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제 10화. 소드 마스터. (8)
* * *
팟.
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말캉 말캉한 액체와 끈적끈적한 액체가 허공에서 얽혔다.
푸른색과 흰색.
산성 액과 거미줄.
내 옷을 녹였던 에슬리의 산성 액과 지금의 내 옷을 만들어준 거미줄이 둘 사이에 얽혀서 서로 녹고 쌓이는 창과 방패의 싸움이 시작됐다.
그리고 간간히 에슬리의 천사 링이 빛을 발하면 거미줄에 얽혀서 떨어져 나간 액체 몸이 재생되고.
산성 액이 몸에 닿아서 부식 되기 시작한 곳을 거미줄로 꽁꽁 둘러 쌓여서 녹아 내리려는 신체를 보호하는 녹고 부러뜨리려는 말도 안되는 싸움.
소중한 동료이며, 소중한 인연이기도 한 두 사람이 싸우기 시작하자,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게 내 몸이 그 둘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옆에서 요네와 세라자드가 나를 말리려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지만, 라미아로 변한 내 움직임은 뱀처럼 빨랐다.
퍽.
치익.
한쪽 팔에 아릴 정도로 쓰렸으며, 반대쪽 팔은 관절이 부러진 것처럼 아파오기 시작했다.
"김지호!"
"서방님!"
윽.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아픔은 아니지만, 넘어지거나 어딘가에 부딪힌 것보다는 훨씬 아픈 감각에 양팔을 바라보았다.
한쪽 팔은 푸른 액체가 뒤덮여서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고, 한 쪽 팔은 팔목이 반대로 꺾인 상태로 내 허리에 거미줄과 함께 붙어 있다.
다행히 잘리거나 녹아내리진 않았지만...
"으윽!"
뒤이어 느껴지는 더 큰 통증에 이맛살을 찌푸리자, 내 양 팔에 다가온 에슬리와 사린이 자신의 액체와 거미줄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한쪽 팔은 부식 액에 부어있고, 거미줄에 닿은 팔은 부러져 있었다.
다행히 내게 부식 스킬이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아마 한쪽 팔이 녹지 않았을까 싶다.
"죄...죄송해요. 서방님."
"미...미안."
순식간에 부러진 팔을 포함해 부어 있는 팔까지 에슬리의 액체가 뒤덮인다.
그리고 머리 위에 있던 천사링이 반짝 반짝 빛나자 서서히 부은 팔이 가라앉고 부러진 팔이 서서히 돌아가 뼈가 뽀각 하는 소리와 함께 원래대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키잉
순간 에슬리의 머리 위에 있는 천사링에서 뭔가 철을 갈아내는 것 같이 거친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이내 번쩍임과 동시에 내 부어올랐던 팔이 멀쩡하게 돌아왔다.
"김지호 괜찮아?"
살짝 피곤해진 얼굴의 에슬리가 말캉말캉한 몸을 기대오며 말했다.
"서방님 괜찮으세요?"
동시에 반대쪽에서 사린도 부드러운 몸을 기대오며 말했다.
왼쪽으로 말캉망캉한 젤리 같은 느낌 오른쪽으로는 솜털처럼 부드러운 느낌이 드니 뭔가 기분이 묘하게 좋아지며 통증이 가라앉았다.
"응... 괜찮아."
멀쩡해진 팔을 움직여보면서, 손에 쥐어진 삼지 창에는 문제가 없는지 확인했다.
"라미아 전사들에게만 내려오는 삼지 창이야. 어떠한 마법도 마나도 흘려내는 능력을 가진 창이야."
"응? 마법이나 마나를 흘려낸다고?"
"응. 아까전에 내가 저 듀라한씨의 마나를 흘려보냈던 것처럼 그런 성질을 가진 삼지 창이야. 내가 알기론 바다의 마력이 깃든 정수 덩어리를 깎아서 만든 삼지 창이라는 데. 자세히 는 나도 몰라."
마법과 마나를 흘려낸 다라...
그런 중요한 얘기를 지금 해주다니.
"에슬리. 사린."
둘을 한번씩 돌아보았다.
"둘 다 나를 원하는 건 아는데, 적당히 하는 게 좋아. 둘이 자꾸 다투면 그때부터는 섹스는 커녕 정액 한 방울도 안 내줄 거니까."
내 말에 에슬리가 윽 하고 침음을 삼키고, 사린이 욱하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서방님. 저 슬라임이 먼저..."
"그만. 누가 먼저 그랬든지 둘 다 내가 없으면 안 되면서 왜 나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보면서 다투는 거야?"
그 말에 사린이 입을 꾹 다물며 입술을 구겼다.
아무리 봐도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고, 에슬리는 삐진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응?
"김지호. 넌 나랑 약속을 했고, 널 구해준 것도 너와 처음 만난 것도 나야."
슬쩍 토라진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힐끔 내 반응을 지켜보는 에슬리.
확실히 약속도 그렇고 처음 만나서 이곳에서 인연을 가진 것도 에슬리다.
"그러니까 저 거미 년보다 내 편을 들어주는 게 맞지 않을까?"
토라진 목소리로 말을 하는 에슬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와 약속한 것도 있고, 처음 만난 것도, 나를 살려 준 것도 너야."
스윽 돌아서서 토라진 에슬리에게 가까이 다가가 입에 진하게 키스를 했다.
처음에는 살짝 당황하던 에슬리도 내 급작스러운 키스에 안절부절 하더니 이내 눈을 감고 키스에 집중했다.
말캉말캉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입술과 입안을 촉촉히 적신다.
스윽 하고 입 안에 집어넣었던 혀를 빼자, 맑은 채액 같은 것이 혀와 입을 타고 뚝 뚝 흘러내렸다.
