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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마왕 간부에게 소환당해 착취당하고 있다-91화 (91/220)

〈 91화 〉 제 12화. 일주일. (10)

* * *

잠시 축 늘어져서 아라아라 품 안에 안긴 상태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서히 펴지는 꽃 봉우리와 함께 푸른 하늘의 배경과 갈라지는 잎사귀들이 보였다.

마치 거대한 운동장의 돔 형태의 천장을 개방하듯이 서서히 넓어지는 하늘과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뜨겁게 달궈진 육신이 바람을 맞아 시원해지면서 나른한 감각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이제 해제할게.]

린의 목소리와 함께 허리를 감싸던 마갑의 기운이 사라지고 다시 손가락에 반지가 생겨났다.

검지 손가락에 생긴 반지와 함께 린의 힘이 좀 더 강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팔찌 였던 것 같은데, 라미아 파티 이후로 변신 해제 후에 반지로 변해 있었다.

[마신 님께 부여 받은 힘이 크면 클 수록 나도 변화 무쌍 해지니까.]

그렇단 말이지?

어쩌면 지구로 돌아갈 때에도 린이 함께한다면 여러가지 일들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나저나 지구로 돌아갈 때 내가 얻은 이 스킬이나 능력치 혹은 마갑인 린도 데려 갈 수 있을까?

[데려 갈 수 있어. 주인님.]

응? 정말로?

[방금 나무의 신을 만났을 때 마신님과 대화 하는 걸 엿들었는데.]

잠깐. 나무의 신과 마신이 대화를 했다고?

[마신님이라고 붙여. 음. 그러니까. 대화를 엿들었는데, 지구에 무슨 일이 생겼다고 했나? 나무의 신님이 지구로 잠시 강림 했다고 들었어.]

어? 나무의 신이 지구로 강림했다고?

[자세히는 못 들었는데, 그런 이유로 지금의 지구의 용사를 급하게 지구로 소환해야 하는데, 지금 그게 불가능하다고 마신님이 얘기하고 나무의 신이 그럼 주인님이라도 보내 달라고 했는데, 아직 성장도 못한 단계라서 안된다고 했어.]

아니...

도대체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글세. 일단 지구로 돌아갈 방법부터 구한 다음에 알아보던지, 아니면 마신님께 직접 물어보던지.]

린. 니가 직접 물어볼 수는 없어?

[나는 사도야. 마신님과의 대화는 일방통행이야, 나는 듣고 마신님이 말씀하시고.]

이런...

설마 지구로 돌아갔는데, 다른 소설이나 만화처럼 뭐 차원문이 열린다던지 아니면 이세계에서 침공 한다던지 그런 건 아니겠지?

설마... 여기서 이렇게 개 고생하고 있는데, 지구에 돌아갔는데 까지 그러면...

린의 목소리가 잠잠해지자, 차갑게 식은 아라아라의 몸이 나를 누르던 것이 서서히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아라아라 쪽을 바라보니 스윽 내 몸에서 떨어져 주섬주섬 자신의 몸을 추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하늘에 떠오른 태양이 아라아라의 머리 위를 비추자, 곧 아라아라의 몸이 서서히 성장 하는 것이 보였다.

조금 더 커다랗고, 주위의 가시 덩굴이 자라나 그녀의 몸 이곳 저곳을 속박하듯이 감쌌다.

동시에 그녀와 자연스럽게 멀어진 나는 잎사귀 쪽까지 몸이 밀려나 그녀를 바라보았다.

­툭.­

그러다가 머리에 나 있던 자그마한 꽃이 툭 부러져 내가 있는 곳까지 사뿐 사뿐히 내려왔다.

마치 잎사귀를 낙하산 삼아서 살짝 빙글빙글 돌면서 내려오던 꽃 한 송이가 내 배 위에 스윽 내려 앉자 순간 번쩍이는 불빛이 일어났다.

파사삭 불타오르듯이 사라지는 한 송이의 꽃과 함께 내 손에 또 다른 반지가 생겨났다.

현재 생겨나 있는 검지의 검은색의 민무늬 마갑의 반지와 다르게 은색의 바탕의 녹색 꽃이 자라난 꽃 모양의 반지.

옛날에 어렸을 적 오락실에서 했던 던전 게임에서 나오던 꽃 반지라는 아이템과 똑같은 모습의 꽃 반지.

그 것이 중지에서 생겨나 내 안의 무언가와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마갑과 나와 연결될 때와는 또 다른 느낌.

[아빠!]

응?

[아빠!]

순간 내 몸이 스윽 아라아라에서 멀어지면서 꽃밭으로 밀려나왔다.

자연스럽게 마치 깃털처럼 몸이 붕 떠오르더니 꽃밭에 밀려나고 나자 다시 한 번 눈을 감고 처음 만났을 때 처럼 몸을 곧추 세운 아라아라의 몸이 서서히 꽃봉오리에 감싸졌다.

그리고 꽃 반지에서 금빛 꽃가루 같은 것이 허공에 스르륵 떠오르더니 이내 그 안에서 손톱 크기의 초미니 아라아라가 기지개를 펴듯이 꽃 반지 안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아빠. 나 태어났쪄! 후! 하!]

앙증맞은 크기의 아라아라. 처음 아라아라를 만났을 때 처럼 쾌활해 보이는 초 미니 아라아라가 꽃 반지 위에서 춤을 추듯 빙글 빙글 돌았다.

[... 주인님. 뭔가 사기 당한 것 같은데?]

내 생각도 그래.

자리에서 스윽 일어나서 어느새 내 옆에 같이 딸려온 팬티와 망토를 집어서 주섬주섬 입었다.

