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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마왕 간부에게 소환당해 착취당하고 있다-106화 (106/220)

〈 106화 〉 제 13화. 시스템. (4)

* * *

스륵. 스륵. 옷깃이 스쳐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수증기가 서서히 걷혔다.

그리고 그 안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여성이 서서히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딱 보아도 어디 사무실에서 비서나 팀장급 여직원으로 보일 정도로 지적이고, 똑부러지게 생긴 이미지가 떠오르는 여성의 모습이 눈 앞에 나타났다.

나를 닮은 것 같기도 하면서 아닌 것 같기도 한 것 같은 애매한 인상에 이목구비.

아니. 자세히 보니 내 여동생하고 비슷하게 생긴 것 같기도 한데, 눈매나 머리카락의 곱슬 정도가 좀 다른 것 같다.

동생이 살짝 웨이브 진 곱슬인데,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여성은 나처럼 생머리에 눈매또한 호전적이었으니까.

그러면서도 지적으로 보이는 것 만은 확실히 나와는 다른 모습인데.

하체를 가리던 수증기 마저 사라지고 나니, 검은색 정장 바지에 맨발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드러났다.

"어때?"

정갈한 목소리로 나에게 자신의 상태를 물어오는 내 앞에 여성을 두고 나는 잠시 이맛살을 구겼다.

이건 린이냐 아니면 내 자아냐?

아니지 그것보다 합체하긴 했지만 여성이 맞긴 맞는 건가? 아까 슬쩍 가슴을 보았을 때는 확실히 여자의 몸이었는데.

검은 정장을 입었음에도 확실히 여성처럼 가녀린 몸매에 들어갈 곳 들어가고, 나올 곳 나온 몸매를 유심히 살펴보면서 확실히 여성의 체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목소리나 외형도 그렇고, 머리색이나 얼굴이 살짝 내 여동생과 나를 닮았다는 것 빼고는 다르게 생긴 생김새.

더욱이 나나 내 여동생이 가지지 못한 지적인 이면이 확연히 드러나 보이는 것이 고개를 절로 젓게 만들었다.

"정말 이게 내 일부에서 만들어진 몸이란 말이야?"

"아니. 네 일부가 아니라 내 이미지와 네 권능에서 비롯된 몸이야."

린의 말투인데 살짝 내 똘똘이에 있던 자아와도 비슷한 언행으로 말을 걸어오는 눈 앞에 여성을 보면서 침음을 삼켰다.

"그리고 이제는 김린이라고 불러. 네 권능에서 비롯한 육체와 자아가 내 정신과 자아를 만나서 새로 만들어진 존재이니까."

김린...

설마 내 김씨 성과 원래 이름이었던 린을 따다가 만든 이름인가?

"그리고 정신적으로 어떻게 보면 너와도 이어진 권속이 된 참이니까. 기존의 사도가 아닌 권속으로서 네 권능의 일부를 양도 받을 수 도 있지."

그러면서 김린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나를 바라보자, 이내 나와 김린 사이에 이어진 푸른 빛줄기 같은 것이 보였다.

"이건..."

"권능으로 이어졌다는 증거야. 이마를 내 쪽 이마에 대 봐."

그녀가 내 앞으로 걸어오더니 내게 이마를 내밀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서 이마를 내밀자, 무언가 머리에 지잉 지잉 울리는 느낌과 동시에 머리가 상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 말고도 아마 권속으로 등록된 얘들이 있을 거야."

기묘한 느낌.

마치 상쾌하면서도 청명해지는 머릿속과 함께 그녀를 포함한 몇 몇의 얼굴들이 떠오르며, 내 몸안에서 기운이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권속들은 네가 원하면 언제든지 네 쪽으로 소환이 가능해. 물론 무분별한 소환은 불가능하고 제한이 있지만, 일단 소환이 가능하다는 게 포인트지."

"소환이 가능하다고?"

이마를 맞댄 상태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묻자, 그녀가 입가를 호선으로 그으며 씨익 웃었다.

"그래. 네가 찾아다니던 아이린도 소환할 수 있을 지 몰라."

김린과 이마를 맞댄상태에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뭔가 묘했다.

뭔가 텔레파시 같은 내면의 생각으로만 대화를 하던 린이 이렇게 신체를 갖고 육성으로 말을 뱉으니 뭔가 묘한 신기한 기분도 들었다.

그나저나 아이린이라...

"잠깐. 아이린을 소환할 수 있다고?"

정말 아이린을 소환 할 수 있다면 이렇게 힘들게 아이린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지지.

"응. 물론 내면의 권능을 확인 해 봐야겠지만."

"대박."

절로 튀어나온 감탄사에 천천히 청명한 기운이 감도는 머리로 눈을 감자, 무언가 상상하던 그 대로의 커다란 푸른 은하수가 펼쳐졌다.

그리고 그 은하수 가운데에 마치 게임처럼 내가 알고 있던 몬스터 아가씨들의 초상화가 떠오르며, 그것이 방금 전 김림과 연결되었던 푸른 빛줄기로 연결되며 무언가의 기운이 내게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집중하고 있는 제일 왼쪽 시야에 있던 초상화에 에슬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만났을 때의 펑퍼짐하고 커다란 미인의 몸매의 슬라임이 아닌 지금은 여신처럼 아름다운 인간의 몸매에 머리에 천사링을 달고 있는 상체 딱 가슴 아래까지 그려진 에슬리의 초상화.

