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제 12화. 일주일. (3)
* * *
"잠깐. 루루."
내 기억을 엿본 것인지 분명 내 불알에 사용했던 것과 다른 화력을 뽐내는 마법진 파스를 보면서 당황해 하자, 루루가 고개를 휙 돌리더니 내게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도 그렇지. 왜 저런 인간의 말을 듣고 있는 거야? 인간이라면 우리 적이라고."
"음... 나도 일단 인간인데."
"오빠는 예외!"
약간 삼겹살 타는 냄새와 함께 축 늘어진 파냐가 입가에 침을 줄줄 흘리며, 온몸을 떨었다.
전기 고문인가?
내 기억 어디에서 이런 걸 찾은 거지?
"좋았어."
뭐가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성공적으로 파냐가 기절한 것을 확인 한 루루가 그녀의 유두에 붙어 있던 마법진 파스를 떼냈다.
그리고는 연구대로 돌아가더니 무언가를 그 위에 잔뜩 늘여 놓더니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루루 뭐해?"
가까이 다가가서 묻자 루루가 고개를 스윽 돌렸다.
"이제 일해야지. 오빠도 볼일 보러 가도 돼."
아마도 아까 샤워 하면서 말했던 것들을 만들려는 지 연구대 위에 잔뜩 늘여 뜨린 물건들을 보니, 대부분 철이나 구리 혹은 빛나는 수정 같은 것들이었다.
치직.
루루의 손가락 끝에서 스파크가 튀더니 철광석이 스르륵 녹으면서 철과 돌로 나뉘는 모습을 보니, 엄청 신기했는데, 곧 이어서 나뉘어진 철이 나사 모양과 철판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선 더 놀라웠다.
이런 건 보통 용광로가 있어야 가능한 거 아니었나?
불이 아니라 마법으로 만들어진 전기로 철을 녹이는 모습을 보다가, 기절해 있는 황녀를 확인 했다.
아무래도 다음 기회에 다시 대화를 해 보던가 해야 할 것 같고.
루루의 맞은 편에 어느새 샤워하고 물기 까지 말린 야리가 루루와 마찬가지로 용도를 알 수 없는 액체들이 담긴 비커를 들고 가열하거나 섞거나 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구의 기준으로 영락없는 연구원의 모습인데?
둘의 작업을 잠시 지켜 보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아, 연구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사다리 쪽으로 향했다.
"오빠. 나중에 또 봐."
"치호 이따 봐."
"응. 이따들 봐."
두 사람의 손 인사를 말로 화답해 주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약 건물 1층 높이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사령실이 나왔는데, 사령실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세라자드의 모습이 보였다.
"세라자드?"
"오셨습니까? 주인님."
연구실에 만났던 보라빛의 머리카락인 루루와 야리, 그리고 은발이었던 파냐와 또 다른 금발 머리가 어울리는 메이드 발키리가 나를 보고는 활짝 웃었다.
처음에는 에슬리와 루루의 손을 거쳐서 약간의 개조를 통해서 나를 주인이라고 떠 받드는지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세라자드는 내가 마갑을 자신에게 떨어뜨려 놓을 때 부터 나를 주인으로 모시기로 한 것 같았다.
[같은 게 아니라 맞아. 주인님.]
린의 긍정적인 목소리와 함께 세라자드가 내 옆을 보좌하듯이 바짝 다가왔다.
"어디로 가실 예정이십니까?"
그러고 보니 갈 곳은 정해 놨는데, 어디부터 들려야 할지 애매했다.
어차피 일주일이라는 기간이라는 여유가 생겨서 일단 요네의 훈련을 겸해서 내 변화된 능력과 스킬들을 점검 하고 향상 시켜볼 예정이었는데.
일단은 요네 쪽은 계속해서 볼 테니까 뒤로 미뤄두고.
그러면 사린, 에슬리, 아이린이 되는데.
그러고 보니 아직 아이린이 원군을 찾으러 간다고 사라진 이후 아직 까지 모습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혹시 내가 처음 라미아 층에서 붙잡혀 있던 것 처럼, 어딘가에 붙잡혀 있거나 발이 묶여 있는 것 아닐까?
"일단 아이린부터 찾아볼까? 근데 혹시 세라자드."
"네. 주인님."
"아이린이 어디 갔는지는 모르지?"
"네. 주인님. 다만 의심이 가는 곳이 세 군데가 있습니다."
"의심 가는 곳?"
"네. 이 미궁에서 단신으로 소드 마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이는 제법 있습니다 만. 마왕성에서의 전투 이후 부상을 입지 않은 이는 얼마 없습니다."
"그게 대충 세 명 정도다?"
"아니요. 그것 보다 조금 더 되지만 지금 주인님의 상황 상으로 부탁 할 수 있는 이가 그 정도 됩니다."
내 상황이라면 내 똘똘이에 관련된 능력이다.
지금 내 똘똘이가 부상 당한 이를 치유할 수 있고, 각성까지 시켜 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된다면 분명 서큐버스나 에아린 같은 고위 간부진이 나서서 나를 끌고 가서 착정 당할 확률이 높다고 했지?
"그 세 명이 누군지 말해줄래?"
"네. 첫 번째로 폭식의 드래곤 아야나로스 입니다. 항상 만취한 상태서 주정이 심한 드래곤입니다. 용인족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며 이 곳 저 곳에 민폐를 끼치는 드래곤이죠."
