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제 13화. 시스템. (2)
* * *
어째서일까?
호접지몽. 그 안에서 보았던 아무것도 없는 우주가 펼쳐지면서 서서히 검은 배경 위로 내가 아는 우주의 모습이 덮어 씌우듯이 생겨나면서 수 많은 별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별들이 반짝이면서 사라졌다가 다시금 나타나고를 빠르게 반복하다가, 어느새 내가 그 배경 속에 푹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이 곳이 어디인지 의문을 가질 때 쯤.
저 멀리서 얼마 전 보았던 마신의 모습이 잠시 나타나 내게 다가오려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온 몸에 치장했던 보석들의 빛이 바래진 모습과 동시에 굉장히 수척해진 모습.
그리고 갑자기 무언가 뒤를 보고 입을 뻐끔 거리던 그녀가 내게 빠르게 다가오려는 모습 그대로 블랙홀이 생겨나더니 그녀를 빨아들였다.
잠시간의 정적.
그리고 블랙홀 안에서 무언가 거대한 눈동자 같은 것이 나타났다.
딱 보아도 인간의 거대한 눈동자 같지만 특이하게 보석 같이 빛나는 동공에서 나는 그것이 마신과 같은 신들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내 머릿속에 무언가 번쩍이는 느낌과 함께 그것이 일반의 신이 아니다 라는 감각이 찌릿하게 들었다.
들어라. 내 아이야. 모든 것이 틀어졌다. 규칙상 신들은 한번 떠난 곳에 돌아올 수 없는데, 창조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누군가가 그 규칙을 어겼다. 그러니 너에게...
순간 블랙홀 너머로 보이던 눈동자가 사라지며 그 안에서 무언가 자그마한 자루가 툭 하고 튀어나와 내 쪽으로 날아왔다.
쌀 자루?
자그마한 쌀 자루 같이 생긴 그것을 받아 들어서 열어보려 하자 갑자기 그 쌀 자루가 증발하듯이 사라져버렸다.
내 권능을 하사겠느니라. 내 아이들이 부르던 시스템이라는 것 또한 손을 볼 터이니. 이제부터 신이 사라져 버린 세계에서 반신들의 싸움이 있으리라.
머릿속을 전달되는 늙은 할머니 같은 목소리와 말투에 눈을 감았다 뜨니, 이내 내 손에 쌀알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쌀알이 천천히 증발하면서 쌀자루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블랙홀이 사라지며 우주의 배경이 순간 찌그러지듯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듯이 소용돌이 치겠다.
정신이 나가버릴 정도로 기묘한 현상에 토가 나오려는 순간 몸이 확 달아올랐다.
"헉!..."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내 눈 앞에 새로운 시스템 창이 생겨났다.
[이름 : 김지호.]
[소속 : 지구.]
[직책 : 반신.]
[권능 : 가부장 (家??)]
이름까지는 같지만 그 밑에 있던 레벨이나 스킬 직업등이 전부 사라지고 특이한 모습의 상태 창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전에 컴퓨터 상태 창 같은 인터페이스 같은 것이 아닌 무슨 투명한 족자 같은 것에 써져 있는 단출한 상태 창.
하지만 전과 다르게 글씨도 궁서체이고 뭔가 반짝 반짝이는 것이 훨씬 고급지다는 느낌이 들었다.
"앗?"
나를 품에 껴 안고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아우렌의 목소리가 위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순간 몸 안에서 알 수 없는 폭발적인 힘이 흘러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아우렌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물론 힘 조절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이 아우렌의 당황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아빠!"
그러고 보니 아까 전 아우렌과의 섹스 이후로 말을 육성으로 내 뱉기 시작한 그아라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다.
위치가 어디인지 측정이 가능할 정도로 선명하고 뚜렷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그리고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과 바람의 풍향 만으로 세라자드의 위치가 머릿속에 그려 졌다.
"주인님!"
마치 내가 슈퍼맨이 된 것 같이 엄청나게 용솟음 치는 힘과 감각들.
[이건...]
그리고 뭔가 당황한 린의 목소리와 함께 내 안에 있는 린의 기운. 즉 영혼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내 어떠한 장기나 신체와도 얽히지 않은 채, 얇은 피부처럼 내 몸 일부를 뒤 덮고 있는 푸르스름 한 기운.
뭔가 손으로 만져서 떼내면 떼어낼 수 있을 것이란 느낌이 듦과 동시에 린의 영혼이 내 피부에서 요동치는 것이 보였다.
[시...신이 된... 겁니까?]
신이라...
그러고 보니 지금 내 상태 창에는 내가 반신이 되었다고 나와 있었다.
[바...반신.]
영혼임에도 요동치는 것이 보이니 마치 닭살이라도 돋은 것 같아서 보기가 조금 묘하게 안 좋아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손가락에 있던 그아라의 몸이 전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꽃 반지에 내려 앉은 뿌리 같은 하체와, 동시에 보이지 않는 녹색의 줄기? 같은 것이 바닥으로 이어져 땅에 흩어져 있는 모습.
원래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주위의 모든 풍경이 뭔가 어색하게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인위적이면서 인공적인...
그러면서도 뭔가 왜곡되어 버린 공간과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한 기운.
아우렌을 마주한 상태로 나무를 올려다 보았다.
내가 두 팔을 벌려서 끌어안아도 1/4도 끌어안지 못할 것 같은 거대한 나무, 그 아래 그려진 커다란 그늘 아래에 널브러지듯이 드러누워 있는 미노타우르스 걸들.
