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제 13화. 시스템. (3)
* * *
[그..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반신인 내 말을 의심 하는 거야?]
[아...아뇨. 그렇지는 않은데... 합체라니.]
[걱정 하지마. 합체라고 네 자아가 삼켜지거나 섞이는 것이 아니라 네 자아 위에 내 인격이 조금 덧 씌워지는 것 뿐이니까. 어차피 본체는 여기 따로 있기도 하고 말이야.]
똘똘이에서 계속해서 또 다른 내 목소리가 들려오니까 왠지 정신병이 걸릴 것 같다.
뭔가 린과 나누는 대화도 따라가기 어려운 내용이기도 하고, 아니 애초에 나한테서 떨어져 나온 자아와 인격이라면서 나도 모르는 내용을 저리 능숙하게 하는 거야?
[왜긴. 반신의 계열에 오르면서 네가 찍지 않은 지혜와 지능이 나한테 몰빵이 됐으니까 그렇지.]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 네가 용사였을 적에 찍지 않은 스탯들이 반신에 자리에 오르면서 네가 신경 쓰지도 않았던 지혜와 지능 스탯들도 체력과 힘 스탯에 맞춰서 성장했고, 그 와중에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지혜 지능 스탯이 대부분 나에게 흡수되었단 말이지.]
아니... 그러니까. 너가 내 자아와 인격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인격체고, 내가 반신으로 올라가면서 밸런스가 맞지 않게 상승한 스탯들을 흡수했다?
[비슷한 말이지. 그리고 지금 본체에 무리하게 지능과 지혜를 흡수 시켰다가는 자아 분열이 올 수도 있기에 네 본능이 빠르게 분열 시킨 것이기도 하고.]
어째서? 자아 분열이 오는데?
[본체인 네가 반신이 되었으니까.]
쩝.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그냥 좀 알기 쉽게 말해 봐.
[뭐, 사실 내가 하는 말에 대해서 너는 잘 몰라도 돼. 사실 이걸 설명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지식으로는 무리가 있는 내용이니까. 사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도 인간들이 쓰는 언어로 듣기 쉽게 풀어 말한 것 뿐. 정확도는 떨어지니까.]
너도 나의 일부라면서 왜 이렇게 똑똑한 거야?
아니지. 내가 지혜랑 지능에 투자했다면 네가 내가 될 수 있었다는 말이잖아?
[틀려. 자아는 그렇겠지만 인격은 다르지. 그러니까 비교하기 쉽게 말하자면. 난 네 여성성의 인격의 대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네가 쌍둥이 여동생이 있다면 그게 나란 말이지.]
에엑. 쌍둥이 여동생?
아니... 애초에 난 남자에다가 지금 똘똘이에서 말하는 너도 남자인 내 목소리잖아?
[목소리야 뭐 바꾸라면 바꿀 수 있겠지만. 굳이?]
갑자기 말끝이 여성스럽게 바뀌는 내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어쨌거나. 린.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네 의사가 제일 중요한 거니까.]
[자...잠깐만요.]
[몇 번째 잠깐만이니? 솔직히 내가 너 였다면 지금 당장, 넵. 감사합니다. 하고 덜컥 받아들였을 텐데 말이야.]
[그...그래도.]
[말했지만 합체 한다고 해도 네 자아나 인격에 크게 문제는 없을 거야. 대신 내가 가진 지능과 지혜. 그리고 본체에 대한 기억 대부분을 공유하게 되니까. 그에 대해서 변화하는 너의 심정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고.]
[그... 그러니까. 반신님하고 합체하게 되는 건가요?]
[음. 반쯤? 정확히 말하면 반신의 반쪽인 나와 합체하게 되는거니까. 어떻게 보면 본체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만큼 격이 상승하게 되는 거지. 특히 육체도 가질 수 있고.]
[육체를 가질 수 있다고요?]
[응. 다만 옷은... 저기. 본체. 저쪽에 있는 미노타우르스 걸 쪽에 있는 검은 담요 말이야.]
똘똘이 끝이 살짝 휘더니 이내 오른쪽에 누워 있는 거대한 미노타우르스 걸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곳에는 아우렌 만큼 커다란 덩치를 가진 미노타우르스 걸이 고급스러운 검은 천 같은 것을 담요 삼아 덮고 있었다.
[저거 좀 가지러 가볼래?]
똘똘이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옆에서 나를 지키듯이 앉아 있던 아우렌과 세라자드 사이에서 일어나 천천히 똘똘이가 가리킨 미노타우스르 걸의 곁으로 다가갔다.
내가 일어나 그쪽으로 걷자, 조용히 아우렌과 세라자드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따라왔는데, 내가 돌연 눈 앞에 있던 미노타우르스 걸의 담요를 훅 걷어서 집어 들자, 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김지호. 쵸렝의 담요는 왜?"
"응? 아... 갑자기 필요해져서 말이야. 실례일까?"