"음..."
폭식의 드래곤? 뭐 먹보 드래곤인가?
만취라면 항상 술을 마시고 다니나 보네. 이 곳 저 곳에 민폐까지 끼친다는 거 보면 주정뱅이 같은 속성도 있는 것 같고.
용인족의 모습이라면 용하고 인간하고 합쳐진 모습인가?
"두 번째로는 미노타우르스 걸 아우라스 입니다. 평범한 미노타우르스 걸들과 다르게 게으르지 않고 향상심이 뛰어난 전사입니다. 다만 방어에 특화 되어 있고, 방패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엄청나게 느립니다."
미노타우르스 걸?
미노타우르스라면 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궁에 나오는 소 인간 같은 것 일거고. 걸이라면 역시... 소 머리의 여자 인간인가?
상상이 좀 안 되는데?
"세 번째로는 만월의 토끼. 젠 입니다. 알려진 정보는 많이 없는데, 이 마왕성의 미궁에서 서큐버스 다음으로 발정 난 토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발정 난 토끼?...
지구에서도 토끼는 발정이 나면 오래 가기로 유명한 동물이긴 한데. 여기에서도 그런가?
아니 그것보다 진짜 토끼가 맞나? 토끼라고 해 놓고 머리에 토끼 귀와 토끼 꼬리가 달린 예쁜 여자이진 않겠지?
"각각 아야나로스는 72층 아우라스는 53층 젠은 81층에 머물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50층 더 아래에 있네?"
"네. 주인님... 그러면 어디부터 들러 보시겠습니까?"
역시 사람... 아니지 몬스터 아가씨를 찾는 일에는 가장 가까운데 부터 찾는 게 맞겠지?
"아우라스가 있다는 53층 부터 가 보자."
일단 아이린이 없는 관계로 버섯 엘리베이터를 타고 50층으로 돌아갔다.
세라자드의 말 대로라면 일단 아이린이 가동 시켰던 층으로는 자신도 마력을 불어넣어 이동이 가능한데,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53층으로 이동은 아이린 본인이 아닌 이상 무리라고 했다.
벌써부터 아이린의 부재가 느껴지다니.
그나저나 이제 빼도 박도 못하고 50층부터 한층 씩 내려가서 아이린을 찾게 생겼다.
다행이라면 81층까지는 서큐버스나 고위 간부가 있는 층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세라자드가 혹시 몰라 에슬리를 불러올까 하는 것을 일단 53층까지 가보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81층의 경우엔 라미아들이 머무는 88층에서 거꾸로 올라가도 되니까.
세라자드와 버섯 왕국 외각 지역에 있는 나선형 계단 통로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저 계단을 통해서 에슬리가 머물던 층에서 올라와 이 곳에 도착했었지?
고작 며칠 전의 일이지만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감회가 새로웠다.
그때에는 완전 알몸에 레벨이나 능력치도 완전 저렙이라.
이 곳에서 목숨을 걸고 도착했을 때. 마주친 아이린을 보고 얼마나 당황 했었던가?
"주인님. 내려가시면 됩니다."
앞 장 서서 계단 앞에서 나를 뒤돌아봐 주는 세라자드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그러고 보니 에슬리의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간혹 보이긴 보였는데, 특히 인간 아이들처럼 변신이 가능하던 슬라임 세 소녀들은 서큐버스에게서 기술을 배워왔다고 한 날 이후로 보이지 않았다.
에슬리에게 따로 물어봐도 대답해 주지 않았고.
뚜벅 뚜벅 계단을 걸어 내려가다 보니 텅 텅 비어 있는 공동의 공간이 나타났다.
여기가 내가 처음 시작한 곳.
부상으로 인하여 반 쯤 정신이 잠들어 있던 에슬리를 만나고, 그녀를 치유하면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아무 것도 모르는 나는 아이린이 있는 50층으로 올라갔었지.
혹시 내가 50층이 아닌 52층으로 내려갔다면 또 어떻게 됐을까?
그런 생각에 잠기면서 세라자드를 따라 좀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곧 나선형의 계단이 끝남과 동시에 아이린을 처음 만났을 때 와는 또 다른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녹색의 풀이 잔뜩 우거진 천연의 자연 환경.
항상 해가 떠 있는 평범한 버섯 숲으로 이루어진 버섯 왕국과는 확실히 다른 풍경이 시야를 꽉 채웠다.
커다란 나무가 일정 간격으로 심어져 있고, 바닥에는 수풀이 가득했다.
숲의 입구에는 꽃과 덜 자란 나무들이 빼곡이 심어져 있고, 안쪽도 유심히 보니 꽃밭 같은 곳과 수풀로 잔뜩 우거진 공간들이 듬성 듬성 보였다.
전형적인 외국의 숲의 배경이랄까?
한국의 숲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유럽 감성의 우거진 숲이 펼쳐져 있었다.
"세라자드."
"네. 주인님."
내 앞에 먼저 나서서 주변을 살펴보는 세라자드.
"여기에는 누가 살고 있어?"
"여기에는 알라우네와 맨드레이크가 살고 있습니다."
알라우네?
맨드레이크는 판타지 소설이나 판타지 영화에서 간혹 본 적이 있다.
근데 알라우네는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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