그나저나 갑자기 상태 창이 바뀌면서 스탯이나 스킬이 사라져버려서 뭔가 허전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아랫도리도...
응?
아랫도리가 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금 보니 거의 말 자지급으로 탈바꿈한 똘똘이가 보였다.
[뭘 보냐?]
응?
[자지 처음 보냐?]
???
잠깐 이게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긴 반신이 된 기념으로 생긴 자지자아지.]
자지자아지?
[자지 자아 라고.]
그게 무슨...
[아 됐고. 너 게임에서 에고 소드 같은 거 봤지? 그런거라고 보면 돼. 물론 너의 인격과 자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자지지만 말이야.]
잠깐... 내 똘똘이가 어떻게 된 거야?
[아, 그놈의 똘똘이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자지라고 똑바로 불러라. 찐따도 아니고 똘똘이가 뭐야.]
난데 없는 팩트 폭격에 순간 멘탈이 흔들렸다.
그런데 왜 갑자기...
[갑자기는 아니고, 네가 반신이 되서 네 안에 있던 인격과 자아 중 일부가 독립한 거다.]
[저...저기요?]
갑자기 뜬금없이 말문을 튼 똘똘이와의 대화 중에 린이 끼어들었다.
[똘똘이 아니라고...]
[저기 주인님?]
순간 말자지만큼 부풀어 올랐던 자지가 천천히 작아지면서 적당한 크기. 즉 20cm? 정도 되는 평소의 중간 사이즈로 변했다.
어? 린 왜?
[그 저... 이게 어떻게 된...]
몰라... 나도 모르겠다.
잠시간의 침묵 이후 나는 나를 향해 다가오는 아우렌과 세라자드에게 잠시 생각할 것이 있다고 말하고 나서는 나무 앞에 기대고 앉았다.
일단 갑자기 꿈에서 마신이 나타나다가 블랙홀 같은 것에 빨려 들어가고 나서 그 안에서 거대한 눈이 나타났다.
아마도...
아니지 분명 외우주의 신 XX의 신이었던 것 같은데.
왜 갑자기 뜬금없이 나타나서 상태창을 손 본다면서 나를 반신으로 만들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권능을 부여한 거지?
[이름 : 김지호.]
[소속 : 지구.]
[직책 : 반신.]
[권능 : 가부장 (家??)]
더욱이 소속도 지구라고 딱 박혀버렸고, 혹시 뭔가 지구랑도 엮이는 일이 생기는 건가?
보통 소설이나 만화 같은데 보면 그렇잖아?
그게 아니라면 굳이 소속을 적을 필요는 없지.
그리고 직책 반신...
그러니까 공무원 같은 개념이냐? 직책이라니...
혹시 상태창을 손 본다고 했는데, 뭔가 잘못 된 걸까?
그 다음 권능.
가부장.
내가 알고 있는 그 가부장이라면 가족의 장을 말하는거고 보통 아버지를 뜻하는 단어 아닌가?
아버지...
그래 여기 와서 얼떨결에 아버지가 되긴 했지...
근데 왜 하필 권능이 아버지지? 아니지... 아버지가 아니라 가부장이지.
스킬하고는 완전 다른 개념인 것 같은데. 오히려 스킬이 사라져서 뭔가 신기한 장기 같은 것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더욱이 불사니 호접지몽이니 꽤 사기 같은 스킬들도 튀어나왔었는데.
그거랑 가부장이랑 통째로 바꿔버리다니.
[야, 너. 린이라고 했냐?]
내가 나름대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건들건들해진 똘똘이가 린과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으...으응?]
[너 나랑 합체할래?]
...
합체라니?
잠깐 누구 마음대로? 아니 그것보다 합체가 되는 거야?
[물론이지. 멍청한 본체 같으니. 말했지만 나는 너의 자아나 마찬가지고, 이 린이라는 녀석은 마신의 사도 잖아. 그러니까 합체할 수 있는게 당연한 거지.]
당연한 거냐?...
[그래. 오히려 합체하는 게 이 린이라는 여자한테도 좋을 거다.]
[응? 그게 무슨?]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 사실 나는 저 녀석의 인격과 자아 중 특히 여성체라고 할 수 있는 인격과 자아들이 모여 만들어진 존재지.]
???
잠깐만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뭐긴 가부장이란 권능 때문에 지금 나는 본체에서 떨어져 나온 네 인격이면서 자아란 말이지.]
홀리...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난 너의 여성체란 말이다.]
아니. 그러니까. 난... 에이 모르겠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자는 건데?
[여기 끈 떨어진 마신의 사도인 린이 나와 합체하면 반신인 너에게도 사도가 생긴다는 말이지.]
응. 그래.
뭐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을 이해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지.
[어찌되었든 간에 본체인 너에겐 좋은 일이니까. 믿고 맡겨봐라.]
[자...잠깐만요. 끈 떨어진 마신의 사도라니요?]
[말 그대로. 지금 마신은 이세게에서 쫓겨나기 일보 직전이다. 아니. 이미 쫓겨났을지도 모르지.]
[네? 그게 무슨...]
[본체도 봤을 거야. 지금 마신의 모습을.]
순간 꿈 속에서 블랙홀이 나타나기 전 그 전에 만났을 때 보다 광휘를 잃어버리고 초췌해진 몰골의 마신이 보이긴 했었다. 잠깐이지만.
[그러니까 이대로라면 마신이 이세계에서 쫓겨나는 순간 영혼만 남은 린 너는 사도로써의 힘도 잃어버리고 그저 망령이 되어버린다는 이야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