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제 13화. 시스템. (8)
* * *
잠시간의 침묵.
"아우라... 후광..."
린에게 대충 설명을 들었지만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갑자기 뜬금없이 조건이 달성 됐다고 반신으로 변한 것도 아직 이유를 알지 못했는데.
반신이 됐다고 갑자기 이렇게 숭배를 하다니.
아니. 숭배가 맞는 표현이 맞겠지?
주위를 둘러싼 미노타우르스 걸과 어느새 내 옆에 있다가 다시금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세라자드.
결국 내 앞에 서 있는 린을 제외한 모두가 내 앞에서 경외를 표하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다들 그만하고 일어서."
가볍게 말했는데, 마치 내 말이 들판을 쩌렁쩌렁하게 울릴정도로 주변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주변에 모든 이가 내 말에 움찔거리더니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론 그 와중에 제일 눈에 띄는 것은 거대한 가슴들이 물결치듯이 출렁이는 장면이었는데. 뭐랄까?
홀리.
그 웅장함에 침을 꼴깍 삼키면서 제일 가까운데서 서 있는 아우렌과 세라자드를 바라보았다.
세라자드가 갑자기 마나하트가 일부 복구된 것 처럼.
아우렌의 몸에도 이상하게 수증기가 피어오르듯이 붉은 기운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는데, 복근이나 팔 다리의 근육이 좀더 굴곡지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그것이 뭐랄까? 보기 흉할 정도가 아니라 딱 보기 좋을 정도로 근육이 자라난 거라, 아직도 살짝 육덕진 몸매로만 보였다.
물론 이는 가슴 때문이기도 하지만. 잠깐. 살짝 가슴 크기가 줄어든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원체 가슴이 컸다보니 줄었는지 아니면 그대로인지 알기도 어려웠다.
순간 그녀의 가슴의 감촉이 머릿속에 스윽 떠오르면서 지금 상황이 그럴 상황임이 아님에도 왠지 주물럭 하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흐음.
가까스로 본능적으로 이는 감정을 억누르면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처음에 이 곳에 도착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깊은 지하 굴임에도 미궁이라면서 별천지 세상을 보여주던 던전 내부.
그 내부의 모든 것이 하늘에 달려 있는 인공 태양 때문이라는 것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 미러볼처럼 천장에 달려 있는 인공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마기가 이 모든 것을 구현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전부 허상이나 홀로그램이 아닌 비슷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었으므로, 보고 있는 나무나 들판 혹은 저기 잔뜩 자라있는 벼나 곡물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물론 저 마기를 내 뿥어내는 인공 태양이 사라지면 주위의 환경이 전부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금방 시들어버리거나 죽어버리겠지만.
그럼 저 인공 태양 같은 것이 이 미궁의 층층마다 있는 걸까?
루루한테 물어보면 알려나?
잠시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자리를 털고 일어난 미노타우르스 걸들과 아우렌 세라자드가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참. 이렇게 집중적으로 시선을 받으니까 뭔가 부끄러운데.
"그..."
할말이 없어졌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일단 원래 있던대로 편하게 있어볼래?"
내 어중간한 주문에 내 주변을 둘러싼 수십의 미노타우르스 걸들이 잠시 서로 얼굴을 보면서 갸웃거리다가 다시금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게 아닌가?
"그 일단 원래 누워 있던대로 주변에 누워 볼래?
그러자 뭉쳐있던 미노타우르 걸들이 살짝 살짝 거리를 벌리더니 이내 나를 둥그렇게 둘러싼 그대로 자리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아니... 그러니까. 하. 참.
"반신님?"
내 앞에 서 있던 아우렌에게 내게 성큼 다가오며 말했다.
"으응?"
"반신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려주세요."
"잠깐... 반신님이라고 하지 말고 원래대로 이름으로 불러 줘."
갑자기 감정과 기억을 공유까지 했던 아우렌이 나를 반신님이라면서 높여 부르자, 뭔가 이건 아니다 싶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너를 도와주고, 너는 나를 지켜준다고 했잖아."
내 말에 아우렌의 눈망울이 순간 촉촉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는 반신이나 주인님이란 호칭은 거창하니까. 그냥 김지호. 혹은 지호라고 불렀으면 좋겠어."
아우렌을 보다가 세라자드를 보면서 말을 하자, 무언가 내 몸에서 뻗어나간 기운이 아우렌과 세라자드를 감싸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나서는 린 때와 마찬가지로 푸른 빛줄기 같은 것이 나와 아우렌 그리고 세라자드에게 연결되는 것이 느껴졌다.
원래도 희미하게 실 같은 것으로 연결되는 느낌이라면 지금은 완전하게 끈 같은 것으로 이어졌다고 해야 할까?
"지호..."
"지호님..."
두 명다 미성에다가 약간 단호해보이면서도 침착한 목소리다 보니 목소리의 끝이 웅웅 거리면서 울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약간 경외의 시선에서 존경의 시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부담스러운 눈빛이 덜해졌다고 해야하나? 그러다 보니 다음 말을 꺼내기도 편해졌다.
