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제 10화. 소드 마스터. (3)
* * *
"어서오거라. 이계의 아이와 선택 받은 아이야."
머릿속을 울리는 청량 한 목소리.
마치 유명 성우가 내 뇌 속에 마이크를 대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것 같이 귀에 콕 박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레미. 이 곳 마왕군의 간부 중 하나 이며, 라미아들을 이끌고 있는 수장이지."
나를 바라보며 몽롱한 시선으로 물 담배의 연기를 푹 내 뱉는 레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레미씨."
자기 소개는 굳이 할 필요가 없어 보여 간단하게 인사만 나누자, 그녀가 다시 한번 물 담배의 연기를 푸 하고 내 뱉으며 내 옆에 야리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안녕하세요. 레미님... 하하..."
레미의 시선을 피하며 등에 지고 있는 꾸러미를 움켜 쥐는 그녀의 모습에 살짝 의문이 들었지만, 그런 모습에 피식 하고 있는 레미의 표정을 보고는 별 거 아니겠지 싶었다.
"그래. 야리. 오랜만에 보는 구나."
"근데 레미씨. 선택 받은 아이라고 하면?"
야리와 레미의 대화가 단절될 기미가 보여 내가 끼어들었다. 그러자 레미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 향했다.
"너에게 선택 받았으니, 선택 받은 아이가 아니더냐?"
"저한테 요?"
"그래. 너한테 말이다. 너는 이계의 아이. 이 운명의 체스판에 놓인 변수이며, 수 없이 펼쳐진 가능성의 바다에서 이제 너란 존재가 나타났으니 이제 마왕군의 재기도 어려운 일이 아니구나."
순간 검은 각막에 파충류처럼 길쭉한 샛노란 동공을 가진 레미가 나를 쳐다보며 물 담배를 푸우 하고 뿜어냈다. 그 모습이 마치 고래와도 같아서 뭔가 묘하게 바다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착각이 아니었다.
주변의 배경이 동굴이 아닌 바다로 바뀌어 있었고, 천장은 찬란한 별들이 수 놓은 배경으로 바뀌었다.
"천칭의 저울이 기울었노라. 한시적으로 멸망의 파도가 얼어 붙었으니 가능성이라는 지평선이 새로이 태양을 품으리라."
레미가 뿜는 물 담배의 연기가 밤하늘을 수 놓았다.
천장에 수 놓은 수 많은 별들이 연기에 휩싸여 마치 풍랑을 만난 배 위에 올라탄 것처럼 위태롭게 나풀 거렸다.
"나는 지평선의 현자 레미. 수 많은 가능성 아래에 남아 있는 일말의 희망을 보니 수 많은 차원의 위험이 불어 닥칠 이 곳에서 외우주의 신의 가호를 받은 아이가 자신의 운을 시험하니, 그 무게가 신이 정한 801923의 일이라는 기하학 적인 확률을 웃돌지니라."
레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하니 주위의 배경이 휙 휙 바뀌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땅, 숲, 지하, 행성 그 자체를 비추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지구의 행성을 그리고 우주를, 그리고 지구와 수백개의 행성이 보이는 우주가 일부분 밖에 되지 않는 또 다른 거대한 우주를.
"재미있구나. 아이야 네가 가지고 있는 세계는 좀 더 커다랗구나. 행성이 애초에 둥글다는 것은 신이 아닌 이상 알지 못하는 만물의 이치이거늘."
나를 바라보는 레미의 눈에 이채가 띄었다.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과학이라니. 대신 마나와 마법을 잃어버린 세계구나."
나를 꿰뚫어보는 것 같은 시선에 잠시 몸을 움찔거리자, 레미가 내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거대한 덤프 트럭이 다가오는 것 같은 압박감에 뒤로 살짝 물러나려 하자 레미의 손바닥에서 무언가 푸른 기운 같은 것이 흘러나와 내 몸에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마신만큼은 아니지만, 신을 모시는 무녀인 만큼 너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도록 하마."
"잠...잠깐만요. 윽..."
내 몸에 서늘한 기운이 맴돎과 동시에 아랫도리에 있던 똘똘이가 점점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외우주의 신의 강렬한 기운도 잠시 가라앉게 두었느니라, 물론 원한다면 바로 기운을 발산 할 수 있게 끔 만들어 두었고. 그리고 네가 무슨 연유로 나를 찾아왔는지도 알고 있단다. 하지만 지금의 시련은 그저 앞으로의 거대한 파도에 대한 발 담그기 일 뿐. 너의 능력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단다."
어어...
지금까지 풀 발기 했던 똘똘이가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시무룩해지는 것 같이 팬티 안에서 힘없이 구부정하게 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크기가 예전과 같이 줄어들거나 하지 않았다.
가끔 흑인들이 팬티나 바지를 입었는데 거대한 자지의 자국이 불룩 튀어나오는 느낌?
그런 흔적이 내 사각 팬티 위로 나타났다.
홀리.
어쨌거나 항시 발기 상태였던 똘똘이가 죽어버리니까, 뭔가 대신해서 온 몸의 활력이 돈다. 아랫도리에만 불끈불끈 거리던 기운이 온 몸에 퍼져서 손과 다리에도 흩어진 느낌?
시험 삼아서 손과 발을 살짝 털어보니까 전보다 훨씬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상태창의 힘은 그대로인데 말이다.
"그리고 야리."
내 모습을 지켜보던 레미가 야리에게 시선을 옮겼다.