어느새 머리를 인간처럼 육체화 한 에슬리가 달아오른 얼굴로 내게 바짝 달라붙었으나, 나는 손을 살짝 밀면서 입을 열었다.
"이 이후는 소드 마스터부터 막고 나서."
그 다음 두 팔을 뻣뻣하게 내린 채 성난 표정으로 서 있는 사린에게도 가까이 다가가 입술을 맞췄다.
에슬리와 달리 그런 내 키스를 적극적으로 받아주며,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붙잡는 사린에게 깊숙이 딥키스를 한 후에 에슬리와 똑같이 살짝 떨어졌다.
"사린도 마찬가지로 소드 마스터를 막고 나서."
양쪽다 키스를 하고 나자 어느새 정면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두 손을 오므린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루루의 모습이 보였다.
혹시 했는데, 너도냐...
"오...오빠."
"알았어. 너도 소드 마스터 끝나고 난 후에 잔뜩 칭찬해 줄게."
그렇게 말하고 난 뒤에 루루 옆에 있던 야리를 보니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다.
더불어 내 뒤에 있던 세라자드가 슬쩍 내 등 뒤에 다가와 힐끔힐끔 눈치를 준다.
그나저나 너무 편안해서 몰랐는데, 라미아로 변신 한 뒤로 입고 있던 사각 팬티가 사라져 있었다.
아마 변신의 기능 중 하나 일까?
덕분에 팬티가 찢어지거나 터지지 않아서 좋긴 한데 다시 하의 실종 패션으로 돌아온 게 조금 그렇다.
"사린. 혹시 라미아로 변신했을 때 입을 팬티도 없을까?"
"금방 만들어 드릴게요."
"아니 지금 말고 소드 마스터와 싸우고 난 뒤에."
그러고 보니 야리나 요네는 몰라도 다른 아가씨들이 내가 라미아로 변신한 것에 왜 의문을 두지 않나 싶었는데, 똘똘이가 두 개가 늘어났다는 사실에 쏠려서 그 부분은 그냥 넘어가 버렸다 싶었다.
"그리고 소드 마스터와 싸우고 난 뒤에 다들 섹스해줄 테니까. 힘내서 싸우자."
섹스.
좋은 울림이다. 물론 나한테는 뭔가 의무 같이 변해버린 상황이지만, 뭐 어쨌거나 몇 몇 소설에 나오는 답답한 고자 주인공들보단 낫지 않나?
"알았어. 김지호 힘내 볼게."
"서방님 저도 힘내볼게요."
"오빠 나도."
"저도요!"
아가씨들이 저마다 긍정의 제스처를 취하면서 반응하는 것들을 둘러보면서 루루에게 다가가 영상 마법을 확인했다.
"루루. 어디까지 온 거야?"
"이제 막 사린씨가 감춰 놓은 미궁 입구를 찾고 있어. 다만 거미줄로 꽤나 복잡하게 입구까지 막아 놓은 상태라 아직 반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오빠."
"그럼 슬슬 막으러 가야겠네?"
"응. 일단 함정이나 덫을 설치해 놓긴 했는데, 소드 마스터니까 금방 돌파할 거야."
그럼 일단은 나랑 세라자드 이렇게 두명이서 막으러 가야 하나?
요네도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레미가 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분명 도와주지 않을 거고... 야리는 직접 전투보다는 다른 이들처럼 지원 역할이다.
에슬리는 부식액 말고 공격 능력이 없다고 했고, 사린 또한 거미줄 생성 말고 육탄전은 가능하지만 아직 미숙하고 했다.
루루는 알다시피 마법으로 지원 역할이고 아이린 또한 동일하게 마법으로 지원 역할이다.
"아이린 언니는 아직 안왔나 보네."
그러고 보니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간 아이린이 아직 안 왔다.
미리 아이린이 버섯 덫을 깔고 가서 다행이긴 한데, 아이린도 어떻게 보면 마법으로 지원이 가능한 일인 중 한 명이다.
물론 그 능력이 어디까지 서포트인 것이 문제긴 한데, 그래도 없는 것 보다 낫지 않을까?
"일단 오빠. 전투 준비는 끝난 것 같고, 세라자드랑 에슬리 언니랑 같이 입구 쪽으로 가 줘. 나는 원거리에서 지원을 해줄게."
루루의 일사불란 한 지휘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세계에서 전투는 처음이기도 하고, 사령관 출신인 루루 만큼 전략적인 지휘를 잘 짤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믿고 맡기는 수 밖에.
"그럼 얼른 준비하고 출발하자."
내 말에 다들 열심히 제각각 흩어져서 연구실을 나설 준비를 했다.
일단 나는 사다리를 편하게 올라가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몸을 풀었고, 옆에서 세라자드가 그런 내 준비 운동을 도왔다.
마치 헬스트레이너처럼 이 자세 저 자세를 교정해주던 세라자드가 중간 중간 사심을 채우듯이 내 몸을 더듬었는데, 그 놀림이 마치 서서 마사지를 받듯이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주인님. 이번 싸움은 정말 위험합니다. 꼭 전투에 참가하셔야 합니까?"
"응. 그러려고 요네한테 훈련을 받은 거니까."
훈련을 받으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지구에 있을 때와 달리 몸으로 익히는 기술들이 손쉽게 몸에 흡수되듯이 익숙해졌다.
뭐라고 해야 하지? 지구에서 운동이나 스포츠를 배울 때는 매번 허우적 대면서 가슴이 뛰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그저 이렇게 하면 되나? 싶으면 자연스럽게 그 생각이 몸으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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