았다면 다행일 텐데.

주위를 다시금 둘러보니, 새로운 육체를 얻은 것 처럼 보이는 룽룽과 율리시아가 알몸으로 연구실을 쏘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새로 얻은 육체를 사용해 보는 것 같았다.

그런 둘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니 어느 한쪽에 X자로 세워진 기둥 같은 곳에 알몸 상태로 X자로 묶여 있는 황녀가 보였다.

이야.

보통은 저런 상황을 보면 걱정이 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안도감이 드는 걸 봐서 나도 이제 순수한 인간은 글렀나 보다.

그나저나 은발 머리라서 혹시나 했는데, 아이린처럼 음모도 은색이다. 다만 아이린과 달리 털이 짧고 별로 없다 보니 뭔가 황량해 보이긴 했지만.

"오빠. 깨어났구나?"

아직 기절해 있는 걸로 보이는 황녀의 모습을 보다가 돌연 내 앞에 나타난 루루를 보고는 아이린을 밀어내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응."

"마침 정보 축출도 끝나서 다들 모이라고 하려는 참이었는데 다행이다."

라고 말하는 루루의 피투성이의 두 손을 보면서 저 멀리 곤죽이 되어 늘어서 있는 뇌들을 보다가 시선을 휙 돌렸다.

아마도 황녀를 쫓던 세력을 제외하고도 쫓기던 기사들의 뇌도 꺼낸 것인지 수가 꽤 나 많았다.

"일단 다들 모이기 전에 미리 얘기해둘 건데. 작전은 실패야. 제국은 둘째 치고 저기 저 쫓던 여성들 전부 뇌가 파괴되기 전까지 무언가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어."

그러면서 루루가 골치 아프다는 듯이 피투성이 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기억을 꺼내던 도중에 대부분 기억 왜곡이나 최면으로 엉망이 된 상태라, 저 상태로 변하기 전의 기억들만 온전했고. 제국 쪽 기사들에게 얻은 기억들로는 저들의 존재만 파악할 수 있었어."

루루가 얘기하는 사이에 어느새 나한테서 떨어진 아이린이 내가 누워있던 실험대 위에 걸터 앉고, 세라자드 또한 가까이 다가와 경청했다.

"흐응. 우리 왔어."

그리고 연구실로 내려오는 사다리를 통해 에슬리와 사린이 천천히 내려왔다.

둘이 뭔가 있었던 걸까?

둘의 표정이 서로를 향할때 마다 살짝 일그러졌는데. 이유는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어서와 언니들."

그렇게 해서 여성 일동이 다시금 모이고 나자 루루가 돌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이게 뭐야?"

갑자기 루루가 건넨 철제 팔찌를 받아 들면서 묻자, 루루가 팔장을 끼면서 말했다.

"얼마 전에 오빠가 맡긴 마갑이야. 개조를 통해서 오빠를 서포트 할 수 있도록 설정했어."

마갑?

아무리 봐도 그냥 평범한 팔찌처럼 보이는 마갑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 거렸다.

"한번 팔에 껴봐."

루루의 말에 따라 오른팔에 팔찌를 착용하자, 순간 팔찌에서 물컹물컹한 흑색의 액체가 흘러나와 마치 촉수처럼 변하는 것 같더니 내 상체를 전부 덮어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 단단히 굳는 것 같더니, 처음 세라자드가 입고 있던 흑색 갑옷처럼 외형이 변했다.

... 근데 왜 상체만 생기고 하체는?

루루를 바라보니 한껏 콧대를 세운 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빠의 요청대로 몸을 보호하면서 공격도 할 수 있게 바꿨어."

어디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상체 갑옷 아래 부근이 녹아내리듯이 변하더니 촉수들이 만들어져 내 하체를 보호하듯이 늘어졌다.

으악. 이게 뭐야?

[죽어! 이 변태 같은 주인 녀석아! 응? 주인? 주인? 뭐야 왜 이래?]

살짝 똘똘이가 따끔하는 느낌이 들더니 이내 머릿속에 전에 들었던 마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오빠 마갑이 시끄럽게 굴면 조용히 해. 라고 하면 조용해질 거야. 물론 다시 말을 하게 하려면 말 해도 돼. 라고 명령해야 되고."

혹시 세라자드를 내 말만 듣는 메이드처럼 만든 것처럼 이 녀석도 그런 식으로 개조 한 걸까?

[죽어! 죽으라고!]

"조용히 해."

[....]

확실히 조용히 하라는 명령에 마갑에서 울려 나오던 목소리가 사라졌다. 대신 촉수가 현란하게 움직이면서 뭔가 말을 대신하려고 했는데, 나한테 해를 입히는 쪽이 아니라 그냥 눈에 거슬릴 정도로 현란하게 움직일 뿐이었다.

몇 몇 불순하게 똘똘이를 향하는 촉수들도 있었지만, 마치 자석에 같은 극을 댄 것처럼 휙 하고 튕겨 나오듯이 방향을 트는 것을 보니 안전해 보였다.

그리고 내가 마갑을 해제한다는 느낌을 갖자 순간 마갑이 해제되면서 팔찌 모양으로 되돌아갔다.

"자자. 이제 모두 모였으니. 언니 오빠들."

내게 마갑을 설명한 루루가 모두 모인 곳에서 박수를 짝. 짝. 치더니. 무언가 양피지 같은 것을 꺼내 모두가 모인 한 가운데 허공에 마법을 사용해 둥둥 띄웠다.

"일단. 언니들은 다들 알겠지만, 오빠를 위해서 조금 설명을 덧붙이면서 설명해줄게."

그 말에 나를 제외한 여성 일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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