"네 능력은 내 일부를 이어 받았단다. 내가 이 곳에서 미궁의 결계를 유지하기 위해 움직이지 못하니, 네가 대신 하여 이 아이를 도와주렴. 대신해서는 그렇지만, 이 아이가 미궁을 떠나거나 다른 세계로 간다고 해도 따라가는 것을 허락하도록 하마."
뭐? 잠깐 다른 세계?
"이계에서 온 아이야. 이세계에 설치된 지평선의 결계가 무너지고 있단다. 인신님의 실수로 소환된 네 명의 용사들이 추가로 이 세계의 경계선의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단다."
"예? 잠깐만요. 네 명의 용사요?"
"그렇단다. 너를 제외한 네 명의 추가로 소환 된 용사들은 기존의 타락한 용사를 제압하고자 소환 되었으나, 인신님의 계시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위하여 지상에서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하고 있단다."
"그런 얘기는 마신...님에게 듣지 못했는데."
"마신님께서는 그로 인하여 벌어진 일을 수습 중이시라 이 곳에 힘을 쓰고 계시지 못하신 상태니라. 지금 지상은 타락하여 남성혐오사상을 가진 기존의 반신급의 용사. 그리고 그녀를 무찌르기 위해 소환되었다가 인신을 배신하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신들의 힘을 취해 반신의 자리에 오른 네 명의 용사들이 서로를 경계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단다. 추가로 이로 인하여 세계를 지탱하던 지평선이 붕괴되어 네가 가진 외우주의 신 같은 이들의 힘이 유입되어 버렸지."
그러고 보니 마신과 만났을 때 내게 깃들어 있는 외우주의 신의 힘을 보고 전혀 정체를 알 수가 없다고 했지.
"일단 너 또한 반신의 자리에 올라야 이들을 대항할 수 있을터. 체력은 외우주의 신의 힘 덕분인지 기이할 정도로 튼튼하니, 기본적인 실력을 키우기 위해 요네를 붙여주도록 하마."
자신의 할 말을 전부 다 마친 것 같은 레미가 나에게 뻗었던 손을 거둬 들이며 다시금 한가롭게 물 담배를 피는 자세로 돌아와 나와 야리를 번갈아 보았다.
"그럼 돌려보내 주도록 하마. 이 곳에 오래 있으면 변수에 그리 좋지 않으니."
반짝.
시야가 점멸하면서 순식간에 모든 배경이 중앙에 있는 일점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쪼그라들더니, 이내 동굴의 모습으로 주변의 배경이 확 변하였다.
"오셨군요! 선지자님!"
거대한 마미요의 모습과 함께 그 옆에 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요네가 삼지창을 든 채 근엄하게 서 있었다.
물론 그래봤자 고등학생의 외모라 그렇게 절도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그나저나 어떻게 여기로 한 번에 온 거지?
"왔군."
삼지창을 바닥에 두드리면서 요네가 내게 다가왔다.
순간 이동 같은 건가? 아니 그것보다 너무 대화가 일방적으로 쏟아 붓듯이 들어와서 정리하고 이해할 시간이 필요 할 것 같다.
"잠깐만..."
요네와 마미요가 뭔가 추가로 내게 말하려는 것 같아 정지 시킨 후에 머릿속을 정리 했다.
일단.
레미에게 소드마스터를 타개할 계획을 전달 받는 것은 실패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만난 모든 이들 중에 레미는 단연 독특했다.
뭔가 신선이 있다면 그녀가 그런 모습일까?
결계. 지평선.
뭔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잔뜩 늘여 놓았지만 정리하자면, 레미는 무언가를 막는 중이고, 그게 지금의 소드 마스터 보다 더 중요한 문제 인 것 같았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일행에 요네와 야리가 합류 할 것 같았고.
지상은 인신이 무언가 또 일을 벌여서 실수를 한 것 같다. 용사가 네 명이 더 소환 됐고 그 용사들이 뭔가 지금의 용사와 다를 것 없는 패악질을 부리는 것 같았고.
맞나? 이게?
물론 직접 그 용사들을 만나보기 전에는 모르지. 과거의 기억을 들여다보다 우연찮게 만났던 지금의 용사와 마찬가지로.
으아...
지구로 돌아가려고 할 뿐인데, 뭔가 돌아가는 길이 험난해지는 느낌이다.
그저 난 로또 1등 당첨금만 수령 받고 평생 띵까띵까 놀고 싶을 뿐이라고.
물론 이세계로 와서 새로운 목표인 라스푸틴급의 특급 대물 만들기가 생기긴 했지만.
어차피 지구로 못 돌아가면 여기에서 마왕군인 몬스터 아가씨들하고 섹스만 하게 생겼는데 이게 말이 되냐고!
흑흑. 이제 똘똘이는 그만 커져도 되니까 지구로 돌아가서 치킨을 먹고 싶다. 콜라도 먹고 싶고...
그래 그러고 보니 이세계로 와서 제대로 된 음식은 입에 대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마실 것은 오로지 버섯 즙과 물.
먹을 것도 오로지 버섯...
버섯...
어쩌면 이건 버섯 신의 장난 아닐까?
그러고 보면 똘똘이도 버섯 같이 생겼잖아?
그러니까 그래. 외우주의 신은 분명 버섯의 신이 틀림 없어!
"치호?"
의식의 흐름이 우주로 날아가는 동안 어느새 내 앞에 다가온 야리가 퀭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혀를 낼름 내밀어 내 볼을 핥았다.
"으아!"
말캉말캉하고 축축한 혀가 볼을 주욱 흝고 지나가자 정신이 화들짝 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