"흠. 흠. 일단 아우렌과 세라자드만 냅두고, 다들 하던 일부터 하고 있어 봐."
내 말에 하던 일이 없던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미노타우르스 걸들이 아우렌의 눈짓 한번에 이 곳에서 떨어지더니 언덕 아래에 대충 드러눕기 시작했다.
"아우렌, 세라자드, 린."
내 앞에 남은 셋을 부르자, 세 명의 아가씨가 내 앞에 주르륵 나열하듯이 섰다.
제일 왼쪽에 아우렌, 중앙에 세라자드, 오른쪽에 린.
"응. 지호."
"네. 지호님."
"응."
세 사람의 대답을 기다린 후, 천천히 내가 하고 있던 일들을 떠올렸다.
제일 우선적으로 집으로 돌아간다는 목적이 있고.
지금은 인간족 여 용사가 보낸 병사들을 막는 것과 동시에 갑자기 사라진 아이린을 찾는 것이 현재의 목표였다.
"일단 지금 목표는 미궁에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인간들의 침입을 막는 것하고, 아이린을 찾는 거야."
"응."
"네."
"잠깐. 본ㅊ... 아니. 김지호. 이제 반신의 반열에 올랐기 때문에 권속이라 볼 수 있는 아이린은 네 능력으로 호출 할 수 있을거야. 물론 상황에 따라서 안 될 수도 있지만."
"어떻게 하는 건데? 그건?"
"머릿속으로 아이린을 떠올리고선 내 앞에 나타나게 한다. 라는 생각을 강하게 해 봐. 그러면 무언가 아이린과 연결된 된 권능이 발동 할 거야."
일단 린이 알려준대로 머릿속에서 아이린을 찾는다는 신호를 강하게 보냈다.
그러자 린을 통해서 보았던 숲 속의 있던 아이린의 초상화가 떠오르면서 푸른 빛줄기가 초상화에 달라 붙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을 내쪽으로 잡아당겨보려 하는 순간, 무언가에 달라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안 되는데?"
"음. 그럼 뭔가 이유가 있어서 소환이 안되는 걸텐데. 그럼 내가 직접 찾으러 가볼까?"
"그래 주겠어?"
"응. 어차피 나도 네 권속이다 보니까. 네가 생각하는 버섯 엘리베이터도 사용할 수 있거든."
그 말과 함께 바닥이 갈라지면서 사람 한명이 탑승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그마한 버섯 엘리베이터가 생겨났다.
기존의 이미 자리를 잡고 설치한 다음 움직이던 아이린의 능력에서 좀 더 업그레이드 한 것 같은 능력을 선보이는 린.
그리고 왠지 나도 조금만 노력한다면 그것이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충 층수는 예상 되니까... 저기 아우렌이었지?"
"으응?"
나를 바라보며 존경의 눈빛을 보내던 아우렌이 뭔가 껄끄럽다는 시선으로 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 반신에 자리에 올랐다며, 덩달아 린을 반신으로 보던 세라자드와는 완전 다른 반응.
"나랑 같이 아이린을 찾으러 가자."
마갑에 있을 때와 달리 조금 나와 닮은 식으로 말투가 변한 린의 말에 아우렌이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김린이라고 했지?"
"응. 맞아. 지호와는 쌍둥이 여동생이라고 보면 돼."
하면서 린이 나를 보더니 한쪽 눈으로 살짝 윙크를 했다.
맞는 말은 아니지만 개념적인 면으로 보자면 비슷하기 때문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잘 보면 린이 세라자드가 아닌 아우렌을 고른 것에 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김지호는 세라자드와 함께 올라가서 상황을 좀 봐 봐. 곧 있으면 용사가 보낸 병력들이 쳐들어올테니까. 여기 있는 미노타우르스 걸들도 데려가면 좋고."
"응?"
린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용사가 보낸 병력이 오려면 최소 6일은 남아 있을텐데?
그것도 내가 아라아라와 아우렌에게 묶여 있던 시간을 하루라고 계산 했을 때 6일이 남은 셈이었다.
"그게 말이야."
린이 내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귓속말을 속삭였다.
"네가 반신으로 각성하고 내가 권속으로 육체를 얻는 동안 거의 5일 넘게 시간이 흘렀거든. 아, 물론 이건 내가 직접 시간을 계산한 거니까 확실 한 거야."
"응? 5일이나 흘렀다고?"
"응. 사실 5일 밖에 안 걸린 것도 기적이라고."
잠시 린의 말에 정신이 멍해졌다. 아니. 뭐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5일이나 흘렀다고?
가까이 다가온 린에게서 시선을 떼서 아우렌과 세라자드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우렌이나 세라자드나 차림새가 내가 이 곳에 도착했을 때와 다르게 행색이 좀 더 깨끗하고 깔끔해져 있었다.
* * *