분명 계약을 해서 도움이 될만한 것을 준다고 했는데, 육아가 필요한 애 하나를 떠 넘겨 받은 기분이다.

[아빠! 머시쪄! 슈포맨 같아.]

응? 슈포맨? 설마 슈퍼맨을 말하는 건가?

[응. 마짜! 아빠. 빨깐 빤쮸 빨간 망또!]

잠깐 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주인님. 뭐가?]

[쮸인님? 쮸인님?]

[아오 시끄러워. 이 꼬맹이.]

[시꾸러웟! 시꾸러웟!]

[오 시...발 마신님이시여.]

[시발. 시발.]

린. 얘한테 뭘 가르치는 거야.

[에잇 몰라. 난 피곤해서 잠수!}

자...잠깐 린?

리이이이인?

[리인! 리인!]

꽃반지 위에서 열심히 내 말을 따라하는 초미니 아라아라를 보면서 순간 골이 아파왔다.

어떻게 말하는 것도 신기한데, 내 기억까지 읽는 걸까?

[아빠! 나 이룸 지어쭤!]

"응?"

[이룸!]

"이름?"

천천히 아라아라가 잠든 거대한 꽃봉오리로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거지?

죽은 걸까? 아니. 죽은 게 아니라 잠든 것 같은데.

[이룸! 아빠! 나 이룸!]

"아... 알았어."

[와아!]

뭔가 텐션이 수상할 정도로 엄청난 초 미니 아라아라를 내려다보면서 고민을 했다.

사실 내 작명 실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에슬리의 아이들도 그래서 이름이 다 고만고만 했고.

아라아라. 알라우네.

음... 정령이고 녹색. 꽃 반지.

아무리 단어들을 조합 해 보아도 괜찮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아라?"

녹색. 즉 그린. 그리고 아라아라의 이름 두 글자를 따서 그아라 라고 지었다.

[끄아라! 아빠! 내 이름 끄아라야?]

"끄아라가 아니라 그아라..."

그아라라고 수정해주던 찰나 순간 뭔가 이상한 어감이 다시 발음 해보았다.

"그아라... 그아라..."

뭐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그아라!]

다시금 정확히 발음하는 그아라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손톱 크기의 너무 나도 작은 모습의 그아라를 내려보고 있자니. 갑자기 그아라가 몸을 수그리더니 자신의 몸이 튀어나온 꽃에서 무언가 주섬주섬 줍기 시작했다.

"뭐해? 그아라?"

[응! 아빠! 도와쭌다!]

그러더니 꽃에서 황금빛 가루 같은 것을 두 손으로 담더니 이내 만세를 하면서 허공에 촥 뿌렸다.

그러자 내 황금빛 가루가 내 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더니. 이내 내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레벨:24]

[나이:32]

[직업:자지용사]

[스탯 힘 50 체력 50 민첩 15 지능 10 지혜 10 운 999 남은스탯 10]

[성검: 똘똘이(부식, 미약생산. 포자생산. 발키리 검술. 신체 분리. 점도 조절. 마력 결박. 자가 분열. 왕가의 피. 라미아+. 라미아 변신. 달변가. 불사, 호접지몽.)]

대량 사정과 마지막에 사정으로 인해 28까지 줄어들었던 체력이 어느새 인가 꽉 차 있었다.

설마...

진짜 꽃 반지냐?

어렸을 적 했던 오락실 던전 게임에 나오던 꽃 반지.

그 꽃 반지의 효능은 나를 치유하거나 지정된 대상을 치유 하는 효과를 가진 반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인기가 좋았고, 꽃 반지 하나로 같이 하던 친구와 싸우던 기억도 있었다.

그런 꽃 반지의 기능을 그대로 이어받은 그아라가 방실 방실 웃으면 만세를 한 자세로 꺄르륵 웃었다.

처음보다 훨씬 거대해진 꽃봉오리에 갇힌 아라아라를 뒤로 하고 수다쟁이인 그아라를 데리고 주변을 돌아다녔다.

꽃밭을 기준으로 둥그렇게 숲을 돌아보다가, 순간 마주친 걸어다니는 나무가 나를 보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는 과감하게 숲으로 들어가 세라자드를 찾아다녔다.

꽃밭으로 끌려온 나와 다르게 계속해서 나무 줄기와 사투중이었던 그녀를 찾아 숲을 돌아다니다 보니 그아라의 끝 없는 질문에 어느새 인가 슬슬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아빠! 저곤 뭐야?]

걸어다니는 나무 대신에 박혀 있는 거대한 돌덩어리를 가리키며 묻는 그아라에게 친절하게 돌이라고 대답해주고, 그 다음은 물어보는 잔디. 잔디. 길이만 다른 잔디. 를 설명해주었다.

애들은 호기심이 왕성하다고 하는데, 우리 애는 호기심이 너무 왕성해서 지칠 정도였다.

회사에 다닐 때 애 아빠가 된 직원들이 왜 월요일마다 녹초가 되어 출근하나 했는데, 이제 조금 이해가 갔다.

[아빠! 조기 이상 한 게 이써!]

그러다가 문득 그아라가 손가락질 하면서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곳을 피곤한 얼굴로 바라보았는데, 그 곳에 나무 줄기에 사지가 묶여서 허공에 붙잡혀 있는 세라자드가 있었다.

"세라자드?"

[쒜라짜뜨?]

혀가 꼬인 것인지 에베베 하는 그아라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잘했어. 그아라."

어떻게 보면 나무에 가려져서 그냥 지나칠 뻔 했는데, 지나친 호기심으로 무장한 그아라 덕분에 숨은 그림 찾기처럼 숨어 있던 세라자드를 찾아 낼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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