에슬리의 초상화에 시선을 집중하자, 초상화 주변으로 푸른색의 빛줄기가 시계방향으로 스윽 휘감듯이 번쩍이더니.

이내 온 몸의 뼈와 살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 변화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엇이든간에 원하는 형태와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아니. 잠시 나를 관조해보니 이미 몸이 전체적으로 20대 때의 가장 혈기왕성하던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30대에 도달하면서 주름진 손은 포동포동 살이 올라왔고, 굽었던 어깨와 허리도 곧게 펴졌으며, 그로 인하여 눈 높이도 살짝 높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의 초점이 조금 더 뚜렷해지면서 은하수를 포함한 우주 같은 이 공간에 대한 시야가 또렷해지면서 주위의 새로운 감각들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 다음 촉감부터 후각 청각. 모든 것이 10대 나이대로 돌아가듯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는 몸의 기관들이 하나하나 새롭고 디테일한 감정들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신기하네..."

음성도 살짝 마르고 건조하던 목소리가 아닌 젊고 어린 미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든 것이 또렷해지고 민감해진 것 같은 기분.

아래를 내려보니 내 똘똘이도 적당한 크기로 줄어들어 있었는데, 발기를 하면 원하는 크기로 얼마든지 커지거나 길어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홀리..."

에슬리의 초상화에서 시선을 떼자 초상화를 감싸던 빛줄기가 사라지고, 아이린의 초상화에 빛줄기가 감싸들었다.

그러자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을 것 같던 감각이 사라지고, 대신 온 몸의 마력이 피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온 몸의 땀구멍이라 생각되는 모든 구멍들을 통해 시원한 바람이 흘러나오듯이 주변이 마력으로 가득차면서 동시에 손을 살짝 휘두르자, 마력이 마치 포자처럼 흩어지면서 가루가 되어 주변에 흩어졌다가 다시금 내 손동작을 따라 주변에 둥둥 떠다니며 따라다녔다.

신기하네.

마력을 이렇게 느끼는 것도 신기한 감각이었지만, 마치 내 몸에 묻은 먼지들을 털어내서 조종하는 느낌에 감각을 키워보니 포자 처럼 변한 마력들이 원하는대로 분열되었다가 합쳐졌다가를 반복했다.

살짝 마력 위에 무언가의 힘을 부여 하듯이 정신을 집중하자, 마력의 포자들이 푸른빛을 띄면서 아름답게 반짝였다.

마나라는 개념이 소진 되는 느낌과 함께 아무리 끌어다 써도 흘러 넘칠 정도의 마나의 양이 포자의 마력을 한층 강화하는 게 보였다.

"와아."

은하수 위에 올라탄 상태로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자연스럽게 손을 크게 휘휘 젓자, 그에 따라 마력이 흘러나오면서 마력을 뒤집어 써 푸른색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듯이 주변이 푸르게 변했다.

좋다.

지금까지 왜 지능이나 지혜를 안 찍었는지 후회 될 정도로.

초상화에서 시선을 서서히 떼자, 온 몸에 감돌던 마력이 사라지고 뿜어져 나오던 마나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이린의 초상화의 빛줄기가 옅어지자, 그 다음에는 세라자드의 초상화가 나타났다.

근데 신기한 것은 방금 전 에슬리에서 아이린의 초상화로 옮기고 세라자드의 초상화로 시선을 옮겼는데.

처음 에슬리의 초상화에서 얻은 능력으로 몸 상태가 전성기로 바뀌었는데, 그 몸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고.

아이린의 초상화에서 얻은 마력을 포자로 만드는 능력이 그대로 유지되어 내 몸에 원래 있던 마력과 마나를 움직이자 손 위에서 포자 형태의 마력이 피어나면서 마나에 휘감겼다.

물론 둘 다 처음에 능력을 얻었을 때 처럼 내가 원하는대로 무한대로 바뀔 것 같은 느낌이 아니었지만.

세라자드의 메이드복을 입은 초상화 위로 빛줄기가 휘감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온 몸에서 마나가 휘감기며 몸에 거대한 힘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심장 반대쪽에 있는 또 다른 심장. 마나 하트가 생겨나면서 강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본래 숨을 들이키고 내 뱉을때마다 뛰는 심장과 달리 일정한 규격으로 마나가 온 몸을 순환해서 도착할 때 마다 펌프질 하듯이 뛰는 마나하트.

내 몸에 거대한 마나하트가 생겨나면서 온 몸에 어마어마한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에슬리의 능력으로 골격과 근육이 바뀔 때와는 또 다르게 내부에서 마나가 마치 혈액처럼 내 몸에 녹아들어서 무한하게 순환하는 느낌과 동시에 그것이 내가 원한다면 바깥으로 표출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린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마나를 오른 팔에 끌어 모은다는 생각으로 주먹을 꽉 쥐고 힘을 주자, 팔이 돌처럼 단단해지는 것 같은 느낌과 동시에.

혈액이 팽창해서 팔 자체가 부풀어 오르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팔을 한번 뒤로 젖혔다가 주먹을 내지르자, 쩡 하는 소리와 함께 주먹이 멈춘 위치에서 무언가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내가 주먹을 내지른 결 그대로 우주의 배경 일부가 뒤틀리는 것 같이 찌그러지더니 이내 엄청난 풍압이 주먹 끝에서 터져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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