갑자기 담요를 뺏기자 잠결에 뒤척이는 쵸렝이라는 갈색의 미노타루으스걸을 바라보던 아우렌이 곧장 나무에 기대어져 있던 보따리 같은것을 집어들더니 그 안에 손을 수욱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그 안에서 마술 모자처럼 기다란 갈색 모포 같은 것을 꺼내 뒤척이던 쵸렝의 몸 위로 풀럭이며 모포를 펼쳐 덮어 씌웠다.
그러자 뒤척임을 멈추는 쵸렝이라는 미노타우르스 걸.
"이걸로 됐어."
아우렌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이제 준비는 끝난 것 같고. 린. 그럼 시작한다?]
[으응...]
내 똘똘이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한번 위 아래로 흔들거리더니, 이내 내 시야가 흔들리면서 마치 자다 깬 것 처럼 흐려지며 불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 시야가 둘로 나뉘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내 몸 안에 있던 응어리 진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내 몸에 있던 무언가지만 떨어지고 나니 당연하다는 듯이 신체 일부가 녹아내리듯이 열기가 쫘악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열기가 하나의 수증기가 되어 내 앞에 인간의 형체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얼핏 보니 나와 비슷한 육신으로 빚어지기 시작한 수증기의 형체가 점점 살색으로 변해가는 것이 보였다.
점점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좀 더 몸이 단단해지는 느낌. 그리고 몸으로 무엇을 하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때 쯤.
눈 앞에 있던 수증기가 사라지고 그 앞으로 내 신체를 닮았지만 좀 더 마르고 가늘어 보이는 형체의 인간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르륵.
내 손에 있던 린의 마갑 반지가 녹아내리면서 사라지고, 꽃반지에서 그아라가 불쑥 튀어나와 흐엑 하는 표정으로 몸을 옆으로 피했다.
녹아내리는 마갑 반지의 검은 액체가 눈 앞에 있는 인간의 형체로 스르륵 빨려 들어가자, 곧 그 수증기가 사라지기 시작한 인간의 형체의 머리 부분이 나타났다.
검은색의 긴 생머리의 나를 닮은 것 같지만 조금 더 부드럽고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 그리고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얼굴의 여성스러운 두상이 나타났다.
분명 나와 비슷한 것 같지만 완전히 달라 보이는 미인형의 얼굴의 두 눈이 깜박이면서, 점차 그 아래의 모습이 나타났다.
남자인 나와는 다르게 날카로운 턱에 가느다란 목선. 그리고 좁아 보이는 어깨 라인에 살짝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쇄골의 모습.
그 밑으로 부드럽게 휘어지듯이 늘어진 가슴 라인과 여성 특유의 살짝 부푼 듯이 올라온 봉긋한 가슴과 그 아래로 얇은 허리 라인과 날씬한 허리와 배꼽이 스르륵 보일 때 쯤.
확실히 나를 닮았지만 여성의 모습을 한. 좀 전의 내 또 다른 자아, 똘똘이가 말했던 내용들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나를 닮은 쌍둥이 여동생이라고 했었지?
키는 나보다 한 뺨 정도는 작아 보였고, 수증기가 걷히기 시작함과 동시에 하체가 드러나려는 순간 좀 전에 내가 집었던 검은색의 담요가 내 손에서 빠져나와 수증기 쪽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곧 부욱 부욱 하고 담요가 찢겨져 나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휘릭 휘릭 하고 무언가 휘어 감기는 소리와 바느질 하듯이 사각 사각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서서히 조각난 검은 담요가 이내 한 벌의 옷이 되어 내 앞에선 날 닮은 여성의 몸에 휘감기듯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마치 어렸을 적 보았던 마법소녀가 변신하듯이 검은 옷.
즉 정장으로 변한 검은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그녀의 눈이 떠지면서 입술이 열리기 시작했다.
"아아... 이것이 반신의 힘?"
린의 평소의 날 선 목소리가 약간 정갈하게 다듬어진 목소리라고 해야 할까?
정장을 입으면서 뭔가 지적인 이미지가 느껴지기 시작한 그녀의 눈동자가 내 알몸의 모습을 담았다.
"아차..."
그러고 보니 아무 생각 없이 알몸으로 다녔네.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내 내 옆에 서 있던 세라자드를 바라보자 어느새 사각형으로 두 번 접은 사각 팬티와 돌돌 둥그렇게 말은 내 망토를 들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좀 전까지는 분명 맨손이었던 것 같은데.
"주인님. 입혀드릴까요?"
이미 내 생각을 꿰뚫는 듯이 눈빛을 빛내며 내게 옷을 입힐 기회를 노리는 세라자드의 모습에 순간 민망함과 두려움의 감정이 교차했다가, 중간에 끼어들려고 하는 아우렌을 지나쳐 세라자드에게 다가갔다.
"아니. 내가 알아서 입을게."
정중한 자세로 두 손으로 내 사각 팬티와 망토를 건네오는 세라자드의 모습에 헛기침을 한 번 해주고 재빨리 그것들을 받아 입었다.
방금 전 내 몸에서 수증기 같은 것이 빠져나가면서 거대하게 부풀었던 똘똘이가 원래처럼 30cm가 좀 안 되는 길이로 돌아왔는데, 조금씩 발기가 줄어드는 느낌과 함께 길이가 좀 더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풀발기 상태에서 벗어나는 건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