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마왕 간부에게 소환당해 착취당하고 있다-51화 (51/220)

〈 51화 〉 제 9화. 라미아 파티.

* * *

"오빠야?"

"어?"

갑자기 확 하고 눈이 떠지면서 시야가 돌아오자, 먼저 울먹거리는 얼굴 표정의 아이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빠야!"

윽. 상체를 일으키자마자 안기듯 달려드는 아이린을 품에 안고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오빠야?"

"응. 괜찮아."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내가 기절만 했다 하면 제일 먼저 아이린이 달려들어서 걱정 해주는 모습이 가끔 진짜 가족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모습 또한 그러했고.

가족이라...

지구에 있을 적에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출퇴근 때문에 집에서 강제적으로 독립하는 바람에 가족과도 떨어져서 이렇게 걱정해주는 사람도 없었는데.

"오빠! 미안해!"

그리고 다람쥐 마냥 자그마한 덩치의 루루가 아이린을 살짝 피해 허리를 안겨 들어왔다.

"김지호. 많이 다쳤어?"

"서방님."

그리고 에슬리와 사린이 그 둘의 위를 덮치듯이 안겨오는 게 느껴졌다.

으윽. 네 명이나 위에 덮치니까 무거워져서 일으켰던 상체가 자연스럽게 뒤로 넘어간다.

"주인님. 깨어나셔서 다행입니다."

[주인. 답답하다.]

세라자드가 내 발치에서 인사를 하고, 어느새 상체 갑옷 상태로 변한 마갑이 내게 붙은 네 명의 여성을 슬쩍 슬쩍 밀어내면서 촉수를 일으켜 세웠다.

"미안해. 오빠. 용사가 반신으로써 간섭의 능력을 가진 줄은 몰랐어."

"간섭의 능력?"

"응. 원래 신님 정도는 되어야 가질 수 있는 능력인데 설마 그 경지까지 오른 줄은 전혀 몰랐어."

끙.

루루가 하는 이야기가 정확히 어느 정도 스케일을 가진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전까지 마신과 대화를 하고 온 나로써 그 정도의 능력은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랬다면 마신이 나한테 그저 도움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뭔가 강력하게 경고를 했겠지.

"괜찮아. 그보다. 나 마신님하고 이야기 했다?"

"에엥? 마신님하고?"

"오빠야 정말이야?"

"정말로? 오빠?"

"역시 서방님이야."

내 한마디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뀐 여성들의 반응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무거우니까. 내려가서 이야기 하자."

다시금 여성 일동과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마신을 만난 이야기와 이 마갑이 마신의 사도의 영혼을 빚어낸 마갑이라는 것도.

"우와... 그럼 나는 마신님의 사도를 개조한 거네?"

루루의 순진무구한 말에 돌연 마갑에 있던 촉수가 내 아랫도리에서 현란하게 춤을 췄다.

[으아아악... 개 같은 년. 감히 내 정신을 이런 소중한 주인님에게 맞추게 끔 개조하다니!]

아무래도 루루에게 제한은 걸지 않은 듯. 루루에게는 걸쭉하게 욕설을 내 뱉으면서 나한테 말할 때에만 다정한 목소리가 된다.

[미치겠네!]

조용.

마갑이 조용히 하는 상상을 하자, 서서히 내 상체를 덮고 있던 갑옷이 풀리면서 스르륵 하고 팔찌 상태로 돌아갔다.

"일단 오빠. 마신님을 만났더니 상태 창이 바뀌었다고?"

에슬리와 아이린만 알고 있던 상태 창에 관한 것과 내 특징. 그리고 내가 자지의 용사라는 사실도 모두에게 알려주었다.

"흐응... 언니에게 안 알리길 잘했네."

"응? 왜?"

"아, 김지호 네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용사가 세운 반국에서 이 곳을 향해 소규모 병력들이 출격했거든."

"용사의..."

이미 나를 제외한 여성들은 영상을 보았을 때부터 그 검은 머리 여자가 용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소규모 병력들 중에 선두로 소드마스터 한 명이 독단적으로 출격해서 지금 이 공동묘지 까지 단 하루 정도의 거리만 남겨둔 상태야.."

에슬리의 이어진 말에 모두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내가 깨어나기 전까지 이 이야기를 주제로 계속 이야기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기절해 있던 사이에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를 얼핏 들었던 것 같으니까.

"오빠야. 지금 우리 중에서 소드마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이가 없어. 각성한 세라자드가 잠깐 정도의 시간은 벌 수 있겠지만, 이기는 건 별개의 이야기야."

"그래서 나는 총사령관님께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했는데. 아이린 언니가 총사령관님께 말하면 필연적으로 다른 사령관들도 알게 될 거고. 오빠의 존재 또한 드러날 거라고 말했어."

이어진 루루의 말에 에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찬가지로 마왕군 간부인 내 언니 또한 네 존재를 알게 되면 가만 두지 않겠지."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결국 나 때문에 다른 이의 도움을 요청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근데 소드마스터를 막으려면 우리 만으로 불가능 하다는 이야기였고.

"그럼 루루가 말한 총사령관과 에슬리의 언니를 제외한 다른 이는 괜찮다는 이야기잖아?"

하지만 내 말에도 모두 고개를 저었다.

"오빠야가 알고 있다시피. 지금 마왕성에 있던 전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은 전부 부상으로 인해서 싸울 수 없는 상태야. 그리고 세라자드를 제외한 모두다 비 전투 인원이기도 하고."

그 비 전투 인원에게 죽을 뻔 했던 나를 잠깐 떠올려보았다가, 확실히 아까 전 소드 익스퍼트의 실력자들을 보면서 세라자드를 제외한 이들이 붙는 장면을 상상해보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에슬리면 몰라도 아이인이나 루루라면 접근 전에서 순식간에 당할 것이고, 사린 또한 정확한 전투 능력은 모르겠지만, 아라크네란 종족이 전투 능력이 뛰어나다면, 자신들의 영역인 숲에서 인간들에게 그리 손 쉽게 당할 리가 없었겠지.

진짜 여기서 남은 전투 인원은 과거 용사와의 싸움을 피해 전력을 보존했던 세라자드 뿐이었다.

그것도 밑 빠진 독 상태라 예전의 힘은 기대할 수 없고.

잠시 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아마도 각자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할까 고민하는 것 같았다.

"아, 저한테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다시 세라자드를 입에 내 똘똘이를 물리고 소드마스터와 싸워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아이린이 손뼉을 딱 치더니. 아래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마왕군 최고 지략가인 레미씨가 있잖아요?"

"레미? 아, 그러고 보니 용사와의 전투에서 레미 덕분에 그나마 그 건방진 용사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었지?"

"레미?"

"흐응. 김지호 레미는 이 마왕군에서 책사 역할을 맡고 있는 제일 머리가 좋은 라미아야. 수 싸움에서는 마왕님도 한 발 물러날 정도지."

아이린과 에슬리가 서로 이야기하던 도중 내 질문에 에슬리가 답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레미라면 우리 만으로 소드 마스터를 막는 방법을 알려줄 거야."

에슬리의 확정 적인 말에 여성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레미라면 믿을 만 하지."

"맞아요. 레미 언니라면 전략 전투 부분에서는 나보다 훨씬 뛰어날 거야."

사린과 루루가 맞장을 쳐주자 아이린이 나를 보고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지금 용사의 일격을 맞고 부상을 입은 상태일 테지만, 오빠야라면 금방 치유해 줄 수 있을 거야."

콧김을 뿜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반짝이는 에슬리를 보며,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그래."

라미아. 내가 알고 있는 그 라미아라면 분명 상체가 인간이고 하체가 뱀인 몬스터였지?

하피와 켄타로우스를 비롯해 아름다운 여성의 상체를 가진 신화를 기반으로 한 몬스터이면서.

그러고 보니 이 세계는 판타지 치고 다들 몬스터 보다는 인간에 가깝게 생긴 아가씨들이었는데 라미아라는 레미도 그럴까?

아니면 돌연 여기서 신화를 바탕으로 한 것처럼 뱀과 인간의 모습이 섞인 괴물 에다가 하체도 비늘이 엄청 징그럽게 생긴 뱀 꼬리라면...

으으... 상상도 하기 싫다.

"아이린. 이번에도 나 혼자 갔다 오라고?"

"응. 오빠야. 예전에 레미 언니한테 버섯으로 장난치다가 혼난 적이 있어서. 조금 만나기가..."

버섯을 장난쳤다는 아이린의 이야기에 버섯왕국이 유흥 단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과 아이린의 호기심이 더해진 조금 장난이라는 단어의 조합에 순간 세라자드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 그때 오빠 세라자드의 엉덩이 구멍에 버섯이 여섯 개나 들어갔어. 라고 외쳤었지?

음...

"응. 알았어. 그럼 나 혼자 다녀올게."

지하 미궁 88층. 100층에 있다는 마왕과 99층의 서큐버스와 얼마 차이 안 나는 층 수이기에 조금 겁나긴 했지만.

라미아 종족이 다른 종족을 만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기에 철저하게 다른 종족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고 했나?

그렇기에 아이린의 이동 버섯도 88층 입구 초입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서큐버스는 걱정 안 해도 된다면서.

"후우..."

버섯 이동 진 위에서 손을 흔드는 아이린을 뒤로 한 채 음습해 보이는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지하 1층과는 또 다른 좁고 구불구불한 통로를 지나가다 보니 뭔가 따뜻한 기운과 함께 사우나에서 가끔 보이는 안개 낀 습한 배경과 함께 무언가 똑 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 사르륵 시르륵 하는 뱀 소리 같은 것이 귓가를 간질였다.

위? 아래? 앞?

분명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뱀이 바닥을 기어가는 것 같은 소리가 사방팔방에서 울려 퍼졌다.

일단 소리는 무시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그러자 눈 앞의 수증기가 점점 진해지면서 은은한 유황 냄새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예전 온천에 들렸을 때 나던 그 계란 썩은 내 같은 것도 살짝 나는 것 같더니 이내 짙은 수증기로 인하여 망토와 팬티가 묵직해지는 것 같은 감각이 들었다.

점점 통로 안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공동 같은 것이 나타나더니 동굴 안에 커다란 노천 온천 탕 같은 것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온천 탕을 덮고 있는 천장은 버섯 왕국 때처럼 동굴 벽이 아닌 수 없이 많은 별이 떠 있는 밤 하늘의 배경이었다.

"꺄르륵..."

해맑게 웃고 있는 웃음소리에 온천탕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저 멀리 보글 보글 끓어오르는 온천탕 위로 나체의 여인들이 하하호호 하면 자유롭게 수영을 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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